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작 1 >
루카스 부사장과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고급 와인을 즐기며 심도깊은 협의를 나누기 시작했다.
루카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진명빌딩과 대명빌딩의 매각 작업을 서둘러 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빌딩들의 매각 작업도 동시에 진행해 주세요.”
“그렇게 급히 서두르시는 이유가 뭔가요?”
“인수할 회사가 있습니다.”
그제야 루카스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잘 익은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는 입가심으로 포도주를 음미한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
“빌딩을 처분하려면 대기업과 해외 자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세일즈를 펼쳐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매각 작업을 일임한 것 아닙니까?”
내 면박에 루카스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알면 됐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빨리 매각 작업을 서둘러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빌딩들은 매각 대금을 미화로 받아주십시오.”
한국의 원화는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고 있었다.
한때 3천 원까지 치솟았단 원화 가격이 지금은 1200원대로 안정화 된 상태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1조 원 정도의 한화가 필요하니까 매각 대금이 모자를 경우 추가로 빌딩을 매각해 주십시오.”
“넵. 사장님.”
레스토랑을 나선 뒤 인근의 라운지 바로 들어갔다.
최진기 변호사는 라운지 바의 기다란 테이블에 홀로 앉은 채 칵테일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간 후 바텐더에게 진토닉 석 잔을 주문했다.
진토닉을 음미하며 최변에게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대성 케이블 방송과 복합 상영관의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면밀한 내부 감사를 진행해 주십시오.”
“해고 명단을 작성할 생각입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토닉을 목젖 깊숙이 들이키자 알싸한 뒷맛이 느껴졌다.
“회사를 인수하더라도 최소 6개월 이상은 은인자중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최변은 비리 자료나 모아주세요.”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사장님 뜻대로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수금액은 계약금 2천억, 중도금 5천억, 잔금 5천억 순으로 지급할 생각이니까 내 뜻을 대성 그룹 측에 전달해 주세요.”
“기간을 언제까지 잡으실 생각입니까?”
“6개월 안에 잔금을 모조리 치를 계획입니다.”
“너무 촉박한 것 아닌가요? 조 단위 자금인데?”
“그 정도 여력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최변은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만만한 확언에 최변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어마어마한 재력을 한껏 부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칭송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젊으신 나이에 조 단위 자금을 아무렇지 않게 조달하시다니······!”
“과찬이십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최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라운지 바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최진기 변호사를 대동한 채 대성그룹 공덕동 본사를 내방했다.
대성 측 관계자는 우리 일행을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 상석에는 나이 지긋한 유진용 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맞은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유 회장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임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최소 3년 이상 유지해 주십시오.”
“반드시 약속을 지킬 생각이니까 그 점에 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유 회장이 만족한 얼굴로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대성 측 변호사를 눈짓했다.
대성그룹의 변호사가 테이블 위에 매매 계약서를 올려놓았다.
매매계약서를 들여다보자 임직원들의 고용보장 3년이란 문구가 하단에 기입되어 있었다.
최변을 쳐다보자 그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계약서에 자필 서명을 기입하시죠.”
“좋습니다.”
자필서명을 기입한 뒤 유 회장에게 입을 열었다.
“인수 계약금 조로 2천억 원을 대성그룹의 공식계좌로 이체하겠습니다.”
“알아서 해주시오.”
유 회장은 그리 말하며 입가에 담배를 베어 물었다.
곧바로 국면은행 강남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ts 인베스트먼트 계좌에서 2천억을 인출해서 대성그룹의 공식 계좌로 이체해 주십시오.
-네. 지금 당장 이체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30분 뒤, 장내에 대성그룹 기조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유 회장에게 귓속말을 전하자마자 회의실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유 회장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대성그룹 계좌에 2천억이 입금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럼 나머지 중도금과 잔금도 기일 안에 입금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리 화답하자 유 회장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의 웃음이 끝나자마자 본론을 내뱉었다.
“오늘부터 케이블 방송과 복합상영관의 정밀 실사에 돌입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러자 유 회장이 난색을 표명했다.
“임직원들이 동요할 우려가 있어요.”
“그러나 정밀 실사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 사장님의 사정을 잘 알지만 정밀 실사는 지금 현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언제쯤 정밀 실사가 가능할까요?”
“중도금을 입금하시면 정밀 실사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다른 수가 없었다.
하루빨리 중도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최변을 대동한 채 대성그룹을 빠져나왔다.
***
이명복은 산타모니카 비치 인근의 별장으로 친형인 이상덕 한국당 의원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거실 책상에 둘러앉은 채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그 많은 돈을 모조리 날렸단 말이냐?”
이상덕의 물음에 이명복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한 놈이 왜, 그런 사기에 당한 거냐?”
“월가에서 이름난 펀드매니저라고 주변에서 하도 그래서······.”
이명복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3백억 이상의 실탄이 필요한데, 그 돈을 대체 어디서 마련할 거야?”
“강남에 숨겨놓은 땅이 있으니까 그걸 팔아서 선거자금을 충당해야지.”
