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화 (90/200)

< 시작 1 >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공납금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홀로 키우시는 할머니는 그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결국 중학교를 자퇴하자마자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공장과 공사장을 전전하며 날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몸이 성치 않으신 할머니를 어느 정도 봉양할수 있었다.

***

공사장에서 날품을 판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복을 입은 한무리의 남녀 학생들이 하하호호를 연발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청춘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부모 잘만난 덕으로 속편하게 학창시절을 즐기는 탓이다.

반면 내 부모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내자식이 쪽팔리게 길거리에서 눈물이나 쏟아내는 꼴이라니.

내 자신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곧장 판자집으로 있는 힘껏 내달렸다.

집에 들어가자 할머니는 연신 기침 소리를 토해내며 자리에 드러누우셨다.

당신을 깨우는게 마땅치 않은 관계로 건넛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침상에 몸을 뉘이자마자 짐이 비오듯 쏟아졌다.

잠결에 뭔가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다른 존재가 나를 쳐다보는거 같은 기분이었다.

눈을 뜨자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이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거울을 보는듯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향해 동정이 그득한 눈빛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너의 미래다."

그의 입에서 알쏭달쏭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일평생 개고생만 하다 2017년에 죽었다. 돌봐주는 이 한명 없는 독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남자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저승으로 가기전에 과거의 나를 보고 싶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저승사자의 허락하에."

그가 두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부터 알려주는 정보를 필기노트에 받아적어라. 너를 부자로 만들어줄 내용이니까."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범접할수 없는 권위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의 말이 사실임을 직감했다.

곧바로 책상 서랍에서 필기노트와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차분한 얼굴로 미래의 일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1979년 박정후 대통령이 서거한다.

-1980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한 장군이 정권을 장악한다.

-1987년 노태유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1988년 88올림픽이 개최된다.

-1990년 분당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필히 분당의 토지를 그전에 매입해라. 나중에 어마어마한 부를 너에게 안겨다 줄 것이다.

-1992년 김영오가 대통령에 선출된다.

-1997년 한국의 경제가 파탄지경에 내몰린다.

-1997년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기금을 요청한다. 그 덕분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정리해고를 당한다.

-1998년 김대주가 대통령에 등극한다.

-1999년 IMF를 졸업함과 동시에 강남의 부동산이 폭등한다. 필히 강남 아파트를 대규모로 매입해라. 나중에 큰 돈이 될 것이다.

-2000년 IT 기업들이 대박을 친다. 그러나 IT 주는 리스크가 많은 관계로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길 바란다.

-2002년 노무연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필히 충남 연기군 인근의 토지를 그 전에 대규모로 매입해라. 엄청난 시세차익을 볼 것이다.

-2002년-2007년 사이에 삼송전자, 한국전기, 포향제철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다. 저들 주식 중심으로 반드시 투자해라.

-2007년 이명학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가 취임함과 동시에 부동산이 폭락한다. 그러니 2007년 이전에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길 바란다.

-2012년 박정후 대통령의 딸인 박근해가 대통에 등극한다. 그녀가 집권함과 동시에 부동산이 다시 큰 폭으로 상승한다. 그러니 그녀가 집권하기 전에 강남 아파트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라. 반드시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너에게 안겨다줄 것이다.

<추신>

-2000년 초반 부터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의 주식이 경이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필히 뉴욕 증시에 상장된 저들 기업의 주식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투자하라.

-해외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반드시 만들어라. 특히 버진 아일랜드에 소재한 영국계 은행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페이퍼 컴퍼니 계좌에 은닉된 자금을 바탕으로 검은머리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라. 그리해야 국내외에서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할수 있다.

-내 말은 한치의 거짓이 없는 진실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러니 내가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이 되거라.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 최고 최대의 재벌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절대 결혼을 하지마라.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백프로 후회한다. 그러니 수많은 미녀들과 엔조이를 즐기는 삶을 추구하라. 그것이 남는 장사다. 명심해라.

-그럼 나중에 저승에서 보자. 과거의 나여!

나를 쏙 빼닮은 유령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2017년에 죽은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중요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려준 탓이다.

이걸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당최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오늘 잠은 다 잤다.

