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62화 (151/200)

< 비지니스 2 >

민용은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기로 작심했다.

-1시간 후, 트램프 타워 앞으로 오십시오.

-니 집을 놔두고, 왜 그곳에서 만나자는 게냐?

-소개할 여자가 있습니다.

-음······.

폰에서 김건영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민용은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아버지에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여자니까 무조건 트램프 타워 앞으로 오세요.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소피아를 대동한 채 트램프 타워로 발걸음을 옮겼다.

1시간 후.

김건영은 아들과 함깨 나타난 소피아의 빼어난 외모에 내심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나를 닮아서 여자 보는 눈이 높구만.’

그는 나름 개방적인 남자였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탓이었다.

건영 역시 한창때는 백인 여학생들과 여러 차례 사귄 경험도 있었다.

그런 탓일까?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소피아에게 악수를 청했다.

“듣던 대로 대단한 미인이시군요.”

그의 찬사에 소피아가 화사한 눈웃음을 내비치며 건영의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그런 모습에 민용은 내심 한시름을 덜은 기분이었다.

부친이 예상외로 소피아에게 호감을 표한 탓이었다.

민용은 소피아를 2층에 있는 카페로 올려보낸 뒤, 건영을 대동한 채 로열 스위트룸과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건영은 휘황찬란한 로열 스위트룸의 전경에 감탄한 기색을 내비쳤다.

“소문대로 대단한 곳이구나.”

“전 세계 최고의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할 수 있죠.”

건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좋은 집을 누구한테 얻은 게냐?”

“태수가 내준 집입니다. 집이 비었다고 이곳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이 곳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소피아라는 아가씨와 동거를 하는 거냐?”

민용이 결심한 얼굴로 솔직히 답했다.

“맞습니다.”

건영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처자식에게 미련이 없는 게냐?”

“별로 없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한 탓이죠.”

민용은 그리 말하며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영의 허탈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니놈이 정히 이혼을 원한다면, 반대하지 않으마.”

순간 민용의 발걸음이 갑자기 뚝 멈췄다.

그는 몸을 돌리며 확인하듯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인가요?”

“이 애비가 아들놈에게 헛튼 말이나 지껄이는 위인으로 보이는 게냐!”

민용의 얼굴에 격렬한 희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번져갔다.

“대신 소피아를 빼닮은 사랑스런 공주님이나 하루빨리 내 손에 안겨다오.”

“고맙습니다. 아버지.”

민용의 두 눈에 감격한 눈물방울이 그렁그렁하게 매달렸다.

***

월가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

루카스 부사장과 칼라일 사모펀드의 재무이사 짐 고든은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진지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루카스가 넌지시 운을 뗐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성장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도심지의 빌딩이 투자 메리트가 높죠.”

“안 그래도 서울 요지의 빌딩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러시다면 우리가 보유한 매물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짐 고든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루카스가 서류 가방에서 빌딩 카탈로그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고든은 백여채가 넘는 빌딩 매물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많은 매물을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한국의 큰손인 이태수 회장이 보유 중인 빌딩입니다.”

“이태수라는 남자가 그리 돈이 많습니까?”

“수십억 달러를 굴리는 억만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시간 되면 이태수 회장을 나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고든은 빌딩보다 이태수에게 더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

“원하신다면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고든은 빌딩 카탈로그를 세세히 살핀 뒤 긍정적인 언사를 흘려보냈다.

“이태수 회장의 빌딩 매물에 대해서 전향적인 자세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카스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마주 잡았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14층 드라마국으로 직행했다.

드라마국 한켠에 위치한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자 김용대 국장과 명우가 나를 반겼다.

정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앉자 용대와 명우가 좌우편 의자에 차례로 착석했다.

직후 대박 엔터 소속의 남녀 배우들이 장내에 나란히 등장했다.

모두 7명이었다.

내 시선은 왼쪽 끝자리에 서 있는 이쁘장한 여자에게 절로 향했다.

