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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52화 (121/200)

< 인수 2 >

52화. 인수 2

밥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밑바닥 수준으로 전락한 김정문은 내 알바 아니었다.

그놈은 약아빠진 개자식이었다.

언제나 나를 호구취급한 전력이 있었다.

내가 뭐가 아쉽다고 그런 쓸데없는 녀석과 말을 섞는다는 말인가?

백번 생각해도 내 인생에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 놈이었다.

***

김태섭 검사를 강남 인근의 일식당으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싱싱한 회와 정종을 즐기며 채종구 건에 대해서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증거가 명백하니까 추가로 6년 형 정도를 구형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찰에서 구형해도 주심 판사가 딴지를 걸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증거가 확실하니까 주심 판사라고 해도 검찰의 구형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럼 김 부장님만 믿겠습니다.”

“얼마든지 믿으셔도 좋습니다. 사장님. 하하······.”

우리는 승리의 축배를 들며 그 밤이 다하도록 술자리를 만끽했다.

다음날.

숙취로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드림 엔터 사무실로 출근했다.

공중파 피디, 인기 작가 등과 만남이 예정된 탓이었다.

유한성이 힘을 쓴 덕분이었다.

30대 후반의 드라마 피디와 40대 초반의 여작가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후 본격적인 담론에 접어들었다.

이창혁 피디가 운을 뗐다.

“다음 달에 방영되는 호텔우먼에 박초원 씨를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가타부타 대답 없이 커피잔만 홀짝이자 김연숙 작가가 말을 덧붙였다.

“한류배우인 배용석 씨도 남주로 참여할 예정이에요. 초원씨에게 좋은 기회가 될거예요.”

김연숙은 드라마 판에서 이름난 스타작가였다.

1화의 고료가 수천만 원에 달할 정도였다.

초원에게 더 없는 기회였다.

“일단 대본 먼저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 피디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가방에서 두꺼운 대본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번 읽어보시고 확답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3일 안에 연락을 드리죠.”

그리 말하며 이 피디와 김 작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초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로 와라. 쓸만한 대본이 있으니까.

-누구 대본인데?

-김연숙 작가 대본이야.

-와! 정말?

-그래. 그러니까 지금 당장 튀어와.

-알았어. 오빠. 조금만 기다려.

초원은 30분 만에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기 없는 민낯이었다.

그녀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진 대본을 집어 들었다.

그 후 대본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2시간 후.

초원이 환희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이 작품 무조건 할 거야. 백퍼 뜬다고!”

“대본이 그렇게 좋냐?”

“응. 여주가 호텔 업계의 실력자가 된다는 설정이라고. 아주 내 마음에 쏙 든다니까.”

“아휴······ 좀 쉬고 싶었는데, 내일부터 드럽게 바빠지겠네.”

“그래서 싫어?”

초원이 삐진 얼굴로 따졌다.

“그건 아닌데, 기훈이도 아직 뼈가 여물지 않았잖아. 그래서 그렇지.”

“그럼 다른 사람을 새로 뽑으면 되잖아. 오빠 돈 많잖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만에 찐하게 놀아보자.”

그리 말하며 초원을 번쩍 안아 들었다.

사무실에서 찐한 시간을 탐닉한 뒤 초원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날 밤.

나는 아직도 사무실에 있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볼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1시 10분 무렵, 김앤박의 최진기 변호사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대성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복합상영관 부문에서 금년 2/4 분기까지 총 290억 내외의 적자를 봤습니다.”

최변은 그리 말하며 두툼한 노란 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그가 건넨 서류를 들추자 복잡한 재무회계 도표가 보였다.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구두로 자세히 말해 보세요.”

최변이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말을 이었다.

“대성그룹은 총 3개에 달하는 케이블 채널 부문에서 금년 2/4 분기까지 570억의 광고매출을 기록했지만 투입비용이 890억에 육박하는 탓에, 320억에 달하는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반면 복합상영관 부문은 2분기까지 2012억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 120억, 순이익 30억을 기록했습니다.”

대성그룹은 케이블 방송 부문에서 거액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

지상파에 밀린 탓이었다.

