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59화 (148/200)

< 드림 박스 1 >

김포 국제공항에 루카스 부사장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태수가 보유한 빌딩을 한국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세일즈할 계획이었다.

루카스는 곧장 삼송그룹 서초동 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서초동 본사 12층 회의실에 루카스 일행이 나타났다.

삼송그룹 김학수 기조실장은 루카스 일행과 악수를 교환한 뒤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했다.

루카스는 테이블 위에 강남과 종로, 광화문 등지의 빌딩 일람표를 늘어놓았다.

“마음에 드시는 빌딩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김학수 기조실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 많은 빌딩을 드림 엔터의 이태수 회장이 보유하고 계신 겁니까?”

루카스의 입에서 사무적인 답변이 흘러나왔다.

“클라이언트의 신상을 밝힐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제가 본의가 아니게 실례한 모양입니다.”

김학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의 변을 토해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럼 마음에 드시는 빌딩이 있으시면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루카스는 그리 말하며 빌딩 팸플릿을 김학수에게 밀었다.

***

한남동에 김학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턱시도 차림의 집사가 학수를 고풍스러운 접견실로 안내했다.

그는 손에 들린 빌딩 팸플릿을 김건영 회장에게 전달했다.

“빌딩이 너무 많군.”

“그렇지만 모두 서울 요지에 위치한 물건입니다. 되는대로 걷어 들이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빌딩의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나?”

“금년 3월경에 IMF에서 빌린 달러를 모두 완납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정상화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빌딩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른거 아닌가?”

“여전히 두세 배 이상의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학수의 확언에 김건영이 고민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한 후에 투자를 결정하자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도곡동에 건설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의 분양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해 봐.”

“평당 가격을 너무 높이 잡은 게 분양실적이 저조한 이유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럭셔리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광고하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는 건 트램프 타워에 버금가는 초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일세.”

“솔직히 말씀드려서 트램프 타워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품관들이 입점해 있습니다. 아랍의 왕족들과 중국의 재벌들이 돈을 싸들고 투자하는 게 현실입니다. 뉴욕이라는 천혜의 입지 덕분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입지 조건상 한국은 뉴욕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분양가를 30프로 이상 낮추는 게 최선으로 사료됩니다.”

“흐음······.”

김건영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담배를 문 채 창가를 한참 동안 서성인 뒤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분양가를 30프로 정도 낮춰. 그 이상은 안 돼!”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김학수가 접견실에서 사라지자마자 비서실장이 장내에 나타났다.

“민용이 놈은 뉴욕에서 대체 뭘 하는 거야?”

“송구하게도 현지 여성과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양년이 그리 좋은 건가?”

“비서진들이 보내온 사진을 본 결과 큰 도련님이 혹할 만한 빼어난 미모였습니다.”

“한국에 처자식도 있는 놈이 왜 그 모양인지······ 내가 미치겠구만!”

김건영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본처 소생의 김민용이 그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1월 달 안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전해!”

“여러 번 독촉했지만 당최 말씀을 듣지 않고 계십니다.”

“천상 내가 뉴욕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러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양년과 헤어지라고 말하면 그놈이 순순히 말을 들을까?”

김건영이 약한 모습을 드러내자 비서실장이 곤혹스런 얼굴로 힘겹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도련님의 여자관계에 대해서 더 이상 터치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도련님도 이제 사십 줄입니다. 여자 문제는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할 나입니다.”

“음······.”

김건영은 오늘따라 깊은 한숨이 연달아 새어 나왔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오늘따라 마음에 와 닿는구만.”

비서실장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그놈에게 정략결혼을 시킨 건가?”

“그 당시에는 회장님의 판단이 옳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집안과 결혼을 시킨 셈이야. 무식한 군인 집안 딸내미를 며느리로 받아들인 게 너무 후회가 돼.”

그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피워올리며 말을 계속했다.

“얼굴이라도 이쁘면 참고 보겠지만, 쌍판데기도 남상에 성격도 사나워서 볼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차라리 이참에, 도련님이 원하는 대로 이혼을 허락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혼이라······?”

“네. 요즘 세상에 이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안 맞으면 얼마든지 이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건영은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에 드리워진 을씨년스런 밤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

대망의 2000년이 시작됐다.

그런 탓인지 신년 벽두부터 내 도움을 원하는 인간들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면전에 출몰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복합상영관을 관장하는 장준기 전무가 애절한 얼굴로 회장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울 듯한 얼굴로 하소연을 쏟아냈다.

“우리 드림 박스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면 자체 제작한 영화와 거액의 투자를 감행한 영화를 극장에 내걸어야 합니다.”

나는 복합상영관의 명칭을 드림 박스로 새로이 론칭했다.

부르기 쉽고 남녀노소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 단어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하거나 아니면 유망한 영화에 거액의 투자비를 집행하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녀석이 기대만발한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경쟁업체인 럿데 시네마 측은 작년에 10여편의 영화를 자체 제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수십여 편의 영화에 거액의 투자비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럿데 시네마는 럿데 그룹 계열인 탓에 나름 자본력이 대단했다.

장준기의 말대로 영화시장을 장악하려면 자체 제작한 영화와 거액의 투자비를 쏟아부은 영화들을 중심으로 극장에 상영하는 게 최선이었다.

허나, 내 수중에는 현금이 별로 없었다.

국면은행 계좌에 5백억, 시티은행 금고에 1천억 대의 양도성 예금증서가 전부였다.

