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폭행보 2 >
충무로 인근의 한적한 카페에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배우인 송강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구석진 테이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강오는 테이블에 앉은 채 나 홀로 커피를 음미하던 유한성에게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거 같습니다. 유 피디님.”
“그렇죠. 암튼 신수가 훤하십니다. 강오씨.”
그들은 악수를 교환한 뒤 커피를 음미하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가 강오씨를 청한 건 우리 회사에서 제작을 추진 중인 살인의 회상이란 작품 때문입니다.”
“살인의 회상이 뭐죠?”
“하성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유한성은 그리 답하며 시나리오를 송강오에게 건넸다.
“한번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연락을 주십시오. 물론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송강오는 시나리오를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수습한 후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드림박스의 자회사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유한성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즉답했다.
“사실입니다. 하하하······!”
한성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뒤 강오에게 그럴듯한 제안을 해왔다.
“출연료 4억 원에 백만 명당 런닝 개런티로 1억을 추가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송강오는 그날, 살인의 회상에 출연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한성이 거부할 수 없는 호조건을 제시한 탓이었다.
***
서울 모처.
중년의 남자가 따분한 얼굴로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문득 그의 시선이 연예면 메인 페이지에 고정됐다.
남자는 ‘살인의 회상‘이란 영화 홍보 기사에 홀린 듯이 시선을 고정했다.
-살인의 회상은 스타 감독과 흥행 배우의 만남으로 벌써부터 영화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방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배우인 송강오가 출연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살인의 회상을 제작하는 히말라야 프러덕션 측은 흥행 성공을 자신하는 분위깁니다. 중략······.
남자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
브라운관의 스타로 나름 자리를 잡은 김우철에게 돌발악재가 발생했다.
대학교 후배인 이종덕의 와이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서초동 고급 빌라.
이종덕이 분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합의금으로 5억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내 아내와 성관계한 사실을 언론에 폭로할 겁니다!”
우철은 미칠 노릇이었다.
그에게는 그만한 거액이 없었다.
“종덕아. 그건 너무 큰 돈이야. 그러니 제발 2억으로 합의를 보자. 응. 부탁이다. 종덕아.”
우철은 자신을 강간범으로 모는 종덕에게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혔다.
“실은 니 마누라가 나를 유혹한 거라고. 나한테 고민을 의논하고 싶다고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그러다가 니 여편네가 나를 모텔로 데리고 간 거라니까!”
“좋습니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실 거면 경찰서로 가서 해결을 보자구요!”
종덕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자초지종도 듣지 않은 채 오로지 우철을 비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허나, 칼자루는 종덕이 쥐고 있었다.
“알았다. 니가 원하는 대로 5억을 만들어볼게. 그러니까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일주일 안에 5억을 만들어서 내 계좌에 입금하세요.”
종덕은 그리 말하며 메모지에 은행명과 계좌번호를 적어서 우철에게 전달했다.
그날 밤.
우철의 서초동 빌라에 명우가 나타났다.
그는 우철에게 자초지종을 차분히 경청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강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킬 일이 있으니까 점심 무렵에 상암동에 있는 해사랑 일식당으로 오세요.
-넵. 회장님.
점심 무렵 주 실장과 경호원을 대동한 채 회사 인근의 일식당으로 넘어갔다.
룸 안으로 들어가자 강대호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싱싱한 회와 정종을 즐기는 데 집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대호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대박 엔터에 소속된 김우철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요. 그러니 강 사장이 알아서 조치를 취하세요.”
그리 말하며 저간의 사정이 담긴 서류를 그에게 넘겼다.
대호는 서류를 재빨리 훑은 뒤 자신만만한 얼굴로 화답했다.
“냄새가 심하게 나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종덕이란 놈이 마누라를 시켜서 김우철을 함정에 빠뜨린 거 같습니다.”
대호는 이 바닥의 전문가답게 돌아가는 사정을 한눈에 파악했다.
“시끄러워지면 일이 골치 아파지니까 조용히 해결하세요.”
