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94화 (19/200)

< 차필수 1 >

럿데 그룹의 차필수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 욕심이 많은 남자였다.

한마디로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산 투기사범이었다.

그는 돈 될 만한 부지에 계열사 건물과 공장, 물류창고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

표면적으로는 사업확장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본래 목적은 부동산 투기였다.

그런 노력 덕분에 차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인간이 되었다.

그런 차 회장이 요즘 들어 충남 연기군 인근의 토지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내심 수도 이전을 확신했다.

노무연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할 것으로 내다본 탓이었다.

차 회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다르게, 가파르게 치솟는 충남 연기군 인근의 토지를 하루빨리 선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 이전 예정지인 연기군 보다 주변 토지에 눈독을 들였다.

연기군 일대가 수도로 확정되면 주변으로 개발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확신했다.

늦은 밤, 가회동 서재.

차 회장은 면전에 나타난 작은 아들 차민혁에게 은근한 어조를 내뱉었다.

“토지 주인들과 접촉해 보았느냐?”

“자잘한 땅 주인들만, 만나본 게 고작입니다.”

“그런 인간들보다는, 큰 손들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

민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TS 인베스트먼트가 연기군과 주변의 토지를 거의 50만 평이나 보유하고 있더군요.”

차 회장이 경악한 얼굴로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이란 말이냐?”

“현지의 믿을 만한 부동산 업자에게서 입수한 정봅니다.”

“그들이 토지를 취득한 경위를 말해 보거라.”

“원래 땅 주인은 조달수라는 현지 건설업자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IMF 여파로 자금 사정이 악화된 조 사장이 TS 인베스트먼트에게 채무를 지는 과정에서 땅을 담보로 내놓은 모양입니다.”

민혁은 부친의 눈치를 살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TS 인베스트먼트의 회장은 외국인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는 바지 사장에 불과한 거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면에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 이태수가 실제 오너인거 같습니다.”

차 회장 역시 이태수가 TS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라고 확신했다.

거의 모든 결재서류에 그의 자필서명이 기입된 탓이었다.

고용 사장이라고 볼 수 없는 광폭행보였다.

“이태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넣어.”

민혁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그자를 만나서 뭐하시게요?”

“돈 안 되는 럿데 시네마를 이용해서 그럴듯한 딜을 해볼 생각이다.”

“설마······? 연기군의 토지와 럿데 시네마를 교환하실 생각입니까?”

“못할 것도 없지. 땅은 언제나 진리인게야. 그러니 니놈도 쓸만한 부동산이 보이면 무조건 손아귀에 넣거라.”

“아무리 땅이 소중하다 해도 계열사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시면 안 되는 거라구요!”

“고얀 놈! 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냐!”

차 회장이 노한 얼굴로 으르렁거리자 민혁이 삽시간에 자라목으로 급 변신했다.

“민우 녀석처럼 그룹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다면 아비가 하는 일에 절대 토를 달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민혁은 그리 대답하며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

NBS 방송국의 책임 PD 출신인 유한성을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제작 국장으로 영입했다.

명우를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명우는 할 일이 태산이었다.

검찰을 접대하는 펜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박 엔터를 경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였다.

게다가 녀석은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한 형편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사유로 유한성을 히말라야 프러덕션에 영입했다.

나름 경험 많은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유한성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 각도로 깍듯이 접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한성은 영화 제작이 실패로 돌아간 후 집에서 할 일 없이 소일하는 처지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주었다.

억대의 연봉과 귀한 자리를 넙죽 안겨다 준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죽을 때까지 고마워해야 한다.”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헤헤······.”

녀석의 입에서 간사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집구석에서 시간만 축내던 백수에게 고액 연봉과 아주 높은 직책을 부여했다고 회사에서 뒷말이 많아.”

한성의 얼굴이 삽시간에 핼쑥해졌다.

“그러니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일 처리를 야무지게 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만약 관계자들한테 뒷돈을 받아먹다가 걸리면 당신은 그날부로 죽은 목숨이니까, 알아서 처신을 잘하라고.”

“회장님의 귀한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쓸만한 시놉을 추려서 3일 안에 내 책상 위에 올려놔.”

“넵.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책상 위에 대본의 줄거리만 추린 시놉시스들이 가지란히 놓여 있었다.

유한성이 나름 쓸만하다고 판단한 시놉이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시놉시스를 차례로 훑어 내려갔다.

그러기를 문득 ‘여름 향기‘라는 가제가 붙은 시놉시스가 망막 가득 스며들었다.

제목부터 신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구태의연한 로맨스 물이었다.

허나, 바로 그 점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내용은 예상대로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주요 줄기로 삼고 있었다.

잘생긴 남주와 이쁘장한 여주를 캐스팅한다면 트루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여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곧바로 김용대 드라마 국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용대에게 여름 향기의 시놉시스를 툭 내던졌다.

녀석은 시놉시스를 재빨리 살핀 뒤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뻔한 작품이라 시청자들에게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겁니다.”

“함부로 속단하지 마라. 이런 뻔한 로맨스물에 환장하는 여자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그야 그렇지만, 이런 러브스토리 삘 나는 작품은 지상파가 어울립니다. 우리 드림 케이블과는 그다지 맞지 않습니다.”

“당신의 동의 따위는 필요 없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용대가 송구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김명우 사장과 협의해서 남주와 여주를 캐스팅해. 당연히 대박 엔터 소속 배우로.”

“대박 엔터에서 나름 지명도가 있는 남배우는 김우철과 박철용 정도고, 여배우는 김소민, 김솔미, 신은서, 장서연······.”

