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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24화 (111/200)

< 마이크로 소프트 4 >

김명우는 한국으로 급거 귀국했다.

와이프의 출산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합병원 특실에 입원한 와이프를 돌보는 한편, 새로 태어난 갓난 아기를 품에 보듬어 안은 채 행복에 겨운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무렵, 명우의 부친인 김도훈 회장이 특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회장은 며느리와 손주에게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뒤 명우에게 병실 밖으로 나오라는 눈짓을 보냈다.

김회장은 병실을 나서자마자 엄한 얼굴로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늘 저녁에 집에 들어오너라. 한국에 왔으면 집 먼저 들리는게 순서 아니냐."

그러자 명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갈게요."

그제서야 김회장이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정화한테 오빠 노릇을 제대로 해야지."

"네에...? 갑자기 무슨 말씀이죠?"

"그년의 혼처가 마땅치 않구나. 그러니, 니가 아는 쓸만한 친구들을 정화한테 소개해봐라."

"아버지. 제 주변에는 거의 날라리 같은 개자식들 밖에 없다고요."

그러자 김회장이 딱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는거냐?"

"그건 아니지만, 저한테 뭔가를 기대하지 말라고요. 차라리 마담뚜한테 의뢰를 해보시던가요."

"개소리는 그만하고, 쓸만한 놈들로 후보자를 추려봐."

김회장은 자기 할말만 내뱉은 채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명우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그날 저녁.

명우는 평창동 자택에서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한 뒤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입에서 이태수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놈인데, 재력이 만만치 않은거 같더라구요."

"인물 됨됨이는 어떠니?"

명우의 모친인 한여사가 급관심을 보였다.

"사람은 나름 괜찮아요. 약도 안하고, 여자도 그리 밝히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그 친구 이름이 뭐냐?"

김회장의 물음에 명우가 즉답했다.

"이태수요."

"이태수라...?"

김회장은 '이태수'라는 이름을 입가에 떠올린 뒤 뒷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턱시도 차림의 남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태수의 신원을 조사해봐."

"넵. 회장님."

명우가 은근한 얼굴로 부친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놈의 재력을 조사하실 생각인가요?"

"재력은 물론이고 가족 사항, 학력, 병력을 모조리 챙겨봐야지."

"솔직히 제가 추천한 놈이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마세요. 차라리 영진그룹의 손영민과 정화를 엮어보시죠?"

"그 개자식 얘기라면 꺼내지도 마라."

한여사가 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는거에요?"

"그 개자식이 정화를 냅두고 배우년이랑 바람을 폈다고! 그뿐인지 아니. 마약을 같이 하다간 경찰에 잡혀갔어!"

명우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그려졌다.

"그러니까 좀 번듯한 남자를 소개해 보라고."

한여사가 짜증을 내자 명우도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내 주변에선 이태수 그놈이 제일 쓸만하다구요!"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평창동 집을 박차고 나왔다.

며칠 후.

김도훈 회장이 하루일과를 끝마친 뒤 평창동 자택에 들어설 찰나 그의 면전에 집사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노란 봉투가 들려있었다.

"이태수의 신상파일입니다."

집사는 그리 말하며 김회장에게 노란 봉투를 공손히 올렸다.

김회장은 곧장 서재로 올라갔다.

이태수의 신상파일을 확인한 김회장의 얼굴에 짙은 탐욕이 번져갔다.

그날밤.

김회장은 자택 서재로 김명우를 불러들였다.

"정화를 미국으로 보낼테니까 이태수란 친구와 자리를 만들어봐라."

명우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아버지가 이리 서두르시는걸 보아하니, 그놈의 재력이 상당한가보죠?"

그러자 김회장이 만면가득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정화랑 하루빨리 자리를 만들라고."

"아버지. 남녀지간의 일은 서로 마음에 맞아야 하는거라고요. 게다가 그친구는 은근히 여자 보는 눈이 높아서 쉽지 않을 겁니다."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니놈은 만남이나 주선해. 알겠냐!"

부친이 버럭 고성을 내지르자 명우가 마지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았다구요. 거참,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세요."

"니놈이 아비 말을 제대로 들어먹지를 않으니까 그렇지!"

