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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27화 (114/200)

< 트램프 타워 1 >

유라가 드디어 임신을 했다.

그녀의 태중에서 내 피를 물려받은 2세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허나, 나는 그녀를 돌봐줄 형편이 아니었다.

경영대학원 수료가 막바지에 치달은 탓이었다.

졸업논문을 작성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더불어 다시 만나기 시작한 안젤리나와 오붓한 시간을 즐길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mba 자격증 취득이 눈앞이었다.

결국 그녀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친정집에서 애를 낳을 때까지 푹 쉬다 오는게 어떠냐?"

그러자 유라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이곳이 좋아. 자기랑 같이 있을거라고."

"그래도 장모님이랑 같이 있는게 너한테 좋잖아."

"우리 엄마, 엄청 바빠. 미술관 운영하는데 정신이 팔렸다고."

"한국에서 출산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싫다니까. 뱃속의 아기가 남자일 확률이 높다고 의사선생님이 말하셨어."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정말 몰라서 묻니?"

"응. 몰라."

그러자 유라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태어날 경우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고."

"미국 시민권이 뭐가 대단하다고 이 난리야?"

"우리 아기한테는 꼭 필요해. 병역 면제자에 해당하니까."

"겨우 병역면제 때문에 미국에서 애를 출산할 생각이냐?"

"그러니까 자기는 신경쓰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그녀는 쇠고집이었다.

당최 말을 들어쳐먹지 않았다.

그녀를 한국에 보낸 후에 안젤리나와 날마다 잠자리를 즐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계획은 그녀의 옹고집 때문에 초장 부터 대차게 틀어졌다.

***

안젤리나와 중앙도서관에서 사이좋게 졸업논문 작성에 매진한 후 학교 인근의 호텔로 넘어갔다.

우리는 격렬한 정사를 만끽한 뒤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고 있었다.

"백악관 인턴에 합격했어."

그녀는 자기 아버지 처럼 워싱턴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안젤라는 특유의 고혹적인 눈웃음을 내비치며 내 너른 품에 얼굴을 묻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구. 그러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마."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진탕 놀아보자."

그리 말하며 풍만한 젖가슴에 얼굴을 묻자 그녀의 입에서 자극적인 비음이 쏟아져나왔다.

며칠 후, 안젤리나는 워싱턴으로 떠나갔다.

***

학교 컴퓨터실에서 한국 웹에 접속한 뒤 인터넷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하나 둘씩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었다.

한보철강과 기어자동차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경제의 펀티맨탈이 여전히 건실하다는 말만 앵무새 처럼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나라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자기들만 모르는 눈치였다.

한국은 달러도 없는 주제에 연일 폭락하는 원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달러를 쏟아부었다.

당연히 그 달러 역시 해외에서 차입한 단기외채였다.

빚을 내서 환율방어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을 필두로 태국,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 외환위기가 번져가는 모양새였다.

미국 야후 사이트에 접속한 뒤 검색창에 마이크로 소프트를 입력하자 주가시황과 연관 기사가 화면에 주르륵 떠올랐다.

동아시아 전역으로 외환위기가 퍼져나가자 뉴욕 증시도 약보합을 면치 못했다.

특히 it 대장주로 일컬어지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가 역시 횡보합을 노닐고 있었다.

신고가 행진이 동아시아 외환위기 덕분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형국이었다.

마소의 시총은 6700억 달러 내외였다.

아무리 봐도 꼭대기에 도달한 모양새였다.

나는 이미 10배 이상의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주식가치가 50억 달러에 육박할 지경이었다.

한국 최고의 부자라는 현도그룹의 정조영 회장과 삼송그룹의 김건일 회장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 좋아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뒤 월가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활동하는 프랭크 조브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식을 전량 장내매도 해주십시오.

-일시에 그 많은 물량을 쏟아내시면 시장에 폭락 시그널을 줄수 있습니다.

-그럼 석달 가량의 간격을 두고 매도작업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 주방에 들어가자 유라가 얼큰한 김치찌개를 내왔다.

그녀는 나날이 음식 솜씨가 좋아졌다.

나랑 동거한 이후, 자기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였다.

"몸은 어때?"

그리 말하며 유라의 불룩해진 배에 귀를 가져갔다.

그러자 뭔가 퉁퉁 치는 소리가 은근히 들려왔다.

"아기가 발길질하는 소리 들리지?"

"그런거같네. 하하..."

오늘 따라 유라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내 씨앗을 잉태한 탓이었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얼큰한 김치찌개 국물을 밥에 한가득 쏟아부은 뒤 봄날에 게눈 감추듯 삽시간에 뚝딱 해치웠다.

그러자 유라가 감탄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자기 먹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라구."

"어렸을때 하도 고생해서 그래. 습관이 들은거지."

"얼마나 고생했길래, 그러는거야?"

"너는 말해줘도 이해를 못할거다."

"그래도 말해봐."

그녀가 호기심 그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결국 유라에게 내 어린시절을 간략히 말했다.

"15살 부터 공사장이랑 공장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어. 그 덕분에 내 손에 굳은살이 박혔지. 그렇지만 그런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아. 그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거잖아."

그러자 유라가 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채 위로하는 말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이제 자기는 수천억대의 돈을 굴리는 재벌이나 마찬가지잖아."

"말이라도 고맙다. 하하..."

그녀의 풍염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자 엄마가 내뿜던 포근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느껴졌다.

