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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95화 (20/200)

< 차필수 2 >

95화 차필수 2

럿데 호텔 소공점에 하수용 실장 일행이 도착했다.

그들은 호텔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탑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하수용은 럿데그룹 이치성 본부장과 악수를 교환한 뒤 매매교환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우리 측이 작성한 매매 교환 계약서를 살펴보시죠.”

이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내에 배석한 고문 변호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계약서를 감정해 주시죠.”

“네. 본부장님.”

계약서에 하자가 없음을 확인한 럿데 측의 고문 변호사가 이치성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그들은 매매교환 계약을 일사천리로 체결한 후 각자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날 밤, 청담동 고급 주택.

럿데 그룹의 이치성 본부장이 차민혁에게 보고를 올렸다.

“앞으로 큰 도련님은 그룹 내에서 설 자리를 완벽히 잃을 겁니다.”

“그렇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요. 나름 역사가 깊은 계열사를 타회사에 강탈당한 기분입니다.”

“어르신의 결단이십니다. 그분은 이익이 안 되는 계열사보단 미래가 보장된 부동산을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나중에 토지 양도세가 화두로 떠오를 텐데 해결 방안이 있는 겁니까?”

“조만간 어르신은 보유 토지를 차명으로 설립한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할 생각이십니다. 자전거래라고 할 수 있죠.”

“양도세를 면제받으려고, 그러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도련님은 그룹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방안이나 연구하십시오.”

이치성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벽면에 내걸린 대화면 TV들을 일제히 켰다.

내 시선은 공중파 정오 뉴스에 모아졌다.

-영화계의 치킨 전쟁이 결국 드림박스의 승리로 귀결됐습니다. 오늘 오전 드림박스 측은 럿데 시네마의 전 지점을 인수하는 댓가로 1조 3천억 원에 상당하는 부동산을 대납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영화시장 전체를 거의 모두 장악한 드림박스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략······.

곧바로 주한수 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눈앞에 나타난 주 실장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드림박스의 주요 관계자들을 24층 회의실로 불러들여.”

“네. 회장님.”

1시간 후.

24층 회의실로 내려가자 드림박스의 고위 간부들이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자세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럿데 시네마를 접수한 내 노고를 높이 사는 모양새였다.

허나, 나는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테이블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허리를 깊숙이 조아린 재무실장을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럿데 시네마의 자산과 재무회계를 하루빨리 파악하세요.”

“네. 회장님.”

재무실장은 그리 화답하며 장내에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모두 회의에 집중합시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허리를 숙이고 있던 고위 간부들이 분분히 제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내 옆에 배석한 장준기 전무에게 명을 내렸다.

“럿데 시네마의 불필요한 정규직 사원들을 하루빨리 해고하는 방안을 강구하세요. 특히 과장급 이상으로.”

“정규직 사원들을 함부로 해고하시면 정부에 미운털이 박힐 우려가 있습니다.”

“아직 신정부는 들어서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사천리로 내 명을 이행하십시오.”

엄한 목소리를 내뱉자 장 전무가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내 영화 제작사에 드림 박스에 영화를 내걸고 싶다면 히말라야 배급사를 통하라는 전언을 암암리에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마지막으로 헐리웃 쪽 직배사는 당분간 그대로 놔두세요.”

장 전무가 넌지시 반문했다.

“그들에게도 우리 요구를 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직은 관망하는 자세로 그들을 대합시다. 헐리웃 직배사는 만만하지 않으니까.”

내 말이 떨어지자 좌중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헐리웃 영화를 배급하는 up 직배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미국 정부의 의지가 실려 있는 회사였다.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사업 파트너였다.

***

럿데 시네마 부산 본점에 드림 박스의 장준기 전무 일행이 들이닥쳤다.

장준기는 본점에 나타나자마자 점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준기는 눈앞에 나타난 최규선 점장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회장님은 과장급 이상의 정규직 사원들을 대상으로 옥석을 가리고 싶어 하십시다.”

최규선은 올 것이 왔다라는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 점장은 내가 책임지고 유임을 시켜줄 테니까, 당신이 알아서 나 대신 작업을 진행해 주세요.”

“그 말씀이 진심입니까?”

준기가 믿음직한 얼굴로 화답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전무님 말씀만 믿고 내 손에 부하 직원들의 피를 묻혔다가, 나중에 점장직에서 떨려 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확실한 보장을 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전무님.”

“그렇다면 제가 각서를 써 드리죠.”

허나, 최규선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의 입으로 직접 확답을 듣고 싶습니다.”

준기는 최규선이 만만치 않음을 절감했다.

그는 원래 규선을 써먹을 대로 써먹은 뒤 매정하게 토사구팽할 심산이었다.

‘본점 점장이라 그런지 눈치가 보통이 아니야.’

그러나 신속하게 정리해고 작업을 진행하려면 최규선 본점장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준기는 태수에게 보고를 올리기로 결심했다.

***

명우와 시내 모처에서 술자리를 즐길 무렵, 장준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럿데 시네마의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신속하게 정리해고하려면 최규선 본점장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냥 장 전무가 하시면 안 됩니까?

-시네마 측 직원들이 극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외부인이 손을 대는 것보단 내부인이 자체적으로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편이 반발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말인데, 본점장에게 예전과 마찬가지로 상당 기간 직위를 유임하겠다는 말씀을 직접 전해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본점장을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별말씀을. 나중에 봅시다.

-네. 회장님.

전화를 끊자 명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밥만 축내는 럿데 시네마 애들을 정리할 생각이다.”

