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 김민용 - 0 >
일식당으로 김태섭 검사를 불러들였다.
김 검사에게 카메라와 캠코더를 건넸다.
그는 채종구가 약에 취한 상태로 여자와 정사를 즐기는 광경을 한참 동안 감상한 뒤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현행범으로 얼마든지 엮을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건 그게 아니에요."
그러자 김 검사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걸 빌미로 채종구의 비자금을 털어보세요."
"채종구를 빈털털이로 만드실 속셈입니까?"
"대충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김 검사님이 알아서 조치를 취하십시오."
김 검사가 결심한 얼굴로 화답했다.
"최선을 다해서 채종구를 작업하겠습니다."
"이번 일만 제대로 처리해 주시면, 검사장이 될 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밀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김 검사는 그리 답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중부지검 취조실에 채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낭패한 몰골로 면전에 앉아 있는 김 검사를 쳐다봤다.
"채종구씨의 혈액과 소변, 체액에서 다량의 암페타민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또한 약을 흡입한 상태로 정사를 즐기는 사진과 동영상도 확보된 상탭니다."
채종구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당신은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 할수 있습니다. 약쟁이로 교도소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혐의로 빵에 가거나!"
종구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당신을 비호하던 차장 검사님에게 연락해 봤자 변하는건 없을 겁니다. 그러니 두가지 중에 아무거나 선택하세요."
김 검사의 최후통첩이 떨어지자 종구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자를 선택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추징금과 2년형 내외를 구형 받으실 겁니다. 운이 좋다면 광복절과 구정, 성탄절 특사로 그 안에 나올수도 있는 거고."
종구는 뽕쟁이로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뽕쟁이로 빵에 들어갈 경우 그가 여지껏 쌓아올린 사회적인 명예가 하루아침에 시궁창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탓이었다.
반면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은 기업인들이 달고사는 흔한 범법 행위였다.
거액의 추징금이 아까웠지만 뽕쟁이로 들어가는 것 보단 백배 천배 나은 선택이었다.
종구는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받고 싶었다.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주십시오. 대신 추징금을 1백억 이하로 맞춰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검사님의 심문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김 검사의 얼굴에 극심한 갈등이 일어났다.
결국 그는 가타부타 확답 없이 심문실을 박차고 나왔다.
***
동네 헬스장에서 중량 스쿼트에 열중할 무렵 김 검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채종구가 추징금을 1백억 이하로 맞춰준다면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거 보다, 너무 약한 처벌 같군요.
-그렇지만 비자금 장부와 차명으로 은닉한 재산을 밝혀내는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가 입만 다물면 그만이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일단 비자금 조성과 조세포탈 혐의로 그를 구속시키는 게 최선 같습니다.
-그럴 바에는 그냥 상습마약 투약 혐의로 집어넣는 게 낫지 않을 까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상부에서 완강하게 반대하는 탓에...
-이유가 뭐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마약 문제가 공론화 되는걸 꺼려하는 눈칩니다.
-그럼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채종구는 돈에 대한 집념이 보통이 아니었다.
혹독한 매질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일단 교도소에 쳐 넣는게 급선무였다.
헬스장에서 나오자마자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 앞이니까 지금 당장 튀어 나와.
-갑자기 왜?
-룸빵에서 술이나 빨자.
-오케이. 30분만 기다려라.
우리는 룸빵에서 아가씨들과 음주가무를 만끽한 뒤 인근의 해장국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얼큰한 육개장을 음미하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채종구를 알거지로 만들 방법이 없을까?"
그러자 명우가 질렸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뭐든 심하면 탈이 난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끝내."
녀석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정도 화가 풀린 탓이었다.
"그건 그렇고, 김소민은 어쩔 작정이냐?"
"신경쓰지 않으려고."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그냥 돈으로 사버리면 속이 편하잖아."
"돈으로 넘어오지 않으니까 그렇지."
"하긴,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더라."
