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 소프트 1 >
오늘은 컴퓨터 시간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측은 값비싼 IBM 컴퓨터가 설치된 강의실로 전세계에서 몰려온 대학원생들을 몰아넣었다.
컴퓨터 강사는 배정된 자리에 앉은 우리를 향해 지엄한 언사를 내뱉었다.
"앞으로 전세계는 컴퓨터를 비롯한 IT 중심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남들 보다 먼저 컴퓨터에 익숙해 지셔야 합니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3차례씩 정기적으로 컴퓨터 수업을 받았다.
***
오늘도 경영학 강의가 끝나자마자 컴퓨터실로 직행했다.
최근에 재미를 붙인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기 위함이었다.
비어있는 컴퓨터 앞에 착석한 뒤 전원을 인가했다.
그러자 푸른 화면에 윈도우 95라는 영문 이니셜이 화려하게 떠올랐다.
기존의 칙칙한 검은화면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더구나 이 녀석은 마우스 하나로 모든 것이 조작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놀랄 노자였다.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쉬운 컴퓨팅이었다.
그날 부터, 윈도우 95의 마력에 홀린듯이 빠져들었다.
***
오늘도 경영학 강의를 끝마치자마자 컴퓨터 실로 부리나케 내달렸다.
윈도우 95를 온몸으로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윈도우 95는 인터넷에 손쉽게 접속할수 있는 운영체제였다.
미국의 웹에 접속한 뒤 인터넷의 광대무변한 정보에 흠씬 빠져들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윈도우 95를 개발한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가에 급 관심이 생겼다.
곧바로 포털 사이트인 야후에 접속했다.
야후는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 할수 있는 키 플레이어였다.
야후 검색창에 '마이크로 소프트 주가'를 입력하자 나스닥에 상장된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가 시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예상대로 MS의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었다.
벌써 시총이 700억 달러를 돌파한 상태였다.
한화로 82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검색결과를 쭈욱 훑자 MS의 주가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쏟아내는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가 화면에 떠올랐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MS의 주가가 단기간에 너무 급등했다며 투자에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횡보합 가능성을 우려하며 추가 매수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전혀 달랐다.
미국에서 시작된 윈도우 95 열풍이 전세계로 확산될 것으로 확신했다.
윈도우 95는 인류의 삶에 PC라는 요술방망이를 가져다준 혁신적인 운영체제였다.
미국인들은 윈도 95가 출시되자마자 앞다투어 컴퓨터를 구매하고 있었다.
이런 물결은 일본, 중국, 한국, 유럽, 남미 등의 전세계로 널리 퍼져나갈 것이 확실했다.
컴퓨터 실을 나오자마자 보스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아파트로 직행했다.
집에 도착한 뒤 델타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 시간대에 출발하는 버진아일랜드행 왕복 비행기 티겟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세요.
항공사 직원에게 신용카드 번호를 말했다.
신용카드 번호를 접수한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녁 8시 비행기로 예약해 드렸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소지품을 서류가방 속에 집어넣은 뒤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벤츠 S 클래스에 올라탄 뒤 보스턴 국제공항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항주차장에 벤츠를 주차한 뒤 공항 대합실로 들어갔다.
4시간의 비행 끝에 버진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얼마후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HBC 은행에 도착했다.
안면을 익힌 은행직원에게 용건을 밝혔다.
"TS 인베스트먼트 계좌에 있는 돈으로 나스닥에 상장된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주식을 매입하고 싶은데, 중간에서 거래를 해주시겠습니까?"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월가 쪽 중개인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그날,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주식을 4억달러 가량 매입했다.
한화로 4800억에 상당하는 돈이었다.
내 전재산을 MS에 쏟아부었다.
그만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경영학 강의를 수강한 뒤 학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무렵 부티가 좔좔 흐르는 김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재계서열 10위권인 명성 그룹의 후계자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허나, 김명우는 타고난 돌대가리인 탓에 경영대학원의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영어에 젬병인 탓이었다.
녀석은 내 허락도 받지않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후 뻔한 레파토리를 읇어댔다.
"기말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주면 1천 달러를 줄게. 그러니까 한번만 도와줘라. 태수야."
우리는 나이가 비슷한 탓에 말을 튼 상태였다.
"일 없다. 다른 인간들한테 부탁해라."
"경영대학원에 너랑 나, 단 둘 밖에 없잖아. 한국인이."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그럼 이만 실례."
그 말을 끝으로 학교식당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음날.
오늘은 하버드 대학과 노틀담 대학의 미식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캠브리지 시민들이 하버드 대학으로 벌떼 처럼 몰려왔다.
미식축구 경기를 관전하기 위함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미식축구는 종교나 마찬가지인 탓에 대학팀이건 프로팀이건 미식축구 경기가 열렸다하면 도시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오늘 공부는 다한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학교가 소란스러울 것이 뻔한 탓이었다.
경영학 강의실에 들어가자 미국 친구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식축구를 관전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은 모양이었다.
그런 탓으로 강의실에는 비 미국인들만 보이고 있었다.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경영학 서적을 책상 위에 펼칠 무렵 김명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이비리그 유학생회 모임에 너도 올래?"
"그게 언젠데?"