유라가 엄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나는 여전히 케임브리지 시내의 아파트에 체류하고 있었다.

임신한 유라 때문에 옴싹달싹 못하는 처지였다.

그녀의 산달이 코앞에 닥친 탓이었다.

유라가 좋아하는 딸기와 소갈비를 구하기 위해 시내 마트와 한인식당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종횡무진했다.

그녀는 산달이 다가오자 식탐이 나날이 심해졌다.

딸기와 소갈비를 구해서 그녀에게 대령하자 걸신들린 아귀 처럼 삽시간에 먹어치웠다.

조금 야속한 심경이었다.

이런게 산모의 특권인 모양이었다.

씁쓸한 고소를 입가에 베어문 채 베란다로 걸어나갔다.

베란다에서 줄담배를 피워올릴 무렵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휴대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폰을 받자 프랭크 조브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식을 모두 장내 매도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HBC 은행의 TS 인베스트먼트 계좌로 주식대금을 이체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주식대금을 송금해 드리죠.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대화가 가능하신지요?

-편하게 말하세요.

-뉴욕 5 번가에 107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건립됐습니다. 트램프 타워라고 하는 곳이죠. 투자가치가 아주 높은 빌딩입니다.

-빌딩을 통으로 매입하라는 말인가요?

-그 빌딩은 뉴욕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주거용 빌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주상복합 아파트의 일종이죠.

-주상복합 아파트가 무슨 뜻인가요?

-상가와 오피스, 주거용도를 포괄하는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상가 아파트였다.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조망되는 탓에 슈퍼리치들에게 날개돋힌듯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제일 작은 평수도 7백만 달러에 육박할 정돕니다.

-제일 큰 평수는 얼마나 하나요?

-평수가 가장 넓은 탑층의 펜트하우스는 트램프 회장 일가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층에 위치한 2백평 대의 로얄 스위트룸은 2천만 달러에 매물이 나온 상탭니다.

엄청난 가격이었다.

뉴욕 5번가는 맨해튼과 센트럴파크 사이에 위치한 장소였다.

전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동네였다.

-로열 스위트룸을 구경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일정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번주 목요일에 뉴욕으로 갈 예정이니까, 그때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편한 시간에 연락주십시오. 미스터.

며칠 후.

유라를 케임브리지 아파트에 남겨둔 채 나홀로 뉴욕을 방문했다.

그녀는 배가 너무 불어서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맨해튼 인근의 5번가로 들어서자 삐까번쩍한 트램프 타워가 시야에 포착됐다.

소문대로 트램프 타워는 화려한 건물이 많은 5 번가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빌딩이었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램프가 건설한 이 건물은 뉴욕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관광 명소로 소개 될 정도였다.

맨해튼 한복판에 고급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싶었던 트램프는 몇 년간 눈여겨 본 빌딩을 좋은 기회에 인수하여 수년 간의 공사 끝에 트램프 타워를 완성했다.

트램프 타워는 총 107층, 412 미터의 높이로 뉴욕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으로서 센트럴 파크와 마천루, 뉴욕 항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탁월한 조망권을 자랑했다.

빌딩 외관이 모두 검정색 유리로 치장된 탓인지 고급스런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고 있었다.

1층 로비로 들어가자 실내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실낸 정원의 한켠에는 인공 폭포가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5층 높이에서 떨어져내리는 실내 폭포는 나름 운치가 있었다.

그런 탓으로 실내 폭포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이 주변에 구름 처럼 모여있었다.

1층 부터 6층까지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고급 브랜드 상점이 줄비하게 들어서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7층 부터 49층 까지는 오피스 동이었다.

50층 부터 주거층이었다.

약속장소인 49층으로 들어서자 허리춤에 권총을 휴대한 보안요원이 내 앞을 막아섰다.

"용무가 있으신가요?"

"프랭크 조브씨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보안요원이 무전기를 이용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몇분 뒤, 보안요원이 끝쪽에 위치한 관리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프랭크 조브와 장년의 백인 남자가 나를 반겼다.

프랭크에게 목례를 취한 뒤 2미터의 장신을 자랑하는 백인 아저씨와 악수를 교환했다.

그는 자산만만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도널드 트램프요."

이 남자가 그 유명한 도널드 트램프였다.

나는 트램프를 TV에서 처음 봤다.

그는 프랜틱스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유 파이어'라는 냉랭한 단어를 구사하며 구직 희망자들을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 명장면을 숱하게 연출한 장본인이었다.

유 파이어라는 단어는 '너는 무조건 해고'라는 의미였다.

그 정도로 트램프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트램프에게 TS 인베스트먼트 대표 직함이 쓰여진 명함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내 명함을 유심히 살피며 의미심장한 언사를 내뱉었다.

"월가의 큰손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운용하는 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실수 있습니까?"

트램프는 초면 부터 대답하기 곤란한 사안을 물어봤다.

소문대로 화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죄송하지만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닙니다. 그러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자 트램프가 사무적인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 채 팜플렛 한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로열 스위트룸의 실내 사진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시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팜플렛에 시선을 고정했다.

로열 룸은 바닥과 천장 벽면 전체가 값비싼 이태리제 천연 대리석으로 치장됐으며, 동서양의 명화가 대리석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또한 미니 풀장과 소극장, 테라스, 헬스장 등의 시설이 집안에 완비된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욕실의 욕조와 수도꼭지, 샤워꼭지 등이 전부 순금이었다.

< 트램프 타워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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