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정책 1 >
김성우에게 솔직히 말했다.
“이영선은 내가 관리하는 검찰 인맥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만간 그녀는 검찰 조직을 나올 예정입니다.”
그는 내 말의 진의를 단박에 파악했다.
“회장님이 원하신다면 그녀를 김앤박의 파트너 변호사로 영입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래 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모두 돕고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하하······!”
김성우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는 법조계 황제답게 눈치가 재빨랐다.
척이면 착이었다. 두 말이 필요 없었다.
김성우와 헤어지자마자 이영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대표와 얘기가 잘됐으니 이력서를 김앤박 로펌에 제출하세요.
-그리고 직급은 파트너 변호사로 합의를 봤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수화기에서 영선의 감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요. 회장님.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게요.
-그 마음 변치 마십시오.
***
배우 전문 기획사인 나무 엑터 사무실에 김병연이 나타났다.
그는 회사 대표인 오중현에게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제작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게 최선 같습니다.”
“히말라야는 이렇다 할 히트 작품이 없는 제작사야.”
“히말라야의 모회사가 드림박스에요.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면 극장에 상영조차 못한다구요.”
“끄응······.”
오중현의 입에서 앓는 듯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김병연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저번 영화도 말아먹은 판국에, 이번에도 흥행에 실패한다면 내 체면이 땅바닥에 떨어질 거에요. 그러니 히말라야와 손을 잡자고요.”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그럼 마음을 정하시면 저에게 연락을 주세요.”
김병연은 그 말을 끝으로 나무 엑터 사무실을 벗어났다.
***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
명우는 벽면에 부착된 폐쇄회로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는 룸에서 공짜 술과 아가씨를 탐닉하는 검찰 인사들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한 뒤 방기훈을 면전에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대박 엔터 사무실 이전 작업이 끝났나?”
“네. 방금 전에 르네상스 빌딩에 입주를 끝마쳤습니다.”
“지하층에 안무실과 보컬 연습실, 연기 트레이닝룸을 만들어 봐.”
방기훈이 두 눈을 빛내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아이돌을 론칭할 생각인가요?”
“때가 되면.”
명우는 짧게 답한 뒤, 입가에 담배 한 개비를 가져갔다.
그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김병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방기훈이 즉답했다.
“영화판의 흥행배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야?”
명우가 못마땅한 얼굴로 재차 질문하자 기훈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 질문의 요지를 아직도 눈치 못 챈 거야?”
그제야 기훈이 알아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영화판에서는 통할 만한 배우지만, 드라마 판에서는 그다지 신통치 못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 봐.”
“일단 나이가 너무 많고요. 40대 언저리의 연배라 드라마의 주 시청 층인 여성 팬들을 공략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훈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운을 뗐다.
“방 실장이 보기에, 대박 엔터에 가장 필요한 배우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영화는 물론이고 드라마에서도 통할 만한 남자 배웁니다.”
기훈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하자 명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친구들을 영입하려면 돈이 얼마가 필요할까?”
“최소 수십억 대의 계약금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품위 유지비와 개인 코디, 매니저 등의 연봉도 회사가 부담해야 할 겁니다.”
“이 회장이 싫어하겠군.”
기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대박 엔터 자체적으로 한류 스타급의 배우를 하루빨리 키워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
“쉽지는 않겠지만, 부단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우리 손으로 한류 스타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기훈의 긍정적인 언사에, 명우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방 실장은 다 좋은데, 매사에 너무 좋은 면만 보는 거 같아. 그거 안 좋은 거다. 고치라고.”
“그리 생각하셨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장님.”
기훈은 그리 말하며 명우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일요일 오후,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창가를 서성이며 내 인생을 차분히 반추했다.
나는 가진 거 하나 없는 밑바닥 출신으로서, 도플갱어의 도움으로 운 좋게 재벌 반열에 올라선 인간이다.
남들이 미치도록 부러워하는 재벌이 됐지만 내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재벌가 사람들이 날마다 호화스런 파티를 즐기며 하루하루를 화려하게 보내는 것과 확연히 대조되는 점이었다.