“더구나 대성그룹은 복합상영관 건물 대다수를 자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케이블 방송 보다는 복합상영관 인수에 주력하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최변은 케이블 방송 사업에 회의적인 태도였다.

인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케이블 방송 사업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방송은 대중들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지금은 지상파에 밀려서 광고수익이 많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지만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호시절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케이블 방송 부문에서 인수가를 낮춰보십시오.”

“정말 케이블 방송을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네. 그러니 제 뜻대로 작업을 진행해 주세요.”

최변이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

채종구는 천 길 낭떠러지에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영국에 있는 둘째 와이프가 비자금 계좌를 단단히 틀어쥔 채 단 한 푼의 재판 비용조차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종구는 재판에서 추가로 6년 형을 언도받았다.

증거가 명백한 탓이었다.

그는 축 늘어진 어깨를 뒤로 한 채 교도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힘없이 몸을 실었다.

***

호텔우먼은 대전에 있는 한산한 호텔을 촬영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죽을 맛이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초원을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번 촬영이 시작되면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하루빨리 로드 매니저를 급구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로드로 들일 수도 없는 처지였다.

불한당 같은 놈들을 로드로 들였다가 초원에게 흑심이라도 품는 날에는 산통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 일이 태산이었다.

대성그룹의 케이블 방송과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인수하는 작업과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물론 인수작업은 김앤박 로펌 측에서 전담해서 하는지라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일은 많은 시일이 필요했다.

수천억 대에 육박하는 오피스 빌딩을 매각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촬영장 한켠에서 초원의 연기를 지켜보며 미국에 있는 트램프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넣었다.

-오피스 빌딩의 인수자를 찾으셨습니까?

-현도 그룹 측에서 강남 지역의 오피스 빌딩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강남 인근에 60개 내외의 오피스 빌딩을 보유하고 있었다.

-빌딩 이름이 뭐죠?

-테헤란로에 있는 진명빌딩에 특히 눈독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럼 회장님께서 저 대신 그들과 가격 협상을 진행해 주십시오.

-원하시는 가격대를 알려 주시죠?

-진명빌딩은 40층대에 달하고 요지에 위치했으니까 최소 5천억은 받아야 하겠습니다.

-미스터의 의중을 참고해서 협상에 임하겠습니다.

-그럼 저 대신 수고를 좀 해주십시오.

-한국에 매각팀을 보낼 테니 앞으로는 그와 논의를 하십시오.

트램프는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촬영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초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호텔우먼으로 완벽히 변신한 채 고객 접대에 한창이었다.

정장룩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초원이 무척 섹시하게 보였다.

촬영장 스텝들과 남자 배우들은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를 매의 시선으로 관음하며 저마다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촬영을 끝내자마자 초원을 대동한 채 서울로 벤틀리를 몰아갔다.

차가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 핸드폰 벨이 울렸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태수야.

명우였다. 거의 4개월 만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그럼 내가 왜 죽냐? 아주 잘살고 있지.

-지금 어디냐?

-서울.

-내 사무실로 와라.

-왜?

-할 말이 있으니까 무조건 오라고.

-임마. 지금 새벽 1시야?

-그럼 새벽 1시에 전화한 니놈은 제정신이냐?

-그런가. 후후······.

-금방 사무실로 갈 거니까 잔말 말고 무조건 튀어와라.

-알았다. 쨔샤.

전화를 끊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초원이 호기심 그득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야?”

“김명우?”

“회사 망하고 잠수탄 오빠?”

“응.”

“뭐하러 전화 한 거야?”

“너는 신경 꺼라.”

“설마? 오빠한테 빈대처럼 들러붙으려고 연락한 거야?”

“앞서가지 말라고 했지. 그러니까 입 좀 다물어.”

“괜히 나한테 화내고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아휴······ 말을 말자. 잠이나 자둬라.”

그리 말하며 초원의 집을 향해 벤틀리를 전속력으로 몰아갔다.

