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9 >
학교를 파하자마자 종로 영어학원으로 직행했다.
고급반 강의실에 들어가자 늘씬한 팔등신 금발미녀가 나를 반겼다.
그녀는 우리 학원 최고의 미녀인 카밀라였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출신의 재원이었다.
별 처럼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앵두같은 붉은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영어 발음은 무척 세련됐다.
그런 탓으로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한국인들의 어설픈 영어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급반에 들어온지 한달이 지났겄만 내 영어회화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거 같았다.
결국 나름 영어회화를 잘하는 고급반 선배인 조명록에게 도움을 청했다.
"강의 끝나면 생맥주 집에서 맥주나 한잔하시죠."
내 제안에 그가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태수씨가 사는거지?"
"당연하죠. 하하..."
우리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인근의 생맥주 집으로 넘어갔다.
감자칩과 치킨을 안주삼아 시원한 생맥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그제서야 살거 같았다.
어느 정도 입가심을 한 뒤 조명록에게 내 속을 털어놓았다.
"영어회화를 속성으로 마스터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흔쾌히 즉답했다.
"백마랑 보디랭귀지를 즐겨봐. 그러면 만사가 편해진다고."
"그게 무슨 뜻이죠?"
"태수씨는 왜, 그리 주변머리가 없어. 척이면 착이지. 양년들을 존나게 따먹으면 된다구."
명록은 생맥을 입안에 들이부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양년과 동거하는 거야.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회화실력이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나름 그럴듯한 해법이었다.
그렇지만 백마를 꼬시는게 문제였다.
"백마를 무슨 재주로 꼬십니까?"
"태수씨는 이래서 문제야. 남자는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이라고. 그러니까 무턱대고 들이대. 그러다보면 운좋게 걸려드는 양년이 반드시 있을거다."
말은 그럴듯 했지만, 내가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방법이었다.
나는 타고난 샌님인 탓에 여자들에게 말을 거는 자체가 힘들었다.
***
영문학과 동기중에 김정문이란 녀석이 있었다.
그놈은 헬스광이었다.
그런 탓인지 몸이 정말 좋았다.
탄탄한 갑바와 삼두박근, 이두박근이 울퉁불퉁할 지경이었다.
얼굴도 괜찮게 생긴 녀석이 몸까지 근육질이라 그런지 당연히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문이 동기들 술자리에 쭉쭉빵빵한 백마를 데리고 왔다.
녀석은 술자리에서 백마 아가씨와 후끈한 프렌치키스를 과시하며 대한남아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다.
다음날, 영문학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뒷자리에 앉아있는 김정문에게 다짜고짜 백마를 꼬신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당당한 태도로 자신만만한 언사를 내뱉었다.
"당연히 몸이 좋아야지. 백마들은 근육질 남자에 환장하거든."
그날 이후, 학교 헬스장에서 살다시피하며 몸만들기에 열중했다.
글래머 초미녀인 카밀라를 꼬시기 위함이었다.
***
욕실 벽면의 전신거울을 들여자보자 근육질의 미남이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내비쳤다.
지난 6개월 동안 헬스에 열중한 덕분인지 내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탄탄한 갑바와 이두박근, 삼두박근 등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 정도면 카밀라에게 대쉬할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탄탄한 근육이 잘 드러나는 흰 티셔츠와 청바지로 패션을 완성하자마자 종로학원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고급반 강의가 끝나자마자 카밀라에게 무작정 돌직구를 날렸다.
"오늘 나랑 술이나 한잔 할래?"
그녀는 나름 한국어를 잘하는 탓에 의사소통에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미안.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좀 힘들거 같아."
카밀라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과시하며 내 두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한국 여자들과 많이 다른 태도였다.
서양 여자들은 남자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카밀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망울을 강렬한 눈빛으로 제압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제 시간이 되냐?"
평소의 나답지않게 용맹과감하게 그녀에게 재차 들이댔다.
그런 덕분일까? 카밀라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친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이 될거 같은데, 그날 만날래?"
순간 격렬한 아드레날린이 대뇌피질을 성난 야생마 처럼 무한질주하는 기분이었다.
조명록의 말대로 남자는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그녀에게 차분히 답했다.
"그럼 금요일에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 하하..."
"좋아. 그날 연락줘. 빠이."
카밀라는 터질듯한 뒷태를 과시하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대망의 금요일 밤이 찾아왔다.
생애 최로로 여자와 그럴듯한 데이트를 하는 탓에 패션에 많은 신경을 썼다.
압구정동 명품관에서 구입한 아르마니 수트와 페라가모 구두, 파텍필립 명품 시계 등으로 전신을 도배한 채 약속장소인 이태원의 라운지 바를 향해 보무도 당당히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라운지 바에 들어가자 길다란 테이블에 앉아있는 카밀라가 보였다.
그녀는 흰색의 미니 드레스 차림이었다.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간 카밀라의 굴곡진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패션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 곁으로 다가간 뒤 친근한 어조를 내뱉었다.
"오래 기다렸어?"
그러자 카밀라가 고개를 저으며 화답했다.
"아니. 나도 방금 전에 왔어."