"에휴, 아버지랑 정말 대화가 안되서 미칠 지경이라고요!"

명우는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바람 처럼 몸을 감췄다.

***

하버드대학 중앙도서관에서 기말시험 공부에 열중할 무렵 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잠깐 나 좀 보자."

"왜?"

"소개해줄 이쁜이가 있다고."

"그게 누군데?"

"내 여동생."

입가에 절로 고소가 그려졌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냐?"

"암튼 일단 따라나와라."

결국 책을 덮은 채 녀석을 따라나갔다.

명우는 도서관 인근의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녀석은 창가쪽 테이블에 나홀로 않아있는 한국인 여학생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명우의 동생인 모양이었다.

"인사해. 이태수다."

명우가 그리말하자 이쁘장한 여학생이 어색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김정화에요. 명우 오빠 동생이죠."

"이태숩니다."

그리 화답한 뒤 맞은편 자리에 앉자 명우가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내심 바라던 바였다.

녀석이 사라지자마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가 몇살이시죠?"

"23살이요. 그쪽은 몇살이신가요?"

그녀에게 솔직히 답했다.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하다.

"36살입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 따위에 연연하는 모양새였다.

"생각 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그녀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입안에 한모금 들이켰다.

"정화씨는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좀 그렇죠. 나이는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마음에 안드십니까?"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태수씨의 마음을 상하게 한 모양이네요."

"아닙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말은 그리 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길게 흘렀다.

명우에게 갑자기 끌려나와서 맞선을 본게 실수였다.

녀석의 동생은 나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볼것도 없었다.

한시바삐 자리에서 일어나는게 상책이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카페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

김명우의 아파트에 정화가 나타났다.

명우가 성난 얼굴로 싸늘한 언사를 내뱉었다.

"미국에 유학오고 싶으면 이태수를 남친으로 만들어."

그러자 정화가 성난 얼굴로 쏘아부쳤다.

"아빠도 아니면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미친년아. 아버지 성격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아버지는 아무리 딸자식이라고 해도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양반이라고!"

순간 정화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명화년이 개고생 하는걸 보면서도 아버지 말을 우습게 아는거냐!"

"언니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내는건데?"

"딴따라 새끼한테 정신이 나간 명화년 꼬라지를 보라고. 전셋집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애들을 키운다고 하더라!"

명우의 말에 그녀는 기운 없는 얼굴로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놈한테 시집을 가면 재벌 안부럽게 호강을 누릴수 있으니까 알아서 꼬셔봐."

"자기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니까."

"니년이 싫은 티를 대놓고 냈으니까 그런거잖아."

명우는 그리 말하며 휴대폰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3번 단축키가 그놈 번호니까 알아서 사과해."

그러자 정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결심한 얼굴로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였다.

***

경영학 강의를 수강한 뒤 다운타운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우의 동생인 김정화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전화로 사과의 변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런 의미로 저녁식사를 접대하고 싶다며 레스토랑으로 나를 초대했다.

남자 입장에서 여자가 낮은 자세로 나오는걸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정화는 나름 반반한 얼굴과 쓸만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재벌집 금지옥엽이었다.

여러모로 보나 괜찮은 여자였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창가 쪽에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정화에게 목례를 취한 뒤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후 우리는 스테이크를 썰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늘어놓았다.

정화는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영화와 드라마를 주제로 나름 오붓한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녀의 입에서 쓸만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태수씨는 제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마인드가 오픈된 분이신거 같아요."

"과찬이십니다. 정화씨."

"아니에요. 대화를 나눠보니까 태수씨는 마인드가 보통이 아니세요."

그녀의 사람 보는 안목에 내심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정화와 대화를 나눠보니 우리는 여러모로 통하는게 많았다.

나 역시 그녀가 조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이심전심이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녀에게 에프터를 신청했다.

"내 집에서 포도주나 한잔 하실래요?"

당연히 정화는 내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

"좋아요. 태수씨."

정화를 집에 데려오자마자 그녀의 앵두같은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내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밤, 격정적인 정사를 오롯이 탐닉했다.

일주일 후.

오늘도 학교를 파하자마자 정화를 내 아파트로 불러들였다.