그녀를 집에 바래다준 후 곧바로 신흥빌딩으로 차를 돌렸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나 홀로 깡소주를 들이키는 명우의 모습이 시야에 보였다.

녀석은 초췌한 몰골로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부었다.

“꾀죄죄한 꼬락서니구만. 서울역에서 노숙이라도 한 거냐?”

“남이사. 신경 꺼라.”

명우는 그리 답하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속 버린다. 짬뽕이라도 시키지 그래?”

“돈이 없으니까 그러지. 형 꼬라지를 보면 눈치를 까야지. 둔한 자식아.”

“으이구, 말을 말자.”

그 말을 끝으로 나 역시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물처럼 들이부었다.

우리는 깡소주를 들이키며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명우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누라 년이 애새끼 데리고 도망갔다.”

이미 아는 얘기였다.

“개년이 회사가 망하니까 곧바로 이혼서류를 들이밀더라. 아주 좆같더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쥐뿔도 없는 년을 데리고 살아줬는데, 돌아오는 건 지독한 배신이더라.”

“이제 잊어라. 떠난 마누라를 뭐하러 신경 써.”

“그러고 싶은데 술만 먹으면 좆같은 마누라 년의 얼굴이 떠올라서 돌아 버리겠다."

“그건 그렇고, 정말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냐?”

“위자료 조로 아파트랑 상가빌딩을 모두 그년한테 줬어.”

“너 바보냐? 조금만 줬어야지.”

“아들놈이 눈에 밟히더라. 나야 어찌어찌 먹고 살 수 있지만, 그년은 돈벌이를 못하잖아. 그래서 아들이라도 제대로 키우라고 다 줘 버렸다.”

명우는 순진한 구석이 많았다.

바보 같은 놈이었다.

“일단 사우나로 내려가자. 때나 밀자고.”

우리는 곧바로 지하 사우나장으로 내려갔다.

사우나를 끝낸 뒤 빌딩 앞에 있는 해장국 집에서 북어국으로 속을 풀며 녀석에게 쓸만한 제안을 했다.

“드림 엔터에서 부사장으로 일해라.”

“부사장?”

“그래. 연봉으로 1억 챙겨줄게.”

“나 보고 박초원을 관리하라는 말이냐?”

“응. 형이 요즘 할 일이 아주 많다. 초원이 따라다닐 시간이 없다고. 그리고 기훈이도 병원에 있어서 사람이 아주 급해.”

“한 가지만 물어보자. 솔직히 답해라.”

“알고 싶은 게 뭔데?”

“너 정말 엔터 사업에 관심이 있는 거냐?”

“임마. 있으니까 이 지랄 하는 거지. 관심도 없는데 내가 미쳤다고 초원이를 키우겠냐?”

명우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잔대가리를 발동하는 모양이었다.

“내 직권으로 쓸만한 여배우들을 컨택해도 되는 거냐?”

“그건 안 되지. 여배우 컨택한다는 명분으로 니놈이 좆나 따먹을 게 뻔하잖아.”

“그럼 남배우는 어때?”

“그건 좀 생각해 보자.”

“내가 잘 아는 놈이 있는데, 드럽게 잘생겼다. 남배우로 키울만한 놈이지.”

“누군데?”

“너도 안면이 있을걸? 내가 너한테 추천했던 남직원.”

“아······!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친구.”

“그래. 기억나냐?”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초원이 관리하는 일도 아주 빡세거든.”

녀석에게 벤틀리 차키를 내밀었다.

“그 차로 초원이를 실어 날라.”

“어디로?”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서 명우에게 건넸다.

“그곳으로 초원이를 데려가. 앞으로 두 달 동안 매일 실어 날라야 할거다.”

“노가다구만.”

“엄살피우지 말고 형이 시킨 대로 해라. 이제 너도, 니 손으로 직접 돈을 벌 때가 됐잖아.”

명우의 입가에 자조섞인 미소가 그려졌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그러니 훈계는 하지 마라.”

“형한테 잘하면 너한테도 좋은 거다. 명심해라.”

“넵. 사장님. 충성······!”

녀석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요란스레 경례를 올려 붙였다.

< 인수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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