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81화 (6/200)

< 유고(有故) 2 >

비서실에 인터폰을 넣었다.

-삼송전자의 김민용 전무와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를 넣어.

-네. 회장님.

몇 시간 뒤, 민용과 가까스로 연락이 됐다.

폰에서 녀석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소식 들었다. 기분이 어때?

-몰라. 아직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간다.

-하긴,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오죽하겠냐?

-전화상으로 말을 하기는 그러니까 삼송병원 영안실로 와라.

-알았다. 그럼 있다 보자.

곧바로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한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롤스로이스 뒷자리에 차례로 몸을 실었다.

직후 주 실장의 힘찬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삼송병원으로 차를 몰아.”

“네. 실장님.”

롤스로이스 차창을 스치는 주변 풍경에 절로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이명복 선거운동원들의 열성적인 선거유세에 내심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면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운동 자체를 거의 안 하고 있었다.

선거에 들이는 돈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서울시장에 누가 당선될 거 같아?”

주 실장이 즉답했다.

“당연히 이명복이 당선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방송과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여당 후보를 3배 이상의 지지율 격차로 앞서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주 실장의 반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이명복은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나름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이룩한 덕분이었다.

그가 발매한 자서전이 불티나게 팔린 게 그 증거였다.

“당신이 보기에 이명복은 어떤 사람 같아?”

“현도건설에 입사한 지 단 7년 만에 대표이사 타이틀을 단 걸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닌 건 틀림없는 사실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명복은 정조영을 배신하고 김영오 밑으로 기어들어 간 인물 아닌가?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이번에도 주 실장은 막힘없이 대답을 해왔다.

“그 당시에 정조영은 김영오를 상대로 무모한 도전을 한 겁니다. 급조한 국민당 간판으로 김영오를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이명복은 정조영이 창당한 국민당 대신 김영오의 한국당으로 입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김영오의 대선 유세에서 정조영의 대선출마를 재벌 회장의 노욕이라고 맹비난한 인물이었다.

이명복은 정 회장의 뒷등에 칼침을 놓은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주군을 배신한 이명복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거야?”

그리 말하며 서늘한 눈빛을 의도적으로 내비치자 주 실장이 사뭇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이명복이 정 회장을 배신한 행위는 백번 욕을 먹어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헤헤······.”

녀석은 그리 화답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만약 정 회장 입장이었다면 이명복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나는 말이지. 배신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거든. 그러니 주 실장도 행여나 나를 배신할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하지 마라.”

주 실장이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복명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어느새 우리를 태운 롤스로이스가 삼송병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삼송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나를 정중히 맞이했다.

그들은 영안실로 나를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영안실에 들어가자 상주 복장을 차려입은 김민용이 쓸쓸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녀석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렇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민용의 곁에 앉은 채 깊은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녀석은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과 친인척들을 상대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뒤편에 있는 식당에서 육개장이나 한 그릇 해라.”

“그럼 있다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옆에 붙어 있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 실장을 비롯한 수행원들과 육개장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들이부을 무렵 명우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냐? 정정하던 양반이 하루아침에 돌연사하다니!”

“호들갑 떨지 말고 술이나 한잔 빨아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술이나 따라라.”

고개를 끄덕이며 빈 잔에 소주잔을 콸콸 따른 뒤 녀석에게 내밀었다.

명우는 소주잔을 시원하게 원샷한 뒤 얼큰한 육개장을 입안으로 허겁지겁 밀어 넣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진득하게 먹지 않고.”

“여기 있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왜?”

“유성원 개자식이 인테리어비용을 반환하라고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어.”

“그냥 주면 되잖아?”

“말도 마라. 그놈이 적게는 20억에서 많게는 50억까지 각각의 업체들 마다 가격을 매겨서 소송을 걸었다고.”

“소송을 건 업체가 몇 갠데?”

“모두 13개 업체다.”

“총액을 말해 봐?”

“370억 내외다. 그뿐만이 아니라고. 빌딩 내외를 건달들이 점령한 지 오래다.”

“유성원이 동원한 애들이냐?”

“당연한 걸 뭐하러 묻냐.”

황당할 노릇이었다.

그때, 명우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김 차장을 동원해야 할 거 같다.”

“강태호 먼저 써먹어. 김태섭은 히든카드로 남겨둬야지.”

명우가 앓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유성원한테 겁을 먹었는지 이번 일에 아주 미온적이더라.”

“정말이냐?”

명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호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만나서 뭐 하려고?”

“알아듣게 따끔하게 얘기해야지.”

“하긴, 그놈이 나는 우습게 생각해도 너는 무서워하니까······ 알았다. 내가 조만간 자리를 만들어볼게.”

주변을 둘러보자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저마다 육개장을 들이키며 소주잔을 나누는 광경이 보였다.

그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삼송그룹의 차기 회장인 김민용에게 모였다.

나와 명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민용이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재벌로 등극한 건가?”

명우는 그리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요상한 눈빛이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재수 없으니까.”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줄 수 있냐?”

“뭔데?”

“니 재산이 대체 얼마냐?”

“위험한 질문이다. 알면 다치니까 관심 끊어라.”

“돈이 그 정도로 많은 거냐?”

녀석은 내 재산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이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만 나가자.”

“민용이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지.”

“영안실에서 봤잖아.”

