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워필리스 2 >
주 실장과 경호원을 대동한 채 엑사일 클럽으로 들어갔다.
“클럽 매니저에게 방금 들어온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봐. 알려주지 않으면 알아서 돈질을 하라고.”
주 실장이 듬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에 있는 클럽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10분 뒤, 주 실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12번 룸으로 들어간 거 같습니다.”
“12번 룸이 어디에 있지?”
“3층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넵. 회장님.”
13번 룸에 자리를 잡은 뒤 경호원에게 지엄한 명을 내렸다.
“12번 룸을 살펴봐.”
백만 원 수표 2장을 건네자 경호원이 공손히 수표를 받아서 품에 챙겼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경호원은 그리 화답하며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30분 후.
경호원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웨이터에게 물어본 결과 12번 룸에 방송사 관계자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놈들이 그녀를 성희롱하는 거냐?”
“웨이터 말로는 분위기가 아주 야리꾸리 하다고······.”
경호원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김소민은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성 상납을 감행한 모양새였다.
척이면 착이었다.
볼 것도 없었다.
내가 오래전에 침을 발라놓은 그녀를, 엄한 놈들이 더럽히는 꼴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주 실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경호팀을 모조리 불러들여. 지금 당장!”
10분 후.
십여 명에 달하는 건장한 남자들이 룸 안에 나타났다.
그들을 향해 엄한 눈초리를 내비치며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12번 룸에 내가 아끼는 여자가 있다. 그 방에 있는 개잡놈들을 신속하게 제압한 후 그녀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경호원들이 결연한 얼굴로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회장님.”
경호원들은 그 말을 끝으로 옆방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갔다.
직후 기물이 부서지는 소리와 남자들이 비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우당당탕······!!
-흐헉······!
-크헉······!
-아악······!
미니 드레스 차림의 소민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나중에 말해주지.”
짤막하게 답한 뒤 우두커니 서 있는 주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알아서 뒤 처리를 해. 필요하면 김태섭 차장 검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염려 마십시오. 회장님.”
주 실장은 그리 화답하며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회장님을 자택으로 안전하게 모셔.”
“넵.”
경호원들의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소민을 대동한 채 클럽 밖으로 걸어 나갔다.
롤스로이스 뒷자리에 소민을 억지로 밀어 넣은 뒤 경호원에게 명을 내렸다.
“압구정 아파트로 차를 몰아.”
“네. 회장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냐?”
“사장님이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신경 끄세요.”
소민이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창녀처럼 몸을 팔 생각이었나?”
순간 그녀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분노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조신한 척하지 마라. 네년도 출세에 환장한 그저 그런 년일 뿐이니까.”
소민은 내 신랄한 언사에 쉬이 반박하지 못했다.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진작에 내 여자가 됐으면 창녀 짓을 안 해도 탑배우가 됐을 거 아니냐.”
그리 말하며 입가에 담배 한개피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그녀를 향해 훅 내뿜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박초원도 내 덕분에, 1년 사이에 탑 여배우가 된 거 봐라. 그러니까 못 이기는 척 내 여자 해라. 그러면 만사가 편해질 거다.”
소민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랑 동거하자. 그렇게만 해주면 드라마와 영화에 여주로 꽃아줄게. 그리고 고가의 다이아와 명품 선물도 주기적으로 선물해 줄게.”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허나, 소민은 내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소민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머릿결과 가녀린 어깨를 보드랍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에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내 키스를 피하지 않았다.
소민의 달달한 혀는 내 혀를 뜨겁게 맞이했다.
그녀를 압구정 아파트에 데리고 왔다.
우리는 이심전심이었다.
곧바로 격정적인 정사에 돌입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 소민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잠자리를 즐긴 사실이 창피했는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 모양이었다.
곧바로 그녀의 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세 차례 가자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소민이에요.
-인사도 없이 그냥 가는 게 어딨어.
-별로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오늘부터 나랑 동거하자.
-생각 좀 해보고요.
-왜?
-알다시피 저는 다른 기획사 소속이에요. 그 문제부터 해결 돼야 사장님이랑 함께할 수 있어요.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게. 그러니까 오늘 곧바로 대박 엔터랑 계약을 체결하자.
-소속사에서 거액의 위약금을 요구할 거예요.
-계약금을 얼마나 받았는데?
-1천만 원이요.
-껌값이군. 암튼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까 저녁 7시까지 내 아파트로 와라.
-저는 아빠 엄마랑 같이 살아요. 동거는 힘들 거 같아요.
-네 부모도 나처럼 돈 많은 회장님이랑 동거를 같이하면 충분히 이해하실 거다.
-돈이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하지. 너도 내가 돈이 많아서 잠자리를 같이했잖아.
갑자기 수화기에서 무거운 침묵이 흘러내렸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지. 두말 안 한다. 내 여자가 되려면 오늘 저녁 7시까지 내 집에 와라.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이다. 김소민.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명우에게 연락을 넣었다.
-김소민한테 전화해.
-왜?
-계약을 체결하라고.
-다른 기획사 소속이잖아?
-소속사에 위약금을 물어줘.
-소민이랑 말이 다 된 거냐?
