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60화 (149/200)

< 드림 박스 2 >

김대주가 진노한 얼굴로 버럭 고성을 내질렀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인 거야! 외국 자본을 뭐 하러 건드렸냐고!"

김기동이 기겁한 얼굴로 사죄의 변을 쏟아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지금 당장 TS 인베스트먼트와 관련된 모든 조사를 중단해!"

"넵. 대통령님."

김기동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누가 이런 개수작을 벌이자고 선동했나? 사실대로 말해!"

김대주의 엄명에 김기동은 모든 사실을 낱낱이 이실직고했다.

며칠 후, 김대주 대통령은 김기동 경제수석과 이면학 국세청장을 전격적으로 파면 조치했다.

***

김태섭 부장 검사는 이태수의 뒷배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에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뒷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의 모가지를 하루아침에 날려 버린 탓이었다.

‘미국에 엄청난 인맥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구나. 차라리 나에게 잘된 일인가?.’

김태섭은 이태수의 힘을 이용한다면 차장검사로 손쉽게 승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태수에게 차장검사 승진을 부탁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에 김용대 드라마 국장과 이수연 작가가 나타났다.

이수연은 여러 편의 드라마를 히트시킨 인기 작가였다.

김용대를 내보낸 뒤 그녀와 심도깊은 협의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주 앉은 그녀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 보시죠?"

이수연은 비서가 내온 커피를 입가에 한모금 들이킨 뒤 속내를 밝혔다.

"회당 5천만원을 고료로 지급해 주세요."

우리는 20부작 드라마를 논의 중에 있었다.

그녀는 대본료로 총 10억 원을 원하는 모양새였다.

"회당 5천만 원의 대본료는 박수현 작가 정도만 받는 것 아닙니까?"

그녀가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를 박수현 작가와 비교하지 마세요. 정 그렇게 대본료가 아까우시면 다른 작가를 섭외하시죠."

이수연은 고자세였다.

"케이블 드라마는 망할 가능성이 높아요. 제 네임벨류에 손상이 갈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에요. 저는 그걸 감수하고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려는 거에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회당 5천만원의 고료를 지급해 드릴 테니 하루빨리 대본을 집필해 주십시오."

"그럼 오늘 당장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그녀는 성격이 화급했다.

나랑 비슷한 과였다.

곧바로 법무실장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회당 대본료로 5천만원을 지불한다는 계약서를 만들어서 회장실로 갖고오세요.

-네. 회장님.

이수연은 법무실장이 입회한 가운데 계약서에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계약금은 언제 주실 거죠?"

"5회차 분량의 계약금을 1시간 내로 작가님의 계좌로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나중에 봬요. 회장님."

이수연은 고개를 숙인 뒤 장내에서 물러났다.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줄담배를 태울 무렵 인터폰에서 이미경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섭 부장 검사가 회장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여보내세요.

-네. 회장님.

김태섭이 연락도 없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이유가 자뭇 궁금했다.

그는 깊숙이 허리를 숙인 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소파 테이블을 마주한 채 커피를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4월 달에 검찰 정기인사 이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회장님이 힘을 써주시면 안 될 까요?"

김태섭은 나에게 인사를 청탁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그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다.

쓸모가 많았기 때문이다.

"원하시는 자리가 뭡니까?"

"차장 검사 노릇을 해보고 싶습니다. 회장님."

김태섭이 솔직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죠."

그러자 태섭이 내 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맞잡으며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회장님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러라고 내가 힘을 쓰는 건데. 하하······"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헤헤헤······"

태섭이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은근히 올려다봤다.

며칠 후.

서울 시내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주한 미국대사인 리처드를 초빙했다.

트램프가 소개해 준 남자였다.

우리는 육질이 연한 스테이크와 달콤한 포도주로 입을 축인 후 본격적인 담론에 접어들었다.

HBC 은행에 새로 개설한 페이퍼 컴퍼니 계좌와 클라이언트 코드가 적힌 서류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리처드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이 서류가 뭔가요?"

"이 증서에는 페이퍼 컴퍼니 계좌의 클라이언트 코드가 기입되어 있습니다."

리처드의 두눈에 짙은 탐욕이 드러났다.

"이 페이퍼 계좌에는 미화 50만 달러가 예치된 상탭니다."

그의 얼굴 가득 뜨거운 욕망이 번져갔다.

"제 청을 수락해 주신다면 이 서류를 대사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바를 속 시원히 말해 보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속내를 밝혔다.

"중부지검의 김태섭 검사를 차장검사로 승진시켜 주십시오."

"나 더러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라는 말입니까?"

"대사님에겐 그만한 힘이 있지 않습니까?"

리처드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는 내가 건넨 서류를 가방에 소중히 챙긴 뒤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대검찰청.

이경수 검찰총장은 청와대에서 내려온 하명(下命)에 고개를 갸웃했다.

부장검사로 승진한 지 1년 6개월 밖에 안 된 김태섭을 차장검사로 승진 발령하라는 엄명이 내려온 탓이었다.

이경수는 중부지검장을 총창실로 불러들였다.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김태섭의 뒷배가 뭔가?"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정말인가?"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부친 밑에서 나고 자란 놈입니다. 힘이 될 만한 연줄이 전무합니다."

이경수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허나, 그는 청와대가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였다.

"다음 달 정기 인사이동 시즌에 김태섭을 차장검사로 승진발령 하라는 명이 떨어졌네."

그러자 중부지검장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부장 검사 타이틀을 단지, 채 2년도 안 된 놈입니다."