그녀에게 빙긋 웃음 지으며 준비해온 선물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받아. 선물이다."
그러자 카밀라가 반색하는 얼굴로 보석함을 개봉했다.
"오마이갓...!"
그녀의 입에서 격한 감탄사가 쏟아져나왔다.
첫데이트 부터 통크게 다이아 목걸이를 선사하자 감동한 모양이었다.
카밀라는 감격한 얼굴로 내 볼에 앵두같은 입술로 키스를 해왔다.
-쪽쪽쪽...!
확실히 여자는 다이아에 약하다.
동서양을 불문한다. 인정.
잠시 뒤, 그녀와 칵테일을 음미하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후 우리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19금으로 넘어갔다.
카밀라는 개방적인 서구 여성이라 그런지 성적인 토크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성욕이 강해. 단지 남자 처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야."
그녀의 말을 묵묵히 경청하며 달달한 칵테일을 목젖 깊숙이 들이켰다.
"나도 어쩔때는 성욕을 참기 힘들 때가 많아. 남자친구라도 곁에 있으면 덜한텐데..."
카밀라가 말끝을 흐리며 유혹하듯 나를 쳐다봤다.
쌀이 익어 밥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오늘밤 나랑 잘래?"
그녀의 도발적인 언사였다.
"다아이 목걸이도 선물해 줬는데, 여기에서 헤어지는 것도 그렇잖아."
카밀라가 내 오른손을 자신의 섬섬옥수로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너만 괜찮다면 나야 언제나 오케이지. 헤헤..."
바보 처럼 헤픈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늘에 오를듯 기분이 좋아졌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그리 말하며 카밀라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곳이 내 품에 안겼다.
카밀라를 대동한 채 압구정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는 넓직한 아파트를 둘러보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뷰가 정말 좋아. 아름다운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구!"
그녀의 감탄사를 뒤로 한 채 양주 서랍장에서 발렌타인과 술잔을 꺼내서 테이블에 세팅했다.
우리는 발렌타인을 물 처럼 들이킨 뒤 뜨거운 프렌치키스를 만끽했다.
카밀라가 미니 드레스를 훨훨 벗어던졌다.
그러자 팔등신의 여체가 눈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곧게 뻗은 늘씬한 팔다리와 흐드러진 골반, 그 아래로 펼쳐진 탐스러운 애플힙은 남자들의 애간장을 살살 녹일 지경이었다.
우리는 그날,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다음날.
오늘도 학원이 끝나자마자 카밀라를 내 집으로 데리고왔다.
격정적인 정사를 탐닉한 뒤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나랑 동거할래?"
내 제안에 그녀가 반색한 얼굴로 화답했다.
"나야 좋지. 호호..."
카밀라는 그리 말하며 내 너른 가슴에 고운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동거생활에 돌입했다.
***
카밀라와 동거생활을 해서 그런지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영어회화 실력이 일신우일신했다.
거의 현지 원어민 수준의 레벨로 급상승했다.
모두 아름다운 카밀라 덕분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뜨거운 정사를 만끽한 뒤 인근의 숯불 고기집으로 직행했다.
카밀라는 한식 중에서 한우 소갈비를 제일 좋아했다.
당연히 나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한우 소갈비를 원없이 서비스했다.
카밀라는 둘이 먹다가 한놈이 뒈져도 모를 정도로 맛이 꿀맛인 한우 소갈비를 봄날에 게눈 감추듯 후딱 헤치운 뒤 나를 향해 특유의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쳤다.
그녀의 눈웃음은 언제봐도 매혹적이었다.
그런 탓인지 내 입술이 저절로 그녀의 앵두같은 입술로 직진했다.
우리는 중인환시리에 뜨거운 키스를 탐닉했다.
그러자 장내에 헛기침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퍼졌다.
고깃집에 왕림한 어르신들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었다.
카밀라를 데리고 집으로 급거 귀환하자마자 불꽃같은 사랑을 격렬하게 탐닉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 카밀라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학원으로 출근한 모양이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메아리쳤다.
전화를 받자 카밀라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밤에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태원의 바로 나와줄래?
-무슨 얘긴데? 그냥 집에서 하면 안될까?
-집에서 말하기는 좀 그래. 부탁이야.
-알았다. 그럼 있다 7시에 바에서 보자.
-고마워. 허니.
그날 저녁.
바에 들어가자 테이블에 앉아있던 카밀라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한 뒤 자리에 앉자 바텐더가 진토닉을 건넸다.
진토닉을 음미하며 카밀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거 같아."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가 아니라 오래전 부터 생각하던 일이야."
"그냥 한국에서 나랑 살면 안되냐?"
그러자 카밀라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곳에는 내 친구들도 없고, 가족도 없어."
"내가 있잖아."
카밀라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살곳은 미국이야. 내 심정을 이해해줘. 허니."
그녀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자기를 좋아하지만, 미국에 가고 싶어서 미칠지경이라구!"
카밀라는 향수병에 걸린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그 정도냐?"
그녀가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신조는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 안잡는거다.
결국 카밀라가 원하는대로 그녀를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후, 카밀라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시원섭섭한 심경이었다.
< 시작 9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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