영화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기에는 자금이 빠듯한 형편이었다.

지금 내 최우선 관심사는 지상파 3사에 맞먹는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는 것이었다.

“장 전무의 말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테니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 말하자 녀석이 기대 반 설렘 반의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국세청장 이면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기동 정무수석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면학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 뵀습니다.”

“그게 뭐지요?”

“외국계 자금을 가장한 검은머리 자본이 국내 금융과 부동산은 물론이고 M&A 시장에서도 연일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외국계 자본을 가장한 검은머리 투기사범들에게 징벌적인 과세를 부과해야 합니다.”

김기동은 곧바로 난색을 표명했다.

“외국계 자금과 검은머리 자본을 구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미 어느 정도 조사를 끝마친 상황입니다.”

“염두에 두신 검은머리 자본이 있습니까?”

이면학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근 대성그룹의 케이블 채널과 복합상영관을 인수한 ts 인베스트먼트 사모펀드가 대표적인 검은머리 자본입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취임한 이태수가 ts 인베스트먼트의 실소유줍니다.”

“고용 사장일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이태수 대표는 ts 인베스트먼트 명의로 서울시내 빌딩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계약서에 언제나 자필서명을 기입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김기동의 얼굴에 고심이 역력한 흔적이 그려졌다.

“사모펀드를 잘못 건드리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대규모 조세포탈 혐의가 있는 ts 인베스트먼트를 모른 척 넘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면학이 재차 김기동을 압박했다.

“세수가 태부족한 마당에 조세포탈 혐의가 뚜렷한 국내자본을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겁니다.”

결국 김기동은 이면학의 요구에 굴복했다.

논리정연한 그의 설득에 넘어간 탓이었다.

김기동은 이면학을 내보낸 뒤 금감원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이태수 대표와 ts 인베스트먼트의 계좌를 정밀 조사하세요.

-외국계 자본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 사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석님.

-내가 책임질 테니까 ts 인베스트먼트가 서울시내 빌딩과 케이블 방송, 복합상영관 등을 매입하는 과정을 면밀히 추척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수석님.

김기동은 통화를 끝마친 뒤, 곧바로 검찰 총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국세청과 합동으로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압수수색 하십시오.

-이유를 알수 있을 까요?

-이유는 묻지 마시고 내가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세요.

김기동은 대통령이 신임하는 최측근 인사였다.

검찰 총장을 눈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명하신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

상암동 드림 엔터테인먼트 본사

오전 회의를 진행하려는 찰나 주 실장이 다급한 얼굴로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귓속말로 보고를 올렸다.

“국세청 직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회사에 나타났습니다.”

“이유가 뭐죠?”

“낌새가 영 심상치 않습니다. 회장님의 개인 컴퓨터를 조사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회장실로 올라가자 검찰 수사관과 국세청 직원들이 회사 경호원들과 대치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책임자인 듯한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매서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사할게 있으니까 회장님의 컴퓨터를 내어주십시오.”

“압수수색 영장이 있습니까?”

그때, 장내에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곧장 내 앞으로 다가오자마자 검사임을 알리는 신분증과 압수수색 영장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 개인컴퓨터를 내줄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경호원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문가에서 물러나세요.”

경호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가에서 몸을 비켜주었다.

직후 검찰 수사관들과 국세청 직원들이 회장실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들은 내 개인 컴퓨터와 책상 서랍에 들어 있는 각종 서류들을 파란색 박스에 신속하게 담은 후 장내에서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곧바로 김태섭 부장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찰과 국세청이 합동으로 우리 회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제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빨리 알아봐 주십시오.

-네. 회장님.

그날 밤.

시내 일식당으로 김태섭을 불러들였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검찰과 국세청이 나를 노리는 이유가 뭡니까?”

김태섭이 곤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오더를 내린거 같습니다.”

“그 작자가 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국세청에서 회장님의 조세포탈 혐의를 잡은 거 같습니다.”

“그럴 일이 없을 건데요. 저는 외국계 자본의 얼굴마담에 불과하거든요.”

그러나 김태섭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회장님이 말씀은 그리하시지만,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김 부장의 말대로 내가 검은머리를 가장한 외국계 자본의 오너라고 합시다. 그게 그리 큰 죕니까?”

김태섭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갔다.

직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징벌적인 세금 추징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회장님 나름대로 손을 쓰셔야 할 겁니다.”

그의 말대로 요로에 구명을 하는게 최선이었다.

다음날.

한국에 들어온 루카스 부사장을 시내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그와 저녁을 함께하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국 정부가 징벌적인 세금을 추징하려고 나를 잔뜩 벼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거죠?”

“검은머리 자본을 가장한 외국계 사모펀드의 오너라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루카스가 듬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트램프 회장님에게 대표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주한 미국 대사 리처드 워커가 김대주 대통령을 내방했다.

그는 김대주를 향해 날 선 언사를 내뱉었다.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귀국의 검찰과 국세청이 TS 인베스트먼트 사모펀드를 연일 들쑤시고 있는 사실을 모른 척하실 겁니까!”

김대주는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아랫사람들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제멋대로 벌인 탓이었다.

“이런 식으로 외국자본을 수사하는 건 IMF와 맺은 경제규약을 위반하는 겁니다.”

김대주의 얼굴에 참담한 표정이 그려졌다.

리처드 대사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낮은 자세로 임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본 후에 시정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김대주는 리처드 대사를 내보낸 뒤 김기동 경제수석을 면전에 호출했다.

< 드림 박스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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