나는 태생이 사치스런 삶과 전혀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일에 푹 파묻혀 지냈다.
일 자체에서 벅찬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일 중독자라고 수군거렸다.
특히 명우는 내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주 실장과 장 전무, 김용대와 김재연 국장 등도 대동소이한 반응이었다.
휴일도 잊은 채 날마다 일을 하는 나에게 그들 모두 질렸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허나, 나에게는 도플갱어의 신탁을 이행할 의무가 있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도플갱어는 나에게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사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 24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드림 케이블과 드림 박스의 고위 간부들이 운집한 채 나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김용대 드라마 국장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 라인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1+1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는 좌중을 휘 둘러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영화 출연을 당근으로 스타 배우들을 드라마에 유인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배우들의 최종 목적은 영화판 흥행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라마 스타는 수명이 짧지만 영화배우는 수명이 아주 길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대로 영화판의 난다긴다하는 흥행배우들 대다수는 40대와 50대 아저씨였다.
“우리 드림 케이블은 영화 시장을 장악한 드림 박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히말라야 프러덕션 역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오늘따라 용대가 내 마음에 쏙 드는 발언을 쉴 새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언행이었다.
녀석을 향해 부드럽게 박수를 쳐주자 장내에 배석한 인사들이 나를 따라서 용대에게 격렬한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용대는 간만에 한 건 했다는 자부심 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제자리에 착석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드림 박스를 관장하는 장준기 전무에게로 향했다.
내 눈길을 받은 준기가 찔끔한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럿데 시네마 출신 정규직 사원들을 대체 언제 정리할 겁니까?”
내 가시돋힌 언사에 준기가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밑에서 퇴직금 문제를 상의 중이니 조만간 결판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말은 청산유수였다.
“한 달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응당의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장준기가 자리에 앉자마자 재무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림박스의 1분기 손익을 보고하세요.”
“네. 회장님.”
재무실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드림박스는 관람료를 정상화한 덕분에, 1분기에 총매출 6842억, 영업이익 357억을 달성했습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장 전무와 협의해서 극장 내에 각종 부대 시설 사업을 추진하세요. 프렌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을 론칭하는 방안을 연구하세요.”
“명하신 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드림 케이블의 1분기 손익도 보고하세요.”
“네. 회장님.”
재무실장은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낭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드림 케이블은 1분기에 광고판매와 협찬이 전년도 1분기보다 대폭 증대된 덕분에 총매출 573억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 덕분에 10년 동안 이어오던 적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순간 장내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드림 케이블이 지긋지긋한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비록 영업이익이 40억 내외 수준이지만, 만성적자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는 점에서 드림 케이블의 앞날이 밝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드림 케이블이 적자에서 벗어난 이유는 슈퍼스타 드림과 인어 아기씨, 장르 드라마 덕분이었다.
예능과 드라마 채널이 자리를 잡은 탓에 지상파의 70프로 수준까지 광고단가가 올라간 것이다.
물론 수천억대의 투자금을 아낌없이 집행한 내 노고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오전 회의를 끝마친 후, 25층 회장실로 올라가자 주 실장을 비롯한 비서진들이 나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을 뒤로 한 채 회장실로 들어가자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가 보였다.
책상에 앉자마자 결재서류를 나름 꼼꼼히 살폈다.
오늘은 봄철 인사와 관련된 결재서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인사권에 전방위적으로 관여했다.
당연히 내 마음에 드는 인간들만 주로 승진시켰다.
인사 결재서류에 기입된 승진 대상자들의 반명함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 주요 관심사는 인상이 좋은가, 나쁜가였다.
눈빛이 마음에 안드는 놈들의 승진요청 서류는 무조건 반려였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눈꼬리가 쫙 찢어진 사나운 놈들이 승진대상자로 많이 올라왔다.
겉으로 척 보기에도 성질이 더러워 보이는 자식들이었다.
곧바로 비서실에 콜을 넣었다.
