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박 2 >
회사를 파하자마자 김소민을 압구정 아파트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함께한 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민은 내 품에 안긴 채 열망에 가득한 언사를 내뱉었다.
“공중파 미니 시리즈에 출연시켜 주세요.”
“원하는 배역을 말해 봐.”
“주연에 못지않은 조연이 되고 싶어요.”
“돈이 많이 들겠군.”
“그래서 회장님에게 부탁하는 거잖아요.”
“미니 시리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려면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최소 억대의 금품을 건네야 할 거다.”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회장님은 저를 충분히 키워줄 수 있잖아요.”
그녀의 말이 정답이었다.
내 입장에서 소민을 탑 여배우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한번 알아볼게. 그러니까 회사 연습실에서 차분히 연기 연습이나 하고 있으라고.”
“고마워요.”
소민은 그리 화답하며 내 입술에서 촉촉한 키스를 해왔다.
***
장준기 전무를 대동한 채 충무로 인근의 ‘정필름‘이란 영화사를 내방했다.
사무실 소파에 자리를 잡자 정필름의 정해민 대표가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제작할 예정인 친우는 경남 지방의 조폭 조직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로서 충무로를 대표하는 탑스타 장동영과 유오철이 출연을 확정한 상탭니다.”
“감독은 누구죠?”
“충무로에서 명성이 자자한 박찬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감독과 배우진이 매우 탄탄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였다.
“원하시는 투자금액을 말씀하시죠?”
넌지시 운을 떼자 정해민이 은근한 얼굴로 즉답했다.
“총제작비 중에서 120억 정도를 지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총제작비를 말해 보세요.”
“대략 170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장준기 전무에게 질문을 던졌다.
“170억 중에서 120억 정도를 투자하면 퍼센티지로 얼마나 되는 거죠?”
장준기는 품에서 전자계산기를 꺼낸 뒤 나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겼다.
“대략 71프로 안팎입니다.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정해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흥행에 성공한다면 회장님에게 최소 수십, 수백억 이상의 순이익을 안겨다 줄 겁니다.”
“그거야 일이 잘됐을 경우겠죠.”
“박찬우와 장동영, 유오철이 콤비를 이루는 영홥니다. 무조건 대박이 확실합니다. 회장님.”
“나도 흥행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71프로에 달하는 투자비를 지원하는 만큼 그에 합당한 반대급부를 정 대표께서 제시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만.”
“원하시는 바를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우두커니 서 있는 장준기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 대신 요구사항을 정해민에게 전달했다.
“대박 엔터 소속 배우들을 최소 열 명 이상 조연으로 기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히말라야 영화 배급사를 통해 ‘친우‘라는 영화를 전국 영화관에 배급하겠다는 추가 계약을 체결해 주십시오.”
장준기의 말을 끝까지 들은 정해민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물론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내 돈을 받아먹으려면 이 작자는 그에 합당한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한다.
기브 앤 테이크였다.
“마음의 결정이 되시면 장준기 전무에게 연락을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정필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장준기와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충무로 인근의 밥집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테이블을 여러 개 점거한 채 늦은 점심을 함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정준기가 넌지시 운을 뗐다.
“대박 엔터에 소속된 배우들을 드림 케이블이 제작하는 드라마에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게 어떻습니까?”
장준기는 대박 엔터의 실 소유주가 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문제는 김용대 국장과 논의할 일이니까 장 전무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준기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회장님에게 항명한 전력이 있는 김용대를 뭐하러 안고 가시려는 겁니까? 이번 기회에 그놈을 직위 해제하시죠?”
장준기와 김용대는 드림 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가는 양대산맥이었다.
당연히 서로 간에 라이벌 의식이 대단했다.
“장 전무는 다 좋은데, 가끔씩 쓸데없는 헛소리를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거 나쁜 습관입니다. 하루빨리 고치세요.”
그제야 녀석이 알아먹은 얼굴로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사죄의 변을 토해냈다.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잘 아시면, 앞으로 그런 잡소리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당신은 드림 박스와 배급사, 영화 투자에나 집중하세요. 케이블 방송은 신경 쓰지 마시고.”
“넵. 회장님.”
“볼일이 있으니까 회사에는 알아서 혼자 들어가세요.”
그리 말하며 주 실장과 경호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밥집 앞에 정차된 롤스로이스에 몸을 싣자 옆자리에 동승한 주 실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국면은행 강남지점.”
주 실장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경호원에게 내 명을 전달했다.
“국면은행 강남지점으로 차를 몰아.”
“네. 실장님.”
1시간 뒤, 롤스로이스가 국면은행 강남지점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리자 지점장이 나를 맞이하기 위해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점장에게 내 용건을 말했다.
“지하 금고로 갑시다.”
“찾으실 금품이 있으십니까?”
“네. 조금.”
그리 말하며 지하 금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금고 사물함을 열자 007 가방이 드러났다.
007가방을 열자 수북이 쌓인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가 망막 가득 스며들었다.
예금증서는 액면가 1억 원짜리였다.
증서를 한 웅큼 집어서 들고 온 서류 가방에 집어넣었다.
은행 1층으로 올라간 뒤 점장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봅시다.”
“넵. 회장님. 그럼 살펴 가십시오.”
점장은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롤스로이스에 올라타자마자 주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성심빌딩으로 차를 몰아.”
“김명우 대표에게 연락을 할까요?”
“알아서 해.”
“네. 회장님.”
성심 빌딩으로 가는 차 안에서 주 실장이 명우에게 전화를 넣었다.