“네. 회장님.”
지갑에서 천만 원권 수표 10장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용돈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으세요.”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복명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
르네상스 빌딩에 강대호가 나타났다.
그는 5층 사무실에서 김명우와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호가 입을 열었다.
“애들을 시켜 알아보니 이종덕이란 놈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알기 쉽게 말해 보십시오.”
“사기전과 3범입니다. 입만 열면 구라를 치는 양아치란 뜻이죠.”
대호는 그리 답하며 뜨거운 커피를 입안에 한 모금 들이켰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마누라를 시켜서 김우철에게 올가미를 씌운 게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소리소문없이 일을 해결하는 겁니다. 그래서 강 사장에게 도움을 청한 거예요.”
“애들을 시켜서 이종덕에게 작업을 넣어 보겠습니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세요.”
“그러자면 최소 1억 정도는 입막음용으로 건네야 할 겁니다.”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 돈은 우철이 자식이 알아서 할 거니까 강 사장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대호는 르네상스 빌딩을 빠져 나오자마자 자신을 수행하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종덕을 지금 당장 창고로 끌고 와.”
“넵. 큰 형님.”
그날 밤.
경기도 인근의 컨테이너 야적장에 애처로운 곡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이종덕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제발······ 그만······ 으아아악······!
허나, 그의 가련한 비명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남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적인 구타에 오롯이 매진할 뿐이었다.
-크아악······! 그만······제발······..부탁······.이······.아아악······!
***
서울 시내 카페에 20대 후반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창가 테이블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강대호는 면전에 나타난 여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남편의 강요로 김우철 씨를 일부러 유혹하신 겁니까?”
대호는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을 늘어놓았다.
사진 안에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가혹한 폭행을 당하고 있는 젊은 사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인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겁먹은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왜, 이러시는······ 거죠······?”
“1억을 줄 테니 얌전히 입을 다무십시오. 만약 쓸데없이 주딩이를 함부로 놀리시면 이번에는 부군이 아니라 댁이 이 꼬라지가 될 겁니다.”
대호는 그리 말하며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인이 기겁한 얼굴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테이블 위에 검은색 가죽 가방이 놓여졌다.
대호는 가죽 가방의 틈새를 은밀히 내보였다.
여자는 가방 틈새로 보이는 현금다발에, 공포와 환희가 뒤섞인 복잡미묘한 표정을 한가득 떠올렸다.
“남편에게 앞으로 조심하라고 전하십시오.”
대호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몸을 감췄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사무실로 김우철을 불러들였다.
녀석에게 따끔한 경고를 내리기 위함이었다.
우철은 쭈뼛한 태도로 나름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회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내 얼굴에 똥칠을 왜, 하는 건데?”
녀석이 시치미를 뚝 떼며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 개자식아. 이종덕의 와이프 사건을 무마하려고 내가 돈을 얼마나 쓴 줄 알아?”
그제야 녀석이 송구한 얼굴로 내 발밑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대박 엔터가 내 소유라는 사실을 잘 아는 놈이 불륜 스캔들이나 일으키고, 대체 너는 뭐 하는 물건이냐?”
녀석은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여름 향기 촬영이 코앞이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차후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한다면 너는 내 손에 묵사발이 날 거다. 의심스러우면 시험해 봐도 좋아.”
그리 말하며 사무실 천장에 매달린 샌드백을 목표로 강력한 어퍼컷을 무자비하게 내질렀다.
퍼억······!
샌드백이 휘영청 날아올랐다.
내 주먹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펀치였다.
“형이 복싱에 일가견이 있거든. 그러니까 형한테 맞아 죽기 싫으면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이 개자식아!”
우철이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복명했다.
“넵. 회장님.”
녀석을 내보낸 뒤, 이미경에게 콜을 넣었다.
-법무실장을 불러들여.
-네. 회장님.
하수용 법무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곧바로 그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대박 엔터 소속 배우들을 점검할 시기 같은데, 하 실장 생각은 어때?”
