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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41화 (142/200)

< 황태자 김민용 - 2 >

교도소 접견실에 젠틀한 변호사와 죄수복을 걸친 장년의 남자가 차례로 나타났다.

채종구는 차변호사를 향해 날 선 언사를 내뱉었다.

"그 개자식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말고 무조건 죽여버려!"

"좀 고정하십시오. 회장님. 밖에서 듣겠습니다."

"긴말 안할테니까 그 놈을 죽이라고. 그렇게만 해주면 당신한테 10억을 줄게."

"돈도 돈이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을 하는거잖아."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제가 모두 독박을 쓰는 겁니다."

"지금 돈을 더 달라고 흥정하는 건가?"

차변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기를 얼마후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금 조로 먼저 10억을 주십시오."

"내가 10억을 주면 일을 진행할텐가?"

"조선족 애들을 시켜서 그놈을 담가버리겠습니다."

채종구의 두눈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차변은 메모지에 계좌번호와 은행 명을 적어서 종구에게 건넸다.

"이 계좌로 10억을 송금해 주십시오."

"내일 중으로 자네 계좌에 10억을 이체할테니 곧바로 일을 추진하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차변이 시티은행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계좌의 잔고를 확인한 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복수에 미쳐서 앞뒤 구분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더니, 나에게 이런 횡재를 안겨주는군.'

차변은 선금 10억원만 받아 챙길 속셈이었다.

어차피 채종구는 교도소에 있는 처지였다.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는 시티은행에 입금된 10억원을 가족 친지 명의로 개설한 차명 계좌로 1억씩 분산해서 송금했다.

그러기를 얼마후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티은행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이태원 인근의 라운지 바에 들어가자 길다란 테이블에 나 홀로 앉은 채 술잔을 기울이는 김민용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됐다. 니 돈은 나중에 갚아줄게."

우리는 얼마전 부터 말을 텄다.

나이도 비슷한 처지에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원금만 갚아라."

"아니지. 그래도 이자는 챙겨줘야지."

"친구 사이에 무슨 이자냐. 그러니까 원금만 갚아."

민용이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건넸다.

"한잔 쭉 들이켜라. 맛이 좋더라."

"오케이."

그가 건네준 위스키를 입안에 들이키자 강렬한 뒷맛이 목젖과 식도를 동시다발적으로 강타했다.

"캬아.... 죽인다...!"

"한 잔 더 줄까?"

고개를 끄덕이자 민용이 바텐더를 손짓했다.

바텐더가 갖고온 위스키를 원샷 하자 타는 듯한 쩌릿함이 목젖 깊숙이 느껴졌다.

우리는 위스키를 들이키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황제교육을 받았어. 항상 나를 관리 감독하는 어른들이 있었지."

녀석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언제나 갑갑한 기분이었지. 새장 속에 갇힌 앵무새 같았거든. 다른 재벌집 아이들은 자기 멋대로 여자들이랑 놀아나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우리 집은 달랐어."

민용은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버지가 정해준 여자랑 결혼하고, 아버지 눈에 들기 위해 나름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오는건 언제나 매몰찬 평가였어."

담배 연기를 말아올리며 위스키 한모금을 입가에 들이켰다.

녀석의 하소연은 오래 이어졌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일도 못하고 사람도 쓸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지. 그래서 보여주고 싶었어. 내 스스로 돈을 버는 능력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회사에서 보고 들은 귀동냥, 눈동냥으로 작전이 걸린 개잡주에 투자를 했지. 그렇지만 결과가 참혹하더라. 6개월 만에 4백억을 모조리 날려버렸어."

"그 중에 내 돈도 있는거냐?"

민용이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내부자 거래를 이용하면 돈 좀 만졌을거 같은데...?"

내 물음에 녀석이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회사의 중요한 기밀에 대해서는 나에게 일언반구 언급을 안하시는 분이야."

"임원들에게 물어보면 될거 아니냐?"

"니가 우리 아버지를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아버지는 삼송그룹의 절대자라고. 아들이라고 해도 눈 밖에 나면 그 순간 나가리가 되는거야."

