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낯 >
드림 엔터 사무실로 들어가자 책상 서너개와 가죽소파, 테이블 tv 등이 눈에 띄었다.
창가에 위치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벽면에 내걸린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동진그룹이 끝내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동진그룹은 1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채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주채권 은행인 국면은행은 동진그룹 채종구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인수받는 즉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중략...
동진그룹 채종구 회장은 나와 인연이 많은 작자였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에게 칼부리를 들이댄 노망난 영감탱이였다.
이제 슬슬 노망난 채종구 회장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걸 알려줄 싯점이었다.
그날밤.
칙칙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드림 엔터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명구가 소개해준 해결사였다.
"강태호라고 합니다."
남자는 그리 말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교환 한 뒤 그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강태호는 소파에 앉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키실 일이 뭡니까?"
"동진그룹 채종구 회장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지금은 회사가 망했으니 그냥 채종구라고 하는게 맞겠군요."
그러자 강태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만만치 않군요."
남자는 그리 말하며 내 두눈을 빤히 쳐다봤다.
돈을 많이 달라는 무언의 요구였다.
"아무리 회사가 망했다고 해도 주변에 경호원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미화로 30만 달러를 주십시오. 그러면 책임지고 채종구를 사장님 면전에 갖다놓겠습니다."
개나 소나 달러에 환장한 시대였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한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대신 일주일 안으로 그 영감탱이를 반드시 내 앞으로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태호의 자신만만한 확언이었다.
지갑에서 10만불 짜리 수표 석장을 꺼내서 태호에게 건네자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헤헤..."
녀석은 간사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 채 내가 건넨 수표를 지갑에 재빨리 갈무리했다.
돈독이 잔뜩 오른 놈이었다.
강태호를 내보낸 후 김 검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동진그룹의 채종구를 작업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검사님이 도움을 좀 주십시오.
-솔직히 쉽지 않을거 같습니다. 채종구가 검경과 정치권에 뿌린 돈이 은근히 많거든요.
-그래서 검사님에게 도움을 청하는거 아닙니까?
-채종구를 작업하려면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횡령 등의 혐의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석 검사 신분이라 제 마음대로 인지수사를 할수 없는 형편입니다.
-채종구의 범죄혐의는 내가 알아서 수집해 줄테니까 검사님은 밥그릇에 숟가락만 얹으시면 될겁니다.
그제야 수화기에서 김 검사의 알아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죠. 하하...
-그럼 나중에 봅시다.
-넵. 사장님.
통화를 끝마친 뒤 김소민이 일하는 카페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제 그녀는 드림 엔터와 계약을 할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양아치 개자식이 특수강간과 폭행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창가 테이블에서 마키아토를 음미하며 면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계약금으로 3천만원을 줄테니까 우리 드림 엔터테인먼트와 7년 동안 계약을 체결하시죠."
내 말이 떨어지자 그녀가 결심한 얼굴로 공손히 답했다.
"가족들과 상의한 후에 내일 오후에 연락을 드릴게요."
"좋습니다. 그럼 내일까지 연락을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 사장님."
그녀와 만남을 가진 후 카페 앞에 있는 명우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우는 사무실 소파에서 여비서의 풍만한 여체를 떡주무르듯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여비서와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데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여비서가 당황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사무실 밖으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이 자식아. 노크 좀 하고 들어와라. 인간이 매너가 드럽게 없다니까."
"미안하다. 개놈아."
가죽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줄담배를 말아올렸다.
그런 내 모습에 명우가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담배만 꾸역꾸역 쳐피는거야?"
"앞으로 김소민을 어떤식으로 관리해야 할까?"
명우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즉답했다.
"엔터회사를 창업했으니까 나름 서포트를 해줘야지."
"어떻게?"
"일단 드라마에 출연시켜야지."
"그러니까 드라마에 어떻게 출연시키냐구?"
"드라마 피디나 방송사 간부한테 촌지를 돌려."
"얼마나?"
"적당히 돌리면 되겠지."
"나 대신 일을 처리해줄 인간이 필요하겠네?"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녀석은 커피 두잔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당연히 나는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선택했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두런두런 담소를 이어갔다.
"엔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놈을 소개해줄까?"
명우의 쓸만한 제안이었다.
"알아서 섭외해봐. 믿을 만한 놈으로."
