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제작 1 >
압구정 아파트로 향하는 차 안에서 미국에 있는 루카스 부사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삼송그룹의 김건영 회장이 삼성동 인근의 창신빌딩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직접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네. 그러니까 팀을 보내서 매각 작업을 해주세요. 미화 3억 달러 정도로 딜을 하시면 될 겁니다.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매각 대금은 HBC 은행의 TS 인베스트먼트 계좌로 전액 이체해 주십시오.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전액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최단 시간 내에 매각작업을 마무리 지어 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루카스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월가의 칼라일 사모펀드 측에서 회장님이 보유한 서울 빌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대략 50여 채 정도의 빌딩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단가가 어떻게 되죠?
-회장님이 구입한 가격보다 최소 3배 이상의 금액으로 매각을 성사시키겠습니다.
드디어 매각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었다.
칼라일 투자그룹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 세계의 기관 투자가와 아랍 왕족, 중국 재벌 등에게 자금을 유치한 후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제 쌀이 익어 밥이 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집에 도착한 뒤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 국내외의 계좌 잔고를 차례로 살폈다.
국내 은행에는 대략 1900억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었다.
그리고 해외에 소재한 은행에는 미화로 2억 달러 내외의 현금이 있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였다.
빌딩 매각 금액이 TS 인베스트먼트 계좌에 들어온 즉시 뉴욕 증시에 투자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천국의 사다리가 드디어 수목 밤 11시에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 채널에서 절찬리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밤 10시에 드라마를 편성하고 싶었지만, 원래 그 시간은 공중파 드라마가 장악한 시간대였다.
결국 울며 겨자 먹는 심경으로 밤 11시에 드라마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일까? 시청률이 그야말로 처참할 지경이었다.
1프로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절실했다.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성북동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성북동 대저택에 도착하자 남주와 그의 어머니가 말다툼하는 씬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주 엄마는 서민 출신 여주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장면을 연기 중이었다.
그녀는 남주에게 싸늘한 태도로 결혼을 극력 반대하는 언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허나, 뭔가 아주 심심했다.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그럴듯한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그러기를 문득 주방 한켠에 올려진 김장김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곧바로 김용대에게 지엄한 명을 내렸다.
“촬영을 중단시키세요.”
그러자 녀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볼멘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이유가 뭡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전혀 분간을 못 하고 있었다.
태도가 글러 먹었다.
내 입에서 절로 격한 어조가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내가 까라면 까야 하는 신분입니다. 내 명령에 일일이 토를 다실 생각이라면 드림 케이블에 지금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십시오!”
순간 용대가 온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로만 그러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세요. 한 번만 더, 내 명령에 반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면 그날부로 당신은 해곱니다!”
녀석이 기겁한 얼굴로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런 모습에 장내를 가득 메운 배우들과 스텝들이 하나같이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허리를 깊숙이 조아린 용대를 지나쳐, 메인 카메라 아래에 위치한 임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배우들과 스텝들을 둘러보며 날 서린 언사를 쏟아냈다.
“이 드라마는 내 돈으로 제작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내 명령에 절대복종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이자 배우들과 스텝들이 분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매서운 일갈을 토해낸 뒤 용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방에 있는 김장김치를 갖고 와!”
나는 오늘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용대 때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놈이 감히 나에게 눈깔을 희번득 거렸다.
앞으로 그놈에게 존댓말 따위는 없다.
신사적으로 대해 줘서 그런지 회장 알기를 개똥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자식이 내 명령을 세끼 피디에게 재차 전하고 있었다.
“김장김치 갖고와!”
세끼 피디가 주방으로 뛰어갈 찰나 격한 언사를 용대에게 내뱉었다.
“당신이 갖고 오라고!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거야?”
용대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주방으로 억지스런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녀석이 김장김치 한 통을 두 손으로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김장김치를 손에 쥐자마자 놈의 얼굴에 거세게 휘둘렀다.
철석······!
용대는 김치 싸대기를 직격당한 탓인지 벌게진 얼굴로 제자리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녀석을 싸늘히 노려보며 엄한 지시를 내렸다.
“내가 당신에게 김장 싸대기를 날린 것처럼, 남주 엄마가 남주에게 김장 싸대기를 날리는 장면을 촬영해! 지금 당장!”
순간 바닥에 엎어져 있던 녀석의 입에서 한 서린 외침이 터져나왔다.
“정말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이 개자식아! 너 혼자 다 해 처먹어라!”
용대는 그 말과 동시에 자기 옆에 덩그러니 놓인 김장김치를 내 얼굴을 목표로 거칠게 내던졌다.
철석······!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김치 싸대기를 처맞는 기분을 몸소 체험하기 위함이었다.
예상대로 김치 싸대기는 매운맛을 동반했다.
그렇지만 김장이 잘 된 탓인지 나름 맛이 좋았다.
굿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촬영장을 벗어나려는 용대의 등에 대고 지엄한 언사를 내뱉었다.
“촬영장을 벗어나면 당신은 무조건 해고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사과한다면 오늘 일은 불문에 부치지.”
녀석의 발걸음이 갑자기 뚝 그쳤다.
직후 어색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나직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배우들과 스텝들이 증인이잖아. 그런 판국에 내가 실없는 소리나 할 위인으로 보이나?”
