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83화 (8/200)

< 협잡 2 >

태호는 죽은 듯이 널브러진 성원을 뒤로 한 채 별장의 지하 밀실로 내려갔다.

그는 처참 지경의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초지종을 알아봐라.”

“넵. 큰형님.”

태호는 부하를 시켜 남자를 인근의 병원으로 긴급호송시킨 뒤 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춘천 인근의 별장을 내방했다.

주 실장과 경호원들을 별장 밖에 남겨둔 뒤 안채로 걸어 들어갔다.

강태호는 나를 지하 밀실로 안내했다.

밀실로 들어가자 역겨운 오물 냄새가 코끝을 강타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바닥을 쳐다보자 똥오줌이 한가득 널려 있었다.

“이 많은 배설물을 유성원이 싸지른 겁니까?”

“아닙니다. 회장님.”

“그럼 누가 싸지른 배설물이죠?”

“정진용이란 자가 이곳에 한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해 보세요.”

그리 말하며 똥오줌 위에 죽은 듯이 널브러진 유성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태호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진용은 유성원 밑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던 해결사였습니다. 그런데 유성원이 정진용의 마누라에게 흑심을 품었나 봅니다. 그 바람에 정진용이 홧김에 검찰과 국세청에 유성원을 고발한 모양입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유성원은 나름 검찰 인맥이 두터운 탓에 도리어 정진용이 당한 거 같습니다.”

태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는 유성곤을 손가락질하며 매서운 눈빛을 드러냈다.

“이 개자식은 부하 마누라를 따먹은 것도 모자라서 이곳에 가둬놓고 죽을 때까지 패 죽일 심산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못돼 처먹은 놈은 처음 보는 거 같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다 겪은 태호가 그리 말할 정도면 유성원은 타고난 악당이라는 의미였다.

자비가 불필요했다.

이런 개자식은 매가 약이었다.

“애들을 시켜서 죽지 않을 정도로 줘 패세요. 대신 얼굴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조만간 검찰에 보내야 하니까.”

“넵. 회장님.”

잠시 후 장내에 처절한 곡소리가 차량하게 메아리쳤다.

-으아아아아악······.재발······.그만······.크아아악······..!

***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춘천 인근의 병원을 내방했다.

장진용을 조촐하게 위문하기 위함이었다.

응급처지를 받아서 그런지 진용은 상태가 나름 괜찮아 보였다.

물론 전신에 골절상을 당한 탓에 온통 붕대 차림이었지만.

진용에게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말했다.

“유성원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정진용 씨를 우연찮게 발견했습니다. 암튼 내 덕분에 목숨을 구하셨으니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해 주십시오.”

“저에게 원하시는 게 있나요?”

“유성원 밑에서 다년간 험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개자식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있으시면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진용이 경계하는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적인지 아군인지 나름 판가름하는 모양새였다.

“안심하십시오. 나 역시 유성원에게 쌓인 게 많은 사람이니까. 어차피 진용 씨가 믿을 만한 사람은 현재로선 나밖에 없을 겁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제야 녀석이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여서 나에게 건넸다.

메모지를 살피자 지하철역 사물함 번호와 비번이 적혀 있었다.

“유성원이 여자들을 강간한 동영상과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담겨 있는 비밀 장부가 그 사물함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 대신 유성원을 처벌해 주십시오!”

진용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성원 문제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회장님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성원의 뒤를 봐주는 검사가 누군지 알아봐 주십시오.

-파악되는 즉시 회장님에게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

중부지검.

김태섭은 형사부 부장검사인 이종우에게 넌지시 명령을 내렸다.

“유흥가 황제로 통하는 유성원의 뒤를 누가 봐주는지 한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차장님.”

다음날 오후 무렵.

중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인 이종우가 차장실의 문을 노크했다.

직후 문 안에서 김태섭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이종우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긴급 보고를 올렸다.

“강남 지검장인 우명석이 유성원의 뒤를 봐주는 거 같습니다.”