"암튼 빽이 만만치 않은 거 같으니까 그놈을 자세히 살펴봐."

"알겠습니다. 총장님."

***

대박 엔터는 성심빌딩의 19층부터 23층 탑층까지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23층 탑층에는 대표 사무실이 있었다.

명우는 대표실에 들어가자마자 방기훈에게 전화를 돌렸다.

-박초원의 행방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냐?

-집에도 없고 친구 집에도 없는 거 같습니다.

-전화는?

-배터리를 빼놓은 상탭니다.

-집 근처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사장님.

명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태수에게 연락을 넣었다.

-박초원이 행방불명이다.

-갑자기 왜 그런 거야?

-계약 문제 때문이잖아. 뻔한 걸 뭐하러 물어?

-전화는 되냐?

-당연히 안 되지.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쓸 만한 배우들이나 영입해.

-맨입으로.

-대박 엔터 계좌로 50억을 넣어줄게.

-오케이.

명우는 금세 살판이 났다.

수중에 50억에 달하는 금싸라기 같은 돈이 들어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다.

대박 엔터를 키워서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었다.

물론 그전에 태수가 보유한 대박 엔터의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생각이었다.

부족한 돈은 가족들에게 빌릴 작정이었다.

명우는 한때 실의에 빠진 채 자살도 생각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내미가 눈에 밟혔다.

결국 죽을 각오로 이 세상을 다시 살아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 후, 태수에게 연락했다.

그의 도움이 절실한 탓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나름 보람찬 하루하루를 구가하고 있었다.

명우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미남미녀가 많이 출몰하는 신사동 카페를 목표로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명우는 카페 창가에 그림처럼 앉은 채 독서에 열중하는 그녀에게 한눈에 홀딱 반했다.

그는 무작정 카페로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 대박 엔터 대표이사 명함을 건네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아가씨 비주얼이 여배우 상이거든."

그녀가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고마워요. 사장님."

명우는 그녀가 배우 지망생임을 한눈에 파악했다.

신사동 카페의 이쁜이들 태반은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테스트를 해볼래?"

"정말요?"

"원래는 이런 제안을 함부로 하지 않는데 아가씨 비쥬얼이 너무 좋아서 말이지. 하하...!"

그녀가 고혹적인 눈웃음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명우에게 감사의 변을 토해냈다.

"고마워요. 사장님."

그들은 이심전심이었다.

두말이 필요없었다.

명우와 아가씨는 곧바로 신사동 인근의 모텔방으로 넘어갔다.

며칠 후, 그는 신사동 카페에서 만난 김솔미와 7년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

TV나 영화를 보면, 재벌 회장이 회사에 출근할 경우 붉은 카페트 양옆으로 임직원들이 도열한 채 카페트 위를 거니는 회장님에게 90도 각도로 정중히 허리를 숙이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건 현실과 그리 맞지 않는 장면이다.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재벌그룹 특성상 저런 식으로 회사에 출근한다면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내 회사는 방송사였다.

연예인들과 기자들이 숱하게 출입하는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붉은 카페트 위를 위풍당당하게 거닐며 장내에 도열한 임직원들에게 90도 각도로 문안 인사를 받는다면 그날부로 언론에 지탄을 받을 것이 불을 보듯 훤했다.

그런 탓으로 지하 주차장 한켠에 위치한 비밀 엘리베이터를 주로 이용했다.

회장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탓에 남들의 시선을 자유로이 피할 수 있었다.

1층 로비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회장실로 올라가는 일도 있었지만 평직원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탓에 대다수 지하 비밀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

직원들에게 불편을 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롤스로이스 팬텀을 방송사 지하 주차장에 파킹한 뒤 회장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지하 주차장을 관리하는 경비원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경비원은 나에게 깊숙이 허리를 조아린 뒤 용건을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점검 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1층 로비를 이용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할 수 없겠네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경비원에게 목례를 취하자 그가 황송한 얼굴로 화답했다.

"넵. 회장님."

1층 로비로 올라가자 보안팀장을 필두로 여러 명의 경호 요원들이 금세 내 곁으로 다가왔다.

경비원에게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보안팀장은 방송국에서 수년 동안 일한 남자였다.

원래는 새로운 사람을 뽑으려고 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격언대로 그를 유임시켰다.

보안팀장은 언제나 나를 지극정성으로 떠받들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 주변을 철통같이 보호하며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 탓인지 로비를 분주히 오가는 직원들과 연예인, 일반인들이 나를 호기심 그득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직원들은 내가 회장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얼굴이었고, 연예인들은 근육질 남자가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신임 회장이라는 사실에 지극한 관심을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반면 일반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내 정체를 유추하는데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다.

회장실에 들어가자 이미경 대리가 모닝커피를 내왔다.

달달한 커피를 음미하며 창가에 쏟아지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할 무렵 주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님."

"하실 말이 뭔가요?"

"회장님을 보필할 운전기사를 하루빨리 고용해야 합니다."

"나는 자가운전이 좋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커피를 한모금 들이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글로벌 대기업의 오너들 다수는 자가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합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이 자가운전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렇지만 자가운전을 고집하는 건 한국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그건 편견에 불과해요. 팔다리도 멀쩡한 인간이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결국 주 실장이 체념한 얼굴로 장내에서 물러났다.

나는 자가운전이 좋았다.

자동차 안에서만큼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편한 대로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타인과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건 무지 갑갑한 노릇이었다.

내 운전기사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 드림 박스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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