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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31화 (132/200)

< 1998 - 3 >

해가 떨어지자마자 한강변으로 마실을 나갔다.

이촌 한강공원에 들어서자 명우가 나를 반겼다.

"왔냐."

"뭐 하러 이곳에서 보자고 한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라. 아가씨들을 소개해 줄 테니까."

명우는 그리 말하며 요트들이 정박한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아담한 사이즈의 요트를 손짓하며 자랑스레 입을 떠벌렸다.

"어때? 존나 근사하지 않냐?"

"얼마짜린데? 싸구려 같아 보이는구만."

"자식아. 이래 봬도 우리 데이지 공주님의 시세가 10억이 넘는다구!"

"데이지 공주가 요트 이름이냐?"

"그래. 쨔샤. 일단 들어와라."

"알았다. 임마."

요트는 6인승 사이즈였다.

침실과 홈바,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를 완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요트 내부의 홈바에서 발렌타인을 물처럼 들이키며 아가씨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들이 언제 오냐?"

"스케쥴 끝나면 오겠지."

"여배우냐?"

"당근 빳다지. 낄낄······."

녀석이 특유의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진도희?"

"그년은 너무 돈을 밝혀서 오래전에 정리했지."

"그럼 누군데?"

"요즘 한창 잘나가는 이지유랑 성미현을 섭외했으니까 오붓하게 놀자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애들인데?"

"자식아. 너는 한국에 없었으니까 그런거고. 요즘 그 애들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명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형이 그년들을 데리고 오려고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아냐? 무려 2천만 원이 들었다고."

"알았다. 임마. 잘난 체는 그만하고 술이나 따라봐라."

그제야 녀석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빈 잔에 발렌타인을 넘치도록 들이부었다.

발렌타인을 두세 모금 입가에 들이킬 무렵 요트 안에 이쁘장한 그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통성명을 나눈 뒤 한강으로 물놀이를 나갔다.

그녀들은 붙임성이 좋았다.

그런 탓으로 우리들의 비위를 잘 맞췄다.

아랫도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내가 매입한 빌딩들을 부동산 관리회사에 위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혼자 관리하기에는 빌딩이 너무 많았다.

전문적으로 오피스 빌딩을 관리하는 업체가 필요했다.

명우에게 소개받은 부동산 관리회사 오너인 김용석과 점심을 함께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ts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강남과 종로, 광화문 등지의 빌딩을 귀사에서 관리해 주십시오."

그러자 김용석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최선을 다해서 빌딩을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임대소득을 매달 말일에 국면은행에 개설된 ts 인베스트먼트 계좌로 이체해 주십시오."

"외화로 이체해 드릴까요?"

"그냥 한화로 이체해 주십시오. 지금은 달러 값이 너무 금값이라 한화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며 ts 인베스트먼트 계좌 번호가 쓰여 진 메모지를 김용석에게 건넸다.

달러로 환전하고 싶었지만 1달러당 3500원 안팎으로 원화 가치가 폭락한 탓에 환전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커다란 환차손을 보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원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무렵, 달러로 환전하는 게 상책이었다.

용석은 내가 건넨 메모지를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한 뒤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위탁 수수료를 산정한 뒤에 사장님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수수료를 대략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저희 회사는 임대소득의 7프로 정도를 수수료로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장님의 경우에는 특별히 5프로 정도의 수수료만 받겠습니다."

"그럼 내일 변호사 입회하에 계약서를 체결합시다."

"넵. 사장님."

용석은 그리 말하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날 밤.

룸살롱 vip룸에 들어가자 명우가 여자들을 품에 낀 채 술판을 즐기는 광경이 보였다.

녀석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얼음이 동동 띄워진 발렌타인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너도 여자를 불러주랴?"

"알아서 해라."

"오케이."

잠시 후 두 명의 룸걸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곧바로 내 술 시중을 들었다.

룸걸이 따라주는 술잔을 물처럼 들이킨 뒤 명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일 오후 3시에 부동산 관리회사랑 계약을 체결할 거니까, 니네 회사 법무팀 애들 좀 같이 쓰자."

"맨입으로?"

"오늘 술값도 내가 낼 테니까, 형이 좋은 말로 할 때 기어라."

그제야 녀석이 반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말에 동경으로 놀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일본에 가서 뭐하게?"

"돈카츠 우동도 먹고 겸사겸사 일본 여자들도 따먹는 거지."

조금 구미가 당겼다.

"형이 알아서 일본 애들을 섭외해 줄 테니까 돈 많은 이사장님이 물주 노릇 좀 해라."

"알았다. 쨔샤."

그리 화답하며 발렌타인을 목젖 깊숙이 들이켰다.

주말 무렵.

명우는 나고야 인근의 온천으로 나를 안내했다.

"혼욕탕이니까 여자들 몸매나 진탕 구경하자."

"아직도 혼욕탕이 있냐?"

"이 동네는 여전히 혼욕탕이 성업 중이지. 그러니까 눈요기나 실컷 하자고. 낄낄······."

녀석이 음흉한 눈빛을 드러낸 채 나를 탈의실로 이끌었다.

우리는 옷을 벗자마자 노천탕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창피한 것도 모르는지 아저씨들 눈앞에서 여유로운 자태로 온천욕을 만끽하고 있었다.

허나, 내가 애타게 갈구하는 젊은 여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임마. 전부 아줌마뿐이잖아."

내 핀잔에 녀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느긋하게 기다려 보자구. 반드시 쓸만한 걸들이 나타날 거다."

그러나 온천욕을 즐긴 지 3시간이 지나도록 아리따운 그녀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너를 믿은 내가 바보다."

"자식아. 좀 더 기다려봐라."

명우는 그리 말하며 탈의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베이비 페이스의 글래머가 장내에 '짠' 하고 나타났다.