“확실한 정본가?”

“우명석의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부장 검사가 제 사시동깁니다. 그놈한테 전해 들은 얘깁니다.”

“얼마나 받아먹었지?”

“동기 말로는 최소 5억 원 이상을 받아 챙긴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단 말이지.”

“넵. 차장님.”

“수고했다. 이만 나가봐.”

그는 곧바로 이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남 지검장인 우명석이 유성원에게 수억대의 뇌물을 받아먹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강남 지검장을 철저히 단도리 하겠습니다.

-유성원이 뇌물을 빌미로 지검장을 협박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겠죠. 그렇지만 회장님만 조금만 신경을 써주신다면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돈 달라는 얘깁니까?

-그렇게 들으셨다면 심히 죄송스럽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럼 이렇게 하십시다.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강남 지검장과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최단 시일 내로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그럼 김 차장만 믿겠습니다.

김태섭은 태수와 통화를 끝낸 뒤 강남 지검장실로 직통전화를 넣었다.

-중부지검의 김태섭 차장입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선배님.

그들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김 차장이 웬일로 나에게 연락을 다 한 건가?

-그냥 겸사겸사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에게 소개해 줄 유력자도 있고.

-유력자?

-네. 드림 케이블과 드림 박스의 오너인 이태수 회장이 선배님을 소개해 달라고 어찌나 성화를 부리던지······.

수화기에서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 양반이 나를 보자고 했단 말인가?

-네. 그러니 오늘 저녁 7시까지 만사 제쳐두고 서초동에 있는 청해 일식당으로 오십시오.

***

저녁 무렵, 서초동 인근의 청해 일식당으로 들어가자 매니저가 나를 뒤편 룸으로 안내했다.

수행원들을 물린 후 룸 안으로 들어가자 50대 초반의 남자와 김태섭이 나를 반겼다.

돈깨나 밝히게 생긴 양반이 나를 향해 넙죽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리 화답하며 녀석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김태섭이 사전에 언질을 한 탓인지 우명석은 알아서 설설 기었다.

우리는 곧장 질펀한 술판을 벌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문밖에 대기 중인 주 실장에게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사과박스 5개를 우명석 지검장님의 차 트렁크에 실어!”

“넵. 회장님.”

명석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

김태섭과 우명석은 룸살롱에서 2차를 즐기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회장님은 돈이 정말 엄청 많은 분이십니다. 유성원이란 뒷골목 양아치와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그러니 이번 사건에서 선배님은 얌전히 손을 떼세요.”

명석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놈이 나에게 뇌물을 줬다고 동네방네 떠들까 봐 겁이 난다고.”

“선배님답지 않게 왜 그리 물러터진 겁니까? 일단 그놈을 잘 구슬린 후에 감빵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그만 아닙니까?”

“골치가 아프구만.”

“암튼 이 회장님의 따스하신 손길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분에게 함부로 들이대시면 경제수석처럼 하루아침에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으니까.”

순간 우명석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쟁취한 검사장 타이틀에 결코 흠집을 남길 수 없었다.

전관예우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

명우를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술을 함께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 대신 신은서랑 스폰 계약을 체결해.”

“뭘 그렇게 복잡하게 사냐. 그냥 속 편하게 관계를 즐겨. 그럼 되잖아.”

“임마. 그건 니 스탈이고, 형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니까. 나는 확실하게 좋다고!”

명우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계약금 4억에 기간은 3년이고, 고급 아파트와 연간 품위 유지비로 2억 제공. 그리고 계약 기간 중에 바람을 필 경우 위약금 조항도 삽입해.”

“진짜 너는 지독한 인간이다.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라구!”

“그러든가 말든가, 형이 시킨 대로 스폰 계약서를 만들어서 신은서의 싸인을 받아와.”

“계약금은 어쩌고?”

“대박 엔터의 업무추진비로 충당해.”

“회삿돈을 거덜 낼 생각이냐?”

