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7화 (96/200)

< 시작 7 >

전두한은 심사숙고 끝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친위 쿠데타를 이용해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일거에 쓸어버릴 심산이었다.

그 무렵, 주한 미국대사인 글라이스틴이 청와대를 내방했다.

글라이스틴은 전두한을 대면하자마자 성난 얼굴로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지금 당장 친위 쿠데타를 중단하십시오!"

통역관에게 글라이스틴의 대화내용을 전해들은 전두한이 똥씹은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뭔가 오해를 하시나 본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글라이스틴이 노란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툭 내던졌다.

전두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봉투 안의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쏟아내자 수십여 장의 군관련 기밀 사진들이 드러났다.

순간 전두한이 낭패한 몰골로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진 안에는 청와대를 목표로 총진격을 감행하는 기갑사단과 공수여단의 동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전두한이 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건 미국의 CIA 였다.

박정후가 CIA의 암살공작으로 제거된 사실을 잘 아는 탓이었다.

그런 연유로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미국에 잘보이기 위해 박정후가 비밀리에 개발한 수십여 기의 핵무기들을 모조리 폐기처분했다.

글라이스틴이 고압적인 자세로 입을 열었다.

"만약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우리 미국 정부는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겁니다."

명백한 살해협박이었다.

허나, 지은 죄가 많은 전두한은 별다른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일개 미국 대사에게 허무하게 무릎 끓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두한의 진면목이었다.

그날밤.

전두한은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차후의 행보를 면밀히 심사숙고했다.

그러기를 얼마후, 30년 지기인 노태유에게 정권을 이양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인해재단을 통해 노태유를 꼭두각시 처럼 부리기로 작심했다.

그는 옥상옥의 절대권력을 이용할 심산이었다.

다음날.

청와대에 여당 대표로 복귀한 노태유가 나타났다.

전두한은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면전에 나타난 노태유를 지그시 쳐다보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렸다.

그러자 노태유가 긴장한 얼굴로 맨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공손한 언사를 내뱉었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그는 30년 지기 친구임에도 전두한에게 극존대를 구사했다.

나름의 처세술이었다.

전두한은 언제나 깍듯한 예의를 보이는 노태유를 좋아했다.

그런 탓으로 그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태유야. 니가 원하는대로 대통령 자리를 물려줄테니까 앞으로도 형한테 잘해라."

순간 노태유의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꿈에서도 그리든 대통령 고지가 눈 앞에 다가온 탓이었다.

그러나 아직 한가지 고비가 남아있었다.

"야당과 시민들이 요구하는 직선제 개헌을 어떤 방식으로 돌파하실 생각입니까?"

"물론 직선제는 가당치 않는 얘기지."

"그럼 5공화국의 헌법대로 대선을 치룰 생각이십니까?"

"그러니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국민들에게 풀 선물 보따리도 연구하고."

그러자 태유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이 은혜를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각하."

"당연히 그래야지. 우하하하..."

전두한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노태유는 청와대를 빠져나오자마자 안국동 캠프로 직행했다.

사무실에는 비선조직인 월계수회를 이끄는 박철웅 안기부 2차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철웅은 노태유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서울에 집없는 서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서울의 위성도시인 일산과 분당 등지에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해서 저렴한 가격에 분양하는게 최선입니다."

"어차피 서울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분양받을텐데 교통대책도 세워야 할거 아닌가?"

노태유의 질문에 박철웅이 즉답했다.

"일산과 분당 지역에 지하철 역을 신규로 연결할 생각입니다."

"재원이 만만치 않겠군."

"그래도 반드시 신도시는 건설되야 합니다. 천만 수도권 시민들의 안식처를 이번 기회에 작심하고 만드셔야 후대에 길이 빛나는 대통령으로 자리매김 하실 겁니다."

노태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문제는 박차장이 알아서 추진해."

"넵. 대표님."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직선제 체제 하에서 선거를 치룰 가능성도 상정해놔."

순간 박철웅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어쩌면 직선제 체제로 선거를 치워야 할지도 몰라."

"각하께서는 헌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확고하지 않습니까?"

"모든게 그 인간 뜻대로 되는게 아니야. 야당과 미국놈들이 한편으로 뭉치는 조짐이 보여서 그래."

"흠..."

철웅의 입에서 절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리고 선거자금이 대규모로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분당을 중심으로 작업을 좀 해봐."

"안그래도 사람들을 시켜서 분당 지역의 토지들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중입니다."