그때, 명우의 귓속말이 귓가에 은밀히 들려왔다.

“내 여자니까 무조건 합격이다.”

명우가 찜한 여자애였다.

그녀의 가슴 어림에는 김솔미란 이름표가 매달려 있었다.

곧바로 그녀를 지목하며 명령을 내렸다.

“김솔미 씨가 준비해온 연기를 해보세요.”

내 명이 떨어지자 나머지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쑥 물러났다.

그녀는 테스트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준비해온 대사를 치기 시작했다.

김솔미의 나 홀로 연기는 대략 20분 동안 이어졌다.

오디션을 끝마친 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용대의 의견을 구했다.

“어떤 거 같나요?”

용대는 촬영 카메라의 디스플레이에 이목을 집중한 뒤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발성도 쓸만하고 비쥬얼도 좋은 편에 속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화면 장악력도 있는 거 같네요.”

“화면 장악력이 무슨 말이죠?”

용대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기 배우들은 화면을 장악하는 능력을 타고납니다. 타고난 연기자라는 증표라고 할 수 있죠.”

“김솔미가 화면 장악력이 있는 겁니까?”

“네. 화면빨을 아주 잘 받는 얼굴입니다. 박초원 씨랑 비슷한 과라고 할 수 있죠.”

그제야 화면 장악력이 대충 이해되었다.

초원이는 실물보다 화면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여배우였다.

실제로 보는 것보다 화면에서 드러난 미모가 더욱 대단한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솔미도 실물보다 화면빨이 더 좋아 보였다.

“조연급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김용대의 확언이었다.

그는 드라마 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다.

용대가 이 정도로 말할 정도면 믿고 쓸만한 여배우라는 얘기였다.

명우 얼굴에 득의만면한 표정이 한가득 드리워졌다.

녀석은 으시대는 얼굴로 나를 쓰윽 쳐다봤다.

"그러니까 형만 믿으라고 했잖아. 하하...!"

"잘난 척은 그만하고 오디션에 집중해."

일침을 날리자 명우가 금세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녀석을 도외시한 채 다시 오디션을 진행했다.

오디션을 한참 동안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배우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긴 녀석에게 내심 기대했겄만 화면빨이 이상하게 받지 않았다.

게다가 발성도 옹알거리는 수준이었다.

배우로서 낙제점이었다.

단역 정도 밖에 맡길수 없는 역량이었다.

오디션을 끝마친 후 회장실로 올라가자 주 실장이 보고를 올렸다.

“연대 총동문회 측에서 회장님이 동문회에 참석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내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자 후원금을 노리고 연락을 취한 모양새였다.

“동문회고 나발이고 전혀 관심 없으니까 무조건 씹으세요.”

주 실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 보고를 올렸다.

“삼송그룹의 김건영 회장이 한남동 자택으로 회장님을 초대하셨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 무슨 일로 나를 청한단 말인가?

“나를 초대한 이유가 뭐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때, 민용의 잘생긴 얼굴이 심중에 떠올랐다.

녀석이 자기 부친에게 나를 초대해 주십사 청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 가면 되죠?”

“내일 저녁에 가시면 될 겁니다."

주 실장은 그리 답한 뒤 재차 입을 열었다.

"한가지 건의할 사항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게 뭐죠?"

"앞으로 저에게, 편하게 하대를 해주십시오."

"내가 반말을 하는 걸 원하나요?"

"그 편이 제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주 실장은 내 입에서 하대 조의 언사가 흘러나오는 걸 원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자세였다.

곧바로 그에게 편하게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반말을 해줄테니까 그런줄 알라구."

내 입에서 자연스런 하대가 흘러나왔다.

그런 탓인지 주 실장의 얼굴 가득 흡족한 표정이 드리워졌다.

"내일이 무슨 날이지?"

주 실장이 즉답했다.

“내일은 김건영 회장의 칠순 고희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정재계 거물들이 한자리에 총출동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죠.”

주 실장은 비서실장 노릇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는 게 제법 많았다.