"후계자 지위에서 쫒겨나기라도 하는거냐?"

녀석이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 밑으로 남동생이 두명 있어. 전부 배다른 놈들이지."

"원래 재벌집은 다 그런거 아니냐?"

민용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내걸렸다.

"그놈들에게 삼송그룹을 뺏기지 않으려면 아버지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입장이야."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뭐냐?"

"그냥. 너는 제 3자니까."

"말하기 편하다는 뜻이냐?"

민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당분간 너한테 빌린 돈은 갚기가 좀 힘들거 같다."

"왜?"

"삼송전자 북미지사로 발령을 받았거든."

"이유가 뭔데?"

"아버지가 주식투기를 했다고 노발대발 하셨거든. 그 여파라고 생각해라."

민용은 신용과 담보가 확실한 친구였다.

돈을 갚으라고 닦달할 필요가 없었다.

"돈은 여유가 되면 갚아라. 그럼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라운지 바를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싱 체육관을 들렀다.

트레이닝 복으로 환복한 뒤 펀치볼을 상대로 원투 스트레이트와 잽, 훅 등을 폭풍 처럼 난사했다.

그런 덕분인지 금세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2시간 정도 펀치볼 훈련에 매진한 뒤 인근의 헬스장으로 넘어갔다.

중량 스쿼트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은 뒤 불꺼진 집안으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산뜻하게 샤워를 하고 나올 찰나 책상 위에 놓여진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폰을 받자 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에 언제 올거야?

-일 좀 더 보고 갈게.

-크리스마스가 코 앞인데 언제까지 한국에만 있을거야?

-일이 많다니까.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뉴욕에 오라고. 알았지?

-염려마라. 크리스마스 전에는 뉴욕으로 꼭 갈게.

-이번에는 약속 지켜.

-염려 붙들어 매라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밤 12시가 넘었겄만 오늘 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소파에 편히 누운 채 벽걸이 TV에 습관적으로 이목을 집중했다.

그 무렵, 아름다운 김소민이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청바지 광고 모델로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모델로 연예계 데뷔를 하는 모양새였다.

소민의 아리따운 자태를 목도하자 기분이 멜랑꼴리했다.

손만 뻗으면 내 여자로 만들수 있을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돈질이 통하지 않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소민의 아름다운 자태가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새벽 무렵이라 길가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잔 술이 간절했다.

명우에게 전화를 걸까도 생각해 봤지만, 녀석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새벽 시간에 전화를 걸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뜬 눈으로 온밤을 지새웠다.

저녁 나절에 먹은 찐한 커피가 원인이었다.

결국 할일 없이 아침 막장 드리마를 시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솔직히 드라마는 볼만했다.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한 남자가 남의 아들을 자기 아들로 착각한 채 옥이야 금이야 기르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된 후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혼을 하는게 주 스토리였다.

원래 부터 여자는 임신한 상태로 남자와 결혼한 케이스였다.

허나, 그녀는 뻔뻔스럽게도 그런 사실을 남자에게 일언반구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무진장 불쌍한 드라마였다.

막장 드라마를 시청해서 그런지 알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유라는 9달 만에 민준을 낳았다.

다른 신생아들 보다 한달 정도 이른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벌여놓은 일들이 많았던 탓에 그 점에 관해서 이상하게 생각치 않았다.

임신 9개월 무렵에 신생아를 출산하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 막장 드라마를 시청해서 그런지 민준의 유전자를 확인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내면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나는 뭐든지 확실하게 좋았다.

마음이 찜찜한걸 못참는 성미였다.

일단 미국에 들어가서 민준의 유전자를 검사하는게 최선이었다.

안그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서 미국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며칠 후.

뉴욕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근의 병원으로 직행했다.

병원 직원에게 내 용건을 말했다.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를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병원 직원이 친절하게 답변했다.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뭐가 필요 한가요?"

"일단 담당 의료진과 상담을 해보시죠."

"알겠습니다."

1시간 뒤, 담당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했다.