베이글녀는 남자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중앙에 위치한 온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우윷빛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나 홀로 온천을 즐기는 데 열중했다.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의 풍만한 여체에 집중됐다.

나와 명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녀의 농염한 여체를 매의 시선으로 관음하며 저마다 침을 꿀꺽 삼켰다.

간만에 보는 색기 넘치는 몸매였다.

그녀는 2시간가량 온천을 즐긴 뒤 터질 듯한 뒤태를 과시하며 숙소를 향해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명우에게 지엄한 명을 내렸다.

"저 여자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맨입으로?"

"원하는 게 뭐야?"

"형이 요즘 돈이 궁해서 그런데 딱 1억만 융통해주라."

"이자는?"

"임마. 친구끼리 무슨 이자 타령이야?"

"알았으니까 베이글을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그럼 1억 주는 거지?"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지."

"그 말이 그 말이잖냐?"

"이 자식은 너무 공짜를 좋아한단 말이지. 그러다 이마 벗겨진다."

"남이사. 암튼 약속이나 지켜라."

녀석은 그리 말하며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내 숙소에 베이글이 나타났다.

명우가 돈으로 그녀를 꼬신 모양이었다.

우리는 뜨겁게 엉겨 붙었다.

말 따위는 불필요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명우가 손을 벌렸다.

결국 녀석의 손에 시티은행에서 발행한 10만 달러 짜리 수표를 건넸다.

"빌려주는 거니까, 꼭 갚아라."

"친구끼리 쪼잔하게 굴지 마라."

"주는 거 아니라니까."

"알았다고. 쨔샤."

명우는 그리 말하며 수표를 지갑에 냉큼 챙겼다.

그날 저녁.

우리는 동경 신주쿠 인근의 돈가츠 우동 집으로 들어갔다.

명우의 단골집이었다.

돈가츠 우동은 먹을만했다.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니었다.

너무 느끼한 탓이었다.

우리는 돈가츠 우동으로 배를 채운 뒤 동경의 밤거리를 할일 없이 돌아다녔다.

명우가 은근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갈까?"

"니가 일본에 오자고 했으니까 알아서 장소를 섭외해야지."

그제야 녀석이 제정신을 차린 얼굴로 인근의 술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양꼬치를 안주 삼아 일본 맥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어제 그 여자애를 어떻게 꼬신 거냐?"

"당연히 돈으로 섭외했지. 15만엔 주니까 알아서 넘어오던데."

녀석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명우의 입에서 은근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술도 마실 만큼 마셨으니까 카지노로 놀러 가자."

"카지노가 어디에 있는데?"

"이 근처 호텔."

녀석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카지노가 하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새였다.

결국 겸사겸사 녀석을 따라나섰다.

명우는 술집 주변에 위치한 호텔로 들어가자마자 지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지노장에 들어가자 도박꾼들이 내뿜는 후끈한 열기가 온몸에 전해져왔다.

카지노장 특유의 기이한 열기였다.

명우는 내가 준 10만 불 전액을 칩으로 교환하자마자 바카라 테이블로 직진했다.

반면 나는 슬롯머신에 열중했다.

머리를 식히는 용도였다.

1시간 뒤, 낭패한 몰골의 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친구야. 딱 10만 달러만 더 빌려주라. 제발······!"

도박꾼의 말로였다.

"있어도 못 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이만 나가자."

그 말을 끝으로 카지노장을 박차고 나왔다.

명우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쉴 새 없이 궁시렁 거렸다.

"임마. 친구가 사정이 급해서 돈 좀 빌려 달라는 걸 그렇게 매정하게 끊는 법이 어디 있냐?"

"헛소리 좀 그만하라고. 피곤하니까 말 시키지 마라."

"자식아.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친구 사정이 딱하면 알아서 챙기는 게 의리 아니냐!"

"의리고 나발이고, 도박쟁이한테는 돈 빌려주는 거 아니다."

그리 말하며 두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허나, 녀석의 잔소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도박에 환장한 모양새였다.

***

대유그룹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어음과 금융권의 대출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결국 김유중 회장은 연리 50퍼센트 대의 초고금리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시내 모처

김유중은 외국계 사모펀드 관계자들에게 초고금리 회사채를 세일즈하고 있었다.

"연간 이자 51프로의 회사채 20억 달러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냉담한 반응이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자 김유중이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수익을 안겨다 줄 채권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때,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 남자가 냉정한 언사를 내뱉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유그룹의 회사채는 정크본드(쓰레기 채권)수준이에요.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턱수염이 더부룩한 외국인 남성이 말을 덧붙였다.

"정크본드 수준의 채권을 판매하고 싶다면 경영권도 담보로 제공하십시오."

김유중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는 경영권을 담보로 제공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경영권 담보 얘기는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사모펀드 관계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하나같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김 회장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모펀드 관계자들이 장내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김 회장의 얼굴에 짙은 허탈감이 드리워졌다.

허나, 그는 경영권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다.

결국 김 회장은 태수에게 다시 한번 읍소하기로 마음먹었다.

***

집에서 여행의 노독을 해소할 무렵 김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성북동에서 저녁이나 같이하지?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만날 필요성이 없는 탓이다.

-싫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건가?

-알면서 뭐 하러 물으십니까?

-흐음······

수화기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그러기를 잠시 후 김 회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럼 전화로 말할 수밖에 없겠군.

-하실 말씀이 뭡니까?

-연이율 51프로의 초고금리 회사채를 20억 달러 규모로 발행할 예정일세. 그래서 말인데, 이 서방이 회사채를 소화해 줬으면 하는데.

김 회장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오고 있었다.

-앞으로 돈 얘기를 나한테 절대 꺼내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었다.

< 1998 -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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