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6 >
교양과목으로 경영학을 선택했다.
여러가지 유용한 정보를 취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부터 경영학 강의실에서 김용건 교수님의 열변에 귀를 기울였다.
-영미권의 금융자본은 스위스 은행으로 몰리는 전세계의 블랙머니를 자국의 은행에 유치하기 위해 1972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페이퍼 컴퍼니를 자유롭게 설립할수 있는 은행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의 검은 자금은 여전히 스위스 은행으로 몰렸다. 결국 영미권의 금융자본은 미국 정부를 움직여 스위스 은행에 은닉된 검은 자금을 손보기로 의기투합한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스위스 당국에 출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을 낱낱이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상황이 이에 달하자 블랙머니의 주인들은 미국이 의도한 대로 버진 아일랜드와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등지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뒤 페이퍼 계좌로 천문학적인 블랙머니를 은닉했다.
-그러나 영미권의 금융자본은 이 정도에 만족할수 없었다. 그들은 국가의 조세를 자유로이 포탈할수 있는 조세회피처라는 기상천외한 사업방법을 만들어냈다.
-그런 이유로 조세회피 제도를 시행하는 버진 아일랜드에서 회사를 설립한 업체들은 조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채 각국의 조세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교수님의 유용한 강의였다.
나는 그날, 버진 아일랜드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영문학 강의실 뒷자리에 착석한 채 교수님의 떠듬거리는 서툰 영어회화를 묵묵히 경청했다.
교수님은 나이지긋한 양반이라 그런지 부정확한 발음으로 일관한 채 영미권의 서정시를 쉬지않고 입가에 떠올렸다.
하등의 쓸모없는 강의내용이었다.
내가 원한건 능수능란한 영어회화였다.
허나, 영문학과에는 그런 실력파 교수가 전무했다.
국제화 시대에 누구보다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능숙한 영어회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결국 종로에 위치한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 길이 최선이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종로 3가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영어회화 학원에 들어가자 데스크에 앉아있는 여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영어회화를 배우고 싶어서 왔는데요."
"그럼 이 서류를 작성해 주세요."
여직원은 그리 말하며 서류 한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서류에 내 이름과 주민번호, 학교, 나이, 영어 수준 등을 작성한 후 그녀에게 건넸다.
안내양은 내가 작성한 서류를 유심히 살핀 뒤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연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시네요."
"네. 그래도 영어회화가 많이 부족해서 이 학원에 왔습니다."
"기초는 어느 정도 잡혀있을 테니까, 중급반 부터 시작할까요?"
"원어민 강사분이 강의하시는 건가요?"
내 관심사는 현지 원어민이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고급반 부터 나오시거든요. 기초반이랑 중급반은 국내 선생님들이 책임지고 계세요. 그래도 회화실력이 월등히 좋은 분들이라 원어민 선생님들과 별로 차이가 없어요."
별수 없었다. 일단 중급반을 하루 빨리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급반 과정을 말해주십시오."
"기본 6개월 코스에요. 회비는 총합 150만원이구요. 매달 마다 영어회화 평가를 받으실 거에요."
"6개월 중급 코스를 통과하면 고급반으로 넘어가는 건가요?"
"네. 그렇지만 매달 마다 열리는 회화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절대 고급반으로 올라갈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인근의 은행으로 직행했다.
은행에서 찾은 돈으로 회화학원 중급과정에 등록했다.
다음날 부터 학교와 과외, 학원을 오가는 강행군을 펼치기 시작했다.
***
여름방학 시즌에 돌입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바빴다.
과외와 영어회화 수강을 병행한 탓이었다.
과외수업이 없는 주말임에도 압구정동 아파트를 내방했다.
과외비를 지급받는 월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식모 아줌마 대신 귀부인이 나를 맞이했다.
집안을 휘 둘러보자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는 눈치였다.
그때, 귀부인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영훈이는 할머니집에 보냈어요. 그리고 아줌마도 집으로 갔어요."
그녀는 이 집에 나와 자기 단 둘만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그런 사실을 직시하자 중심부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녀가 맥주와 과일 안주를 쟁반에 받쳐든 채 소파로 다가왔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맥주나 같이 해요."
결국 못이기는 척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우리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들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녀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적나라하게 내비치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거운 키스에 몰입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결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그녀의 풍만한 여체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그녀 역시 내 젊은 남성을 격렬하게 탐했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관계는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흔해빠진 불륜남녀로 전락했다.
***
오늘도 학교를 파하자마자 압구정동 아파트로 직행했다.
농염한 그녀가 나를 애타게 갈구한 탓이었다.
집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나를 침실로 이끌었다.
우리는 원초적인 모습으로 서로의 나신을 격렬하게 탐닉했다.
격정적인 정사를 만끽한 뒤 입가에 담배를 베어물자 그녀가 라이터불을 붙여주었다.
