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 엔터 4 >
"이태수만 처리해 준다면 당신에게 15억을 드리겠습니다."
"흐음..."
욱철은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번 일이 쉽지 않음을 직감했다.
채종구 같은 거물도 힘에 겨워하는 탓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삼일 안에 확답을 주세요."
종구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삼일 뒤, 욱철은 운동장에 나타난 종구에게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을 맡겠습니다. 대신 선수금 조로 내가 지정하는 계좌에 8억원을 입금해 주십시오."
욱철은 그리 말하며 은행명과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종구에게 건넸다.
"일은 계좌에 돈이 입금되는 즉시 진행 될 겁니다."
종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를 입안에 집어삼켰다.
다음날 오후.
종구는 운동장에 나타난 욱철에게 입을 열었다.
"계좌에 돈을 입금했으니까 작업을 시작하세요."
욱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욱철은 목공소에 들어간 후 교도관에게 말을 걸었다.
"핸드폰 좀 빌립시다."
"얼마 줄거냐?"
교도관의 물음에 욱철이 손가락 1개를 들어올렸다.
"1백만원을 드리죠."
"좋아. 마음에 든다. 욱철아. 하하..."
교도관은 웃음을 흘리며 욱철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그는 사회에 있는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태호야. 부탁이 하나 있다.
-그게 뭔데?
-나 대신 이태수 좀 작업해주라.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놈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니 도움이 필요할거 같다.
수화기에서 갑작스런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기를 얼마후 태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의뢰인이 누구냐?
-채종구 회장.
-그 등신이 의뢰인이냐?
-왜? 서로 아는 사이냐?
-그럴 일이 있다. 암튼 너는 그냥 돈만 챙기고 모르는 척 해라.
-임마. 만약 그랬다간 채종구가 나를 죽이려고 난리를 칠거다.
-교도소 통이 뭐가 무섭다고. 엄살 좀 그만 피워.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채종구는 있는게 돈 밖에 없는 인간이라 교도관들이 황제처럼 떠받드는 위인이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채종구 비위를 거스렸다간 교도관들 한테 맞아 죽는다고! 아니면 출소할 때까지 독방 신세거나!
-형이 알아서 채종구를 이감시켜 줄테니까 너는 돈이나 쳐먹고 신경 끊어.
-니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만한 빽이 있으니까 그러지. 그러니 형말 대로 해라. 끊는다.
***
방기훈은 오랜만에 클럽을 내방했다.
20대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보내기 위함이었다.
기훈은 엔터 업계의 물을 먹은 뒤로 심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여자들에 대해서 쑥맥이었던 자신에 대해 많은 반성을 했다.
남자는 첫째도 자신감이고, 둘째도 자신감이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맥을 벌컥벌컥 들이킨 뒤 스테이지를 향해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기훈의 목표는 몸에 착 달라붙는 미니 드레스를 착용한 육감적인 그녀였다.
그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목표로 뜨거운 부비부비를 시전했다.
예전의 그였다면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을 버젓이 수행하고 있었다.
기훈이 부비부비에 매진할 무렵 그의 주변에 성난 얼굴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기훈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꺼지라고! 이 좆찐따 새끼야!"
퍽퍽....!!
기훈은 무방비 상태에서 안면에 주먹을 강타당하자 하늘이 빙빙 도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맨바닥에 처량하게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지금 부터 시작이었다.
클럽의 가드들이 그를 빙 둘러싼 채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그들은 비릿한 조소를 베어문 채 기훈의 여린 육신을 쉴새없이 짓밟았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크아아아아아악.......
기훈은 처량한 비명을 길게 내지른 채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경찰서 안이었다.
경찰들은 그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매서운 얼굴로 취조를 시작했다.
"클럽에서 부녀자를 성희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난동을 피우셨죠?"
기훈은 피투성이 신세인 자신에게 말도 안되는 궤변을 쏟아내는 경찰들을 향해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제가 피해자라구요! 클럽 안에서 가드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단 말입니다!"
