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 케이블 2 >
집 근처의 한강변을 거닐며 김용대 국장의 제안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의 말대로 드림 케이블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대박 드라마가 절실했다.
드라마가 히트 쳐야 광고 판매가 증진되고 방송사의 브랜드가치가 한층 높아진다.
지상파 3사가 드라마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쓸만한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인기 작가와 배우들이 필수였다.
그들의 몸값만 해도 수십억에 달할 지경이었다.
제작비의 태반은 작가의 대본료와 스타들의 출연료였다.
드림 엔터에는 박초원이란 스타 여배우가 있었다.
그녀를 활용한다면 제작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드라마에 중량감을 더할 수 있었다.
그러기를 문득 드림 엔터의 사명이 마음에 걸렸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와 사명이 중복됐기 때문이었다.
일단 드림 엔터의 사명을 다른 이름으로 변경하는 게 급선무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집으로 와라.
-밤 11시가 넘었어. 피곤하니까 내일 보자.
-잔말 말고 어여 튀어와.
-회장님 됐다고 잘난 체 하는 거냐?
-암튼 30분 내로 기어와라. 끊는다.
***
명우가 피곤한 얼굴로 압구정 아파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밤중에 왜, 부른 거야?”
녀석은 볼멘소리를 내뱉은 뒤 양주 진열장에서 발렌타인을 꺼내서 입안에 통째로 들이부었다.
우리는 양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드림 엔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명우가 기대만발 한 표정을 지었다.
“초원이 케어에 주력하면서 유망한 신인 배우들을 키워 봐.”
명우가 금세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방송 일을 잘할 자신이 있다구. 그러니까 일인지하 만인지상 같은 국장 자리 좀 부탁한다. 친구야.”
녀석은 어디서 쓸데없는 말을 잔뜩 들은 눈치였다.
“국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시청률을 책임지는 자리라고. 그러니까 배우 키우는 일에 주력해. 대신 너한테 사장 타이틀을 달아줄게.”
그제야 녀석이 반색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정말이냐?”
“그래. 자식아. 조만간 대박 엔터라는 자회사를 만들 생각이니까, 사장 노릇이나 잘해 봐라.”
“자본금을 얼마나 챙겨줄 건데?”
“일단 30억 원을 자본금으로 줄 테니까 그 돈으로 쓸만한 연기자들을 영입해 봐.”
“연봉은?”
“2억을 보장할게. 판공비도 1억 정도를 챙겨주마.”
“차는 뭐로 줄 거냐?”
“벤츠 한대 뽑아줄게. 이 정도면 만족하냐?”
명우가 득의만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무실 장소도 말해 줘야지?”
“강남에 25층짜리 빌딩이 있거든. 거기 4개 층을 대박 엔터 사옥으로 이용하면 될 거다.”
“빌딩 이름이 뭔데?”
“성심빌딩. 논현동 사거리에 있는 건물이니까 내일부터 그곳에서 일을 봐.”
“자본금을 언제까지 넣어줄 거냐?
“일단 사명부터 대박엔터로 변경해라. 그 후에 자본금을 넣어줄게.”
“오케이. 하하······.”
녀석이 좋아죽는 얼굴로 웃음을 실실 쪼겠다.
***
주한수 실장을 대동한 채 영국 런던을 내방했다.
전 세계 최고의 실내공연장인 O2 아레나를 온몸으로 체험하기 위함이었다.
오투 아레나는 수용인원 2만여 명을 자랑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관객석 상하좌우 어느 곳에서 노래를 들어도 풍부한 사운드와 깊은 음향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장이 설계된 탓에 뮤지션들과 관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자 듀란듀란의 광팬들이 열광적인 환호성을 내지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탓인지 주 실장이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촌스럽게 그러지 말고 어서 자리에 앉읍시다.”
내 힐난에 주 실장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5층 최상단 끝자리로 안내했다.
우리는 최상단 끝자리에서 듀란듀란의 공연을 차분히 관람했다.
소문대로 음향시설이 기가 막혔다.
듀란듀란이 눈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뒤, 오투 아레나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연장을 설계한 회사를 알고 싶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죠?”
“한국에도 오투 아레나에 버금가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관계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서 나에게 건넸다.
“아킨스 설계회사를 찾아가 보세요. 메모지에 주소가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주 실장을 대동한 채 아킨스 설계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킨스 설계회사는 런던 트라팔카 광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킨스는 설계회사답게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빌딩에 입주하고 있었다.
17층 사무실에 들어가자 설계회사 기술 이사가 나를 반겼다.
그에게 내가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한국에도 o2 아레나 같은 초대형 실내 공연장을 건립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귀사의 설계 자문을 받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설계는 문제가 없지만 중요한 건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감리하는 일입니다. 특히 O2 아레나는 설계도에 나온 대로 방음과 음향설비를 오차 없이 건설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술 이사는 그리 말하며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메모지에는 설계비와 공사 감리 비용이 적혀 있었다.
