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2 아레나 1 >
지난 1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 탓인지 해외여행이 간절했다.
답답한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더불어 겸사겸사 미국의 드라마와 영화 산업을 내 두 눈으로 직접 시찰할 계획이었다.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주 실장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한 달 정도 미국으로 출장을 떠날 예정이니까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해놔.”
“한 장만 예약할까요?”
“아니. 두 장을 예약해. 김소민도 데리고 갈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회장님.”
주 실장을 내보낸 뒤 소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폰에서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민이에요. 사장님.
-앞으로는 회장님이라고 호칭해라.
-네. 회장님.
-나는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인간이야. 모두 내 앞에서 설설 기지.
-알고 있어요. 드림 케이블 회장님이잖아요.
-그런 애가 말끝마다 사장님으로 나를 호칭한 거냐?
-습관이 들어서 그런 거예요. 미안해요.
-너는 나에게 지극정성을 다해야 한다.
-저에게 원하시는 게 뭐죠?
-내 여자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내가 원하는 건 그거야.
-회장님에게 최선을 다하면 저를 탑 여배우로 만들어 주실 건가요?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리 공을 들이는 거잖아. 순진한 척 굴지 말고, 프로처럼 생각하고 행동해. 이 바닥은 독한 년놈들만 살아남는 곳이니까.
-언제까지 회장님 여자로 살아야 하는 거죠?
-니 나이가 지금 몇 살이지?
-한국 나이로 23살이요.
-5년 동안 내 여자로 살아라. 원한다면 계약서를 만들어주마.
-금전적인 보상도 해주실 건가요?
-얼마를 원하는데?
-여배우는 돈 들어갈 데가 많잖아요. 품위 유지비 같은 거요.
순진했던 소민이 2년 사이에 많이 변한 모양새였다.
차라리 그편이 상대하기에 더 편했다.
-매년 품위 유지비 조로 3억을 줄게. 어때?
-좋아요. 대신 동거는 힘들 거 같아요.
-왜?
-엄마랑 아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부모가 무섭나?
-무섭다기보다는 그분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알았다. 그럼 오늘 중으로 회사에 나와라.
-내일 가면 안 될까요?
-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거든요.
-그럼 내일 오전 10시까지 상암동 드림 케이블로 와.
-네. 회장님. 내일 봐요.
***
다음날.
소민이 회장실에 나타났다.
그녀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소파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다.
소민은 섹시한 정장 차림이었다.
그런 탓인지 탄력 넘치는 뽀얀 허벅지가 내 두 눈을 아리도록 파고들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치맛자락을 끌어 내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이미경 대리가 커피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든 채 장내에 나타났다.
이미경은 소파에 앉아 있는 소민을 매의 시선으로 살피며 테이블 위에 커피 두 잔을 얌전히 올려놓았다.
뒤돌아서 나가려는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용수 법무실장을 호출해.”
“네. 회장님.”
소민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뒤 커피를 입안에 한 모금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계약서를 읽어봐라. 마음에 들면 자필 서명을 기입하고.”
그녀가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똑······!
“하용수 실장입니다.”
“들어오세요.”
하용수는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테이블 위에 계약서를 올려놓았다.
“나가보세요.”
“넵. 회장님.”
용수는 소민을 은근히 살피며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그녀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읽어봐라.”
“네.”
소민은 스폰 계약서를 한참 동안 살핀 뒤 맨 밑 하단에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지갑에서 1억짜리 수표 3장을 꺼내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계약금 3억이다. 네가 원하면 고급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주마.”
“아파트는 필요 없어요. 당분간 엄마 아빠랑 같이 살 생각이거든요.”
“그럼 됐고. 밥은 먹었냐?”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밥 먹으러 나갈까?”
“아뇨. 됐어요. 별로 입맛이 없네요.”
“왜?”
“그냥 밥맛이 없어요.”
소민은 그리 말하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그게 뭔데?”
“저는 드라마에 하루빨리 출연하고 싶어요.”
그녀는 드라마 출연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드라마 출연 일정을 잡자.”
“진심이신가요?”
소민이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녀에게 내 능력을 제대로 선보일 찬스였다.
곧바로 인터폰을 눌렀다.
-김용대 드라마 국장을 불러들여.
-네. 회장님.
김용대가 회장실에 나타났다.