“오버하지 마라. 대박 필름의 자본금만 해도 5백억이 넘는 판국에 그런 헛소리가 나오냐!”

“대박 엔터와 필름은 엄연히 다른 업종이야. 잘 알면서 왜 그래?”

녀석이 볼멘 목소리를 쏟아냈다.

“대박 엔터와 필름의 공동대표가 왜 그리 엄살이 심하냐. 그거 나쁜 버릇이다. 제발 하루빨리 고쳐라.”

“으이구······ 말을 말자. 이 자식아!”

명우는 그리 말하며 진토닉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 사업 얘기를 해보자.”

“또 할 말이 남았어?”

“당연히 많이 남았지. 충무로의 흥행 배우와 실력파 감독을 모아서 대작 영화를 제작해 봐.”

“안 그래도 주승기한테 이미 말을 해놓은 상태다.”

“주승기가 누구야?”

“전직 시네필름 전무.”

“시네필름?”

“응. 잘나가는 영화를 여럿 제작한 회사야.”

“주승기는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장준기가 소개하더라고. 유능한 인물이라고.”

“전무 출신이라면 최소 사십 대 이상이라는 말인데······.”

“우리 나이 또래다. 사람도 괜찮아. 말이 잘 통하더라고.”

“그래도 빠릿빠릿한 젊은 사람이 낫지 않냐?”

“형한테 대박 필름을 맡겼으면 통 크게 신경을 끊어라. 안 그래도 잘하니까.”

“니놈이 미덥지 못하니까 그런 거지.”

“아휴······ 앓느니 내가 죽는다. 죽어.”

“볼멘소리는 그만하고, 하루빨리 흥행 배우들이나 섭외해.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들한테 쓸 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독촉해.”

“접수. 이제 일 얘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빨자.”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빈 잔에 진토닉을 콸콸 따라 부었다.

***

대박 엔터가 입주한 성심 빌딩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은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4층 대표실로 곧장 올라갔다.

명우는 나타난 은서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녀가 소파에 앉자 명우가 본론을 내뱉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이 회장이 스폰 계약을 원하고 있거든.”

은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회장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너는 아직 이 회장을 잘 모르나 본데 그 친구는 뭐든지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미야. 그래서 여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스폰 계약을 체결하지.”

명우는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계약서를 올려놓았다.

“한번 자세히 읽어봐라. 마음에 안 들면 계약 안 해도 좋아.”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인 뒤 계약서를 유심히 살폈다.

계약서에서 시선을 거둔 은서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제가 계약서에 싸인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명우가 솔직히 답했다.

“대박 엔터에서 쫓겨나겠지. 그리고 더 이상 이 회장의 도움을 받지 못할 거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녀는 결심한 얼굴로 앵두 같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질끈 깨물었다.

직후 계약서 하단에 자필 서명을 기입한 뒤 명우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는 스폰 계약서를 서류 가방에 집어넣은 후 책상 서랍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서 은서에게 전달했다.

“봉투 안에 4억 원에 달하는 수표가 들어 있으니까 요긴하게 써라.”

그녀는 봉투를 핸드백 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은 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중에 봬요. 사장님.”

“살펴 가라.”

“네.”

명우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은서의 아찔한 뒤태를 만끽한 뒤 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은서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태수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녀는 성공의 사다리를 제공한 태수를 결코 외면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절박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은서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오래전에 풍비박산 난 상태였다.

더구나 거액의 사채마저 지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집에서 돈을 벌만 한 사람은 자신 외에는 전무한 형편이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방방곡곡을 도망쳐다니는 부친과 병든 엄마, 허구한 날 사고만 치는 오빠가 전부였던 까닭이다.

그녀는 태수가 계약금으로 제공한 4억 원을 고스란히 사채업자들에게 넘겼다.

그 덕분에 만성적인 채무에서 하루아침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태수를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돈이 엄청 많은 재벌 회장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보다 나이가 무려 스무 살 이상 많은 탓이었다.

***

< 협잡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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