"친자확인을 하시려면 모발과, 손톱 등이 필요합니다."

"애가 어려서 손톱을 확보하는게 쉽지 않을거 같은데요?"

"그러시면 모발로 검사를 해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빠르면 1주일 안으로 검사결과가 나올겁니다."

"그럼 아이의 모발을 내일 병원으로 갖고 오겠습니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트램프 타워로 직행했다.

유라와 오랜만에 잠자리를 즐긴 뒤 민준의 방으로 넘어갔다.

민준의 벼개에서 머리카락 3가닥을 찾아낸 후 비닐 봉지에 집어넣었다.

다음날.

담당 의사에게 민준의 모발과 내 모발을 넘겼다.

"1주일 후에 검사결과가 나오는 즉시 핸드폰으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를 해주십시오."

그말을 끝으로 병원문을 나섰다.

일주일은 금세 지나갔다.

하루종일 유라와 민준을 상대한 탓이었다.

드디어 핸드폰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 메시지가 떴다.

곧장 병원으로 직행했다.

의사 선생은 침중한 얼굴로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나에게 건넸다.

검사결과는 맨 밑 하단에 적혀 있었다.

<친자일 확률이 0.001프로 미만에 불과함.>

"죄송하지만 이민준은 이태수 씨의 친자가 아닙니다."

의사 선생의 매정한 확인사살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침 막장 드라마는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산 증인이었다.

그날밤.

민준을 재운 뒤 유라를 대동한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유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민준의 친부가 누구냐?"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유라는 올것이 왔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놀랍도록 차분하게 답했다.

"최우진."

최우진은 회사가 망했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라의 전남친이었다.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지?"

그녀가 서글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어. 자기랑 같이 살고 싶었으니까."

"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유라에게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이해 못할 노릇이었다.

그때, 유라의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원하면 민준이를 데리고 사라져줄게."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사이가 끝났다는 사실 만큼은 정확히 직시했다.

"3일 안에 짐을 빼서 친정으로 돌아가라."

그 말을 끝으로 트램프 타워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삼일 후.

트램프 타워 로열 스위트 룸으로 들어가자 썰렁한 공기가 느껴졌다.

유라와 민준이가 사라진 빈 자리를 허무한 기운이 대신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미친 듯이 줄담배를 말아올릴 무렵, 유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울듯한 얼굴로 언니 대신 사죄의 변을 쏟아냈다.

허나, 모두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관계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지 이미 오래였다.

그날 밤.

거실 홈바에서 나 홀로 술을 들이킬 무렵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화를 받자 이반카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뉴욕이니?

-집이다.

-잘됐네. 그럼 6층 카페로 나와.

-그냥 니가 내 집으로 와라.

-자기 와이프는 어쩌고?

-나 혼자 밖에 없으니까 염려말고 그냥 와.

-잘됐네. 그럼 지금 내려갈게.

-응.

몇분 뒤, 미니 드레스 차림의 이반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간만에 뜨거운 밤을 만끽했다.

***

묵은 해가 가고 1999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아왔다.

그렇지만 내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김유라와 민준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내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

나랑 상관없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나를 속인 유라를 결코 용서할수 없었다.

그 무렵, 트램프 회장이 펜트하우스에서 열리는 신년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펜트하우스에 들어가자 트램프가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런거 같네요."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풍스런 가죽 소파에 앉자마자 트램프가 본론을 꺼냈다.

"한국에서 빌딩을 대규모로 매입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트램프가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빌딩 매각 작업을 우리 회사에 맡겨 주십시오. 높은 가격에 판매해 드리겠습니다."

트램프는 이 방면의 전문가였다.

문제는 수수료였다.

"수수료를 말씀해 주시죠?"

"판매가액의 4프로 정도를 지급해 주십시오."

괜찮은 조건이었다.

"회장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마음이 결정되시면 그 즉시 연락을 주세요."

트램프가 환한 미소를 내비치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며칠 후, 트램프의 부동산 개발 회사와 빌딩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 황태자 김민용 -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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