-김용대와 장준기를 면전에 불러들여!
-네. 회장님.
잠시 뒤, 용대와 준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저 두 명은 드림 케이블과 드림 박스의 인사를 나 대신 관장하고 있었다.
최종 승진 대상자는 저들이 선택한 친구들이었다.
“당신들이 올린 승진 대상자들의 사진을 보니까, 하나같이 눈매가 싸나워 보이는데, 왜 이런 인간들을 승진시키려는 거지?”
내 말이 떨어지자 녀석들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저마다 변명을 늘어놓았다.
용대가 먼저 대답했다.
“비록 생김새는 좀 성깔 있게 보일지 몰라도 능력만큼은 확실한 친구들입니다. 회장님.”
“제가 올린 친구들 역시 능력 좋고 성실하다고 주변에서 칭찬이 대단한 직원들입니다. 회장님.”
준기도 대동소이한 답변을 해왔다.
허나, 회사 오너인 나는 녀석들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인상이 싸나우면 주변과 트러블이 잦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친구들을 높은 자리에 임명하면 회사 경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용대와 준기를 매섭게 노려보며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눈매 싸나운 친구들 대신 인상이 선한 놈들로 승진 대상자들을 다시 추려!”
그제서야 녀석들이 알아먹은 얼굴로 정중하게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장 전무는 이만 나가봐.”
“네. 회장님.”
장준기가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용대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오전 회의에서 김 국장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1+1 정책 말입니까?”
“그래. 영화 출연을 미끼로 굵직굵직한 스타들을 드라마에 출연시키자는 제안.”
용대가 은근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김명우 사장이랑 상의해서 쓸만한 배우들을 섭외해 봐. 영화출연을 미끼로 해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녀석은 1+1 프로젝트를 흔쾌히 수락한 나에게 몹시 감격한 표정이었다.
“당신이 주도적으로 이번 일을 추진해 봐.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게.”
“거듭 고맙습니다. 회장님. 헤헤헤······.”
용대는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홀린 듯 올려다봤다.
징그러울 정도였다.
***
삼송전자 서초동 사옥 38층 회의실.
상석에 자리한 김민용의 시선이 김성철 사장에게 모아졌다.
직후 성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우리 삼송전자는 지난해 매출 50조 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핸드폰 부문과 가전 부문,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폭발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한 덕분입니다.”
“영업이익 역시 7조 6천억 내외를 달성한 결과 자타가 공인하는 전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때, 민용의 입에서 날 서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제 반도체 부문의 손익을 말씀해 보세요.”
성철이 무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치킨 게임의 여파로 매출이 하락세를 면치 못한 결과 대략 1조 9400억 내외의 적자를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민용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좌중을 둘러본 후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대체 언제까지 치킨게임을 해야 하는 겁니까? 핸드폰과 가전,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벌어들인 돈을 반도체가 무지막지하게 빨아먹는 게 안 보이십니까!”
그의 격한 어조에 장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긴말 안 하겠습니다. 미국의 마이크런과 일본의 도사바, 엘파다 반도체에 신사협정을 제안하세요.”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회장님.”
성철의 올곧은 말대답에 민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습니다.”
“지금 나랑 말장난을 하시는 겁니까?”
민용은 성철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때, 반도체 부문 기술 이사인 김종득이 성철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신사협정을 체결하기도 힘들지만, 운 좋게 신사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닙니다. 회장님.”
김종득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신사협정을 운 좋게 체결하더라도, 그 사실을 미국 정부와 EU 집행부가 파악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징벌적인 과징금을 부과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민용은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진퇴양난의 험지에 깊숙이 빠져들었음을 뼈져리게 절감했다.
“최선은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을 하루빨리 무너뜨리는 겁니다.”
성철의 입바른 말에, 민용이 성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느 천년에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을 무너뜨린단 말입니까?”
민용은 미칠 듯이 화가 났다.
연간 2조 원에 육박하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적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 임원들은 반도체 부문을 낙관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민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1+1 정책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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