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램프 타워 2 >
트램프의 펜트하우스 입구에 도착하자 턱시도 차림의 집사가 나를 반겼다.
그에게 초대장을 건네자 나를 실내로 안내했다.
관현악단의 경쾌한 오케스트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미국의 정재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샴페인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담소를 즐기는 광경이 보였다.
그 무렵, 파티의 호스트인 트램프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미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트램프는 금발미녀를 가리키며 자부심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입니다. 하하하...!"
그의 말이 끝나자 금발미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이반카 트램프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이태수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태수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리 화답하며 이반카의 보드라운 손을 두손으로 맞잡았다.
그녀가 섹시한 눈웃음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몸이 정말 좋으시네요. 운동을 많이 하시나보죠?"
그녀는 근육질의 내 몸매를 홀린듯 훑으며 뜨거운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꾸준하게 근력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래서 몸이 좋으셨구나. 호호..."
그녀는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근처를 배회하는 웨이터를 손짓했다.
이반카는 웨이터가 건넨 샴페인을 내 손에 쥐어주며 고운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우리집 파티를 마음 편히 즐기세요. 원하신다면 제가 당신을 에스코트해 드릴게요."
황송할 지경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팔등신 금발미녀가 이리 나오자 하늘에 오를듯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트램프의 선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딸애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는거 같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하하..."
트램프는 사람 좋은 웃음을 길게 흘려보내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반카는 나를 테라스로 이끌었다.
그녀는 마천루를 가리키며 은근한 어조를 내뱉었다.
"우리 아파트를 구입하시면 당신에게 여러모로 좋을 거에요. 유력자들과 주기적으로 파티를 통해서 만남을 가질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으실 거에요."
그녀는 아파트 세일즈에 열중했다.
이반카가 마음에 들었다.
안젤리나에 버금가는 미모를 소유한 탓이다.
테라스에는 나와 그녀 단 둘 밖에 없었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이반카의 달콤한 입술이 더욱 갖고 싶어졌다.
결국 한마리 숫컷으로 화신 한 채 그녀의 입술을 무작정 뎦쳐갔다.
이반카는 내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의 촉촉한 혀는 흡반 처럼 내 혀를 빨아들였다.
이반카의 풍만한 여체를 격하게 어루만지자 그녀가 내 입술을 피한 채 조곤조곤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위층에 빈방이 많아요. 거기로 가요."
쌀이 익어 밥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이반카는 위층에 있는 빈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걸친 드레스를 순식간에 벗겨내렸다.
그러자 비너스 여신상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여체가 망막가득 스며들었다.
나는 한마리 짐승으로 전락한 채 이반카의 풍요로운 여체를 격렬하게 탐닉했다.
며칠 후, 트램프 타워의 고가 아파트를 2천만 달러에 구입했다.
***
드디어 유라가 건강한 신생아를 출산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나를 쏙 빼다박은 남아였다.
녀석에게 민준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백성 민에, 준걸 준자를 합친 이름이었다.
사람 중에 뛰어난 인걸이란 의미였다.
유라를 병원에 남겨둔 채 학교로 직행했다.
졸업논문을 제출하기 위함이었다.
교수님에게 졸업논문을 제출한 뒤 컴퓨터 실로 들어갔다.
한국 야후에 접속한 뒤 뉴스란으로 넘어가자 온통 IMF 구제금융과 관련된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계획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더불어 대선을 치루는 대선주자들 역시 구제금융에 대해서 저 마다 한마디씩 말을 거들고 있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도플갱어의 에언대로 한국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대유그룹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대규모의 적자를 보고 있다는 뉴스들이 산더미 처럼 출력됐다.
예상대로였다.
***
서울 모처
여야의 대선주자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미국 재무부 차관인 앤디 루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앤디 루빈 차관은 여야의 대선주자들을 휘 둘러본 뒤 그들에게 각자 한장의 각서를 내밀었다.
"각서에 싸인을 해주십시오."
그러자 대선 주자들이 영어와 한국어로 작성된 각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여당의 이해창 후보와 야당의 김대주 후보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얼굴로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지금 이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당신들이 뭔데 한국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려는 거요?"
이해창의 고성에 뒤이어 김대주 역시 매서운 일갈을 토해냈다.
"이건 한국을 식민지 취급하는 겁니다. 당신들은 구제금융를 빌미로 한국 경제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려고 하는거요!"
허나, 앤디 루빈은 냉정한 얼굴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들이 각서에 끝내 싸인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채무불이행, 즉 모라토리움 상황에 삐져들 겁니다. 그리되면 에너지, 식량, 공산품 등의 모든 것을 수입에 위존하는 한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순간 장내에 차가운 한기가 매섭게 휘몰아쳤다.
김대주와 이해창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슈퍼 파워 미국은 한국의 가혹한 구제금융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만한 힘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간에 고개를 끄덕인 뒤 각서에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1시간 뒤, 힐튼호텔 스위트룸에 캉드쉬 imf 총재 일행이 나타났다.