그녀의 나긋나긋한 여체를 탐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뜨거운 잠자리를 만끽한 뒤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정화가 내 품에 안긴 채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아빠가 미국 유학을 허락하셨어."

"대학은 정했냐?"

"하버드 대학에 지원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지더라."

"그렇게 입학하고 싶으면 기부금 입학을 알아보지 그래?"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는 가부장적인 남자라 여자한테 쓸데없이 돈을 쓰는걸 엄청 싫어해. 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미국 유학도 겨우 보내주는 거라고."

"원래 그 나이대 남자들은 다 그런거야."

"그래도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아빠가 싫어하는 놈이랑 결혼했다고 언니랑 의절했다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내 위로 언니가 한명있는데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작곡하는 남자랑 몇년 전에 결혼했어. 당연히 아빠가 노발대발했지. 그 후로 호적에서 언니를 완전히 파버리더라."

재벌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에휴, 재벌가 노친네들 고집은 알아주는구나."

"그래서 내가 미칠지경이라고. 자기 말을 안들으면 난리가 난다니까."

정화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어느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거야?"

"뉴욕 시립대에서 면접을 볼 생각이야."

뉴욕 시립대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많이 뒤떨어지는 학교였다.

당연히 학비도 저렴한 편이었다.

"알아서해라."

"뉴욕대에 들어가면 뉴욕에서 데이트나 하자고."

그녀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염려마라. 니가 말 안해도 그럴 생각이니까."

"다른 년들한테 한눈 팔면 안되는거 알지?"

"그래. 너 밖에 없다. 하하..."

그리 화답하며 정화의 풍만한 여체에 얼굴을 묻었다.

***

크리스마스 휴가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정화가 있는 뉴욕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녀의 농염한 여체를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정화는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 딸내미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그녀의 부친인 완고한 남자였다.

딸에게 돈을 쓰는 행위를 극도로 꺼려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맨해튼 인근의 밀포드 호텔 스위트룸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기를 얼마후 정화를 호텔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격정적인 정사를 탐닉한 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문득 그녀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내 친구중에 김유라가 있는데, 걔 남자친구가 며칠 전에 자살했어."

나는 그녀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유라년 남친이 동우그룹 막내아들 이었나봐. 그런데 회사가 망하니까 남친이 반쯤 돌아버렸데.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된거지. 그 바람에 자살했다고 하더라."

달콤쌉싸름한 심경이었다.

싸가지없는 김유라의 불행이 내심 고소한 탓이었다.

물론 고인이 된 그녀의 남친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다음날.

정화를 대동한 채 그리니치 빌리지 부터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등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싸돌아다녔다.

우리는 오붓한 데이트를 만끽한 뒤 맨해튼 인근의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둘다 얼큰한 한식이 땡긴 탓이었다.

정화는 순두부찌개와 파전, 막걸리 등을 주문했다.

그녀가 주문한 순두부찌개를 음미한 뒤 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물 처럼 들이부었다.

그 무렵, 익숙한 그녀가 시야에 포착됐다.

놀랍게도 그녀는 김유라였다.

유라는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앞치마를 두른 채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의 눈으로 주시했다.

그때, 정화가 놀란 얼굴로 '억'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곧장 유라에게 다가갔다.

"유라야. 이곳에서 뭐하는거야?"

정화의 물음에 유라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보면 몰라? 알바 하잖아."

"그러니까 니가 왜, 알바를 하냐고?"

"당연히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그러지. 암튼 바쁘니까 대화는 나중에 하자."

유라는 그리 말하며 손님들을 접대하는데 열심이었다.

은근슬쩍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유라가 눈치 못채게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화가 식당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자기야. 왜, 갑자기 나가는거야?"

"그냥. 바람이나 쐬자.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그리 화답하며 정화를 품에 안은 채 센트럴파크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호텔에 정화를 남겨둔 채 나홀로 한식당을 찾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유라를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한식당에 들어서자 서빙에 여념이 없는 유라가 보였다.

테이블에 자리한 채 그녀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유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본 채 제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유라에게 담담한 어조를 내뱉었다.

"오랜 만이네요. 거의 2년 만에 보는건가요?"

그러자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마이크로 소프트 4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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