그때, 건넌방에서 할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클럭..! 클럭...!

할머니는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워주신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오늘 내일 하고 있었다.

연로한 탓이었다.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머니를 들쳐매고 병원으로 달려갔겠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판자촌 거지가 그런 돈이 있을리 만무했다.

더구나 할머니는 피같은 돈을 병원에 낭비하는걸 결코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로지 내 걱정만 하셨다.

다음날.

건넛방에 들어가자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골아떨어진 할머니가 보였다.

그러기를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혹시나 하는 심경으로 할머니의 코끝에 귀를 가져가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후로도 할머니의 숨결을 듣기 위해 벼라별 짓을 다해봤지만 당신은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별다른 고통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삼일장을 치른 뒤 할머니의 유골을 한강변에 흩뿌렸다.

그렇게 나는 15살의 나이에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공장과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있는대로 돈을 모았다.

미래의 내가 알려준대로 분당의 토지를 눈에 보이는 족족 사모으기 위함이었다.

내가 믿을건 미래에서 넘어온 유령 뿐이었다.

***

내 나이 20살 무렵, 박정후 대통령이 서거했다.

미래에서 넘어온 도플갱어가 알려준 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더욱 더 돈을 모으는데 박차를 가했다.

민주화 시위고 나발이고 내 알바 아니었다.

내 종교는 첫째도 돈이었고, 둘째도 돈이었다.

민주화 따위는 돈 많은 한량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하루하루 처절한 가난을 벗삼아 살고 있는 나에게 민주화는 먼나라 얘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공사장에서 날품을 팔며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었다.

막노동을 끝마친 뒤 판자촌으로 들어갈 찰나 포크레인이 판잣집을 무자비하게 철거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울시에서 고시한 대로 드디어 판자촌을 철거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탓인지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작업자들에게 격렬히 저항하며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미련없이 판자촌에서 물러나왔다.

어차피 집안에는 돈이 될 만한 물건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은행으로 직행했다.

은행에서 찾은 2천만원을 들고 분당으로 내려갔다. 도플갱어가 명령한 대로 분당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기 위함이었다.

떡방에 들어가자 나이지긋한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20대 초반의 새파란 녀석이 사무실에 나타나자 내심 무시하는 모양새였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용건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동네 땅값이 얼마죠?"

그러자 떡방 사장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 친구 같은데 그냥 가라. 이곳은 어린놈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고."

결국 그에게 내 경제력을 과시하기로 작심했다.

곧바로 가죽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방 안에 2천만원이 들어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그러자 사장이 놀란 얼굴로 가방 안을 유심히 살폈다.

떡방 사장이 언제 그랬냐느듯 나에게 존댓말을 해왔다.

"미안합니다. 요즘 어린 놈들이 장난 삼아 사무실에 자주 나타나는 바람에..."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암튼 이 동네 평당가나 알려주십시오."

"농토는 1천원 정도면 어렵지 않게 매입할수 있을 겁니다."

"산을 끼고 있는 임야 지역은 얼마죠?"

"그런 쓸모없는 땅을 뭐하러 물어보십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쓸모없는 땅이라 평당 100원만 주면 팔려는 작자들이 나타날 겁니다."

사장이 그리 말하며 의뭉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속으로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1백원 곱하기 20만평은 2천만원이다.

아다리가 맞았다.

도플갱어는 분당지역의 토지를 무조건 매입하라고 말했다.

임야 지역도 어차피 땅은 마찬가지였다.

적은 돈으로 많은 토지를 매입하려면 임야가 최고였다.

"일단 땅을 한번 볼수 있을까요?"

"그럽시다."

"임야 지역을 중심으로 한번 보고 싶네요."

"원하신다면 그쪽으로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별말씀을요. 하하.."

그날 우리는 하루종일 분당 인근의 토지와 임야지역을 차례로 둘러봤다.

일주일 후.

분당 지역의 떡방에서 쓸모없는 임야 지역을 평당 1백원에 20만평이나 매입했다.

원 소유주와 떡방 사장은 쓰잘데기없는 산야 지역을 구입한 나를 호구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알바 아니었다.

토지 등기권리증을 품안에 소중히 갈무리 한 뒤 신림동 고시촌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 시작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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