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58화 (147/200)

< 드림 케이블 3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명우가 회장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볼멘 목소리를 토해냈다.

“밤 11시다. 너는 퇴근 개념도 없냐?”

“없어. 그러니까 헛소리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녀석이 체념한 얼굴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쓸 만한 애들을 섭외했냐?”

“전직 동우그룹 사원과 배우 계약을 체결했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

“기생오라비가 뭐냐. 훈남이라는 좋은 말이 있잖아.”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냐?”

“우리가 6, 그놈이 4를 먹는 조건으로 계약했지.”

“기간은?”

“7년.”

“괜찮게 했네.”

“그러니까 염려 붙들어 매라고 했잖아. 형 못 믿냐?”

“못 믿어. 그러니까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형한테 곧바로 보고해라.”

“에휴······ 시어미가 따로 없구나.”

“죽는 소리는 그만하고, 쓸 만한 코디나 구해 봐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코디 아가씨를 한명 구했다.”

“누군데?”

“미용실에서 여자 배우들 전담으로 다년간 일을 한 아가씨다.”

“코디는 헤어뿐만 아니라 패션 센스도 좋아야 한다고.”

“전부 쓸 만하니까 고용했지.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믿어라.”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초원이가 금년 3분기까지 올린 매출이 총 얼마냐?”

명우가 즉답했다.

“광고 7억 4천만원, 드라마 출연료 1억 7천만원 정도니까 총합 9억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고 봐야지.”

“순이익은?”

“코디 비용, 미용비용, 기름값, 인건비 등을 제해도 7억이 넘는다.”

그녀는 탑 여배우 반열에 올랐다.

“초원이가 별말 안 하냐?”

“맨날 계약을 고치자고 난리를 치더라. 6대 4계약이 불공평하다고.”

나는 초원과 6대 4계약을 체결했다.

당연히 회사가 6할을 먹는 조건이었다.

게다가 기간도 무려 10년이었다.

흔히 말하는 노예계약이었다.

허나, 그녀는 내 덕분에 톱스타가 되었다.

내 애첩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공과 사는 명확해야 한다.

“이번 달 말에 계약서대로 정산금을 지급해.”

“돈이 적다고 난리를 칠 거다. 그거 감당할 수 있겠냐?”

명우는 그리 말하며 세끼 손가락을 야하게 흔들었다.

“형이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일어나자. 한잔 빨러 나가자.”

“간만에 룸빵 콜!”

명우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오케이. 접수. 나가자.”

그날 우리는 룸빵에서 날밤을 지새우며 즐거운 술자리를 만끽했다.

***

이른 아침부터 상암동 드림 케이블 방송국에 출근했다.

지하 2층에 위치한 구내식당에 들어가자 밤샘 녹화를 진행한 스태프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채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정직원이 아닌 탓에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방송국은 PD와 FD 정도만 정직원으로 일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머지 직원들은 대다수 계약직 사원이었다.

그들 대다수는 방송 촬영을 책임지는 현장 스태프였다.

그들의 눈을 피해 구석 자리에서 아침 백반으로 배를 채웠다.

그 무렵, 주 실장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런 모습에 식사에 열중하던 스태프들이 부랴부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채 나를 향해 저마다 허리를 숙였다.

주 실장 덕분에 내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목례를 취한 뒤 식당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아침 식사를 방해한 탓이었다.

지하 4층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찰나 주 실장이 잽싸게 엘리베이터로 몸을 날렸다.

엘리베이터를 정치시킨 후 주 실장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그냥 아침 식사를 하세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주 실장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될까요?”

“네. 어차피 아침 업무시간은 9시부터 시작하니까 그전까지는 주 실장이 알아서 하세요.”

“그럼 염치불구 하고 식당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그제야 주 실장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25층으로 올라가자 비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못 본 척하며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실 한켠의 탕비실에서 달달한 커피를 음미할 무렵, 인터폰에서 이미경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초원 씨가 방문하셨습니다. 들여보낼까요?”

“들여보내세요.”

“네. 회장님.”

***

정장 차림의 초원이 회장실에 나타났다.

그녀는 얼굴 가득 신기한 표정을 떠올리며 사무실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폈다.

“뭐 하러 회사에 왔냐?”

“당연히 궁금해서 왔지.”

“회사에 오면 직원들이 입방아를 찧는다고. 그러니까 가급적 회사에 오지 마라.”

“피이······ 인기 여배우랑 스캔들 나는 게 그렇게 싫어?”

초원은 그리 말하며 푹신한 소파에 차분히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회사에 온 이유가 뭐야?”

“그야 오빠를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녀는 말은 그리하면서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일단 커피나 한잔 주라. 오빠야.”

“알았다. 한잔 먹고 가라.”

인터폰을 누르자 이미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피를 갖다 드릴까요?

그녀는 눈치가 백 단이었다.

-네. 알아서 갖다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회장님.

몇 분 뒤, 이미경이 쟁반에 커피 한잔을 받쳐 들고 장내에 나타났다.

그녀는 초원에게 목례를 취하며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았다.

“TV보다 실물로 보니까 더 이쁘세요.”

미경이 그리 말하자 초원이 도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미경이 나가자마자 초원이 낯을 잔뜩 찡그리며 힐난 조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여비서가 왜 저리 이뻐? 아주 신경 쓰여.”

“여비서랑 니가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이 있지. 쟤가 자기를 꼬시고 싶어 하는 눈치잖아.”

“앞서나가지 말고 분수 지켜라. 너랑 나는 그냥 스폰관계라고. 그 점을 명심해.”