“그냥 고용을 승계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맨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시네마의 정규직 사원들이 생각 외로 너무 많더라고. 우리 드림 박스에 비해서 거의 2배 규모더라.”

“원래 럿데 그룹은 정규직 사원이라고 해도, 계약직 사원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연봉을 지급하는 회사라구.”

“암튼. 정규직이 너무 많아. 특히 과장급 이상이.”

“그러다가 새로 들어서는 신정부에 찍히면 어쩌려구 그래?”

명우가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형이 다 알아서 하니까, 너는 대박 엔터랑 펜트하우스 운영이나 신경 써.”

“정권 교체기에, 검찰을 대상으로 향응을 접대하는 업소를 운영해도 괜찮을까?”

“대통령이 백날 천날 바껴도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태섭과 힘을 합쳐서 검사들의 약점이나 잡아두라고.”

“그 치들의 약점을 잡아서 뭐에 쓰려고.”

“나중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러니 형이 시킨 대로만 해.”

“좋아. 그럼 저번의 약속대로 정말 나한테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줄 거지?”

녀석이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형 밑에서 딱 4년만 일해라. 그 후에는 반드시 국회에 보내줄 테니까.”

그리 화답하며 명우의 잔에 발렌타인을 넘치도록 따라주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장내에 최규선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규선은 허리를 굽힌 자세로 사무실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제 고용보장을 확답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회장님께 진충보국하는 자세로 충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믿음직한 대답이었다.

본점장이라 그런지 윗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허리가 뻣뻣한 장준기를 저 멀리 따돌릴 정도였다.

“원하시는 대로 당신의 직위를 앞으로 5년 동안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신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과장급 이상 사원 중에서 절반가량을 순순히 내보낸다면 댁에게 그에 합당한 거액의 성과급도 지급할 생각입니다.”

그리 확언하자 규선의 입에서 듬직한 복명이 터져 나왔다.

“회장님의 명을 성심을 다해 이행하겠습니다!”

녀석을 내보낸 뒤, 소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뭐 해?

수화기에서 그녀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사지를 받고 있어요.

-날마다 피부관리실을 가는 거야?

-여배우는 피부가 생명이거든요.

-늦지 않게 내 집에 와라.

-알았어요. 마사지가 끝나자마자 타워필리스로 갈게요.

-그럼 있다 보자.

-네. 회장님.

소민과 통화를 끝마친 뒤, 창가로 걸어갔다.

창 너머로 O2 아레나의 멋드러진 건축물이 보였다.

오투 아레나 주변에는 수천여 명의 소녀팬들이 운집한 채 드림 케이블의 음악 채널에서 목요일마다 방영하는 D 카운트다운 생방송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디 카운트다운은 음악순위 프로그램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이 총출동하는 음방이었다.

특히 그런 경향이 최근 들어 더욱 짙어졌다.

전 세계 최고의 실내 공연장인 오투 아레나에서 생방송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오투 아레나는 공중파의 협소한 무대와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를 시청자들과 관람객, 가수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모두 내 덕분이었다.

입가에 나름 흐뭇한 미소를 드러낼 찰나, 주한수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업무용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조용현 전 부총리께서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주 실장은 그리 말하며 내 손에 핸드폰을 건넸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조용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자은행장과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알려 주십시오?

-골프장에서 라운딩이나 즐기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면 될 겁니다.

나는 골프 따위에는 취미가 없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뻘짓이었다.

-그러지 말고 클레이 사격이나 같이하자고 전해 주십시오.

-클레이 사격을 즐기시는 건가요?

-짧고 굵게 손맛을 볼 수 있는 레저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답게 와일드한 레포츠를 즐기시나 봅니다. 알겠습니다. 산자은행장에게 회장님의 의중을 전달하겠습니다.

-은행장에게 가평 인근의 클레이 사격장으로 나오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주한수 비서실장은 요즘 들어 고민이 부쩍 늘었다.

그가 모시는 이태수 회장 때문이었다.

태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만 면담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원하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정재계는 물론이고, 관변조직과 사회복지 단체에서도 날마다 태수를 갈구했다.

그가 돈이 많다는 소문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널리 퍼져나간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날마다 수십, 수백여개 단체에서 태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중에는 정부의 주요 경제부처 수장들도 포함되었다.

허나, 태수는 그들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꿀릴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중간에서 주한수만 죽어 나가는 형편이었다.

최근에는 경제 부처의 고위 공직자가 험한 말을 남길 정도였다.

“외국 자본을 믿고 너무 마이웨이로 나가시는 거 같은데, 그러다가 정말 큰코다치실 거라고 이 회장에게 전해 주십시오.”

한수의 얼굴에 절로 쓴웃음이 그려졌다.

물론 그는 태수에게 곧이곧대로 보고를 올렸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책상물림들의 개소리는 귓등으로 흘려. 일일히 보고하지 말고!”

결국 한수는 영영가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중간에서 컷트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ARM과 칼컴의 인수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내가 원하는 인수가액을 한참이나 능가하는 매각가를 고수한 탓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이 원하는 가격에 인수협상을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뉴욕증시에 닷컴 버블 경계령이 갑작스레 내려진 탓이었다.

그런 까닭에 아마존과 구글, 애플, MS 등의 주가가 답보상태에 빠져들었다.

특히 단기간에 급등한 MS와 애플의 주가가 단기조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내 주식가치는 320억 달러 내외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수개월 만에 30억 달러가 허무하게 날아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주가를 회복할 것이 확실시되었지만, 속이 쓰린 것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 차필수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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