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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13화 (102/200)

< 시작 13 >

간만에 경영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강의를 세이경청했다.

-기업들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아무 쓸모없는 해외 폐유전과 폐광 등을 자전거래하는 방식이다.

-조세회피처에 익명으로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폐유전과 폐광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페이퍼 컴퍼니가 보유한 페유전과 페광 등을 수백, 수천배의 가격으로 되사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다.

-이렇게 하면 손쉽게 거액의 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할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요긴한 강의였다.

다음날.

국면은행의 강남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버진아일랜드의 HBC 은행 계좌로 미화 6만불을 송금해 주십시오.

-환전수수료가 따로 붙는데 괜찮으십니까?

-상관없으니까, 내 계좌에서 6만불에 상당하는 돈을 인출해서 내가 지정하는 계좌로 이체해 주십시오.

-계좌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계좌번호는 1457-2415-2541-3654-2097-0254-XXXX

-받아적었습니다. HBC 은행 계좌로 송금 후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를 좀 해주세요.

***

졸업여행을 빌미로 미국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여러가지 해결할 사안이 있었다.

30 시간의 비행 끝에 버진아일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HBC 은행으로 직행했다.

비어있는 창구로 다가가자 은행원이 친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러가지 문의할 사항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싸구려 폐유전을 매입하고 싶은데 연결해 주실수 있나요?"

행원이 눈빛을 빛내며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폐유전이 몇개나 필요하신가요?"

"대략 5개 정도면 좋을거 같네요. 물론 가격은 개당 1만달러가 넘지 말아야 합니다."

"이면계약서도 필요하겠군요."

은행원은 이런 일에 도가 텄는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내 가려운 곳을 알아서 시원하게 굵어줬다.

"수백, 수천만 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것 처럼 이면 계약서를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브로커를 섭외해야 하니까, 대략 1주일 정도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그럼 일주일 후에 시내에 있는 힐튼 호텔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메모장에 내 영어 이름을 기입해서 행원에게 전달했다.

힐튼호텔에 여장을 푼 뒤 해변가로 마실로 나갔다.

해변에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비키니 미녀들이 토플리스 차림으로 썬탠을 즐기거나 비치발리볼 등을 만끽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백사장을 할일 없이 거닐며 가슴을 풀어헤친 그녀들의 뽀얀 속살을 노골적으로 관음하는데 전심전력했다.

허나, 그짓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금새 진력이 났다.

결국 인근의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해물 파스타와 스테이크로 배를 채운 뒤 호텔로 되돌아왔다.

내가 주변머리가 좋은 인간이었다면 어여쁜 그녀들을 손쉽게 꼬셨을 테지만, 솔직히 나라는 놈은 그만한 물건이 못되는 탓에, 애시당초 여자들을 꼬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카사노바 짓거리도 능력이 되는 놈이 해야 먹히는 법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한다고 개나 소나 카사노바가 되는게 아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일주일 후.

HBC 은행에 들어가자 행원이 나를 반기며 뒷편의 사무실로 이끌었다.

사무실에는 정장 차림의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다섯개 남짓한 폐유전 매매계약서를 올려놓았다.

이면 계약서에는 각각 1만달러에 상회하는 폐유전 회사가 있었다.

본 계약서를 살피자 개당 1천만달러에 달하는 액수가 기입된 상태였다.

변호사의 입회하에 매매계약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페이퍼 컴퍼니에 미리 입금해둔 5만달러를 변호사에게 건네자 모든 계약이 순조로이 마무리됐다.

은행 측에도 3천달러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불했다.

모든 일을 끝마친 뒤 버진아일랜드 국제공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30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에 무사히 귀국했다.

여행의 노독도 풀지 않은 채 곧바로 대선증권 여의도 본점을 내방했다.

주가 시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삼송전자와 현도자동차, SC 텔레콤은 코스피의 초우량주 답게 연일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출 이자를 수배 이상 상회하는 수치였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 판단이 적중했음을 자인한 탓이었다.

곧바로 객장 인근의 육개장 집으로 넘어갔다.

얼큰한 육개장이 먹고 싶어서 속에서 천불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일주일 동안 느끼한 음식만 먹은 탓이었다.

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육개장은 둘이 먹다가 한명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개꿀이었다.

이래서 한국 사람은 얼큰한 한식을 결코 포기 못한다.

내가 산증인이다.

아무리 맛있는 양식을 먹어도 느끼한 뒷맛 때문에 입맛이 영 개운치않기 때문이다.

육개장을 두그릇이나 뚝딱 해치운 뒤 길가를 오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압구정 현도 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손님."

아파트에 들어가자 가정부 아줌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이제서야 돌아오시네요."

"그렇죠. 뭐."

그리 말하며 지갑에서 백만원권 수표 한장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오늘은 월말이었다.

"고마워요. 사장님."

아줌마는 수표를 앞치마 주머니에 수습하며 친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녁을 차렸으니까 주방으로 오세요. 사장님."

"밥은 있다가 먹을 테니까. 이만 퇴근하세요."

"그럼 내일 뵐게요."

"네. 그러세요."

아줌마를 내보낸 뒤 양주 진열장에서 발렌타인과 술잔을 꺼내들었다.

육개장을 먹어서 그런지 양주가 급 땡겼다.