줄담배를 말아올린 채 그녀의 농익은 여체를 떡주무르듯 주물럭거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기를 문득 그녀의 입에서 뜻 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다음주에 유럽으로 떠나."
"갑자기 무슨 말이냐?
우리는 나이를 초월한 연인 관계였다.
당연히 존댓말 따위는 불필요했다.
"남편이 유럽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어."
그녀의 남편은 잘나가는 외교부 공무원이었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이었다.
"그냥 한국에 있으면 안되는거야?"
"영훈이 교육문제도 있고, 내가 안갈수가 없는 형편이야. 그래도 자기는 명문대생이니까, 조만간 이쁜 여자친구가 생길거야.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마."
그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자기 편한대로 말하고 있었다.
"자기가 원하면 쓸만한 과외자리를 소개해줄게."
"알아서해라."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풍염한 여체에 깊숙이 몰입했다.
일주일 후, 내 동정을 떼어준 그녀가 유럽으로 출국했다.
씁쓸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 인생의 첫여자였다.
영어학원에서 회화과정을 열공한 뒤 삼성동 인근의 고급 주택을 내방했다.
유럽으로 떠난 그녀가 소개해준 과외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30대 중후반의 기품있는 여성이 나를 맞이했다.
그녀 역시 중학생 자녀의 영어과외를 요구했다.
돈은 한달에 4백만원 정도였다.
다음날 부터 그녀의 자녀에게 영어 문법을 중심으로 교습을 진행했다.
***
여름 방학 시즌이 끝나자마자 학교에 복귀했다.
영문학과 경영학을 수강한 뒤 컴퓨터 공학과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오래전 부터 궁금하게 생각했던 영어 단어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미래의 도플갱어는 IT 라는 영단어를 들먹였다.
허나, 아무리 영어사전을 찾아봐도 저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컴퓨터와 관련이 있는 단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컴퓨터 공학 강의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학생들에게 불문곡직하고 물어보았다.
"혹시 IT 라는 영어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허나, 아무도 그 단어의 뜻을 알지 못했다.
지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 모양이었다.
캠퍼스의 고즈넉한 벤치에 자리한 채 수첩을 꺼내들었다.
수첩 안에는 도플갱어가 알려준 주요 사건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거의 모두 1997년 이후에 벌어지는 미래사였다.
도플갱어의 예언대로 87년 경에 분당 지역의 부동산이 대폭등할 경우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금을 은행에 묵혀두는게 최선으로 생각됐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싶었지만, 해외여행 조차 자유롭지 못한 국가에서 일반인들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다는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대기업 오너와 권력자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중은행의 연평균 이자는 대략 10 퍼센트 내외였다.
솔직히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형편이었다.
은행에 1억만 집어넣어도 연간 1천만원에 육박하는 이자소득을 올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개월 정도만 지나면 대망의 1987년이었다.
그런 탓인지 절로 흥분대는 심경이었다.
도플갱어의 예언이 현실화 되기만을 두손 모아 기도하는게 최선이었다.
***
과대와 부대가 근 넉달만에 학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놀랍게도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었다.
소문대로 남산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한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술자리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이 당한 온갖 고문에 대해서 솔직히 토로했다.
그들은 남산에 끌려간 뒤 무차별적인 구타를 시작으로 물고문, 고춧가루고문, 전기고문, 거시기고문 등을 2주일에 걸쳐 받았다고 술회했다.
특히 가장 끔찍한건 거시기 고문이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결국 과대와 부대는 비감한 눈물을 흘리며 술자리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다음날, 과대와 부대가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날 이후, 과대와 부대는 두번 다시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
대망의 신년 새해가 밝아왔다.
드디어 1987년의 희망찬 첫날이 시작됐다.
그러나 여전히 변한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플갱어의 에언이 실현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거 같았다.
그 무렵, 전국 대학가에 폐교령이 떨어졌다.
연일 극심해지는 대학가 시위를 원천봉쇄하려는 군사정부의 고육지책이었다.
***
청와대 집무실에 장일동 안기부장이 나타났다.
그는 창가에서 줄담배를 말아올리는 전두한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인 뒤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직선제를 절대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각하!"
그러자 전두한이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부장도 알다시피 미국놈들도 직선제를 지지하는 눈치라고."
"5공화국의 헌법을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미국놈들도 별다른 태클을 걸지 못할 겁니다."
"음..."
전두한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친위 쿠데타를 진두지휘 하겠습니다."
"너무 위험한 일이야. CIA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조금만 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고."
"각하께서 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빨갱이들이 더욱 극성맞게 설칠 겁니다. 그러니 제발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허나, 전두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 측에서 시민들과 야당이 원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전두한 정부에 공공연히 요구해온 까닭이다.
< 시작 6 > 끝
ⓒ 방탄리무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