"그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썰이나 풀어봐라."
명우가 은근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형, 생일파티에 꼭 와라."
"꼭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는거 같구만. 후후..."
그러자 녀석이 은근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근사한 람보르기니를 사주면 고맙고. 헤헤..."
"알아서 사줄테니까 염려하지마라."
"그럼 너만 믿는다. 친구야. 하하..."
명우는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해장국 집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다음날.
강남 인근의 슈퍼카 매장을 내방했다.
명우에게 선물한 람보르기니를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내 시선은 매장 중앙에 전시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SV에 모아졌다.
금년에 출시된 신차였다.
자동차 영맨을 손짓하자 그가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차가 마음에 드십니까?"
"가격이 얼마죠?"
"8억 7천만원입니다."
"오늘 차량을 인도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워낙 매수 대기자가 밀린 상태라 최소 육개월 이상 대기하셔야 할 겁니다."
"미화 일시불로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자 영맨의 눈빛이 전혀 달라졌다.
달러는 전가의 보도였다.
특히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달러의 가치는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좋습니다. 사장님."
영맨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계약을 완료한 뒤 영맨에게 신신당부했다.
"내가 알려준 집주소로 내일 밤 9시까지 람보르기니를 배송해 주십시오."
"염려마십시오. 사장님. 제가 책임지고 직접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영맨의 믿음직한 태도였다.
금요일 밤.
청운동 인근의 고급 주택가로 들어서자 턱시도 차림의 집사가 나를 반겼다.
"큰 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집사 아저씨는 그리 말하며 별관 건물로 나를 안내했다.
별관 건물에 들어서자 하우스 파티 음악에 온몸을 내맡긴 채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단의 남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재벌가 로열패밀리였다.
명우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병나발을 불어제끼며 스테이지에서 신명나는 춤사위를 만끽하고 있었다.
스테이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가자 일단의 남녀들이 음주를 즐기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옆 테이블에 좌정한 채 스테이지에서 지랄발광하는 명우를 묵묵히 지켜보며 웨이터가 내온 달달한 샴페인을 목젖 깊숙이 들이켰다.
나 홀로 묵묵히 술잔을 기울일 무렵 명우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야. 고맙다. 우하하하....!"
내가 선물한 람보르기니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녀석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자 옆 테이블의 남녀들이 나를 유심히 살폈다.
나와 명우의 관계를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녀석이 곧바로 나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돈이 억수로 많은 친구니까 알아서 기어라. 너희들 년놈들은 발끝도 못따라가는 어마어마한 재력가라고!"
명우의 말에 그들이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들은 질투와 부러움이 그득한 시선을 드러내 보였고, 여자들은 나를 꼬시고 싶어 안달난 눈빛을 내비쳤다.
그때, 명우가 거듭 나를 칭송했다.
"오늘 9억 짜리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SV를 나한테 선물한 장본인이 바로 이 친구라고!"
녀석은 오늘 나를 심하게 비행기 태우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할 지경이었다.
그때, 2층으로 익숙한 면상의 남자가 올라왔다.
tv에서 여러차례 목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삼송그룹의 후계자인 김민용이었다.
김민용에겐 수많은 수식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울리는 수익어는 '황태자'라는 단어였다.
말 그대로 김민용은 황태자라는 단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인간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그룹인 삼송그룹의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김민용은 명우를 비롯한 로열패밀리 남녀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뒤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명우에게 여러차례 얘기를 들었습니다. 거액의 사모펀드를 운용하신다고."
그와 악수를 교환하며 입을 열었다.
"거액이라기 보다는 조촐한 규모의 사설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사모펀드나 사설펀드나 같은거 아닌가요?"
김민용은 보기 보다 금융 쪽에 어두웠다.
사모펀드와 사설펀드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다.
허나, 그에게 쓸데없는 언사를 내뱉는건 실례되는 일이었다.
그냥, 그려려니 하면서 넘기는게 최선이었다.