"염려마라. 쓸만한 친구를 소개해 줄테니까."
다음날.
드림 엔터 사무실에서 짬뽕 국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킬 무렵 핸드폰 벨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책상 위에 놓여진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소민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드림 엔터와는 계약을 못할거 같아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이유가 뭐죠?
-교수님이 배우전문 기획사를 소개해 주셨거든요. 아무래도 그곳에 가야 할거 같아서요. 선배님들도 많거든요.
-좀 더 생각해 보시죠.
-미안해요. 사장님. 그럼 실례할게요.
소민은 그말을 끝으로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인연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명구가 소개한 엔터 업계 종사자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실장님이 소개해서 왔는데요."
남자는 쭈볏거리는 태도로 인사를 해왔다.
"일단 짬뽕 국물에 소주나 마십시다. 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그러자 남자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소주를 들이키는데 집중했다.
서너 시간 가량 술을 함께한 뒤 남자를 사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와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
평창동의 고급 주택가에 봉고차가 나타났다.
눈이 날카롭게 찢어진 남자가 강태호에게 보고를 올렸다.
"경호원은 4명이고, 모두 저택 안에서 거주하는 것 같습니다."
"경호팀장이 누구냐?"
"전직 경찰인 하민철입니다."
"하민철의 가족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한명 있습니다."
"그 자식의 약점이 뭐냐?"
"돈을 밝히더군요."
"그놈에게 전화를 걸어봐."
"넵. 형님."
***
드림 엔터 사무실에 강태호가 나타났다.
"경호 팀장이 5천만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돈을 주면 알아서 협조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서 태호에게 내밀었다.
"실수없이 일을 처리하세요."
"염려마십시오. 사장님."
그는 수표를 챙기자마자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늦은밤.
강태호는 채종구의 호화찬란한 저택을 이잡듯이 뒤지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가죽 가방에 미친 듯이 쓸어담았다.
태호는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베어문 채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업을 시작해."
"넵. 형님."
***
동네 복싱 체육관에서 펀치볼을 상대로 원투 스트레이트와 잽, 훅 등을 벼락같이 난사할 무렵,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폰에서 강태호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을 끝마쳤습니다. 애들을 보낼테니 그 차를 타고 오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사장님.
은근히 마음에 드는 작자였다.
자기 주제를 잘 아는 탓이었다.
1시간 후.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압구정 아파트에 나타났다.
"작업장으로 사장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럽시다."
남자는 평창동으로 차를 몰아갔다.
저택에 도착하자 남자가 내실로 안내했다.
침실에 들어가자 깊은 잠에 취한 장년 남자가 보였다.
그놈이 채종구였다.
침상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던 강태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수면제를 복용시킨 건가요?"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종구의 소매를 걷어보세요."
"네. 사장님."
태호는 곧바로 종구의 소매자락을 걷어올렸다.
그러자 선명한 주사자국이 보였다.
예상대로 채종구 역시 뽕쟁이였다.
그 아들에 그 애비였다.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태반이 약쟁이였다.
종구 또한 그런 케이스였다.
"뽕을 주입하세요. 그리고 그 장면을 카메라와 캠코더에 담으세요."
"알겠습니다."
태호는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자세였다.
그는 뽕이 가득 들어찬 주사기를 채종구의 팔뚝에 꽂아넣었다.
그러자 종구가 온몸을 들썩이며 나른한 쾌락에 휩싸였다.
"여자를 준비시켰나요?"
"혹시 몰라서 옆방에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그 여자를 데리고 오세요."
태호는 약에 취한 채 술집 여자와 격렬한 잠자리를 즐기는 채종구의 낯뜨거운 추태를 고화질 카메라와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았다.
다음날.
약기운에서 벗어난 채종구를 철제의자에 묶은 뒤 엄한 취조를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종구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그토록 찾아헤메던 이태수가 바로 납니다."
순간 녀석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뽕을 하도 많이 한 탓이지 혀가 잔뜩 꼬인 모양이었다.
결국 녀석의 입을 두꺼운 청테이프로 봉해버렸다.
개놈의 말을 들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잘나신 채종구 회장님을 조사해보니 선친에게 그룹을 물려받으셨더군요. 그 덕분에 일평생 고생 한번 안하고 속편하게 이 세상을 살아오셨고."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반면 저는 15살 부터 공사판에서 노가다를 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했습니다. 우리 채 회장님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거죠."