그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소민을 의아스런 얼굴로 쳐다본 후 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소민을 손짓하며 용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끼는 여자애니까 주말 미니시리즈에 여주로 꽂으세요.”
용대가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많이 놀란 눈치였다.
소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자기를 소개할 줄 미처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이름은 김소민이고, 나이는 만으로 21살입니다. 대박 엔터 소속이고,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아주 아끼는 여자니까 김 국장이 알아서 키워보세요.”
용대는 내 의중을 확인하자 공손한 얼굴로 소민에게 인사했다.
“드라마 국장 김용대입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딸뻘인 그녀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런 탓인지 소민이 수줍은 얼굴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할게요. 국장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소민 씨.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마음 편히 먹으십시오.”
용대는 내 마음에 드는 화법을 구사했다.
내가 아끼는 소민에게 점수를 따내기 위해 나름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장르물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로맨스 막장 물을 주말 시리즈에 편성해 봐. 20부작 정도로.”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자존심 드센 잘난 작가는 배제하고 신인 작가에게 대본을 맡겨.”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김용대를 내보낸 후 소민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자마자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뒤편에 휴게실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몸이나 풀자.”
그녀가 빨개진 얼굴로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만끽한 후 오후 5시경 회사를 빠져나왔다.
소민을 품에 안고 인파로 붐비는 홍대 거리를 여유롭게 거닐었다.
길가를 오가는 젊은 친구들의 시선이 그녀의 아리따운 자태에 집중됐다.
더불어 나를 향해 격렬한 질시의 눈빛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나이 많은 내가 소민을 돈으로 꼬셨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긴, 나는 40대였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 커플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돈이 억수로 많은 재벌이었다.
당연히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했다.
소민을 데리고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내 여자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소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팔등신 초미녀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정연희에 맞먹는 마스크와 라틴 미녀에 버금가는 쭉쭉빵빵한 여체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성격마저 고왔다.
내가 환장하는 스타일이었다.
지하철 객차에 올라타자 장내에 운집한 남정네들의 시선이 소민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어딜 가더라도 사내들의 뜨거운 눈빛을 한 몸에 받는 처지였다.
소민은 무덤덤한 얼굴로 내 품에 안긴 채 사랑스러운 입김을 불어 넣고 있었다.
우리는 압구정역에서 하차한 후 현도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파트에 들어가자마자 또다시 격렬한 사랑 놀음에 몰입했다.
그녀는 내 열정을 무지막지하게 자극하는 애욕의 비너스였다.
다음날.
소민을 대동한 채 LA행 퍼스트 클래스에 몸을 실었다.
***
미국 방송 산업의 메카는 헐리웃으로 유명한 LA와 뉴욕이 대표적이었다.
LA 지역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거대 세트장들이 광활한 부지에 우후죽순격으로 널려 있었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거의 여의도만 한 부지가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돈으로 환산할 경우 조 단위에 달할 정도였다.
바로 이런 점이, 미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를 석권한 배경이었다.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저들처럼 엄청난 부지에 드라마와 영화 세트장을 만들고 싶었다.
솔직히 내 재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양질의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다 해도 수요가 부족했다.
한국 내수 시장의 한계였다.
그렇지만 언제가 됐든 반드시 LA에 못지않은 거대 세트장을 만들기로 굳게 다짐했다.
내 사전엔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LA 세트장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한 후 소민을 대동한 채 뉴욕 행 퍼스트 클래스에 몸을 실었다.
퍼스트 클래스는 매우 한산했다.
소민의 탐스러운 여체를 격렬하게 탐닉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채 수동적으로 나를 받아들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조숙녀 티를 저 멀리 내던지며 내 중심을 뜨겁게 받아들였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길가를 오가는 택시를 잡아탄 뒤 곧바로 트럼프 타워로 직행했다.
소민은 로열 스위트룸의 휘황찬란한 광경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아파트가 너무 아름다워요.”
그녀는 홀린 듯한 얼굴로 테라스로 우아하게 걸어 나갔다.
소민은 센트럴파크와 뉴욕의 고층 빌딩 숲을 차례로 조망한 뒤 내 품에 포근히 안겨들었다.
그녀는 내 어마어마한 재력에 흠뻑 취한 눈치였다.