-회장님이 지금 대박 엔터로 가십니다. 그러니 어디 가지 마시고 사무실에 계십시오.
주 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명우가 뭐래?”
“알겠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얌전히 사무실에 있을 모양이었다.
성심 빌딩에 도착한 뒤 4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한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누가 먹을 커피냐?”
명우에게 묻자 녀석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묻지 말고 어여 처먹어라.”
“말하는 꼬라지가 왜 그래?”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그러지. 알면서 뭘 물어.”
“내가 준 자본금을 벌써 까먹은 거야?”
“빌딩 임대료에 배우들 계약금과 뒤치다꺼리하는 비용을 생각해 보라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커피를 입가에 한 모금 들이킨 후 서류 가방을 테이블 위에 툭 내던졌다.
“그게 뭐냐?”
“네놈이 환장하는 돈이다.”
녀석이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서류 가방을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명우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묻어나왔다.
“20억이네. 고맙다. 친구야. 하하······.”
“헛물켜지 말고 그 돈으로 방송사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해. 그러라고 주는 돈이니까.”
그리 말하며 입가에 한 담배를 물자 녀석이 은근한 얼굴로 라이터 불을 붙여 주었다.
“로비를 하려면 중개인이 있어야 하잖아.”
“유한성 PD에게 말을 해놓으니까 그놈이랑 말을 맞춰봐.”
“유한성이 누군데?”
“NBS 방송국의 책임 PD.”
“나름 끗발이 있는 놈인가 보네.”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라.”
“걱정 붙들어 매라. 형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그리고 소민이도 공중파 주중 미니 시리즈에 주, 조연으로 꽂아봐.”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냐.”
“내 여자가 되는 조건으로 그렇게 해주는 거니까 너는 신경 꺼라.”
“초원이 년이 길길이 날뛰겠구만.”
“그년은 알아서 달래고.”
“그게 쉽지가 않아. 질투가 대단한 년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중간에서 잘해야지. 대박 엔터 지분을 받고 싶으면.”
녀석이 두 눈이 별처럼 번뜩였다.
“정말 나한테 대박 엔터 지분을 줄 거냐?”
“나중에 회사 규모를 키우면 스톡옵션 방식으로 10프로 정도 지분을 떼어줄게. 그러니까 네 회사라고 생각하고 잘 키워봐. 돈은 알아서 지원해 줄 테니까.”
명우가 감격한 얼굴로 나를 징그럽게 껴안았다.
“고맙다. 친구야! 정말 너밖에 없다! 하하······!”
“기분 더러우니까 어여 떨어져라. 한대 처맞기 싫으면.”
그제야 녀석이 제정신을 차린 얼굴로 내 품에서 재빨리 떨어졌다.
명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SN 엔터처럼 아이돌을 키워보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아직 시기상조다. 일단은 배우 라인업을 제대로 구축하는 게 급선무야.”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 PD 연락처는 주 실장이 줄 거다. 그러니까 오늘 바로 그놈이랑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
“오케이. 그럼 나중에 보자.”
잠시 후 주 실장이 명우에게 유한성의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건넸다.
***
회사에서 업무를 끝마친 후 압구정 아파트에 들어가자마자 거실에 있는 데스크탑을 켰다.
뉴욕 증시에 접속하자 애플 주식이 전례 없는 신고가 행진을 연출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애플과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의 주식에 총액 170억 달러 안팎을 투자한 상태였다.
MS와 아마존, 구글 등은 완만한 상승세를 구가한 반면 애플은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시장에 출시한 덕분에 연일 상한가 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이팟은 MP3 음원에 문외한이었던 미국인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국의 MP3 시장이 불법 음원 다운 문제로 제대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황과 대조적인 반응이었다.
원래 MP3 종주국은 한국이었다.
허나, 한국의 MP3 업체들은 영세한 규모인 탓에 돈을 주고 음원을 다운 받는 시스템을 시장에 구축하지 못했다.
반면 애플은 돈을 주고 음원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아이튠즈를 대대적으로 론칭한 덕분에 아이팟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거대한 자본으로 중무장한 애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미 시장과 유럽을 중심으로 애플의 아이팟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을 국내 소비자들과 업체 관계자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전형이었다.
암튼 내 입장에선 애플의 아이팟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떼돈을 버는 구조였다.
애플 주식 역시 대규모로 매집한 덕분이었다.
전 세계 IT 산업을 선도하는 4개 업체 주식은 내 거대한 밑천이었다.
그들의 주식이야말로 황금의 엘도라도로 나를 인도하는 길잡이였다.
MS, 아마존, 애플, 구글 등의 주식에 전 재산을 투자한 지 석 달 만에 내 주식가치는 거의 200억 달러에 달할 지경이었다.
다가오는 2002년이 더할 나위 없이 기다려지는 심경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드림 케이블의 적자가 5백억 대에 육박한 탓이었다.
드림 박스에서 벌어들인 돈을 케이블 방송국의 적자를 메우는데 소진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드림 케이블 방송은 먼 훗날을 바라보고 투자해야 하는 업종이었다.
지금은 비록 공중파에 밀려서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 하고 있었지만 종국에는 공중파를 능가하는 방송가의 절대패자로 등극할 것이 확실시되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
오전 10시경 회장실에 들어가자 김재연 예능국장이 면담을 신청했다.
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공손히 서 있는 김재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면담을 요청한 이유가 뭐죠?”
“회장님에게 제안할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혹시 아메리칸 아이돌이란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미국에서 대박이 난 오디션 프로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우리 드림 케이블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론칭하는 게 어떻습니까?”
< 대박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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