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 소프트 2 >
나는 김명우와 곧잘 어울렸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유일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둘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학업을 끝내자마자 케임브리지 다운타운에 위치한 김명우의 아파트에서 질펀한 술판을 벌이며 이런저런 잡담을 길게 늘어놓았다.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잠시 뒤, 아리따운 여인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이름만 대면 다아는 탑 여배우 진도희였다.
명우는 그녀의 농염한 여체를 떡주무르듯 주물럭거리며 자부심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도희 알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나름 돈이 많은 놈이니까, 알아두면 너도 좋을거다."
그녀가 조신한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진도희에요."
"이태수라고 합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셨죠?"
"아닙니다. 하하...!"
간단한 상견례를 끝마친 뒤, 우리 세사람은 오랜된 술친구 처럼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진솔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명우는 보란 듯이 진도희를 품에 안은 채 진한 애무를 탐닉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그녀의 입에서 남자의 애간장을 살살 녹이는 비음이 자극적으로 흘러나왔다.
한국에 마누라도 있는 놈이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하긴, 녀석은 잘나가는 재벌 후계자였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진한 사랑놀음을 면전에서 목격하자 어여쁜 여자를 갖고 싶은 욕구가 전신에 팽배해졌다.
어차피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는 세상이었다.
다음날.
경영학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김명우가 앉아있는 뒷자리로 직진했다.
녀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도희를 어떻게 꼬신거냐?"
그러자 녀석이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즉답했다.
"당연히 광고로 꼬셨지?"
"돈이 아니고?"
"진도희 같은 여배우는 돈 보다는 쓸만한 광고로 꼬셔야 하는거야. 그래서 니놈이 아직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형이 말하는거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았다.
"니가 돈푼깨나 있는건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 인기 여배우들은 돈 보다는 배경을 더 본다고. 특히 나같은 재벌 후계자에 환장하지."
"번듯한 광고를 미끼로 여배우들을 따먹는게 자랑이냐?"
"자랑이지. 임마. 그 맛에 재벌하는건데. 낄낄..."
녀석의 적나라한 속내였다.
그날밤.
거실을 왔다리 갔다리하며 쓸만한 여자를 만드는 방안을 나름 심각하게 강구했다.
맨 처음에는 유학생회 여학생들을 꼬실까도 생각해 봤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인 여학생 보다는 미국 여학생을 꼬시는게 더 괜찮을거 같았다.
한인 여학생들은 특유의 나이타령이 뇌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탓에 30대 중반의 나를 언제나 노땅 취급했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자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어여쁜 미국 여학생들을 꼬시기로 작심했다.
외로운 유학생활을 버티려면 몸매 빵빵하고 얼굴 끝내주는 백인 미녀 정도는 있어줘야 하는거다.
다음날 부터, 학교 캠퍼스를 발바닥에 땀나도록 종횡무진하며 얼굴과 몸매가 퍼펙트한 미녀들을 대상으로 전화번호 따기에 일로매진했다.
***
지난 한달 동안 캠퍼스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의 전번을 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허나, 그녀들은 동양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지 거의 모두 전번을 알려주길 거부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여자들의 콧대는 만만치 않았다.
결국 명우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강의를 파한 뒤 녀석을 다운타운 인근의 술집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독한 보드카를 물 처럼 들이부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 방학에 한국에 들어갈 생각이거든. 그래서 말인데, 니가 다리를 좀 놔라."
"여배우를 소개시켜 달라고?"
"척이면 착이지. 뭘 물어?"
"너 같은 일반인이 인기 여배우를 먹으려면 돈 푼깨나 들여야 할거다."
"얼마가 필요한데?"
"a급 여배우를 세달 정도 데리고 놀려면 아무리 못해도 5억은 있어야지."
"s급은 얼만데?"
"그 두배는 줘야지."
"10억을 줘야 한다고?"
"그래. 그러니까 여배우 따먹을 생각하지말고, 여대생이나 노려봐라. 니놈에겐 그게 맞으니까. 후후..."
쥐뿔도 없는 녀석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수중에 돈도 없는 놈이 누굴 비웃는거야?"
"그런 너는 돈이 얼마나 있는데?"
녀석이 탐색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 재산 규모를 염탐하려는 모양새였다.
"너는 몰라도 된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술집을 박차고 나왔다.
***
하버드 대학은 6월초 부터 9월 중순까지 여름방학 시즌이었다.
거의 석달 가량의 기간이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간만에 고국에서 얼큰한 한식을 배터지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강남 인근의 육개장 집으로 직행했다.
그 집은 둘이 먹다가 한놈이 뒈져도 모를 정도로 진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육개장을 세그릇이나 후딱 해치운 뒤 식후 연초를 즐길 무렵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김명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이 근사한 곳을 소개시켜 줄테니까 아무말 말고 따라와라. 물론 수표 빵빵하게 챙기는거 잊지말고.
-어딜 가려고?
-전직 탑여배우가 운영하는 요정을 소개시켜 줄게.
-그 여자가 누군데?
-한소정 기억나냐?
-드라마에서 자주 본 기억이 있지.
-그 여자가 운영하는 요정이야.
내심 회가 동했다.
한소정은 고운 얼굴과 육감적인 여체로 남성팬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은 여배우였다.
나 역시 그녀를 좋아한 팬 중의 한명이었다.
