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정책 2 >
강남 인근의 라운지 바로 명우를 불러들였다.
진토닉을 음미하며 녀석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김용대 국장이 쓸만한 아이디어를 제안했거든.”
“그게 뭔데?”
“1+1 정책.”
“알아듣기 쉽게 말해 봐.”
“말 그대로 원 플러스 원 정책으로 배우들을 섭외하자고.”
“어떤 방식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제작하는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하겠다고 낚시밥을 던져봐.”
명우가 두 눈을 바짝 빛냈다.
“안방극장에서 날고 기는 스타 배우들한테 딜을 넣어.”
“오케이. 접수했다.”
녀석은 그리 화답하며 달달한 칵테일을 시원하게 원샷했다.
“유한성은 어때?”
“이 바닥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자기가 알아서 잘하더라.”
“그래도 딴짓할지 모르니까 유심히 살펴봐. 특히 관계자들한테 뒷돈을 챙기는 걸 엄하게 단속해.”
“안 그래도 은근히 지켜보는 중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여름 향기는 언제부터 촬영 시작이냐?”
“4월부터 강원도 리조트에서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남주랑 여주는 확정했냐?”
“남주는 김우철로 정했고, 여주는 김솔미를 생각 중이다.”
“소민이랑 은서는?”
“자기들이 싫데.”
“이유가 뭔데?”
“둘 다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난리를 치는 중이다.”
절로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들 역시 영화병에 심하게 걸린 상태였다.
배우들의 고질병이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오늘도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오전 회의를 시작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만날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점심을 같이한 뒤, 곧바로 오후 일과에 돌입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내 하루일과가 무미건조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이런 삶에 극히 만족했다.
내 손으로 직접 사업을 일구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달달한 커피를 여유로이 음미할 무렵, 주한수 실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보고를 올렸다.
“오후 3시경, 마산 국제 영화제 주최 측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경에는 주한 중국 대사관 측에서 개최하는 가든파티에 가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녁 7시경에는 SN 엔터의 박수만 회장을 만나서야 합니다.”
“별로 내키지가 않아.”
“이미 약속된 사항입니다. 회장님.”
“마산 영화제 주최 측이 나를 만나려는 이유가 뭐야?”
“그들은 드림 케이블에서 마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식을 생중계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줘. 그리고 나 대신 김용대를 내보내.”
주 실장이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중국 대사관 파티는 장준기 전무를 보내. 마지막으로 박수만 회장은 김재연 예능 국장이 상대하라고 말을 전해.”
주 실장이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를 갈구하는 높으신 어르신들이 한 트럭이었지만,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들과의 만남을 극구 피하고 있었다.
대다수 영양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 만나는 스타일이었다.
이런 나를 이해타산적인 인간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주 실장을 내보낸 후, 벽면에 내걸린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슈퍼스타 드림의 최종 결승전이 O2 아레나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각은 압도적인 성량을 바탕으로 시청자와 청중들을 일순간에 사로잡았다.
그럿 탓일까? 최종 결승전에 오른 상대방은 변변한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이각에게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감 없는 태도로 힘없이 노래를 부른 게 결정타였다.
발성과 음색, 음정, 성량 전 부문에서 이각에게 확연히 밀리는 실력이었다.
당연히 시청자 투표는 이각의 압도적인 승리로 귀결됐다.
이각은 부상으로 수여된 고급 세단 차량과 2억 원에 달하는 우승상금에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이각은 대박 엔터와 정식으로 가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격마저 부여받았다.
모두 내 덕분이었다.
TV를 끄자마자 편성팀의 이종무 과장을 호출했다.
이종무는 편성과 시청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날슨 시청률 결과가 나왔나?”
“최종 결과는 2시간 후에 나올 거 같습니다.”
“실시간 시청률은?”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야 나올 겁니다.”
“시청률 결과표가 나오면 곧바로 보고를 올려.”
“넵. 회장님.”
이종무를 내보내자마자 주한수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유한성 책임 PD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들여보내.”