“시의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대호한테 일을 맡기면 배우들이 겁을 먹을 테니, 법무실 직원들을 동원해서 조용히 뒷조사를 해봐.”
“금전 관계를 조사할까요?”
“그건 기본이고, 여자나 남자관계도 제대로 파악해 봐. 말썽의 소지가 보이면 곧바로 나에게 보고해.”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날 밤.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으로 김태섭 차장검사를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태섭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린 후 뒷일을 부탁했다.
“이종덕이란 놈에게 단단히 고삐를 채워두세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따끔하게 경고를 하겠습니다.”
태섭은 그리 답한 뒤 은근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금년 4월 달에 검찰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검사장······.”
녀석은 검사장 타이틀을 달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새였다.
“차장 검사로 재직한 지 몇 년이나 되셨죠?”
“올해로 3년 찹니다.”
“검사장의 평균 연령이 어떻게 됩니까?”
“대다수 50대 초반이지만 주우석 검사장의 경우 40대 초반에 지검장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볼 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회장님 말씀대로 조신하게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헤헤헤······.”
녀석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내 잔에 정종을 공손히 따라 부었다.
다음날.
회사 업무를 종료하자마자 가평 사격장으로 직행했다.
사격장 안에 들어서자 클레이 사격을 즐기는 김성우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그 옆에 자리한 채 곧바로 클레이 사격에 매진했다.
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
우리는 사이좋게 클레이 사격을 만끽한 뒤 휴게실에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태섭 차장 검사를 검사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자 김성우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즉답했다.
“원하신다면 제가 정치권과 검찰 쪽에 손을 써보겠습니다.”
“필요한 자금을 말씀해 주시죠?”
“10억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내일 오후 무렵에 인편으로 돈을 보내겠습니다.”
“쉬엄쉬엄하십시오. 하하하······!”
그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의 정민기 재단 이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모리배였다.
그는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된 이물이었다.
정민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에게 허구한 날 기부금을 강요하는 한편, 지원금을 거부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온갖 공갈협박을 밥 먹듯이 자행했다.
허나,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를 시민사회 운동의 대부로 추앙했다.
그런 정민기의 레이더망에 드림 케이블과 드림박스를 소유한 이태수가 포착됐다.
그는 태수가 해외에 은닉한 비자금을 이용해 TS 인베스트먼트와 히말라야 투자그룹을 설립했다는 사실을 운 좋게 입수했다.
그날 이후, 정민기는 태수를 털어먹기로 굳게 다짐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서 오후 업무에 돌입할 무렵, 갑자기 사무실 바깥에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간사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개소리를 나불댔다.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의 정민기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회장님을 만나려고 한 이유는 기부금을 받기 위함입니다.”
떡 줄 인간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김칫국만 거하게 들이키는 행색이었다.
그때, 주한수 실장이 송구한 얼굴로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정민기를 죽일 듯이 노려본 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정 이사장이 제멋대로 들어왔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지금 당장 이 작자를 사무실 밖으로 내쫓겠습니다.”
“됐으니까 주 실장은 이만 나가 봐. 정 이사장과 대화를 좀 나눌 테니.”
주한수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직후 공손히 허리를 굽힌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정 이사장님이 원하는 기부금 액수가 얼마죠?”
그리 말하며 소파를 손짓하자 녀석이 거만한 얼굴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놈은 이미경이 내온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돈이 아주 많으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좋은 일을 하시는 차원에서 1백억 정도만 우리 재단에 지원해 주시죠.”
“당신의 제안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금 시끄러워지겠죠. 회장님이 운용하시는 TS 인베스트먼트와 히말라야 투자그룹에 대해서 저희 재단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정 이사장님이 조사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녀석이 천연덕스런 얼굴로 툭 내뱉었다.
“언론은 아주 좋아하겠죠. 후후······.”
놈에게 경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주제 모르고 함부로 나대시면 크게 다치실 겁니다. 그거 각오하고 설치세요.”
순간 녀석이 분노한 얼굴로 나를 맹렬히 노려봤다.
< 광폭행보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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