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85화 (10/200)

< 출혈경쟁 2 >

교도소에 수감된 유성원은 백방으로 구명운동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강남 지검장인 우명석에게 연일 독촉 전화를 보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돈으로 매수한 교도관의 폰을 이용해 우명석에게 하루 종일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운 좋게 우명석과 통화가 연결됐다.

유성원은 다짜고짜 험한 언사를 쏟아냈다.

-내 돈을 10억씩이나 받아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시면 어쩝니까? 검찰과 언론에 이같은 사실을 떠든다면 검사장님의 앞날에 먹구름이 나타날 겁니다.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면 쓰나. 내가 알아서 조치를 취하는 중이니까 구치소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 말을 하신 지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습니다. 그러니 제발 하루빨리 구치소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요.

-이 친구야. 증거가 너무 명백한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말인가?

-검사장님이 힘을 써주시면 증거 불충분으로 얼마든지 나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알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

***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

우명석 검사장의 입에서 앓는 듯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유성원이 나를 들들 볶는다니까. 김 차장이 뭔가 해결책을 마련해 보라구.”

김태섭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울 구치소에 뱁새가 있다고 하더군요.”

“뱁새를 동원해서 유성원의 입을 막자는 말인가?”

“다른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방법이 너무 과격하잖아? 명색이 검사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그놈이 주딩이를 함부로 나불대면 선배님의 신상에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통 크게 지르시죠.”

명석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 차장이 그놈의 입을 막아.”

“뱁새를 회유하려면 가석방이 필요합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가 뱁새를 만나봐.”

태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종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

교도소 면회실.

김태섭은 면회실을 관리하는 교도관을 내보낸 뒤 눈꼬리가 날카롭게 찢어진 남자에게 용건을 꺼냈다.

“유성원을 자살로 위장해서 처리하면 네놈을 1년 안에 가석방으로 빼주마.”

뱁새가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럼 내가 할 일 없이 네놈에게 흰소리나 할 위인으로 보이냐?”

“그건 아니지만······.”

뱁새는 말꼬리를 흐리며 태섭의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확실한 보증을 원하는 건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검사님 말만 믿고 일을 벌이기엔 위험부담이 크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가석방은 기본이고 착수금 조로 1억을 제 처남의 통장에 입금해 주십시오.”

“돈도 달라는 말인가?”

“유성원은 만만찮은 인물입니다. 비록 지금은 저와 같은 죄수 신분이지만 나름 거물로 통하는 인간 아닙니까?”

“돈을 입금하면 일을 시작할 건가?”

“그전에 한 가지를 더 확답해 주십시오.”

“그게 뭐지?”

“제가 조만간 법무부에 가석방을 신청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검사님이 교도소장에게 저를 가석방 후보로 천거해 주십시오.”

태섭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면회실을 나서자마자 김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세히 말해 봐.

-회장님의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칼잡이를 반드시 회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놈이 1억 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태수에게 네 얘기를 전하마.

-그러지 말고 선배님이 자유로이 운용하시는 자금으로 돈을 주십시오. 매번 회장님에게 손을 벌리는 게 염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미안한데, 나도 돈이 없다고. 그러니까 태수한테 직접 말해 봐라.

-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선배님.

태섭은 통화를 끝마친 후 교도소장의 사무실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는 교도소장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단재영을 가석방 후보로 법무부에 추천해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이미 가석방 후보 선정이 끝난 상황입니다.”

태섭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교도소장을 향해 가시 돋친 언사를 쏟아냈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에게 금품을 받은 대가로 핸드폰과 담배, 약 등을 공급한다는 첩보가 중부지검에 숱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교도소장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처신하십시오.”

소장이 죽다 살아난 얼굴로 태섭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말씀대로 단재영을 가석방 후보로 올리겠습니다.”

“그럼 소장님만 믿겠습니다.”

태섭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그날 밤.

태섭은 강남 인근의 개인 사무실로 우명석을 불러들였다.

“아무래도 형님이 1억을 준비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명석이 불만스런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왜?”

“선배님이 싼 똥이니까, 알아서 돈을 각출하시는 게 정상 아닙니까?”

태섭 역시 가시 돋친 언사를 적나라하게 쏟아냈다.

“선배님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역을 치르는 지 아십니까?”

그는 명석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입가에 담배를 베어 물었다.

태섭은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뱁새의 처남 통장으로 1억 원을 입금하십시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는 대답조차 듣지 않은 채 오피스텔에서 유유히 몸을 감췄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편성팀 과장이 시청률 일람표를 들고 회장실에 나타났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일람표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시청률 일람표의 최상단에는 인어 아기씨가 떠억하니 버티고 있었다.

인어 아기씨는 케이블 드라마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마의 5프로에 도전하고 있었다.

공중파로 환산할 경우 거의 20프로에 육박하는 수치였다.

당연히 광고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다.

투자비를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나는 원래 인어 아기씨의 히로인으로 김소민을 출연시킬 생각이었다.

허나, 그녀는 일일 드라마보다는 주중 미니 시리즈에 출연하고 싶어 했다.

자기 복을 제 발로 차 버린 격이었다.

그런 탓으로 인어 아기씨의 히로인은 명우가 스폰하는 그녀가 차지하게 되었다.

반면 소민이 조연으로 출연한 미니 시리즈는 별다른 반응 없이 얼마 전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케이블 방송의 한계였다.

공중파에 대적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탓이었다.

