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61화 (150/200)

< 비지니스 1 >

이해창이 이끄는 한국당이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총 190석에 육박하는 역사적인 대승이었다.

10석만 더 추가하면 개헌마저 가능할 정도였다.

정국의 주도권은 이해창의 한국당으로 넘어갔다.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김대주 대통령은 거의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

극심한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탓인지 세간에서는 이해창 7년 대통령 설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대통령이라는 의미였다.

그 무렵, 한국당 관계자가 드림 케이블을 내방했다.

회장실에 간사하게 생긴 반 대머리가 나타났다.

그는 금테 안경을 얼굴에 착용하고 있었다.

몸도 가냘픈 탓에 간교함이 극에 달한 외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겉으로 척 봐도 천하의 간신배 면상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해창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해창 대표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윤일수라고 합니다. 나름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죠.”

녀석은 소파에 거만한 자세로 앉은 채 여비서가 내온 커피를 음미하며 나를 비웃듯이 쳐다봤다.

이 개자식의 속내가 궁금했다.

“나를 찾은 용건이 뭡니까?”

윤일수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대선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그러니 우리 대표님에게 보험을 드시죠.”

초장부터 대놓고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회장님의 재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게 댁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한국에서 사업을 하시려면 힘 있는 정치인의 그늘이 필요합니다. 척이면 착 아닙니까?”

윤일수가 나를 나무라듯 반문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말투였다.

“정치헌금을 요구하시려면 예의를 갖추는 게 기본 아닙니까?”

녀석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재벌그룹 오너들도 알아서 기는 판국에 나이가 젊어서 그러신가? 똥인지 된장인지, 너무 구분을 못 하시네.”

이젠 숫제 반말 조였다.

“일 없으니까 이만 나가세요. 내 사전에 정치헌금은 없습니다.”

그러자 윤일수가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리며 조소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런 식으로 사태파악을 못 하시면 나중에 경을 칠 겁니다. 이 회장.”

“나중이고 나발이고, 어여 나가라고. 내 주먹에 뒈지게 처맞고 싶지 않으면.”

순간 녀석이 분노한 얼굴로 버럭했다.

“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감히 누구한테 반말이야!”

윤일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개 꼴통이었다.

이런 녀석에겐 매가 약이었다.

놈의 멱살을 잡아채자마자 강력한 라이트 훅을 복부에 벼락처럼 꽂아넣었다.

퍼억······!

-커헉······!

사무실 바닥에 처량하게 나뒹구는 윤일수의 얼굴을 구둣발로 잘근잘근 짓이겼다.

녀석이 벌레처럼 꿈틀대며 내 발밑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허나, 놈의 몸짓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짓거리였다.

구둣발로 놈의 면상을 짓이기며 날 서린 언사를 토해냈다.

“한 번만 더 우리 회사에 찾아오면 그때는 국물도 없다. 그러니 알아서 처신 잘해라. 개자식아.”

그리 말하며 문밖에 있는 보안요원을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회장실 안에 있는 개놈을 지금 당장 끌어내!”

내 명이 떨어지자 보안요원들이 장내에 물밀 듯이 난입했다.

그들은 윤일수를 회장실 밖으로 짐짝처럼 질질 끌고 나갔다.

간만에 짜릿한 손맛을 봐서 그런지 기분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주 실장이 걱정이 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면전에 나타났다.

“그자는 이해창 대표의 측근입니다.  화장님이 큰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주 실장은 신경 쓰지마세요.”

“사안이 심각합니다. 오늘부터 보안요원들이 회장님을 경호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주 실장의 지극한 충성심이었다.

“알아서 하세요. 안 말리니까.”

“넵. 회장님.”

그날부터, 6명의 보안요원들이 1일 3교대로 나를 엄중히 경호했다.

***

여의도 일식당.

룸의 상석에 자리한 이해창 대표가 좌중을 향해 불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태수에 대해서 낱낱이 조사해 봐.”

그의 명이 떨어지자 한국당 율사 출신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복명했다.

“넵. 대표님.”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거 같으니까 자세히 알아보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좌장 격인 김윤한 의원이 일행을 대표해 화답했다.

***

시내 호텔 스위트룸에 이해창과 김윤한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윤한은 공손히 시립한 자세로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이해창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태수의 뒷배가 보통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근거가 있는 말인가?”

“네. 얼마 전에 해임된 경제수석이 이태수 작품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단지 소문에 불과한 거 아닌가?”

“소스가 확실합니다.”

“소스가 누군데?”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재미교포에게 전해 들은 얘깁니다.”

“자세히 말해 봐.”

“이태수가 주한 미국대사를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음······”

이해창의 미간에 짙은 내천자가 그려졌다.

“경제수석이 이태수를 노린 이유가 뭐야?”

“그가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징벌적인 과세를 부과하려고 나섰다가 된통 당한 모양입니다.”

김윤한의 보고는 계속됐다.

“미국 조야에 인맥이 상당한 거 같습니다. 섣불리 손을 보려고 나섰다가는 대표님에게 커다란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해창이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미국을 믿고, 나를 우습게 안다는 말이군. 개호로 자식이!”

“죄송합니다. 대표님.”

해창은 말은 그리했지만, 나름 신중한 성품을 타고난 탓에 복수는 후일로 미루기로 결심했다.

***

삼송그룹 서초동 본사 회장실

김건영은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면전에 서 있는 미래전략 본부장에게 국내외의 동정을 보고 받고 있었다.

“이해창 대표의 최측근인 윤일수 의원이 이태수 회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당 안팎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김건영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나?”