그러나 경찰들은 그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도리어 끝까지 기훈을 클럽 난동의 주모자로 몰아붙였다.
결국 경찰은 그를 클럽 난동과 기물을 파손한 혐의로 경찰서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
발리 리조트에서 한달 동안 푹 쉰 뒤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초원을 부모님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후 나 홀로 신흥빌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림 엔터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기훈이 군기가 빠진 모양이었다.
곧바로 녀석의 폰으로 전화를 때렸다.
신호가 몇차례 가자 기훈의 목소리가 폰에서 들려왔다.
-지금 어디냐?
수화기에서 녀석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원입니다. 사장님.
-병원에 뭔 일로 간거야?
-개같은 놈들에게 얻어맞은 탓에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황당한 답변이었다.
-자세히 말해봐?
-클럽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가드들이 와서 저를 집단폭행 했습니다. 그래서 팔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얼굴도 박살이 났죠.
-그놈들을 고소했냐?
-고소가 뭡니까? 오히려 제가 클럽 측에 고소를 당했습니다. 사람들을 패고 기물을 파손했다는 혐의로.
-경찰은 뭘 한거냐?
-말도 마십쇼. 클럽 놈들이 경찰한테 돈을 먹였는지 완전히 짝짜꿍으로 놀아나더군요. 암튼 경찰이라면 이가 갈릴 지경입니다.
-자식. 그래도 목소리에 기운이있네. 형이 알아서 일을 처리할 테니까 병원에서 편히 쉬어라.
전화를 끊자마자 명우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녀석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방기훈이 어떻게 된거냐?"
명우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클럽애들한테 제대로 쳐맞은거지."
"너는 그걸 보고만 있었냐?"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놈을 신경써야 하는데? 명성그룹 직원도 아닌데."
"그래도 임마. 인간이 의리가 있지. 모른 척 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
"이제 니놈 식구니까.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러니까 형 귀찮게 하지말고 이만 나가라."
"자식. 존나게 매정하구만."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냐?"
"으이구, 말을 말자."
명우가 찔린 얼굴로 선심 쓰듯 입을 열었다.
"법무실장을 붙여줄테니까 알아서 해봐."
"내 사무실로 법무실장을 보내."
"알았다."
드림 엔터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말아올릴 무렵 명성그룹의 법무실장인 김무진 변호사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조실장님에게 자초지종은 들었습니다만, 일 해결이 쉽지 않을거 같습니다."
"이유가 뭐죠?"
"관할서인 중부경찰서가 조직적으로 클럽을 비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뭔가요?"
"힘있는 검사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힘있는 검사라...?"
김태섭 검사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일단 병원 먼저 갑시다."
그말을 끝으로 김변을 대동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병실로 들어가자 얼굴과 팔다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멘 방기훈이 보였다.
녀석은 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나름 긍정적인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뭐하러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안오셔도 되는데."
"하나 밖에 없는 회사 식구가 작살이 났는데, 당연히 와야지. 몸은 어때?"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죠."
"의사가 뭐래냐?"
"아무리 못해도 석달 이상 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하더군요."
안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갑에서 천만원권 수표 석장을 꺼내서 기훈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돈으로 맛있는거 사먹고 몸조리에 신경써라."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울먹이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크흑... 감사합니다. 사장님...!"
"남자가 쪽팔리게 무슨 눈물이냐. 그럼 나중에 보자."
김변과 함께 병원을 나선 뒤 곧바로 중부경찰서로 직행했다.
김변의 도움으로 중부경찰서 서장인 진경수와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진 서장은 시종일관 냉랭한 태도로 일관하며 내 질문에 어깃장을 놓았다.
"뭔가 오해를 하시나본데 방기훈씨는 클럽에서 폭행을 행사하고 기물을 파손한 것이 명백합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cctv 영상과 그날 클럽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cctv 영상을 공개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수사와 관련된 사안이라 민간인에게 공개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오늘 나에게 한 말이 거짓이라면 서장님은 옷벗을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 서장의 눈썹이 꿈틀하며 나를 향해 매서운 일갈을 내뱉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암튼 오늘 부터 서장님은 두발 뻗고 편히 잠을 자는 게 거의 불가능 할 겁니다. 그럼 이만."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서장실을 벗어났다.