술잔에 양주를 따른 뒤 냉동고에서 꺼내온 얼음을 술잔에 뭉테기로 집어넣었다.

시원한 양주를 목젖 깊숙이 들이키자 알싸한 흥취가 전신에 팽배해졌다.

창가로 다가가자 한강변에서 산책과 조깅, 자전거 등을 즐기는 시민들이 보였다.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앞날을 차분히 설계했다.

주가 차익을 실현한 뒤 에너지 개발회사를 설립할 생각이었다.

해외 유전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페이퍼 컴퍼니가 소유한 폐유전 회사들을 거액을 주고 매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하면 페이퍼 컴퍼니 계좌에 합법적으로 큰 돈을 몰아넣을수 있었다.

나는 97년을 대비할 계획이었다.

도플갱어의 예언이 현실화 된다면 최소 95년 부터 주가와 부동산이 바닥을 칠 것이 확실했다.

경기는 2.3년 전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주식의 처분 시기는 아무리 못해도 94년 전후가 최적이었다.

더 먹겠다고, 매도 시기를 늦췄다간 큰코 다칠 우려가 있었다.

4년 정도 주식을 보유하면 최소 2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확신했다.

주가 흐름이 그랬다. 국내외의 경제상황도 좋았고.

***

졸업이 코앞에 닥친 탓인지 동기 녀석들이 하나둘씩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거의 모두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해외로 유학을 떠난 탓이었다.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졸업반 학우들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꿋꿋하게 학교로 나갔다.

경영학 강의를 수강하기 위함이었다.

나름 배우는게 많았기 때문이다.

경영학 교수님의 명강의를 세이경청 한 뒤, 나 처럼 노는 것에 정신 팔린 김정문을 대동한 채 강남 인근의 하우스를 내방했다.

수중에는 5백만원 가량의 현찰이 들려있었다.

하우스에서 포커를 쳐볼 생각이었다.

하우스에 들어가자 섯다와 포커를 즐기는 도박쟁이들이 내뿜는 기이한 열기가 후끈 전해져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철조망이 쳐진 골방에 앉아 있는 야릇한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도박빛을 빌려주고 있었다.

그때, 정문이 불안한 얼굴로 귓속말을 전했다.

"형. 그냥 가자. 여기에서 포커치는 놈들 거의 마귀 레벨이라고."

"쫄리면 너 먼저 가라."

그러자 정문이 체념한 얼굴로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내 알바 아니었다.

비어있는 포커 테이블에 앉자 입가에 담배를 꼬나문 안경잽이가 나에게 패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기본 삥값 만원이니까 알아서 베팅하쇼."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놓여진 석장의 패를 유심히 살폈다.

8원페어였다. 6장째에 다시 8이 들어왔다.

8트리플을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무적이었다.

곧바로 풀베팅을 내질렀다.

그러자 3명의 멤버가 차례로 다이를 선언했다.

허나, 안경잽이는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묘한 놈이었다.

내 패를 까자 녀석이 조롱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자신의 패를 오픈했다.

녀석은 9트리플이었다.

한끗발 차이로 5백만원을 발라먹었다.

단 3분 만에!

열이 확 뻗쳤다.

곧장 자극적인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

"홍대 오피스에서 봤던 분이네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용건을 말했다.

"1천만원 정도만 융통해 주십시오."

"꽁지빚은 하루 선이자가 3할인데 괜찮으세요?"

"상관없으니까 그냥 주십시오."

그러자 그녀가 7백만원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차키를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차키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럼 좋은 승부하세요. 사장님."

그녀는 조신한 태도로 목례를 취했다.

나는 그날, 30분 만에 1500만원을 홀라당 말아먹었다.

문정의 말대로 하우스판은 포커 마귀들이 점령한지 오래였다.

일반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의 상대가 될수 없었다.

다음날.

홍대 인근의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꽁지빚을 갚기 위함이었다.

오피스텔에 들어가자 그녀가 나를 반겼다.

"신용이 있으신 분이네요."

"제가 한 신용 합니다. 하하..."

그리 화답하며 백만원권 수표 13장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내가 건넨 수표를 핸드백에 집어넣은 뒤 차키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사장님의 성함을 알수 있을까요?"

"이태수라고 합니다. 그쪽의 성함은 어찌 되시나요?"

"저는 조수민이라고 해요."

그녀는 생긴 것 만큼이나 이름도 섹시했다.

그때, 오피스텔에 금테안경이 나타났다.

녀석은 경계심이 깃든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곳에 무슨 볼일로 오신거죠?"

그러자 수민이 나 대신 입을 열었다.

"꽁지빚을 주려고 오신거니까 자기는 신경 쓰지마."

그제서야 금테가 한풀 꺽인 얼굴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분위기가 서먹했다.

결국 그녀를 뒤로 한 채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며칠 후.

로얄 프린스에 의지한 채 강변북로를 내달릴 무렵 벽돌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조수민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늘 밤에 시간 있으신가요?

-저를 꼬시는 건가요?

수화기에서 그녀의 도발적인 언사가 들려왔다.

-당연히 그쪽을 꼬시려고 연락을 드린 거에요.

쌀이 익어 밥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지금 강변북로를 타는 중인데, 어디 쯤에 계신가요?

-홍대 역으로 와주세요.

-좋습니다.

그날밤 우리는 홍대 인근의 모텔에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 시작 1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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