“이태수 회장을 보필하는 비서실 직원들을 탐문한 결과 소문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놀랍군.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이해창 대표의 측근을 폭행하는 인물이 다 있다니.”

김건영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창 대표가 아무런 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긴, 그것 또한 말이 안 되는군.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그 작자가 이태수를 가만히 두고 볼 까닭이 없지 않나?”

“그래서 나름대로 이태수를 조사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게 뭔가?”

“이태수가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징벌적인 과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경제수석이 해임 된 겁니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건영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번져갔다.

“미국 정부를 이태수가 움직였다는 말인가?”

“주한미국 대사가 이태수 말이라면 껌벅 죽는다는 소문이 정가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그는 내심 태수를 투기 자본가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허나, 이제 건영은 그를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미국 조야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한 진정한 실력자임을 알게 된 탓이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에 박초원이 나타났다.

거의 한 달하고도 보름 만이었다.

“그 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창가를 서성이며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유럽에서 푹 쉬다 왔어.”

“누구랑?”

“그걸 오빠가 알아서 뭐하게? 우리는 편한 스폰 관계잖아. 그러니까 내 사생활에 신경 끄셔.”

바라던 바였다.

그녀가 내 돈에 혹해서 둘러붙을까 봐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니가 원하는 게 뭐냐?”

“당연히 계약수정이지.”

“니 뜻대로 계약서를 수정해주면 내가 출연하라는 드마라에 나갈 거냐?”

그녀가 반색하는 얼굴로 당차게 답했다.

“물론이지.”

“좋아. 니가 원하는 계약조건을 말해 봐.”

“계약금 3억에 배분 비율 7대 3, 그리고 전속 코디랑 연예인 벤 차량을 지원해 줘. 마지막으로 품위 유지비 조로 매년 1억씩을 지급해 줘. 물론 내가 7할을 먹는 조건이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거냐?”

“선배 언니들이 다 그러더라. 나처럼 잘나가는 여배우는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니가 원하는 대로 계약서를 수정하면 내가 엄청 손핸데, 그건 어떻게 생각해?”

그녀는 가타부타 말없이 작심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른 건 다 수용 가능하지만 분배비율 7대 3은 절대 용납 못 해. 무조건 5대 5로 하자.”

“내가 거부하면 어쩔건데?”

“우리 약삭빠른 박초원 씨를 전속계약 위반 혐의로 법원에 고소해야지. 그러면 tv나 영화판에 절대 출연할 수 없을 거다.”

그녀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우리 사이에 정말 그런 식으로 나올 거야?”

“응. 네년이 지금 내 화를 엄청 돋우고 있잖아. 그러니 내가 하잔 대로 수정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결국 초원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가 제안한 대로 계약서를 만들게. 이제 됐지.”

“그리고 앞으로는 회장님으로 호칭해. 니년 한테 정나미가 떨어졌으니까. 마지막으로 계약 기간은 3년이다. 물론 우리의 사적 관계는 오늘로써 끝이고.”

그리 말하자 초원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짙은 아쉬움이 그려졌다.

물주를 놓쳤다는 후회막급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저 멀리 출발한 뒤였다.

“내일 오후 2시경에 회사에 다시 와. 24층 회의실에서 법무실장이 작성한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그럼 이만 꺼져!”

냉랭한 축객령을 발하자 그녀가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자업자득이었다.

초원은 연락도 없이 한 달 반 동안 잠수를 탔다.

분명 새로 사귄 남친과 밀월여행을 떠났음이 틀림없었다.

척이면 착이다.

인터폰을 통해 법무실장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명우를 강남 인근의 룸빵으로 불러들였다.

우리들은 아가씨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뒤 그녀들을 룸 밖으로 내보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내일부터 로맨스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니까 대박 엔터에 소속된 남녀 배우들을 드라마국으로 데리고 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냐?”

“당연하지. 내가 등신처럼 별 볼 일 없는 케이블 방송사 사장으로 인생을 종칠줄 알았냐?”

명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내가 캐스팅한 여자애가 있는데, 비중 있는 조연급으로 캐스팅하면 안 되겠냐?”

“일단 비주얼이 중요하니까 그 애도 데리고 와라.”

“고맙다. 친구야. 너밖에 없다. 헤헤······”

“실실거리지 말고, 일에나 집중해. 이번 드라마가 성공해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니까.”

“접수. 그러니까 술이나 진탕 처마시자.”

명우는 그리 말하며 호출 벨을 눌렀다.

직후 헐벗은 룸걸들이 장내에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

뉴욕 양키스 스카이 박스에 김민용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여느 커플들처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민용은 소피아의 나긋나긋한 여체를 품에 안은 채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띤 라이벌전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무렵, 장내에 양복 차림의 동양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민용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연락이십니다.”

민용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소피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 전화길래 그렇게 인상을 쓰는 거야?”

“나중에 알려줄게. 신경 쓰지 마라.”

그는 의식적으로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폰에서 김건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뉴욕이다. 맨해튼 아파트로 갈 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

-왜, 연락도 없이 오신 겁니까?

-니놈에게 사전에 허락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말이냐?

-제 나이도 이제 마흔 줄입니다.

-니놈은 아무리 나이를 처먹어도, 내 눈에는 철딱서니 없는 아들놈으로 보일 뿐이야.

-암튼 오늘은 시간이 안 되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잔말 말고 저녁까지 아파트로 들어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민용의 내면에서 격렬한 불만이 샘솟듯 치솟았다.

그는 언제나 자기 멋대로 주변 사람을 통제하려 드는 부친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 비지니스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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