명성그룹 본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변에게 부탁을 넣었다.
"진경수와 클럽 측의 유착관계를 밝혀주십시오."
"제가 뒤를 캐보겠습니다."
명우의 사무실로 들어갈 찰나 문가 책상에 앉아 있던 여비서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커피를 드릴 까요?"
"달달하게 설탕 듬뿍 넣어주세요."
"네. 사장님."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명우에게 용건을 꺼냈다.
"김태섭 검사랑 자리를 만들어봐."
"뭐하러?"
"부탁할 일이 있거든."
"방기훈 때문이냐?"
"그렇지. 뭐."
"김태섭 그놈 부장검사 타이틀 달았다고 엄청 바쁘더만."
"더 잘됐네. 그러니까 자리를 만들어봐. 오늘 밤에."
"오케이."
저녁 무렵, 강남 인근의 일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매니저를 면전에 호출했다.
"김태섭 검사가 있나요?"
"네. 룸에 계십니다."
"그쪽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저를 따라오십시오."
매니저가 뒷편 끝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룸에 들어가자 김태섭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장님."
"그렇죠. 명우에게 듣자니 부장 검사님으로 승진하셨다면서요?"
"모두 사장님 덕분이죠. 하하하..."
김 검사는 내 덕분에 큼지막한 사건들을 연달아 해결했다.
그런 탓에 부장검사 타이틀을 달았다.
"진작에 승진턱을 냈어야 하는데, 제가 조금 바빠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우리는 싱싱한 광어회와 달달한 정종을 걸신들린 아귀처럼 폭풍흡입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서류가방에서 1억원 짜리 무기명 양도증서 3장을 꺼내서 김 검사에게 전달했다.
"이게 뭐죠?"
김태섭이 탐욕에 불타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섭니다. 시중은행에서 얼마든지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편하게 받아주십시오."
"뭘 이렇게 까지 선물을 다주시고.. 우하하하...."
태섭은 좋아죽는 얼굴로 우렁찬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녀석의 술잔에 정중을 따르며 내 용건을 밝혔다.
"아끼는 동생이 클럽에서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그런데 클럽이 경찰에 돈을 먹였는지, 도리어 내 동생을 폭행과 기물파손 혐의로 고소했더군요. 게다가 경찰마저 클럽을 미친듯이 비호하는 통에 내 동생만 죽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관할서가 어디죠?"
"중부경찰섭니다."
태섭이 눈을 번뜩이며 힘차게 입을 열었다.
"제가 작정하고 중부경찰서를 털어보겠습니다."
"그럼 김 부장님만 믿겠습니다."
태섭과 술자리를 끝마친 뒤 집으로 들어갈 무렵 강태호가 전화를 해왔다.
-무슨 일이죠?
-채종구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놈이 빵에서 해결사를 고용했습니다.
-그래서요?
-아무래도 채종구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켜야 할거 같습니다. 해결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곳으로.
-그런 곳이 있나요?
-알아보니 채종구는 이중국적자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이용하면 외국인 교도소로 얼마든지 이감이 가능할거 같습니다.
-채종구가 빽을 써서 일반 교도소로 옮길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외국인 교도소는 워낙에 시설이 좋아서 채종구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채종구가 속을 썩이고 있었다.
-그러지말고 채종구를 살인교사 혐의로 엮읍시다.
-저도 그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그럴 경우 사장님에게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할 겁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채종구를 살인교사 혐의로 엮기 위해서는 제 친구의 증언이 필수적인데, 그놈이 이미 채종구에게 거액의 돈을 받은 상탭니다.
-얼마나 받았죠?
-8억원을 선수금 조로 받았다고 하더군요.
껌값이었다.
-그 돈은 내가 부담할 테니까 친구를 설득해 주십시오.
< 드림 엔터 4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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