“선물로 뭘 사갈까?”

“연세가 있으시니 산삼이나 한 뿌리 마련해서 들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산삼이라······?”

“네. 회장님.”

“그런데 산삼의 약효가 개뻥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과학적으로 약효가 증명된 사실은 없지만 한국 사람은 원래 산삼이라면 껌벅 죽지 않습니까?”

그의 말대로 노친네들에겐 산삼이 최고였다.

“산삼이 요즘 얼마나 하지?”

“년수가 오래될수록 비싼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

“1억 내외하는 산삼을 구해와.”

그러자 주 실장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비서실 진행비가 부족한 관계로······.”

“비서실 진행비가 벌써 떨어진 거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진행비를 어디에 쓴 거야?”

“대박 엔터의 자본금으로 갹출하는 바람에 그리되었습니다.”

물어본 내가 바보였다.

“진행비를 오늘 당장 충당해 줄 테니까 산삼이나 구해와.”

“넵. 회장님.”

주 실장을 내보내자마자 TS 인베스트먼트의 시티은행 계좌에서 50억을 인출해 비서실 공식 계좌로 이체했다.

다음 날 저녁.

주 실장과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한남동 저택을 내방했다.

주 실장이 나를 대신해 턱시도 차림의 아저씨에게 초청장을 건넸다.

집사 아저씨가 친절한 얼굴로 우리 일행을 안채로 안내했다.

잘 조경된 넓따란 정원으로 들어가자 관현악단의 경쾌한 왈츠곡이 들려왔다.

고희연이라 그런지 나름 신경을 많이 쓴 눈치였다.

집사가 본관 건물 앞에서 나를 향해 정중히 운을 뗐다.

“본관에는 회장님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수행원분들은 별관 건물에 따로 대기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주 실장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별관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사를 따라 본관 건물로 들어서자 TV에서 자주 보던 정재계의 거물들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좌측에서 들려왔다.

김민용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우리 집은 처음이지.”

“당연하거 아니냐. 하하······.”

민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녀석이 정중앙에 위치한 최고 재벌 아저씨에게 나를 소개했다.

“드림 엔터의 이태수 회장입니다.”

김건영이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아들놈에게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맨손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말씀 놓으십시오. 회장님.”

“초면에 그럴 수야 있나. 사람이 예의라는 게 있는데. 하하하······.”

김건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장내에 운집한 거물들의 시선이 내 일신에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금테안경을 얼굴에 착용한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특히 내 신경을 거슬렸다.

그 인간을 TV 뉴스에서 하도 많이 본 탓에 첫눈에 누군지 감이 왔다.

그는 차기 대권이 확실시되는 한국당의 이해창 대표였다.

나와 사적으로 별로 좋지 못한 관계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뼈있는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새파랗게 어린 친구가 연장자에게 함부로 주먹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됩 법한 일입니까?”

그러자 좌중의 남자들이 의아한 얼굴로 이해창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분위기가 묘해지자 민용이 내 팔을 잡아채며 재빨리 내실로 이끌었다.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내실에 들어가자 녀석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이해창이 왜 저러는 거야?”

“저 작자가 보낸 심부름꾼이 싸가지가 너무 없더라고. 그래서 참교육을 좀 해줬지.”

민용이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말이 정말이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이 걱정 반 감탄 반의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어쩔려고 그래?”

“그래봤자 나는 절대 못건들여. 미국 빽이 있거든.”

“니가 아무리 미국 빽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털어먹을 수 있다고. 더구나 너는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잖아.”

“잔소리는 그만하고, 한국에는 언제 들어온 거야?”

“일주일 정도 됐다.”

“앞으로 그룹에서 일하는 거냐?”

“그래야겠지.”

“부서가 어딘데?”

“당연히 미래전략본부에서 일해야지.”

“네 아버지가 허락했냐?”

민용이 자부심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한테 그룹을 물려주시겠다고 확답하셨다. 며칠 전에. 우하하하······!”

녀석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 비지니스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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