-그래. 내 여자 하기로 했으니까 알아서 케어해라. 끊는다.
***
서울 시내 병원
CBS 드라마 국장인 엄상철은 병실을 찾은 담당 경찰에게 분노한 얼굴로 버럭 외쳤다.
“CCTV를 확보하지 못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얘깁니까?”
“공교롭게도 사건이 발생한 그날 밤에 CCTV가 고장이 났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그러나 엄상철은 경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룸에 들어와서 폭행을 행사한 개자식들에게 콩밥을 먹이란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CCTV 자료가 전무한 탓에 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국장님.”
“클럽의 기도 자식들이 그놈들과 한 패거리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놈들 먼저 조사해 보라고요!”
엄상철은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룸에 나타난 괴한들에게 몰매를 맞았음에도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한 탓이었다.
“이런 식으로 부실 수사를 계속하신다면 보도국에 연락해서 당신네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요!”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수사가 어렵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그날 밤.
엄상철이 입원한 병실에 날카롭게 생긴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엄상철에게 검찰 신분증을 내보였다.
“김태섭 차장 검삽니다. 엄상철 씨에게 드릴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엄상철은 일이 묘하게 돌아감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섭의 입에서 을씨년스런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엄상철 씨와 다수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여배우 지망생을 성폭행했다는 첩보가 접수되었습니다.”
상철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내몰렸음을 직감했다.
그런 탓일까?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병상에서 내려오자마자 김태섭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검사님. 정말입니다!”
김태섭은 냉정한 얼굴로 상철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뒤 서슬 퍼런 언사를 내뱉었다.
“이번 일을 죽을 때까지 함구하십시오. 한 번만 더 경찰을 귀찮게 하신다면 당신은 물론이고 룸에서 여배우 지망생을 성추행한 인사들을 모조리 검찰로 소환할 생각이니까!”
상철이 죽다 살아난 표정을 지으며 울부짖듯 답했다.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이번 일을 입도 벙끗하지 않겠습니다. 검사님. 믿어주십시오!”
“좋습니다. 이번 한 번만 당신을 용서해 드리죠.”
태섭은 상철의 머리통을 검지로 툭툭 건드린 후 장내에서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
김소민은 지난 2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에 단역으로 두세 차례 출연한 게 전부였다.
수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쓸만 한 배역을 따내는데 끝내 실패했다.
소속사가 제대로 힘을 실어주지 못한 탓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속사는 그녀에게 성 상납을 노골적으로 강요했다.
소민은 소속사의 횡포에 나름 저항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는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방송 관계자들에게 몸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정해진 수순이었다.
소민은 방송국 고위 간부들이 운집한 룸에서 온갖 성추행을 당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더러운 손길에 온몸을 내맡긴 채 자포자기하는 심경으로 술을 따랐다.
바로 그때, 룸 안에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태수가 보낸 경호원들이었다.
경호원들은 방송국 관계자들을 삽시간에 제압한 후 소민을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태수를 다시 만났다.
솔직히 소민은 그에게 감사한 심경이었다.
처절하게 망가지려는 찰나 태수가 그녀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소민은 그가 새삼 대단한 남자임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녀는 태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의 막강한 영향력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
합정동 인근의 카페에 김명우와 중년 남자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커피를 음미하며 진지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위약금으로 7천만 원을 지급해 주십시오.”
명우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언사를 내뱉었다.
“너무 욕심이 과하시군요. 소속 여배우를 성 상납으로 내돌리는 주제에 그게 할 소립니까?”
남자가 뜨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닙니다.”
명우는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천만 원 수표 한 장을 올려놨다.
“이 돈을 거부하시면 우리 조 사장님은 성 상납을 알선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실 겁니다.”
순간 남자의 얼굴에 똥 씹은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지금 나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남자가 고민하는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뒤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서 명우에게 건넸다.
그는 김소민의 전속 계약서를 대충 훑은 뒤 라이터를 꺼내 계약서류에 불을 붙였다.
명우는 활활 타오르는 계약서를 재떨이에 집어 던지며 나직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앞으로 김소민에게 절대 연락하지 마십시오.”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김용대 국장을 상암동 인근의 밥집으로 호출했다.
우리는 육개장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기 시작했다.
용대가 썰을 풀었다.
“HBO 방송을 비롯한 미국의 방송들은 각양각색의 장르물과 더불어 선 굵은 역사물을 시청자들에게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우리 드림 케이블도 HBO처럼 선 굵은 역사 드라마에 도전해야 합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겁니다.”
내 확언에 용대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수사물뿐만 아니라 의학물, 판타지와 퓨전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를 제작하려면 그에 걸맞은 작가진들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제가 나름 생각을 해봤는데, 드림 케이블도 영화 제작사처럼 시나리오 작가진을 대거 구축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탄탄한 시나리오 작가진을 구축한다면 미국 드라마처럼 수준급의 장르물을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용대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HBO 방송국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시나리오 작가진만 해도 수백 명이 넘습니다. 한국처럼 막장 대본이나 쓰는 작가 나부랭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거죠.”
용대의 말대로 탄탄한 시나리오 작가진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였다.
“돈을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실력파 시나리오 작가들을 대거 섭외하세요.“
< 타워필리스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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