"오늘 저녁 7시에 캠브리지 시내에 있는 내 아파트로 와라."
"니가 호스트냐?"
"뭐, 그런 셈이지."
"여자애들도 오냐?"
"당연히 오겠지."
"이쁜애는?"
"그걸, 낸들 어찌 아냐. 오고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
녀석은 그말을 끝으로 뒷자리로 걸어갔다.
저녁 무렵, 명우의 아파트를 내방했다.
겸사겸사 한인 여학생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경호원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자 흥겨운 하우스 뮤직에 온몸을 내맡긴 채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단의 청춘남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비리그 유학생들이었다.
거의 모두 있는집 자식이었다.
아이비리그는 학비가 억대에 달할 지경이었다.
집이 가난한 애들은 유학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코크를 흡입하는 일단의 남녀가 보였다.
그 중에는 김명우도 있었다.
녀석은 마약을 한 탓인지 벌개진 얼굴로 옆에 있는 여학생과 진한 프렌치키스를 탐닉하고 있었다.
미국은 마약이 지천에 널린 동네였다.
그러나 마약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했다.
부자들은 코로 흡입이 가능한 코카인을 즐기고, 가난뱅이들은 몸에 아주 해로운 합성마약과 헤로인 등을 탐닉했다.
부모들이 비싼 돈을 주고 미국 명문대로 유학을 보내줬겄만, 녀석들은 마약과 섹스를 탐하며 일탈을 일삼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나홀로 병맥을 들이킬 무렵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다행히 그녀는 맨정신으로 보였다.
"오늘 약하는 날인가요? 왜 이렇게 약을 많이하는거죠?"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모범적인 유학생활을 즐기는 여학생 같았다.
허나, 아쉽게도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몸매가 너무 메마른 탓이었다.
내가 갈구하는 베이비 페이스의 글래머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에게 나름 친절하게 대했다.
젠틀맨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즐기며 병맥을 물처럼 들이켰다.
그러기를 얼마후 각자의 갈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
경영학 강의를 수강한 뒤 하버드 대학 유학생회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여러명의 학생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채 학과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한국 일간지들이 요일별로 진열된 서가로 들어갔다.
미주 중아일보를 손에 들고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신문 1면에는 금융실명제를 발표하는 김영오 대통령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나라를 말아먹을 위인이었다.
전세계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손에 꼽았다.
그 잘난 금융선진국인 미국과 영국, 일본, 스위스 등도 차명으로 얼마든지 계좌를 틀수 있는게 현실이었다.
그런 판국에 금융 후진국인 한국이 금융실명제를 들고나온다는건 개가 웃을 소리였다.
금융실명제는 한국의 국부를 외국에 유출하는 역기능을 초래할 뿐이었다.
아무리봐도 김영오는 조만간에 나라 경제를 말아먹을게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가 취임한 뒤로 코스피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었다.
경제의 암적인 존재가 청와대를 차지한 탓이었다.
물론 내가 알바 아니었다.
그날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비오듯 쏟아졌다.
연일 학업에 매진한 탓이었다.
비몽사몽을 헤메일 무렵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때,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시야에 포착됐다.
그림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였다.
도플갱어는 심유한 눈빛을 내비치며 단정적인 어조를 내뱉었다.
-반도체 메모리 시장을 장악한다면 그대는 전세계 최고의 억만장자가 될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도플갱어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허깨비 처럼 사라졌다.
곧바로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건 도플갱어의 신탁이었다.
거실 책상 위에 놓여진 컴퓨터를 켰다.
야후 검색창에 메모리 반도체를 입력하자 관련회사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삼송전자, LC 전자, 엘피다, 마이크론, 난야 반도체 등이었다.
그러나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경쟁이 너무 치열한 탓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인텔 처럼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없었다.
전부 고만고만한 기술력으로 승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도플갱어의 신탁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면 전세계 최고의 재벌이 될수 있다고 확언했다.
일단, 그의 귀한 예언을 마음속 깊이 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
1995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아왔다.
캠브리지 시내의 한식당에서 떡국으로 아침을 때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봉다리 커피로 입가심을 한 뒤 거실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를 킨 후 야후 검색창에 마이크로 소프트를 입력했다.
주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모니터 화면에 주가 시황이 주르륵 떠올랐다.
예상대로 MS는 오늘도 신고가를 경신했다.
마소의 주식을 구입한지 8개월 만에, 두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보고 있었다.
한화로 거의 1조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조단위 재벌이 현실화됐다.
그러나 내 목표에는 여전히 미흡했다.
나는 전세계 최고의 재벌이 목표였다.
1조원 정도로 만족하기에는 내 욕심이 너무 거대했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날로 심해지는 내 욕망이 타는 듯한 갈증으로 전이된 탓이었다.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하자 곧바로 한국 웹으로 넘어갔다.
한국 야후에 접속한 뒤 삼송전자와 현도자동차, SC 텔레콤의 주가를 차례로 검색했다.
애석하게도 그들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김영오 대통령 때문에 나날이 한국 경제가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들은 김영오를 일대성군으로 칭송하며 용비어천가를 미친듯이 부르짖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개가 웃을 노릇이었다.
< 마이크로 소프트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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