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78화 (3/200)

< 치킨 게임의 서막 2 >

럿데 시네마 소공동 본사.

차민우 사장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기용 기조실장을 호출했다.

차민우의 입에서 매서운 일갈이 터져 나왔다.

“드림 박스를 작살낼 묘안을 하루빨리 찾아!”

“솔직히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사건건 변명만 하지 말고,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해!”

“알다시피 드림 박스의 오너인 이태수는 자금력이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지금 현재로선 마땅한 수단이 없습니다.”

“동생 놈이 날이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판국이야. 이번 기회에 영화시장을 장악해야 아버지의 눈에 든다고!”

차민우는 그룹의 대권을 놓고 이복동생과 후계자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영화시장을 장악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친 마당에 이제 와서 물러선다는 건 말이 안 돼!”

김기용의 얼굴에 비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속 시원히 말해 봐. 그 방법이란 게 뭐야?”

“삼송전자처럼 우리도 치킨 게임을 하는 겁니다.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무한 출혈경쟁을 펼치는 거죠.”

“입장권을 대폭 인하하자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장님.”

차민우의 만면 가득 고심하는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치킨 게임의 기간과 적자 규모 등을 자세히 파악해서 보고서로 제출해.”

“이번 주 금요일까지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태수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그 점도 알아보고.”

“넵. 사장님.”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거실에 놓인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애플, 아마존의 주식은 여전히 순항 중이었다.

그 덕분에 내 주식가치가 덩달아 210억 달러 가까이 급증했다.

1년 6개월 만에 거의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시세차익을 보고 있었다.

모두 내가 잘난 탓이었다.

내 입가에 절로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투자 한번 잘한 댓가로 수조 원 대의 투자수익을 올린 까닭이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실 벽면에 내걸린 대화면 TV로 시선을 돌렸다.

TV에서는 드림 케이블의 음악방송이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남녀 아이돌 그룹이 소녀팬과 삼촌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 덕분에 무대 분위기는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른 상황이었다.

허나, 애석하게도 음방 무댓가 너무 협소했다.

그 점이 사뭇 불만족스러웠다.

곧바로 김재연 예능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김재연의 목소리가 폰에서 들려왔다.

-음방 무댓가 너무 작아.

-저도 잘 알지만 음방을 녹화할 만한 장소가 그곳 외에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오투 아레나가 있잖아.

-오투 아레나는 무댓가 너무 커서 음방을 녹화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다음부터는 무조건 오투 아레나에서 음방을 녹화해.

-회장님. 오투 아레나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기료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말끝마다 토를 다는 버릇, 그거 아주 나쁜 거다. 그러니까 내가 까라면 닥치고 까. 알겠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재연아. 형은 말 잘 듣는 애들을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감히 형이랑 맞먹을 생각 절대 하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끊은 뒤 침실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소민이 나를 뜨겁게 반겨주었다.

“뭐 하다가 오신 거예요.”

그녀는 내 품에 안겨들며 호기심 그득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몰라도 된다.”

그 말을 끝으로 깊은 꿈나라로 들어갔다.

***

늦은 밤, 가회동 고급 주택.

차민우의 발걸음이 고풍스런 접견실로 향했다.

그는 접견실의 문을 노크한 뒤 그 안으로 들어갔다.

호피 무늬 가죽이 덧씌워진 묵직한 의자에 칠순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나타난 차민우를 향해 쇠가 긁히는 듯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연락도 없이 오밤중에 무슨 일이냐?”

“아버지에게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할 말이 뭐야?”

“아시다시피 한국 영화시장은 연평균 80퍼센트 이상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 중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한국 영화 시장을 완벽히 장악할 생각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연간 수천억 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니놈의 희망 사항에 불과해.”

차필수 회장은 부정적인 견해를 노골적으로 피력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조금만 도와주시면 영화 시장을 제패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차 회장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차민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치킨 게임을 이용해서 업계 2인자인 드림박스를 시장에서 몰아낼 계획입니다.”

창밖을 향하던 차 회장의 눈길이 다시 민우 쪽으로 되돌아갔다.

직후 그의 입에서 나직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치킨 게임?”

“네. 삼송전자처럼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업계 라이벌을 무너뜨리는 방법입니다.”

“니놈 말대로 출혈경쟁을 하려면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서 구할 생각이냐?”

“그래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 아닙니까?”

그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부친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허나, 차 회장은 가타부타 말없이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

김태섭은 검찰의 노른자위인 중앙지검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중앙지검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든든한 연줄이 필요한 곳이었다.

결국 그는 이태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김태섭의 유일무이한 스폰이었기 때문이다.

***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 룸으로 들어가자 김태섭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인사는 나중에 하고 배가 고프니까 회 먼저 먹읍시다.”

그리 말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직후 테이블 위에 놓인 먹음직한 참치회를 젓가락으로 한 웅큼 집어서 초장에 잔뜩 찍어 먹었다.

참으로 꿀맛이었다.

간만에 회를 먹어서 그런 거 같았다.