그들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과 비밀회담을 시작했다.
캉드쉬는 한국 측 인사들을 향해 날서린 언사를 내뱉었다.
-한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댓가로 연이율 40퍼센트 대의 기준금리를 실행한다.
-한국 정부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정리해고를 법으로 제정한다.
-한국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대상으로한 공적자금 지원을 지금 즉시 전면중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금융시장을 전면개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업무용 부동산 시장 역시 전면개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국자본의 직접투자 역시 전면 개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국자본의 시세차익에 대해 향후 5년간 면제 조치를 실시해야한다.
-만약 이 조건들을 하나라도 거부한다면 imf 는 단 한푼의 달러도 지원할수 없다.
한국측 인사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헬슥해졌다.
캉드쉬 imf 총재는 한국의 경제를 미국의 입맛대로 쥐고 흔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퇴로없는 천장단애에 내몰린 형국이었다.
결국 한국측 인사들은 울며겨자먹는 심경으로 imf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한국은 연이율 40퍼센트 대의 초고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금융기관과 기업체들이 하루에도 수천개씩 무더기로 도산했다.
또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왔다.
***
뉴욕의 브라이언트 공원을 거닐며 한국 경제가 패망한 이유를 나름대로 추론했다.
내 생각에는 한국 경제가 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금융실명제의 무리한 실시였다.
금융실명제는 권력자에게 징벌적인 세수추징이란 칼자루를 쥐어주는 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중의 자금이 경색되는 역기능마저 초래했다.
선진국들은 금융실명제 자체를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파산한 이유도 금융실명제의 나비효과로 보는 경제학자들이 많았다.
금융실명제 여파로 자산가들이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거나 금고 속에 돈을 꽁꽁 숨긴 탓에, 금융 기관과 기업에 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자 국내 경기는 수직낙하했다.
그 덕분에 수많은 기업들이 연쇄도산에 처했다.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은 너도나도 해외에서 단기 외채를 대규모로 끌어다 들였다.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허나, 얼마안가 imf 구제금융이란 참담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금융실명제는 한국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할 싯점이었다.
도플갱어는 1999년 경에 한국이 구제금융을 극복한다고 확언했다.
그 말인즉슨 한국의 경제가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한다는 의미였다.
아는거 많은 트램프 회장의 조언을 듣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는 부동산 투자의 대가였다.
마음을 정한 뒤 트램프 타워를 향해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트램프 타워 50층에는 트램프 회장의 개인 사무실이 있었다.
비서에게 면담을 요청하자 그녀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트램프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트램프는 때마침 사무실에 있었던 관계로 내 면담 요청을 쾌히 승락했다.
우리는 비서가 내온 커피를 음미하며 본격적인 담소에 돌입했다.
트램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할 생각인데 어느 종목이 적당할까요?"
"염두에 두고 있는 부동산이 있습니까?"
"강남의 아파트를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확실한건 아닙니다."
그러자 트램프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자잘한 아파트 보단, 한방에 큰 시세차익을 볼수 있는 오피스 빌딩을 알아보세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오피스 빌딩을 유망하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 역시 서울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로 투자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의 귀재인 트램프가 이리 말할 정도면 오피스 빌딩이 투자할 가치가 높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직 물어볼 사항이 많았다.
"부동산 시세차익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외국자본에 어느 정도의 양도세를 부과할까요?"
이번에도 트램프는 시원하게 즉답했다.
"시세차익을 보더라도 imf와 한국정부가 맺은 비밀 협약 덕분에 양도세를 면제 받으실 겁니다."
트램프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회장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하하..."
트램프는 사람좋은 웃음을 내비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곧바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이반카 트램프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자기 방에서 흡연을 즐기고 있었다.
이반카는 자욱한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흡입하며 나에게도 담배를 권했다.
"자기도 필래?"
"미안. 별로 땡기지가 않아서."
고개를 젓자 그녀가 아쉬워하는 얼굴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허니는 사람이 너무 반듯해서 탈이야."
그녀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하늘하늘한 네글리제가 몸에서 제 스스로 흘러내렸다.
도저히 참을수 없었다.
그녀는 내 남성을 무참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함께한 뒤 사이좋게 흡연에 열중했다.
이반카가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친구 집에서 파티를 하는데, 자기도 갈래?"
"시간이 안될거 같다. 와이프가 케임브리지에서 기다리고 있거든."
그러자 그녀가 고소를 내비치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자기는 나쁜 남자야. 와이프가 버젓이 있으면서도 대놓고 바람을 피운단 말이지."
"미안. 어쩌다 보니 그리 됐다. 하하..."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있다고."
"그 사람이 누군데?"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야. 아빠 처럼 부동산 재벌."
"정략결혼이냐?"
"그건 아니고, 남친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하기로 약속한거야."
말은 그리 했지만, 이반카는 정략결혼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녀는 담배를 재떨이에 내던진 뒤 내 입술에 키스를 해왔다.
우리는 다시 한번 뜨겁게 불타올랐다.
< 트램프 타워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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