“나도 다 아는 내용이니까 요점만 간단히 말하라고.”

“여배우는 문제가 없는데 남배우가 조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김우철은 최근에 드라마를 끝낸 관계로 캐스팅이 조금 힘들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박철용은 몇 달 전부터 연락 두절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박철용은 청춘스타 출신이었다.

그렇지만 30대 초반을 바라보는 지금 현재는, 그저 그런 주조연급 남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명우는 그런 박철용을 작년 초에, 계약금 5천만 원에 영입했다.

나름 지명도가 있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김명우를 회사로 불러들여.”

“넵. 회장님.”

1시간 뒤, 명우가 회장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박철용의 행방을 말해 봐?”

명우가 곤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몰라.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타 버렸다고.”

“그놈이 잠수를 탄 이유가 뭐야?”

“캐스팅이 번번이 무산되서 그런 거 같다.”

“드라마와 영화에 그놈을 출연시키지 않은 이유가 뭔데?”

녀석이 펄쩍 뛰었다.

“오해하지 말라니까. 그놈이 제 스스로 출연을 마다한 거라고.”

“왜 그런 건데?”

“무조건 지상파 드라마나 대작 영화에만 출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청춘스타 출신이라 그런지 박철용은 자존심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그놈을 찾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

“그런데 갑자기 그놈은 왜 찾는 거야?”

“여름 향기에 남주로 캐스팅할 생각이다.”

“여름 향기가 뭔데?”

녀석의 손에 시놉을 건넸다.

시놉을 대충 훑은 명우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거 너무 신파 아니냐? 요즘 젊은 애들한테 통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진한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애청자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하루빨리 박철용이나 찾으라고.”

명우가 사라지자마자 주한수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차필수 회장이 다시 한번 만나자는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이유가 뭔데?”

“차 회장이 럿데 시네마 매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중을 밝혔습니다.”

“정말?”

“네. 회장님.”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저녁에 약속을 잡아.”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럿데 호텔 강남 본점으로 들어서자 차 회장의 비서들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3층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레스토랑은 텅 빈 상태였다.

차 회장이 손님을 모두 내보낸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회장님이 내려오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창가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주 실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레스토랑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주 실장과 경호원들이 레스토랑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휠체어에 올라탄 차필수 회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40대 남자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생김새가 차 회장의 피붙이 같았다.

차 회장은 내 앞에 도착하자 뒤편을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둘째 아들놈인 차민혁이오. 연배도 비슷하니 인사라도 나누시죠.”

차 회장에게 목례를 취하며 차민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그가 마지못한 얼굴로 무성의하게 내 손을 맞잡았다.

싸가지가 없는 놈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럿데 그룹 아들내미 주제에 내 앞에서 시건방을 떨고 있었다.

녀석의 무성의한 손을 툭 내친 뒤 차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럿데 시네마 매각을 결심하신 겁니까?”

“그전에 한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는데 답변해 주시겠소?”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내가 아는 일이라면 솔직히 답변해 드리죠.”

“그럼 염치불구하고 물어보리다. 혹시 충남 연기군의 토지를 대규모로 손에 들고 있으시오?”

차 회장은 내 땅에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

“그걸 어찌 아시는 겁니까?”

순간 차 회장의 얼굴에 끈적한 탐욕이 번져갔다.

내 땅에 아주 환장한 모양새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뚱딴지 같은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회장의 연기군 토지와 럿데 시네마를 맞교환합시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하는데······?”

차 회장은 자기만의 셈법으로 충남 연기군의 토지를 무자비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거의 7조 원에 육박하는 토지를 별 볼 일 없는 럿데 시네마와 맞교환하자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내가 보유한 연기군의 토지평가액은 거의 7조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차 회장님의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끄응······.”

그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직후 애절한 얼굴로 자기 나름의 수정 제의를 해왔다.

“그럼 이 회장이 보유한 토지 중에서 절반 정도로 맞교환하는 게 어떻소?”

내 앞에서 대놓고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하실 거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차민혁이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퉁명스런 어조를 내뱉었다.

“아직 얘기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연장자 앞에서 예의 없이 이게 무슨 행동입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럼 이만 선약이 있는 관계로,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레스토랑 출입구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

가회동 서재.

차필수는 책상에 좌정한 채 이태수의 연기군 토지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는 연기군의 토지를 반드시 취득하고 싶었다.

수도 이전이 확정될 시 지금보다 최소 열 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고 확신한 탓이었다.

‘시세에 맞게 제안을 하는 게 최선이야.’

차 회장은 마음을 정리하자마자 드림 케이블 방송국의 회장 비서실로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

제주도 서귀포 인근의 펜션에 명우가 나타났다.

그는 우거진 수풀 속에 위치한, 아담한 방갈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명우는 방갈로의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박철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나다. 김명우.”

직후 문이 열리며 박철용의 초췌한 모습이 드러났다.

“사장님이 이곳까지 어쩐 일입니까?”

“쓸만한 드라마가 있으니까 서울로 올라가자.”

명우는 그리 말하며 여름 향기의 대본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대본이 마음에 들면 서울로 올라와.”

철용이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중 미니시리즈에 들어가고 싶다구요.”

“니 인기도 한물간 지 오래야. 그러니 잔말 말고 대본이나 살펴봐.”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하수용 법무실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매매교환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연기군 일대의 토지 9만 평과 럿데 시네마의 지분 100프로를 맞교환하는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차 회장의 반응은?”

“수긍하는 분위기 같습니다.”

“차 회장 측에, 내일 정오 경에 계약을 체결하자고 연락을 넣어.”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회장님.”

< 차필수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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