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0화 (99/200)

< 시작 10 >

88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대학가를 중심으로 해외 베낭여행 광풍이 휘몰아쳤다.

해외 단체여행에 식상함을 느낀 대학생들이 너도나도 베낭 하나에 의지한 채 전세계 각국을 홀가분하게 여행하는 것에 깊은 매력을 느낀 탓이었다.

나 역시 시대의 조류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겨울 방학을 이용해, 마음맞는 동기녀석들과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는 모든게 신기했다.

동기 녀석들도 나와 오십보 백보였다.

우리들은 기차를 처음 타보는 시골 촌뜨기 처럼 비행기 구석구석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종횡무진했다.

그런 탓인지 이쁘장한 여승무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우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비행기 좌석에 얌전히 앉아 주세요. 기내에서 함부로 돌아다니시면 다른 승객분들이 클레임을 거신다고요."

그녀의 엄한 훈계에 우리들은 꿀먹은 벙어리 처럼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에 기내식을 드릴테니까 얌전히 계셔 주세요."

"네. 앞으로 조심히 행동하겠습니다."

동기들을 대표해 그리 말하자 그제서야 여승무원이 밝아진 얼굴로 저 멀리 사라졌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김정문과 오태석을 향해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있어라."

그러자 녀석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지못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기내식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먹어서 그런거 같았다.

우리는 기내식을 후딱 해치운 뒤 여승무원이 가지고온 달달한 포도주를 물 처럼 들이켰다.

20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 끝에 드디어 꿈과 낭만이 넘실거리는 파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은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이었지만 파리는 선선한 가을 처럼 날씨가 좋았다.

같은 겨울이라고 해도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치는 한국과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그날, 한국의 4계절이 전세계에서 가장 지랄맞은 날씨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우리 세명은 파리 인근의 값싼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7성 호텔에 묵고 싶었지만, 동기녀석들이 내가 떼부자라는 사실을 눈치챌까 저어한 탓에 그놈들이 이끄는대로 순순히 유스호텔로 따라갔다.

우리들은 유스호스텔 샤워장에서 온몸을 정갈히 세탁한 뒤 점퍼와 청바지 차림으로 파리 시내를 향해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세명은 영문학과의 소문난 헬스 3인방이었다.

그런 탓으로 나름 몸이 좋았다.

당연히 김정문의 근육이 제일 많았다.

그뒤를 나와 태석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유럽에 온김에 현지 여성들과 짜릿한 원나잇을 즐기기로 굳게 다짐한 상태였다.

허나, 우리들의 계획은 초장 부터 보기좋게 어긋났다.

파리 여성들 태반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나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마셜플랜으로 2차대전의 폐허를 극복한 주제에 영어를 모른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 탓이다.

허나, 그녀들은 영어 따위는 관심없다는 태도를 은연중에 내비치며 우리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우리는 기가 꺽인 상태로 에펠탑 인근의 고급스런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앉자 남직원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프랑스어로 날선 목소리를 토해냈다.

팔을 연신 휘두르는 것으로 보아 식당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 같았다.

동양인 따위는 레스토랑에서 밥먹을 가치 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파리의 첫날밤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면전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그 개자식에게 쌍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이곳은 유럽의 심장부인 파리였다.

함부로 댓거리를 했다간 양놈들에게 몰매 맞기 쉽상이었다.

결국 어금니를 앙다문 채 인근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맛대가리 없는 프랑스 음식으로 대충 주린 배를 채운 뒤 유스호스텔로 돌아갔다.

유스호스텔에 들어가자 전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 친구들이 맥주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정문과 태석이 물만난 고기 처럼 나름 유창한 영어를 과시하며 그들과 통성명을 나누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지 금새 그들과 오래된 친구 처럼 잘 어울렸다.

나 역시 주변의 외국인들과 통성명을 나눈 뒤 맥주를 물 처럼 들이키며 여행의 노독을 오롯이 풀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자리를 즐긴 뒤 3충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자 정문과 태석의 침상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들의 신음이었다.

희미한 조명불에 의지한 채 녀석들의 침상에 시선을 주시하자 늘씬한 백마들과 오붓한 잠자리를 즐기는 놈들의 자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확실히 정문과 태석은 난 놈들이었다.

불과 몇시간 만에 늘씬한 백마들을 후린 것이다.

결국 1층 로비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뜨거운 정사를 방해하기가 뭐했기 때문이다.

1층 로비에 있는 소파에 드러눕자마자 비오듯 잠이 쏟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 정문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방에서 안자고."

자식이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헤헤... 미안.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내가 한턱 쏜다."

"알아서 잘해라. 형 귀찮게 하지말고."

그리 말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스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뒤 곧장 파리 시내로 직행했다.