그녀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좋아. 오빠가 그리 나오니까 나도 솔직히 말할게.”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계약서를 다시 만들어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계약이야.”

“별 볼 일 없는 너를 스타로 만들어준 내 노고를 무시하겠다는 거냐?”

“그냥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는 말이잖아. 그게 그리 힘들어?”

“힘들다. 계약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초원이 아미를 치뜨며 나를 노려봤다.

“오빠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을 거야. 광고도 안 찍을거고, 드라마도 안 해!”

그녀는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초원은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없으면 드라마 제작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갑자기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럴 때는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 게 상책이었다.

***

압구정 아파트.

집에 도착하자마자 데스크탑을 켰다.

뉴욕증시에 접속한 뒤 애플과 구글, 아마존, MS 등의 주가에 이목을 집중했다.

도플갱어는 2000년 초반부터 저들 4개 업체의 주식이 신고가 행진을 펼친다고 확언했다.

그의 신탁은 신성불가침한 절대진리였다.

허나, 아쉽게도 내 수중에는 현금자산이 별로 없었다.

빌딩에 돈이 묶인 탓이었다.

하루빨리 빌딩을 일사천리로 매각하는 게 최선이었다.

***

연말연시가 찾아왔다.

그런 탓인지 지상파 3사는 연말 가요제와 드라마, 연예 대상 등을 연일 성황리에 방영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 드림 케이블은 변변한 시상식 없이 영화와 미국 드라마, 지상파 드라마, 예능 등을 재방송하는 데 급급한 형편이었다.

뭔가 획기적인 전환점이 필요했다.

회장실로 김재연 예능 국장을 호출했다.

그는 30대 후반의 나름 젋은 나이였다.

김재연은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춘 예능 프로그램들을 기확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허나, 여전히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김재연이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채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지상파 3사처럼 그럴듯한 연말 가요제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인기 아이돌을 보유한 기획사들이 당최 말을 들어 먹지 않는 관계로······.”

그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개런티를 획기적으로 올려준다면 나름대로 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돈이라는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오늘이 며칠이죠?”

“12월 24일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군요.”

김재연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갑자기 크리스마스 얘기를 꺼내서 이상한가요?”

“조금 그런 면이 있습니다.”

“12월 31일에 연말 가요제를 여세요. 개런티는 1군 아이돌은 1000만원, 2군은 500만원 수준으로 책정해서 10팀 정도를 섭외하세요.”

“개런티는 충분하지만 인기 아이돌의 경우 지상파와 스케쥴 협의가 거의 끝난 상황입니다.”

“국장이면 국장답게 능력을 보이세요.”

김재연이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똥 씹은 표정 하지 말고 어서 일 보러 나가세요!”

목소리를 높이자 녀석이 회장실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

김재연은 똥줄이 타는 심경이었다.

그럴듯한 1군 아이돌을 섭외하지 못할 경우 모가지가 달아나는 탓이었다.

그는 이태수의 엄명이 떨어진 그 날부터 아이돌 기획사에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렸다.

허나, 그의 제안에 쉬이 응하는 엔터업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2군 아이돌 그룹이 대다수였다.

재연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었다.

결국 그는 국내 최정상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SN 엔터의, 박수한 대표의 자택으로 무작정 쳐들어갔다.

사생결단의 각오였다.

박수한 대표는 어색한 얼굴로 김재연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전 연락조차 없이 자택에 불쑥 나타난 그를 내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김재연은 국내 최대 케이블 방송사로 손꼽히는 드림 케이블의 예능 국장이었다.

지상파보다는 못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팀당 2천만원으로 개런티를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최소 4팀 이상을 연말 가요제에 출연시켜 주십시오!”

김재연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박수한에게 읍소했다.

그런 탓일까? 수한이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4팀은 힘들고 1군 아이돌 2개 팀을 드림 케이블의 연말 가요제에 출연시키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재연은 소정의 결과를 얻자 금세 환해진 얼굴로 수한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감사한 심정을 전달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신 약속대로 개런티를 반드시 지급해 주셔야 합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미 회장님에게 재가를 받았으니까요.”

수한이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이태수 회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돈이 많나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회사 안팎에서 조 단위 펀드를 운용하는 큰손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러니 돈 문제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네. 대표님. 다음에 근사하게 한턱 쏘겠습니다.”

재연은 그 말을 끝으로 다른 기획사 대표의 집으로 발 빠르게 넘어갔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재연 국장이 올린 보고서를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보고서에는 1군 그룹 출연료로 2천만원을 보장했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인기 아이돌을 섭외하기 위해 예산을 초과 지출한 모양새였다.

보고서를 완독한 뒤 김재연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출연료는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지상파 3사를 능가하는 연말 가요제를 만들어보세요.”

“그럼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인기 아이돌을 섭외했으니까 최소 5천 명 이상의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대관하세요.”

재연이 감격한 얼굴로 부르짖었다.

“회장님의 믿음에 부응하는 성대한 연말 가요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개 팀의 특집 무대를 엑설런트하게 꾸며 보세요. 공연예술 쪽에 조예가 깊은 무대 연출팀도 섭외하시고.”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며칠 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수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드림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연말 가요제를 눈앞에서 관람하려는 소녀팬들이었다.

그날, 드림 케이블은 지상파 3사를 능가하는 성대한 연말 가요제를 전국 각지에 송출했다.

그 덕분에 연예부 기자들과 가요팬들은 지상파 3사를 압도한 드림 케이블의 연말 가요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 드림 케이블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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