소민을 번쩍 안아 든 채 더블 사이즈 침대가 오롯이 자리한 내실로 발길을 돌렸다.
***
다음날.
소민을 로열 스위트룸에 남겨둔 채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트램프 회장과 오찬회동이 예정된 탓이었다.
우리는 푸아그라와 캐비어 등을 안주 삼아 달달한 샴페인을 물처럼 들이켰다.
그러기를 얼마 후 본격적인 담론에 접어들었다.
“삼송그룹과 빌딩 계약을 체결했어요. 그리고 월가의 사모 펀드들과 연쇄적으로 접촉 중이니 조만간 나머지 빌딩들도 모두 매각 작업이 끝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그의 노고를 치하하자 트램프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전용기와 헬기를 회장님에게 저렴한 가격에 넘겨드리고 싶은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원하시는 가격에 인수하겠습니다.”
트램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며칠 후, 트램프의 전용기와 헬기를 시세보다 저렴한 1300만 달러에 일괄 매입했다.
***
소민과 뉴욕 브로드웨이를 내방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소민은 얼굴 가득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는 뮤지컬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뮤지컬이 그리 좋냐?”
“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을 본고장에서 봐서 그런지 감동이 엄청나요.”
그녀는 뮤지컬을 정말 좋아했다.
광적일 정도였다.
그런 탓인지 공연히 끝나자마자 내일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발권 창구로 재빨리 달려나갔다.
***
다음날.
오늘도 우리는 브로드웨이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제 봤던 공연이라 별다른 감흥이 전무했지만, 소민은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눈치였다.
그녀는 오늘도 ‘앵콜‘을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쉼 없이 쏟아부었다.
짝짝짝······!
그녀는 오페라의 유령과 브로드웨이의 화려함에 홀딱 반한 눈치였다.
여자라서 그런 것 같았다.
트램프 타워로 들어갈 찰나,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폰에서 김명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초원이 뉴욕으로 출국했다.
-왜?
-너를 만나려고.
-말리지 그랬어?
-그년이 내 말을 듣겠냐?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네가 소민을 스폰 하는걸 눈치챈 모양이더라.
-누가 입을 나불거린 건데?
-원래 이 바닥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동네 아니냐.
범인은 명우였다.
척이면 착이었다.
-네가 나불거린 거냐?
수화기에서 갑작스런 침묵이 흘러나왔다.
입이 싼 명우가 본의 아니게 소민에 대해서 썰을 푼 모양이었다.
-이 자식아. 입 좀 조심해.
-미안. 술김에 나도 모르게 그냥······ 헤헤헤······.
-암튼 그년은 이제 내 알바 아니니까, 뉴욕 집 주소를 절대 알려주지 마라.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
상암동 인근의 O2 아레나 공사현장에 SN 엔터의 박수만 회장과 드림 방송사의 김재연 예능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수만은 웅장한 타원형의 구조물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김재연 국장에게 입을 열었다.
“이 공연장이 영국 런던의 오투 아레나를 벤치마킹한 건물인가요?”
“벤치마킹 정도가 아닙니다. 런던의 오투 아레나와 쌍둥이처럼 똑같은 공연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공사비가 얼마나 든 겁니까?”
“부지매입과 설계비, 공사비를 총합할 경우 거의 1100억에 육박하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 건물입니다.”
박수만이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문대로 이 회장님 재력이 어마어마한 모양입니다.”
김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조 단위의 사모펀드를 굴린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우리 회장님은 배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니 겸사겸사 저녁식사라도 같이하십시오.”
“김 국장님이 자리를 좀 만들어 주세요.”
박수만은 그리 말하며 김재연에게 고급스런 시계함을 건넸다.
“태그 호이어 한정판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뭘 이런 걸 다 선물하시고 그러십니까. 하하하······!”
재연은 좋아죽는 얼굴로 빈 손목에 태그 호이어 명품 시계를 찬 뒤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조만간 회장님과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김 국장님만 믿겠습니다. 하하······.”
박수만은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인 HOC와 신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상암동 오투 아레나 공연장에서 HOC와 신와의 콘서트를 열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태수의 적극적인 협조가 선결 조건이었다.
태수는 한국 연예 산업의 신흥강자로 급부상 중인 인물이었다.
그와 친교를 다지는 것이 여러모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 O2 아레나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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