용대의 동공이 태풍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욱하는 마음에 하극상을 자행한 행위를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이 결심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직후 내 발밑에 털석 무릎을 꿇었다.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럴 때는 너그럽게 녀석을 용서해야 한다.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일은 잊자고. 그럼 내가 말 한대로 촬영을 진행하지.”
그러자 용대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흘러내렸다.
주 실장은 내 얼굴과 양복에 묻은 김칫국물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는데 열중하는 한편 용대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걸 잊지 않았다.
“눈 아프겠다. 그만 째려봐.”
“회장님에게 감히 김치 싸대기를 날린 저 개자식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됐어. 이미 지난 일이야. 사람이 빡이 돌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 신경꺼.”
주 실장에게 촬영장 밖으로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결국 주 실장이 못 이기는 척 촬영장 밖으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간이 의자에 착석한 채 김치 싸대기 씬의 촬영장면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했다.
남주 엄마 역할을 맡은 중견 여배우는 팔에 힘이 없는지 자꾸 NG를 내고 있었다.
남주의 얼굴에 강력한 스매싱이 필요한 씬에서 힘없는 싸대기만 연신 날리고 있었다.
결국 남주 얼굴이 닭 벼슬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상황이 이에 달하자 남주 매니저가 용대에게 앓는 소리를 토해냈다.
용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촬영이 힘들 것 같습니다. 남주의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남주의 얼굴은 묵사발이 난지 오래였다.
“찍은 씬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씬을 사용하는 게 최선 같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내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와도 고깝게 생각 치 마십시오.”
“회장님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십니다. 그러니 편하게 말을 놓으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김 국장은 나를 호로자식으로 아는 겁니까? 이래뵈도 저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에요. 나보다 연장자에게 반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알면 다행이고요. 그리고 이수연 작가를 회장실로 데리고 오세요. 대본을 대폭 수정해야 할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
다음날.
회장실에 이수연 작가가 나타났다.
그녀에게 곧장 용건을 꺼냈다.
“대본이 너무 심심해요. 그러니까 시청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본을 손봅시다.”
수연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절대 그렇게는 못 해요!”
“당신은 내가 까라면 까야 하는 신분이에요.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말을 들어 처먹으세요.”
“정말 이런 식으로 막 나오실 건가요?”
“잘 아시면서 뭐 하러 물으세요?”
그녀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허나, 그녀의 반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수연이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하는 내용이 뭐죠?”
“여주에게 들이대는 서브 남주 역시 출생의 비밀을 만듭시다.”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환장하셨네요.”
“1프로도 안 되는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더 한 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잘나셨네요. 우리 회장님은······”
그녀의 입가에 조소 어린 비웃음이 노골적으로 내걸렸다.
“당신이 나를 비웃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대본이나 수정하십시오.”
“알았으니까 원하는 내용을 말해 보시라구요.”
그녀에게 내 속내를 밝혔다.
“서브 남자와 여주의 관계를 아빠는 다르지만 엄마는 같은 이부 남매로 설정하세요.”
수연이 얼척 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힐난하는 어조로 외쳤다.
“그런 식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간 방송심의에 걸린다고요!”
“그건 나중 문제니까 당신은 내가 하라는 대로 대본이나 수정해!”
격한 언성을 내뱉자 그제야 수연이 고분고분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대본을 직접 집필하시죠. 그편이 나을 거 같거든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안 됩니다. 그래서 당신을 작가로 고용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녀가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원하는 대로 대본을 고쳐줄 테니까 다시는 나를 부르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전화상으로 의견을 조율합시다. 나가세요. 이만.”
축객령이 떨어지자 그녀가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회장실에서 몸을 감췄다.
***
남주가 김치 싸대기를 맞는 장면이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 채널에서 절찬리에 방영되었다.
예상대로 김치 싸대기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을 독차지하며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런 덕분에 시청률이 금세 2프로 가까이 치솟았다.
더불어 온갖 패러디 사진과 영상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물밀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순조롭게 달성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수준 낮은 막장 드라마를 퇴출해야 한다는 여론도 넷상에서 회자 되었지만 그건 한때에 불과했다.
어차피 한국의 시청자들은 막장 드라마에 중독된 지 오래인 탓이었다.
***
김건영은 칠순 고희연을 치르자마자 후계 구도를 확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고질적인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심혈관 질환이 발병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김건영은 오래전부터 정처 소생의 김민용을 후계자로 생각했다.
후처 소생의 아들들은 애당초 후계 구도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민용에게 삼송그룹의 비밀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송랜드의 지분을 과반수이상 증여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경우, 그룹의 승계 구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삼송랜드는 복잡한 순화출자 구조로 뒤얽힌 삼송그룹 계열사들을 최정점에서 컨트롤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삼송랜드의 지분을 차지하는 자가 삼송그룹의 절대자로 등극하는 구조였다.
김건영은 자택의 서재로 그룹의 법무실장을 불러들였다.
그는 법무실장 입회하에 삼송랜드 지분을 과반수 이상 김민용에게 증여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공증 절차를 거친 후 민용에게 지분 양도 증서를 전달하게.”
“넵. 회장님.”
법무실장은 증여 계약서에 인감도장과 자필 사인을 기입한 뒤 서류 가방에 소중히 챙겨 넣었다.
< 드라마 제작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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