모두 합해 미화 1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천만 불을 지불해 주시면 우리 회사가 설계는 물론이고 공사의 감리와 감독까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귀사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럼 결심을 하시면 저희 회사에 즉각 연락을 주십시오.”
기술 이사는 그리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템즈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노천 카페로 들어갔다.
테이블에 앉자 주 실장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런던에 친동생이 유학 중인데 잠깐 시간을 내서 만나도 될까요?”
이런게 직장인의 고충이다.
상사에 메인 몸이라 언제나 그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주 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밀히 말해 지금은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내 허락 없이는 자유시간이 용인되지 않았다.
“지금 오후 2시니까 4시간만 더 나를 보좌한 뒤에 동생을 만나든 친구를 만나든지 하세요.”
주 실장이 어색한 얼굴로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나를 만만히 봤다.
나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다.
조금 친해졌다고 편의를 봐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다.
“주 실장은 이걸 명심하세요.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십시오.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사적인 편의를 봐달라고 징징거린다면 당신은 그날부로 해곱니다.”
주 실장이 군기가 번쩍 든 얼굴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세요. 나는 사람들의 입 발린 말을 안 믿는 성미니까.”
주 실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제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야 제 말을 이해하셨네요.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납니다. 그 말인 즉 나에게 절대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주 실장은 허리를 굽힌 자세로 화답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태도였다.
“당신 연봉이 6천만 원이 넘어요. 거기에 비서실장 판공비를 포함할 경우 댁이 지급받는 연간 실 수령액은 1억 원이 넘습니다.”
주 실장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묻어나왔다.
“그러니 알아서 잘하세요.”
“회장님의 귀중한 말씀을 마음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이만 됐으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
런던에 온 김에 최고급 원단을 베이스로 한 맞춤 정장을 맞춰 입기로 마음먹었다.
영국은 전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고급 원단의 본고장이었다.
그런 탓인지 맞춤 정장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양복 전문점이 많았다.
주 실장을 대동한 채 ‘르로 피아나‘라는 간판이 내걸린 상점으로 들어갔다.
재단사에게 용건을 말했다.
“전 세계 최고급 원단을 소재로 맞춤 양복을 제작해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양복은 원단 가격에 좌우됩니다. 원하시는 원단으로 제작할 경우 미화 10만 달러가 훌쩍 넘어갈 겁니다.”
재단사는 그리 말하며 내 경제력을 탐색하는 시선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그에게 시티은행에서 발행한 미화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내밀었다.
“선불로 지불할 테니 최단 시일 안에 양복을 완성해 주십시오.”
재단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일주인 안으로 양복을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재단사는 줄자를 이용해 내 신체 사이즈를 쟤기 시작했다.
런던 시내의 리츠 칼튼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미국에 있는 트램프 회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앞으로 1년 안에 내가 보유한 빌딩들을 모조리 매각해 주십시오.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닙니까?
-한국 부동산은 이미 예전으로 회복했습니다. 빌딩 가격도 1997년에 비해 서너 배 이상 폭등한 게 그 증거죠.
-총액 150억 달러 안팎의 가격으로 매각 액수를 맞춰주십시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세배 정도의 시세차익을 보고 투자한 거라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 신경을 써주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다 알아서 매각 작업을 끝낼 생각이니까.
-그럼 회장님만 믿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머지 일은 트램프 회장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다.
일주일 후.
르로 피아나 맞춤 양복점을 내방했다.
런던 최고의 재단사가 최고급 원단으로 제작한 맞춤 양복이라 그런지, 내 몸에 착 감기는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재단사의 노고를 치하한 후 인근의 한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일행은 얼큰한 육개장과 소불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런던 히드로 공항을 향해 보무도 당당히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상암동에 위치한 드림 케이블 방송국으로 직행했다.
회장실에 올라간 후 주 실장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김용대 국장을 불러들이세요.”
“네. 회장님.”
몇 분 뒤, 김용대 드라마 국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에게 본론을 꺼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대박 엔터라는 자회사를 출범시킬 계획입니다. 대박 엔터에는 박초원이 소속된 상태죠.”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그러니까 박초원을 여주로 쓸만한 드라마를 제작해 봅시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체 제작 드라마로 승부를 봐야 할 거 아닙니까?”
내 굳은 결심을 눈치챈 김용대가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우리 드림 케이블이 지상파에 필적하는 거대 방송사가 되기 위해선 대박 드라마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돈은 신경 쓰지 말고 스타 작가를 섭외해서 승부를 보자고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일주일 안으로 드라마 제작 초안을 보고서로 올리세요.”
“넵. 회장님.”
김용대를 내보낸 후 주 실장을 면전에 다시 불러들였다.
“대박 엔터 사장으로 내정된 김명우를 호출하세요.”
그러자 주 실장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하게도 아직 김명우 사장의 연락처를 모릅니다.”
“비서실장이란 인간이 자회사 사장의 연락처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죄송합니다. 회장님.”
주 실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메모지에 김명우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서 주 실장에게 건넸다.
“지금 당장 김명우를 불러들이세요.”
< 드림 케이블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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