“네. 회장님.”
잠시 뒤, 유한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는 두툼한 대본 2개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든 게 뭐야?”
“영화 시나리오 두 편입니다.”
“갖고와 봐.”
“넵. 회장님.”
녀석이 공손히 화답하며 두툼한 시나리오 두 편을 내 손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살인의 회상이라는 가제가 붙어 있었다.
살인의 회상은 영구미제 살인사건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었다.
그 유명한 경기도 하성시 부녀자 연쇄 강간살인이 주요 소재였다.
정의감에 넘치는 시골 경찰과 서울에서 내려간 엘리트 형사가 팀을 이뤄 사건을 파헤치는 스토리였다.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결론은 무척 허망했다.
실제 미제사건인 탓이었다.
시나리오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남자를 범인으로 추론하고 있었다.
허나, 나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만여 명의 경찰이 동원됐음에도 실제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말은 살인자의 배후가 막강하다는 의미였다.
그 당시 시중에서는 살인자가 재벌가 출신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경찰이 살인자를 특정했음에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 시중에 횡행했다.
시나리오 작가는 범인을 평범한 공장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누가 봐도 범인은 재벌가 출신이거나 정치 권력자의 아들내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상류층 자제들 중에는 분노와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은근히 많았다.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지만 범인을 공장 노동자로 규정한 점이 영 거슬렸다.
곧바로 유한성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살인의 회상은 쓸만한 시나리오가 맞아. 그렇지만 반드시 고칠 점이 있어.”
“회장님이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시나리오를 수정하겠습니다.”
“범인을 공장에서 근무하는 남자로 은근히 암시했는데, 이거 반드시 고쳐라.”
“범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당연하지. 누가 봐도 범인은 재벌 집 아들내미 아니면 정치 권력자의 아들이라고.”
“그리 생각하시는 연유를 알 수 있을까요?”
“하성시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은 경찰 병력만 수십만 명이 동원됐고 베테랑 형사들도 수만 명이나 사건을 파헤친 대사건이야.”
유한성이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건 범인의 배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방증이지. 내 추리가 어때?”
녀석이 감탄한 얼굴로 찬사의 변을 쏟아냈다.
“회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추리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회장님. 헤헤헤······.”
유한성은 만면 가득 간사한 표정을 떠올리며 나를 하늘 높이 올려다봤다.
***
시내 모처에 김앤박 소속 변호사들과 산자은행 관계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산자은행이 관리 중인 카이닉스 전자의 매각 문제를 심도깊게 협의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각자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
김명우는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고 싶었다.
그런 탓인지 슈퍼스타 드림의 우승자인 이각에 대해서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가 추구하는 아이돌과 전혀 판이한 성격의 가수였기 때문이다.
명우는 이각의 비쥬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창력은 빼어났지만 여성 팬들에게 먹힐 만한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슈퍼스타 드림의 우승자였다.
대박 엔터가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가수라고 할 수 있었다.
“원하는 장르가 뭐야?”
명우의 물음에 이각이 즉답했다.
“제 보컬을 살릴 수 있는 락 발라드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대로 락 발라드에 일가견이 있는 작곡가를 섭외해 줄 테니까 집에서 대기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명우는 이각을 내보내자마자 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각한테 발라드곡을 내주기로 했다.
-원하는 대로 해줘. 슈퍼스타 드림의 우승자니까. 그리고 광고도 섭외해 봐.
-뭘 그리 잘해 줄려고 그래. 1년 정도만 케어해주면 되잖아.
-아무리 못해도 3년 정도는 챙겨줘야지. 드림 케이블이 배출시킨 가순데.
-너는 쓸데없이 남들 챙겨줄 생각하지 말고, 형 먼저 챙겨라.
-말투가 삐딱한데? 불만이 뭐야?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고 싶다고 내가 맨날 말했잖아. 그건 언제 들어줄 건데?
-조금만 더 기다려 봐.
-그냥 이번 기회에 아이돌 오디션을 보면 되잖아.