종구의 눈깔이 태풍에 휘말린 듯 거세게 요동쳤다.
"그래서 저는 채 회장님처럼 인생을 날로 먹는 호로자식들을 보면 엄청 열을 받아요. 그러니까 내가 좋은 말로 할때 비자금 장부와 차명으로 꼬불쳐둔 돈을 순순히 이실직고 하세요."
그러자 녀석이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미친듯이 저었다.
돈 욕심에 앞뒤를 분간 못하고 있었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태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알아서 만져 주세요."
"넵. 사장님."
강태호가 채종구의 입을 막은 청테이프를 제거하자마자 건장한 남자들의 매서운 손과 발이 종구의 여린 육신에 우박처럼 떨어져내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악.....그만......제발......으아아아아아악....
남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종구의 몸뚱이를 기계적으로 폭행하는데 오롯이 열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잘못......쿠아아아아아아악.....
종구는 피곤죽으로 전락한 채 자신이 싸지른 똥오줌 위를 애처롭게 허우적거렸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종구의 눈 앞에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댔다.
녀석은 카메라 디스플레이 창을 홀린듯 들여다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 채종구 씨는 자택에서 술집 여자와 뽕 주사를 맞은 뒤 격렬한 잠자리를 즐기셨습니다. 이게 그 증거죠. 그러니 내가 말한대로 비자금 장부와 차명으로 은닉한 재산의 출처를 지금 당장 자백하세요."
종구의 빌어먹을 면상을 구둣발로 잘근잘근 짓이기며 최후통첩을 내뱉었다.
"끝내 내 요구를 거부하신다면 우리 종구씨를 상습 마약투약 혐의로 검찰에 넘길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종구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돈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마음대로 해라! 개자식들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종구는 발악적인 외침을 토해내며 악에 바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자기 스스로 매를 벌고 있었다.
강태호를 눈짓하자 그가 알아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개새끼를 좆나게 후드려 패!"
"넵. 형님."
또 다시 장내에 요란한 곡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창원 시내의 한정식 집에 김영오 전 대통령과 한국당 당직자들이 오찬을 겸한 모임을 갖고 있었다.
김영오는 반주로 나온 소주를 들이키며 한국당 관계자들과 취재진을 향해 볼멘 목소리를 내뱉었다.
"김대주 대통령은 박정후와 전두한을 능가하는 독재잡니다. 자기 멋대로 정치판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그의 폭탄발언이 떨어지자 기자들이 두눈을 바짝 빛내며 노트북과 수첩에 그의 어록을 받아적었다.
"김대주 그 양반은 한국의 경제를 망치고 있어요.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자기 뜻대로 밀어부치는 반 자본주의적인 만행을 연일 자행하고 있습니다."
김영오는 이성을 상실한 채 IMF 체제를 슬기롭게 극복 중인 김대주를 향해 근거없는 독설을 쉴새없이 퍼부었다.
결국 참다 못한 정한용 기자가 그에게 매서운 질문을 쏟아냈다.
"대다수 국민들은 김영오 전 대통령 때문에 IMF 구제금융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김영오가 눈썹을 꿈틀하며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그건 모두 김대주 때문입니다. 그 작자가 여당의 개혁법안을 발목 잡아서 나라 경제가 망한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당시 김대주 현 대통령은 야당의 총재였을 뿐입니다. 정권의 담당자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암튼 무조건 김대주 그 인간 때문이니까 더 이상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 대통령은 바로 김영오 당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면피용 발언만 하실 겁니까!"
정기자의 날 서린 언사에 김영오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정한용을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를 내뱉었다.
"정기자 당신, 김대주 편이지? 사실대로 말해봐. 내 말이 맞지?"
정한용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이 한가득 그려졌다.
"더 이상 당신과 할 말이 없습니다."
정기자는 그말을 끝으로 카메라맨을 대동한 채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김영오는 모든 책임을 김대주에게 떠넘겼다.
세간의 평대로 그는 양심에 털이 잔뜩 난 인간이었다.
한국당 인사들조차 할말을 잃은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결국 그들 역시 장내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김영오의 후안무치한 망언 때문이었다.
< 민낯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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