소민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영화는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다.

여배우가 영화에서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선 쓸 만한 로맨스물에 출연하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다소곳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그녀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다.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민에게 적합한 로맨스 영화를 제작해 봐. 저 예산으로.

-로맨스물은 별로 성공 가능성이 없어.

-그러니까 저 예산으로 제작해 보라고.

-소민한테 단단히 빠졌구만.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럼 나중에 보자.

통화를 끝마친 후, 주 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합정동 로터리에 위치한 일식당을 예약해.”

“몇 시 타임으로 예약할까요?”

“저녁 7시 정도로 잡아 놔.”

“네. 회장님.”

저녁 무렵.

합정동 인근의 일식당 룸으로 들어가자 김태섭이 나를 반겼다.

직후 녀석의 입에서 생뚱맞은 언사가 흘러나왔다.

“유성원의 입막음을 할 생각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그야 그렇지만······.”

“김 차장은 남의 일에 뭐하러 신경을 쓰십니까? 유성원의 입을 두려워하는 인물은 우리가 아니라 우명석 검사장입니다. 그러니 그 작자한테 알아서 하라고 말하세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우명석이 검찰에서 힘을 쓰면 유성원이 풀려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명석같은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위인이에요. 교도소에 처박힌 양아치를 구명해 줄 생각 자체가 없다고요. 그러니 김 차장은 이번 일에서 빠지세요.”

태섭이 고민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미 해결사에게 오더를 내린 상황입니다.”

“국회의원 뱃지를 다실 분이 왜 그렇게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회장님.”

“암튼 나한테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절대 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태섭은 그리 복명하며 빈 잔에 정종을 따라서 나에게 올렸다.

정종을 입안에 털어 넣자 달짝지근한 뒷맛이 느껴졌다.

그때, 녀석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검찰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이종창이란 건설업계 대부가 있습니다.”

“나한테 그 사람 얘기를 뭐 하러 하시는 겁니까?”

“그냥 참고삼아 예를 드는 겁니다. 회장님.”

“알았으니까, 계속 말해 보세요.”

태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길게 이었다.

“그자는 비밀 룸살롱을 운영하며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날마다 술과 향응을 접대하고 있습니다.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함이죠.”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며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그래서 말인데, 회장님도 비밀 룸살롱을 운영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검찰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족처럼 부리려면 비밀 룸살롱이 가장 싸게 먹히는 방법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합시다.”

“네.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럿데 시네마가 영화 관람료를 2900원 수준으로 전격적으로 또다시 인하했다.

나와 제대로 맞붙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양새였다.

곧바로 24층 회의실로 드림 박스 관계자들과 재무실장을 불러들였다.

좌중을 둘러본 뒤 내 의중을 전했다.

“내일부터 드림 박스의 영화 관람료를 2천 원 수준으로 인하할 생각입니다.”

순간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한 출혈경쟁에 기가 질린 모습이었다.

“내 목표는 럿데 시네마를 완전히 박살 내는 겁니다. 그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으니, 끝장을 볼 때까지 내달릴 계획입니다.”

모두 발언이 끝나자마자 장준기 전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관람료를 2천 원 수준으로 인하한다면 적자 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할 겁니다.”

곧이어 재무실장이 말을 덧붙였다.

“이런 식의 출혈경쟁은 양사 모두에게 피해를 불러올 뿐입니다. 그러니 럿데 시네마 측과 암중에서 합의를 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회장님.

그들은 내 재력이 40조 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정도 출혈은 껌값에 지나지 않았다.

“내 의지는 확고부동합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내일부터 드림 박스의 관람료를 2천 원으로 인하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

김태섭이 우명석의 일에 자기 일처럼 나선 이유는 검사장 승진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는 살인오더를 연결고리 삼아 우명석을 수족처럼 부릴 계획이었다.

태섭은 뱁새에게 명령한 살인 오더를 거두어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정도로 검사장 승진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 뱃지보다 검사장 타이틀을 더욱 갈구하고 있었다.

일평생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지만 검사장 타이틀은 때를 놓치면 영원히 쟁취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

중부지검.

태섭은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어제끼며 구내식당에서 형사부 식구들과 점심 식사들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정장룩 차림의 중년 여성이 그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는 감찰부의 이영선 차장 검사였다.

이영선의 입에서 싸늘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요즘 우 선배랑 자주 붙어 다닌다면서? 어디서 사이좋게 뒷돈이라도 받아먹는 모양이지?”

태섭의 인상이 왈칵 구겨졌다.

“말 좀 조심하지. 이 차장.”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 뒷돈이나 받아먹을 생각 하지 말고.”

이영선은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몸을 감췄다.

그녀는 태섭과 사시 동기였다.

여자의 몸으로 검찰에 투신한 이후 승승장구한 케이스였다.

당연히 연줄이 좋은 탓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전직 검찰총장이었다.

더불어 집안에 법조계 거물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

그런 탓일까? 이영선은 개천의 용 출신인 태섭을 항상 눈 아래로 내려다봤다.

태섭은 부하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한껏 모욕한 이영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갈보 같은 네년을 내 손으로 직접 작살내주마!’

그는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휘하의 부장검사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이영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조사해 봐.”

“그러다가 탈이라도 나시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내가 책임질 테니 그년의 약점을 알아보라고. 남편과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남자관계도 조사해 보고.”

“알겠습니다. 차장님.”

< 출혈경쟁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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