“좋아. 그건 그렇다 치자. 너한테 사기를 친 진경철을 가만히 놔둘거냐?”
“한국이라면 주먹들을 고용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미국이라고. 법적으로 그놈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
이상덕은 애가 타는 얼굴로 줄담배를 태웠다.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다른 방법이 없어. 서울시장을 발판으로 대통령을 해 먹어야 큰돈을 벌 수 있는 찬스가 온다고.”
“이놈아. 서울시장 후보도 확실치 않은 판국에 벌써 대통령 타령이냐!”
친형의 핀잔에 이명복이 앙앙불락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암튼 형은 당내에서 바람을 좀 잡아. 여당의 후보를 물리칠 수 있는 적임자가 나라고 어필하라고!”
“에휴······ 한심한 놈아. 일평생 힘들게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날리고도 아무렇지 않은 거냐?”
“당연히 속이 쓰리지. 그렇지만 대통령만 되면 수십조 원을 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니까.”
“에라이, 말을 말자. 개자식아.”
이상덕은 그리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명복은 별장을 나서는 상덕의 등에 대고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외쳤다.
“형만 믿고 있을 테니까, 나 대신 당내에서 작업을 좀 해줘!”
상덕은 그의 말을 뒷등으로 흘리며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
아파트 거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최변이 올린 보고서에 시선을 집중했다.
케이블 방송과 복합 상영관의 고위 간부와 임원진들 태반은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회삿돈을 횡령하는 것은 물론이고, 횡령한 자금을 주식투자와 도박, 유흥 등에 물 쓰듯이 쓰고 있었다.
대성그룹 측은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커다란 똥 덩어리를 나에게 내던질 속셈이었다.
최소 80명 이상의 간부와 임원들이 각종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다.
단칼에 내쳐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개자식들이었다.
최변은 보고서 말미에 전직 경찰로 구성된 감사팀을 하루속히 설립할 것을 충고하고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회사에 진을 친 도둑놈들을 때려잡기 위해서는 다년간 일선에서 범죄자들을 검거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형사들이 필수적이었다.
다음날.
일식당 룸에 들어가자 김태섭 부장 검사가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장님.”
“그런 것 같네요. 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의식적으로 흘리며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그에게 용건을 꺼냈다.
“쓸만한 경찰들이 필요한데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경찰도 종류가 많아서 말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인수하려는 회사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럽니다.”
김태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내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려면 천상 광수대 형사들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 검사는 그리 말하며 달짝지근한 정종을 목젖 깊숙이 넘겼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형사들은 거의 모두 광수대 소속입니다.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나머지 경찰은 뭐죠?”
“흔히 말하는 교통과 행정 쪽 경찰입니다. 수사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럼 부장님이 전직 광수대 형사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사내 감사 활동을 제대로 하시려면 전직 검사도 필요할 겁니다. 법리에 밝아야 하거든요.”
“그 문제 역시 부장님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군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는 후배 검사를 아니까 그 친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
며칠 후.
시내 일식당에서 전직 검사 출신인 하수용과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내 감사팀을 맡아주십시오. 연봉은 3억 원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하수용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성심을 다해 회장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그는 자기 멋대로 나를 회장님으로 호칭했다.
당연히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년차를 봐서 연봉을 올려드릴 테니까 내 일처럼 회사 일에 전념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리고 전직 광수대 출신의 수사 경찰들을 모아주세요.”
“말씀대로 그들과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연봉으로 1억 원을 지급할 생각이니까 내 뜻을 자세히 전해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천만원권 수표 다섯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 장은 수용 씨가 갖고, 나머지 넉 장은 광수대 형사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일식당을 벗어났다.
***
하수용은 시내의 술집으로 전직 광수대 출신의 형사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수용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4명의 남자들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연봉으로 1억 원을 약속할 테니까 사내 감사팀에서 같이 일합시다.”
그러자 일행의 좌장격인 네모진 얼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1억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그의 말이 끝나자 나머지 사내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줏잔을 입가에 털어 넣었다.
그때, 수용이 테이블 위에 천만원권 수표 넉 장을 올려놓았다.
“계약금이니까 각자 한 장씩 받으세요. 수표가 의심스럽다면 내가 이체를 해드리죠.”
그러자 남자들의 입이 하나같이 귓가에 내걸리며 수표를 재빨리 채갔다.
“제가 모시는 회장님은 재력이 어마어마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조만간 케이블 방송과 멀티플렉스 극장을 경영할 예정이니까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그제야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
수용을 필두로 다섯 명의 남자들이 레스토랑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등심 스테이크와 포도주를 음미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사를 대충 끝낸 후 그들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내가 인수할 회사에 도눅놈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하 실장님과 여러분들을 감사팀에 불러들인 겁니다.”
그리 말하자 좌중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다음말을 기다렸다.
“약속한 대로 여러분들에게 억대의 연봉을 지급할 생각이니까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순간 좌중이 일사불란하게 한목소리로 복명했다.
“넵. 회장님!"
< 새로운 시작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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