"절대 기밀을 유지해. 날파리들이 둘러붙지 못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

꽃피는 춘삼월이 도래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폐교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정부 투쟁 시위가 더욱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시위는 수도권 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마산, 광주, 전주, 대전 등의 전국 각지로 들불 처럼 번져가는 추세였다.

그런 탓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길거리는 지독한 최루탄 가스로 연일 뒤덮혔다.

그 즈음, 분당 지역의 떡방 사장이 고시원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수화기에서 떡방 사장의 은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손큰 사람들이 이사장을 찾는데 연결해줄까?

-나를 왜 찾는거죠?

-당연히 이사장이 보유한 토지를 매입하려고 그러는거지. 나한테 일을 맡기면 세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보장할게.

-일 없으니까,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전화를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나를 찾는 전화는 그후로도 미친듯이 자주걸려왔다.

거의 모두 내가 보유중인 토지를 매각하라는 떡방 사장들의 연락이었다.

도플갱어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전두한은 장고 끝의 악수를 내놓았다.

5공화국의 헌법을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4.13 호헌 조치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그날 이후, 전국 대도시에서 사상 최대의 대규모 시위가 들불 처럼 번져갔다.

국민들은 한목소리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외치며 너도나도 길거리로 몰려나갔다.

허나, 나는 여전히 고시원 방에 틀어박힌 채 tv에서 흘러나오는 쇼프로와 드라마에 이목을 집중하며 시간이 물 처럼 흘러가기만을 손꼽아 학수고대했다.

***

안국동 빌딩

노태유와 박철웅 안기부 2차장이 머리를 맞댄 채 뭔가를 숙의하고 있었다.

박철웅의 확신에 가득한 언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직선제를 하더라도 충분히 대표님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이유가 뭔가?"

"양김은 절대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표가 갈리는 거죠. 반면 안정을 추구하는 중산층과 시민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탓에 대표님에게 표를 내던질 겁니다."

"그 정도 갖고는 부족해."

그러자 박철웅이 최근에 실시한 비밀 여론조사 결과지를 노태유에게 건넸다.

노태유는 여론조사 결과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본 뒤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양김이 모두 출마할 경우 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오는군."

"그러니 양김이 반드시 대선에 출마하도록 은밀히 선거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박철웅의 그럴듯한 조언에 노태유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있는 대로 돈을 마련해서 양김에게 전달해."

"넵. 대표님."

***

뙤약볕이 내리쬐는 탓인지 고시원 방의 온도는 후끈한 한증막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 무렵, tv에서 뉴스 앵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태유 민정당 대표가 야당이 요구한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대내외에 피력했습니다. 중략...

드디어 올 것이 오는 모양새였다.

나는 노태유가 대통령이 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도플갱어의 예언은 신탁이나 마찬가지였다.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고시원 총무 아저씨가 귀찮아하는 얼굴로 내 발길을 붙잡았다.

"전화왔다. 요즘 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오는거냐? 하루에 30통도 넘게 오는거 같다구."

그의 볼멘 목소리에 절로 송구한 심경이 되었다.

"죄송해요. 다음 부터는 전화가 와도 제가 없다고 해주세요."

그리 말하며 아저씨의 손에 만원 한장을 쥐어주자 금새 환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케이. 나만 믿으라고. 하하..."

소시민의 전형이었다.

***

대한민국 전역은 치열한 대선전이 한창이었다.

민주세력의 구심점인 양김은 끝내 단일화에 실패한 뒤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았다.

그들은 저 마다 민주세력의 적통임을 자부하며 군사독재 정부의 후신인 노태유를 자신이 얼마든지 물리칠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허나, 대선은 그들의 확언과 매우 동떨어진 결론을 도출해냈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민정당의 노태유 후보가 여유롭게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드디어 도플갱어의 4번째 예언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노태유의 제 1공약은 수도권 1백만호 신도시 건설이었다.

그런 탓인지 대선이 끝나자마자 고시원에 벼라별 인간들이 벌떼 처럼 몰려들었다.

그들 대다수는 부동산 투기에 환장한 족속이었다.

일반인들도 많았지만 기관원들과 조폭들도 있었다.

수틀리면 나를 협박해서라도 분당의 토지를 헐값에 채가려고 혈안이 된 인간들이었다.

결국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수도권 인근의 사찰로 은밀히 숨어들었다.

일이 잠잠해 질때까지 절간에서 속편하게 지내기 위함이었다.

< 시작 7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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