-배우들 케어 하기에도 인력이 모자란 데, 아이돌 그룹을 무슨 재주로 론칭하냐?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한테 제발 좀 일을 믿고 맡겨라.
-정말 자신 있냐?
-그렇다니까!
-알았다. 그럼 돈이 적게 드는 걸그룹 먼저 준비해 봐라.
-정말?
-그래. 자식아. 알아서 잘해보라고.
-고맙다. 친구야. 역시 너밖에 없다. 하하······!
-쳐 웃지 말고, 이왕 할 거면 똑 부러지게 잘해 봐.
-염려 마라. 형이 다 알아서 한다. 우하하하······!
명우는 통화를 끊자마자 방기훈을 사무실에 불러들였다.
“인터넷에 걸그룹 오디션 공고를 내.”
“회장님이 허락하신 건가요?”
명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17세 이상 23세 미만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자고.”
“말씀하신 대로 지금 당장 인터넷에 오디션 공고를 내겠습니다.”
“비쥬얼 좋은 여자애들로 팀을 꾸려 보자.”
“당연히 그래야죠. 헤헤헤······.”
방기훈이 좋아죽는 얼굴로 헤픈 웃음을 흘려보냈다.
***
일요일 오후, 가평 사격장.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와 클레이 사격을 즐기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기 시작했다.
김성우가 넌지시 운을 뗐다.
“산자은행 측에서는, 최소 5천억 이상의 채무를 회장님이 부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내 목표는 채무의 완전탕감입니다.”
“고용 승계 정도로는 채무의 완전탕감이 힘들 거 같습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늘 높이 치솟은 원반을 목표로 라이플의 방아쇠를 쉴 새 없이 잡아당겼다.
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
클레이 사격을 만끽한 김성우가 그럴듯한 제안을 해왔다.
“정부는 내수경기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니 카이닉스 전자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1조 원 이상의 투자금을 집행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시면.”
그는 말을 잠시 끊은 뒤, 내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채무의 완전탕감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생각을 해본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확답하기 곤란한 사안이었다.
클레이 사격을 끝낸 뒤 곧바로 타워필리스로 직행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성우의 제안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지금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용 현금은 대략 5조 원 내외였다.
대다수 충남 연기군의 토지를 매각한 자금이었다.
허나,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카이닉스 전자는 물론이고 칼컴과 ARM의 인수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카이닉스 전자는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이었다.
도플갱어의 지엄한 명령이었다.
일단 카이닉스 전자의 부채를 탕감받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성우 말대로 대대적인 투자를 정부 측에 약속하는 게 최선이었다.
***
청와대 집무실에 김태동 경제수석이 나타났다.
그는 책상에 앉아 있는 노무연 대통령에게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 측에서 카이닉스 전자의 부채를 전액 탕감해 준다면, 1조 5천억 내외의 투자금을 인수 즉시 투입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했습니다.”
노무연이 반색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정실인가요?”
“네. 인수합병을 대리하는 김앤박 로펌에서 각서를 제출했습니다.”
노무연은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카이닉스 전자를 하루빨리 국내외 자본에 매각하고 싶었다.
“카이닉스 전자의 부채 탕감에 대해서 관계부처와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십시오.”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히말라야 프러덕션.
성낙일은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전속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는 살인의 회상이란 시나리오를 작성한 장본인이었다.
그런 탓인지 유한성 책임 PD의 신랄한 지적에 내심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수십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음에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말은, 범죄자의 배후에 거대한 권력을 지닌 인물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당신은 그저 그런 공돌이가 범인이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야!”
성낙일은 유한성의 촌철살인 같은 언사에 심장이 뜨끔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범인을 재벌가 아들내미나 검경 고위층 혹은 정치 권력자의 아들로 수정해!”
성낙일은 그날, ‘살인의 회상‘ 시나리오의 진범을 정치 권력자의 아들로 대폭 수정했다.
유한성 피디의 조언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 1+1 정책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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