"뭐, 대충 맞습니다. 하하..."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앉은 채 샴페인을 음미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명우는 우리 대화에 방해가 될까 저어한 탓인지 다시 스테이지로 발길을 돌렸다.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는 모양새였다.
"명우에게 듣기론 서울의 오피스 빌딩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셨다고...?"
김민용은 말끝을 흐리며 탐색하는 시선을 내비쳤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많지는 않고, 여러 채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한 상태죠."
"대단하시네요. 오피스 빌딩을 한 채도 아니고 여러 채에 투자할 정도면 거의 조단위 자금을 굴린다는 말인데."
"뭐, 이곳 저곳에서 투자를 받은거도 있으니까 너무 비행기를 태우지 마십시오."
그러자 김민용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네요. 거의 백여채 이상의 오피스 빌딩을 매입하신 분이?"
소문대로 삼송그룹의 정보력은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제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그러자 민용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리 그룹에서도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기 위해 빌딩 매입을 추친했었습니다. 헌데, 그럴 때마다 누군가 우리 보다 먼저 빌딩을 매입하지 뭡니까?"
내 입가에 절로 고소가 내걸렸다.
"알고보니 이사장님이 빌딩을 매입하셨더군요."
"본의아니게 삼송그룹 측에 피해를 입힌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나름 예의를 다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음인지 김민용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 합시다."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그리 화답하며 김민용의 술잔에 샴페인을 콸콸 따라부었다.
술자리가 파하자마자 명우가 주차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주차장에는 내가 선물한 노란색 람보르기니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우와! 정말 끝내준다니까!"
녀석은 연신 감탄사를 토해내며 람보르기니 운전석에 올라탔다.
"야, 너도 타라."
고개를 끄덕이며 조수석에 올라갔다.
직후 명우의 오른발이 엑셀을 미친듯이 내리밟았다.
우와앙앙....!
맹렬한 엔진음이 장내에 길게 울려퍼졌다.
명우는 일산 자유로 쪽으로 람보르기니를 몰아갔다.
녀석은 속도 무제한의 자유를 한껏 만끽한 뒤 인근의 해장국 집으로 차를 몰아갔다.
얼큰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며 명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무실은 어쩔거냐? 현판까지 달았잖아."
"당분간 그냥 써야지."
"하긴, 할 일도 없는데 겸사겸사 엔터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괜찮을거 같다."
"지금 나 욕하는거냐?"
"사실이 그렇잖아. 니가 하는 일이 뭐냐?"
명우의 말대로 나는 이렇다하게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여배우들이나 한번 키워봐라."
"모르것다. 다 쳐먹었으면 어여 일어나자."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짜샤."
우리는 그날, 불꺼진 새벽거리를 종횡무진하며 람보르기니의 강력한 파워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
뉴욕 월가 모처
이명복은 월가에서 펀드 매니저로 활동 중인 재미교포 진경철과 저녁을 함께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중에 노는 돈이 있는데 이 놈을 어디에 투자하는게 좋을 까요?"
진경철이 화답했다.
"저에게 그 돈을 맡겨주시면 책임지고 거액의 시세차익을 안겨다 드리겠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말해 보세요."
"요즘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는 금과 원자재에 투자하는게 이문이 많이 남습니다."
이명복은 그의 말이 그럴듯 하다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의 시세차익을 볼수 있을 까요?"
"2년 정도 저에게 자금을 맡기시면 최소 50프로 이상의 차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얼마후 이명복은 페이퍼 계좌에 은닉한 미화 3억 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진경철의 계좌에 전액 이체했다.
그를 철석같이 믿은 탓이었다.
허나, 진경철은 재미교포 사회에서 소문이 자자한 간 큰 사기꾼이었다.
그렇게 이명복은 일평생 힘들게 모은 비자금을 하루아침에 몽땅 날리고야 말았다.
< 황태자 김민용 - 0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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