-저녁 8시까지 청담동 사거리에 있는 카페 앞으로 와라.
-오케이.
저녁 8시 무렵, 청담동 사거리에 있는 아담한 카페로 다가가자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명성그룹 기조실장님의 친구분인, 이태수씨 맞으십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세단 차량으로 나를 안내했다.
뒷좌석에 오르자 남자가 아무말 없이 청담동 주택가로 차를 몰아갔다.
남자는 그림 처럼 이쁜 3층 단독주택 앞에 차를 정차했다.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택의 초인종을 누르자 인상이 강해보이는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그는 경계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누구 소개로 오셨죠?"
"김명우씨 소개로 왔습니다."
"그 분과 무슨 사이신지...?"
"하버드 대학 동문입니다."
그러자 남자가 공손해진 얼굴로 나를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3층에 있는 밀실에 들어가자 김명우와 30대 중반의 여인이 보였다.
첫눈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봤다.
그녀는 한소정이었다.
실물로 그녀를 보니 브라운관에서 봤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특히 한소정은 몸에 착 달라붙는 미니 드레스 차림이라 그런지 굴곡진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었다.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거시기를 자극하는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취한 뒤 명우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녀석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이 모두 말해놨으니까 오붓하게 즐겨라."
명우는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바람 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때, 한소정이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평소에 여자를 멀리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녀석이 그녀에게 쓸데없이 주딩이를 놀린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고, 그냥 학업에 열중하느라..."
"변명하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이곳은 남녀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즐기는 곳이니까."
소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도발적인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미니 원피스를 섹사하게 벗어던졌다.
그녀의 백옥같은 뽀얀 살결과 풍만한 여체는 내 남성을 격렬하게 자극했다.
그날 우리는 격정적인 정사를 밤새도록 만끽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 소정이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농익은 나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질 무렵 그녀가 어느새 눈을 뜬 채 나를 향해 살포시 미소지었다.
지갑에서 1천만원 짜리 수표를 꺼내서 소정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여자가 궁하시면 종종 찾아와 주세요."
"대신, 다음 부터는 3백만원으로 퉁칩시다."
"좋을대로 하세요. 호호..."
소정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여성이었다.
끝까지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여자였다.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청담동 요정을 드나들었다.
화대가 높았지만 소정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였다.
오늘도 해가 떨어지자마자 청담동 요정을 찾았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내실로 들어설 찰나 익숙한 남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름만 대면 다아는 정재계의 거물들이었다.
밀실에 들어간지 1시간이 지나도록 소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인터폰을 누르자 지배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마담이 언제 오는겁니까?"
"오늘 어르신이 사장님을 지명하신 관계로..."
"어르신이 누굴 말하는 겁니까?"
그러자 지배인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당의 민춘기 대표님이 사장님을 지명하셨습니다."
정치인 나부랭이가 그녀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힐튼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자마자 거실 책상 위에 놓여진 데스크탑의 전원을 인가했다.
야후 검색창에 마이크로 소프트 주가를 입력하자 주가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모니터 화면에 떠올랐다.
마소의 주가는 경이적인 신고가 행진을 펼치고 있었다.
아시아 시장과 유럽 시장마저 동시다발적으로 석권한 탓이었다.
그 덕분에 내 주식가치는 거의 1조 6천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마소에 투자한지 1년 만에 무려 4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기록한 것이다.
허나, 나는 아직도 배가 많이 고팠다.
더구나 마소의 주가는 지금 부터 시작이었다.
최소 1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있었다.
4배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찬란한 미래를 예감하며 룸서비스를 면전에 호출했다.
나를 위한 조촐한 파티가 필요했다.
"호텔에서 제일 비싼 요리와 최고급 샴페인을 세팅해 주세요."
그러자 룸서비스가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며 공손한 어조로 화답했다.
"넵. 고객님."
***
근 석달 만에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오자 모든게 낯설게 느껴졌다.
허나, 그런 기분은 잠시였다.
오늘은 세계적인 석학인 프리드먼 박사가 한국의 금융실명제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심히 기대되는 심경이었다.
강의실에서 대기한지 30분 만에 프리드먼 박사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간단한 인삿말을 내뱉은 뒤 한국의 금융실명제를 주제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금융실명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수 없는 혁명적인 조치라고 할수 있습니다. 위정자들에게 자산가들의 부를 대상으로 징벌적인 세수를 추징할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금융실명제는 서구자본주의 사회가 가장 금기시하는 정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자본가들의 재산을 자유로이 강탈할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죠.
-그런 탓일까요? 한국은 금융실명제 이후 경기가 급강하 했음은 물론이고 금융권의 자금 조달이 경색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중경제를 떠받치던 지하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돈이 궁해진 금융권과 기업들은 너도 나도 달러차입을 하기 시작했죠. 그 덕분에 1996년 현재 한국의 금융권과 기업들의 달러 채무가 거의 5천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건 달러 외채 중의 80퍼센트 이상이 1년 미만의 단기 채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정부는 선진국 조차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결과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무디스와 s&p 등의 신용평가사들 역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연일 저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금용권과 기업들의 달러차입을 수수방관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2년 안에 한국 경제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금융실명제의 나비효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리드먼 박사는 한국경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금융실명제야 말로 한국 경제 파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설파했다.
그의 탁월한 혜안에 내심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 마이크로 소프트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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