“그래도 한번 따로 봐야 할 거 아니냐?”

명우는 민용한테 미련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럼 나 먼저 갈 테니까 민용이 만나면 급한 일 때문에 먼저 갔다가 전해.”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큰한 육개장을 입안 가득 들이부었다.

***

한남동.

김민용은 접견실 테이블 상석에 좌정한 채 배석한 유한영 부회장과 이기호 미래전략 본부장을 향해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상속세가 어느 정도 나올까요?”

이기호 본부장이 즉답했다.

“작고하신 회장님의 계열사 지분과 현금, 부동산 등을 상속하실 경우 최소 3조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하셔야 할 겁니다.”

민용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더군다나 회장님이 차명으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이 국세청의 레이더에 포착될 경우 상속세액이 대폭 늘어날 우려마저 있습니다.”

유한영 부회장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 절세 방법을 나름 생각해 봤습니다.”

“그게 뭐죠?”

“아시다시피 삼송그룹의 핵심은 삼송전자 지분입니다. 회장님은 생전에 삼송전자 지분을 차명으로 17퍼센트 안팎 보유하고 계셨습니다.”

민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다 아는 얘기니까 본론을 말해 보세요.”

“만약 국세청에서 회장님의 차명지분을 파악한다면 상속세가 대폭 늘어날 겁니다.”

“그래서 하시고 말이 뭡니까?”

민용은 뻔한 얘기를 하는 유한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회장님의 차명 지분을 소리소문없이 인수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 아는 얘기를 뭐하러 하시는 거죠? 그럴 거면 말을 하지 마세요!”

민용의 입에서 퉁명스런 어조가 흘러나오자 유한영이 송구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이기호가 그럴듯한 해법을 제시했다.

“삼송전자의 차명지분은 비밀 계열사인 아세안 전기와 동방 디스플레이, 중아제약, 명도건설 등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세안 전기는 삼송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명목상으론 강일수 대표이사 소유였지만 그는 바지사장에 불과한 존재였다.

나머지 업체 역시 바지사장이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었다.

당연히 실제 사주는 작고한 김건영 회장이었다.

“그들 업체가 보유한 삼송전자 지분을 전무님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네가 인수하는 게 최선입니다. 물론 서류상으론 정상적인 매매계약으로 위장해야 합니다.”

민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바지사장들에게 인감도장을 받아오세요.”

“이미 인간도장을 확보한 상탭니다.”

민용의 얼굴에 처음으로 화색이 돌았다.

알아서 척척 일을 해내는 이기호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보고를 올릴 사안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오 집사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갑자기 오 집사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뭡니까?”

그때,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유한영이 이기호 대신 입을 열었다.

“회장님은 생전에 해외 광산과 유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자원개발회사를 차명으로 설립하셨습니다.”

이기호가 말을 덧붙였다.

“오 집사가 자원개발회사의 명목상 대표이삽니다.”

“오 집사가 안 보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요?”

이기호와 유한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 집사가 수상합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오 집사를 의심하고 있었다.

“자원개발 회사의 가치가 어느 정도죠?”

“한화로 7조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민용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정말 7조 원 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요?”

“오 집사가 관리하는 자원개발 회사는 호주와 남아공의 다이아와 금, 구리 등의 광산과 베네수엘라와 인도네시아 유전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민용은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7조 원이었다.

“지금 당장 삼송그룹의 전 역량을 동원해서 오 집사의 행방을 알아내세요!”

“넵. 전무님.”

민용은 유한영과 이기호를 내보낸 뒤 삼송전자 대표이사인 김성철을 접견실로 불러들였다.

“반도체 부문의 적자가 어느 정도죠?”

“작년 4분기까지 대략 9천억 정도의 적자를 봤습니다.”

민용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왜 그렇게 적자 폭이 심한 겁니까?”

“아시다시피 치킨 게임을 진행하는 탓입니다. 라이벌 업체들을 도산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처집니다.”

“그렇지만 미국과 일본,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덤핑 공세를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무님.”

“나는 무의미한 출혈경쟁에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DDR 램의 가격을 정상화 시키세요.”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민용이 분노한 얼굴로 김성철을 쏘아봤다.

“지금 나에게 항명하시는 건가요?”

“메모리 반도체 치킨 게임은 작고한 회장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전무님도 회장님의 유지를 받드시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철의 깐깐한 말대답에 민용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아버지의 유지를 지키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전무님.”

민용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김성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이만 돌아가세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전무님.”

김성철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민용의 심사가 잔뜩 뒤틀렸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라는 김성철의 언사가 심히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두 눈에 스산한 한기가 스쳤다.

***

정진용은 유성원 회장의 개였다.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끓는 물 속에라도 뛰어들 정도로 충성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유성원에게 맞아 죽을 운명이었다.

그의 심사를 거스른 탓이었다.

유성원은 유흥가 황제답게 수많은 여자들을 두루 섭렵한 변태 색마였다.

특히 그는 업소녀보다는 일반 여성들을 더욱 좋아라했다.

그런 탓으로 평범한 여대생은 물론이고 유부녀까지 서슴지 않고 손을 댔다.

그중에는 정진용의 와이프도 포함됐다.

더구나 유성원은 자신이 섭렵한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하는 악취미의 소유자였다.

진용의 와이프도 마찬가지였다.

< 유고(有故)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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