우리는 시내에 위치한 이태리 식당에서 파스타와 피자로 배를 채운 뒤 각자의 갈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녀석들은 다른 유럽 국가로 떠나갔다.

허나, 나는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중남미에 위치한 버진아일랜드에 가기 위함이었다.

이번 기회에 버진아일랜드 제도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생각이었다.

겸사겸사였다.

파리공항에서 미국 마이애미행 항공편을 구입한 뒤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상태에 돌입했다.

마이애미행 비행기에 타려면 9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지만, 나는 공항 대합실에서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불친절한 파리지앵들에게 질릴대로 질린 탓이다.

어딜가더라도 파리시민들은 동양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대했다.

그들의 시선에는 멸시와 경멸, 조롱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을 이틀 사이에 숱하게 경험하자 파리라는 도시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잘난 유럽의 년놈들과 상종 자체를 안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공합 대합실에서 9시간 정도 묵묵히 대기한 탓인지 마이애미행 항공편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전광판에 떠 올랐다.

곧바로 출국 게이트를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6시간의 비행 끝에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버진아일랜드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버진아일랜드 공항에 도착한 뒤 밖으로 나가자 남국 특유의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졌다.

그때, 노란 택시 한대가 내 앞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택시기사를 향해 유창한 영어를 내뱉었다.

"영국계 은행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가 알아들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화답했다.

"네. 손님."

30분 뒤, 나를 태운 택시가 격조높은 유럽풍의 석조건물 앞에 정차했다.

"이곳에 있는 은행이 영국계 은행입니다. 손님."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비 조로 5달러를 건넸다.

택시에서 내리자 건물 전면에 내걸린 육중한 간판이 보였다.

심호흡을 크게 내쉰 뒤 은행 안으로 직진했다.

은행에는 정장차림의 고객들이 많았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비지니스맨이었다.

한산한 창구로 다가가자 백인 남성이 친절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가 서류 한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서류의 공란을 채워주십시오."

행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서류의 공란을 볼펜으로 빼곡히 채웠다.

서류는 별거 없었다.

내 이름과 업종, 회사명만 적어넣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내 이름은 가명으로 기입했다.

본명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은행원은 내가 작성한 서류를 대충 살핀 뒤 친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수수료 200달러만 내시면 지금 당장 회사를 설립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에 해당하는 계좌도 내어드리겠습니다."

"제가 회사를 두개 정도 설립할 생각인데, 서류 한장만 더 주실래요."

"좋으실대로 하십시오."

그가 추가로 서류 한장을 나에게 건넸다.

나중을 위해서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류와 현금 4백달러를 건네자, 버진아일랜드 투자청이 발급한 회사등록증이 내 손에 들어왔다.

1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회사설립이 완료됐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법인세가 100 프로 면제되는 회사니까 부담갖지 마시고 경제활동에 임해주십시오."

행원은 그리 말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은행을 나섰다.

내 수중에는 회사등록증 2개가 들려있었다.

하나는 중개무역 업체였고, 다른 하나는 자산운용사였다.

둘다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TS 컴퍼니로 명명했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푼 뒤 광란의 라틴 댄스를 오롯이 감상할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레스토랑 정중앙에 위치한 스테이지로 시선을 돌리자 살사 댄스를 공연하는 무희들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녀들은 농익은 여체를 과시하며 남성들의 애간장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그때, 웨이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메뉴판이 들려있었다.

메뉴판을 살피자 바닷가재 요리가 보였다.

웨이터에게 유창한 영어를 내뱉었다.

"바닷가재랑 샴페인 한병을 갖다주세요."

웨이터는 예상대로 영어를 잘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20분 뒤, 먹음직한 바닷가재와 샴페인을 들고 웨이터가 나타났다.

바닷가재와 샴페인을 폭풍흡입한 뒤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마이애미행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24시간의 비행끝에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음날.

집에서 여행의 여독을 해소할 무렵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문을 열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태수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남자가 내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서류가방에서 한장의 통지서를 꺼내서 내 손에 건넸다.

"고지서에 쓰여있는대로 세금을 납부해 주십시오.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으실 경우 가산세가 붙습니다."

남자는 그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바람 처럼 사라졌다.

고지서를 확인하자 60억원 대의 토지세를 납부하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생각보다 세금이 적게 나왔다.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덕분이었다.

계약서 상에는 600억원 대의 토지매매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실거래가 보다 무려 1400억원을 낮춘 셈이다.

그 덕분에 토지세를 대폭 절세할수 있었다.

분당 떡방 사장의 도움이 컸다.

며칠 후, 국세청이 부과한 60억대의 토지세를 한방에 납부했다.

< 시작 10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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