회와 튀김으로 배를 채운 뒤 달짝지근한 정종을 음미하며 김태섭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은근한 어조로 넌지시 운을 띄웠다.

“3월 달에 검찰 정기인사가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힘을 써주십사 부탁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차장 검사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태섭이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승진 문제가 아니라 중앙지검으로 옮기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꼭 중앙지검으로 옮겨야 하는 부득이한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요?”

“중앙지검은 검찰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입성하면 유력자들과 안면을 틀 기회가 많이 생깁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태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중앙지검은 재벌과 상류층, 고위 관료들의 수사를 전담하는 곳입니다. 이 정도면 이해가 되셨습니까?”

“그들의 약점을 빌미 삼아 크게 한몫 잡으실 생각입니까?”

적나라한 언사를 쏟아내자 녀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정종을 입안으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직후 솔직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제가 정치권으로 들어가려면 유력자들의 약점을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합니다. 일종의 보험이죠.”

김태섭은 말 그대로 나 외에도 여러 힘 있는 사람들에게 보험을 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은 내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끝까지 남아야 한다.

“미안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서 계속 있으세요. 알아서 어련히 검사장 타이틀을 달아드릴까.”

태섭이 아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중앙지검으로 옮기면 회장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녀석은 선을 넘고 있었다.

머슴 주제에 주인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어오르는 강아지는 따끔하게 밟아줘야 말을 들어 처먹는다.

“주제넘게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십시오. 내 비위를 거스르면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없는 얘기로 치부하겠습니다.”

날 서린 언사를 쏟아내자 녀석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한테 거의 70억 이상을 받아 처먹었으면 똥인지 된장인지 정도는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가타부타 말없이 녀석을 뚫어지게 노려보자 그제야 태섭이 눈치를 챈 얼굴로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사죄의 변을 쏟아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차후에도 감히 나에게 주제넘은 언행을 일삼는다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르실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일식당을 박차고 나왔다.

***

시내 모처.

김태섭과 하용수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섭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태수 그 인간이 아주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더라.”

“이 회장에게 뭐라고 한 겁니까?”

“중앙지검으로 옮길 수 있게 힘 좀 써달라고 했더니 아주 난리를 치더라니까.”

용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이 회장은 요즘 할 일이 산더미에요. 선배님한테 신경 써줄 여력이 없어요.”

“그 작자가 힘 좀 써주면 중앙지검으로 옮기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그 양반은 자존심이 강해요. 남이 자기에게 명령조의 부탁을 하면 본래 성깔이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부탁을 하시려면 아주 저자세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냥 이번 기회에 그 인간을 들이박을까?”

“그러다 선배님만 다칩니다. 그러니 엄한 생각 하지 마시고, 이 회장 말이나 잘 들으세요.”

태섭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회장의 비리 자료를 한 다발이나 모아놨어. 수틀리면 검찰에 투서하면 그만이라고.”

“선배님도 연루된 일 아닙니까? 그러다 정말 크게 다쳐요.”

하수용이 펄쩍 뛰며 만류하자 그제야 태섭의 입에서 얌전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그냥 하는 말이다. 자식아.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거냐?”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선배님도 검찰을 나오시면 이 회장한테 빌붙을 운명이지 않습니까?”

“안다. 알어. 이제 그만 술이나 빨자.”

태섭은 그리 말하며 수용의 빈 잔에 양주를 콸콸 따라 부었다.

***

오후 무렵, 상암동 오투 아레나에 도착하자 소녀팬들이 구름처럼 운집한 채 남돌 그룹의 무대에 뜨거운 환호성을 쏟아내는 광경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오투 아레나는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이었다.

그런 탓으로 공연장 관객석은 대다수 텅 빈 상태로 남아 있었다.

아무리 아이돌 그룹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음방에 참여할 수 있는 소녀팬들은 한정적인 탓이었다.

1층 로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김재연 국장을 손짓하자 그가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오늘 소녀팬들이 몇 명이나 입장했지?”

“대략 2천 명 내욉니다.”

생각보다 적은 규모였다.

아무리 못해도 5천 명 이상의 소녀팬들이 오투 아레나에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형 남돌 그룹이 출연하지 않은 탓에 팬들을 모집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SN 엔터와 지왑 엔터, 아이지 엔터에 남돌 그룹을 출연시키라고 딜을 넣어봐.”

“각자 스케줄이 있는 탓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투 아레나 개관 기념으로 딜을 넣으면 되잖아.”

그러나 김재연은 여전히 자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내가 직접 대형 기획사 수장들에게 연락을 넣기로 마음먹었다.

회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주한수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SN 엔터와 지왑 엔터, 아이지 엔터에 차례로 전화를 돌려.”

“넵. 회장님.”

잠시 후, 3사 수장들과 차례로 전화통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강태호는 일거리가 뜸해지자 이태수 생각이 간절했다.

시답잖은 일을 처리한 댓가로 그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꼬박꼬박 받아 챙긴 덕분이었다.

허나, 그건 모두 예전 일이었다.

이태수는 1년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김명우에게 일거리를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태수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명우를 통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 치킨 게임의 서막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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