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03화 (28/200)

< 광폭행보 3 >

김태섭을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으로 불러냈다.

룸에 나타난 태섭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좋은 세상 만들기의 재단 이사장인 정민기에 대해서, 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그가 즉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수완가라는 소문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태섭은 그리 대답하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회와 정종을 즐기며 의도적인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녀석이 호기심이 그득한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정민기가 회장님의 심기를 거슬린 모양입니다?”

“조금 그런 면이 있어요. 회사에 찾아와서는 뜬금없이 백억을 기부금으로 달라고 난리를 치더군요.”

태섭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 잔에 정종을 공손히 따랐다.

그가 따라준 정종을 원샷한 뒤 속내를 밝혔다.

“정민기의 뒷조사를 해보세요. 특히 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날 밤.

청담동 인근의 고급 사교 클럽을 방문했다.

이곳은 김민용을 필두로 한 재벌가 아들내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클럽 출입구로 다가가자 매니저가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주 실장과 경호원들에게 다과나 제공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매니저는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주 실장 일행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클럽 내부로 들어가자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쏟아지는 스테이지에서, 아리따운 처자들과 재벌가 아들내미들이 한데 어우러진 채 광란의 춤사위를 즐기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들의 나긋나긋한 자태를 홀린 듯이 감상할 무렵, 김민용이 내 곁에 나타났다.

“룸으로 안 들어오고 여기서 뭐 해?”

녀석은 은근한 핀잔을 날리며 나를 2층에 있는 룸으로 이끌었다.

룸 안에는 양주와 과일 안주 등이 세팅된 상태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과일을 안주 삼아 양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민용은 고민이 많은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원로 가신들이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더라.”

“어느 정도길래 그러는 거야?”

“나를 아직도 어린애 취급한다니까. 내가 명령하면 온갖 이유를 들어서 반박하는데, 아주 돌아 버릴 지경이다.”

“수틀리면 해고를 해버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노무연이랑 인연이 많은 작자들이 있어서 좀 그래.”

“쓸데없이 재는 거 많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법이다.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어라.”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잔에 발렌타인을 한가득 따라 부었다.

“술이나 마시자.”

“오케이.”

그가 따라준 발렌타인을 목젖 깊숙이 들이키자 알싸한 뒷맛이 느껴졌다.

“니 말대로 조만간 마음에 안드는 노친네들을 무자비하게 짤라 버릴 생각이다.”

“입으로만 그러지 말고, 실천을 하라구.”

녀석의 얼굴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민용은 좌고우면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탓인지 우유부단한 면을 많이 노출하고 있었다.

***

서울 모처.

정민기는 면전에 앉아 있는 대검 중수부 소속의 김상수 부장검사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이태수의 약점이 필요해.”

“드림 케이블의 이태수 회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김프로가 디테일하게 설계를 해봐.”

김상수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이 회장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검찰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요.”

“정말 그 정도란 말이냐?”

“난다긴다하는 검사들이, 그 인간이 운영하는 펜트하우스에 공짜 술과 여자를 날마다 즐긴다는 소문이 검찰 내에 파다합니다.”

정민기는 이태수의 수완이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런 탓인지 강렬한 승부욕이 내면에서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김프로는 나만 믿어. 내가 뒤를 봐줄게.”

“저는 금배지를 달고 싶을 뿐입니다. 시민사회 운동에는 관심이 없어요.”

“금배지가 별거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금배지 정도는 달아줄 능력이 있으니까 나만 믿으라구.”

그제서야 김상수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제가 이태수의 뒤를 한번 파보겠습니다.”

다음날.

김상수는 대검 중수부에 출근 도장을 찍자마자 금감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는 평소 안면이 있던 5급 사무관에게 은근한 청을 넣었다.

-TS 인베스트먼트와 히말라야 투자그룹이 국내에 투자한 목록을 뽑아주십시오.

-죄송하지만 그건 상부의 허락 없이는 불가한 상황입니다. 검사님.

-그래서 사무관님에게 사적으로 부탁을 드리는 거 아닙니까?

-거듭 미안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일입니다. 상부의 재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수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중수부 인지수사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인지수사팀은 시중의 유언비어나 증권가 찌라시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부서였다.

여타의 검찰 조직이 경찰에서 올라오거나 검찰에 고소 고발된 사건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상수는 인지수사팀의 최한길 부장검사에게 넌지시 청을 넣었다.

“드림 케이블 방송의 이태수 회장이 뒤가 구린 자금을 운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야?”

“니들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 시중의 유언비어를 조사하는 거.”

“신경 끊어. 중수부는 할 일도 없냐? 남의 부서 일에 신경을 쓰게.”

최한길은 그리 말하며 상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한길은 상수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우명석 검사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중수부 소속의 김상수 부장이 이태수 회장님을 노리는 거 같습니다.

-이유가 뭐야?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장님.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

명우의 사무실에 태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중수부 소속의 김상수 부장 검사가 회장님을 노리는 거 같습니다.”

“이유가 뭔데?”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중수부 소속 부장 검사면 나름 끗발이 있을 거 같은데?”

명우의 물음에 태섭이 즉답했다.

“처가집 도움으로 중수부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가집이 어딘데?”

“중견 건설 업체를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그 물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봐.”

“알겠습니다. 선배님.”

태섭은 펜트하우스를 나서자마자 이영선에게 전화를 돌렸다.

-김상수에 대해서 아는 거 없어?

-김상수?

-그래. 뭘 잘못 처먹었는지 회장님을 들쑤시고 다니더라고.

-알았어. 내가 한번 알아볼게.

-영국에 가기 전에 회장님에게 눈도장이나 제대로 찍어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니까 자기는 신경 끊어.

***

르네상스 펜트하우스에 명우와 태섭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는 명우에게 속내를 밝혔다.

“김상수는 처갓집의 관급공사 입찰 비리를 비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력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댓가로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가 있습니다.”

“김상수를 내 앞으로 끌고 와.”

“회장님에게 보고를 안 드려도 될까요?”

“이 회장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런 일은 우리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게 최선이라구.”

태섭은 명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김상수를 내일 밤, 펜트하우스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다음날.

태섭은 김상수를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로 이끌었다.

상수는 펜트하우스가 제공한 고급 양주와 아가씨를 만끽한 후 태섭의 안내를 받으며 명우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우는 태섭을 내보낸 뒤 상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이태수 회장님은 큰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검사 나부랭이가 어쩌지 못하는 거물이라고 할 수 있죠.”

“검사 알기를 개똥으로 아시나 보죠?”

상수의 시니컬한 반문에 명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솔직히 그쪽은 별 볼 일 없는 개똥 같은 검사 나부랭이가 맞습니다. 후후······.”

명우의 입에서 적나라한 조소가 쏟아지자 상우의 두 눈에 격렬한 분노가 치솟았다.

“사람을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하시는 겁니까?”

“흥분하지 말고, 얌전히 내 말이나 들으세요. 이 회장님의 뒤를 쓸데없이 들쑤시면 당신은 물론이고 댁의 처가집도 하루아침에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명우는 그리 말하며 상수의 발밑에 가죽 가방을 툭 내던졌다.

“1억이니까 그거나 처먹으세요. 그럼 이만 나가보세요.”

상수는 극심한 모멸감에 휩싸였다.

그때, 장내에 태섭이 모습을 드러냈다.

“좆같은 새끼야. 돈이나 처먹으라고. 함부로 나대지 말고!”

태섭은 그리 말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 상수의 뒷덜미를 거칠게 부여잡았다.

“눈앞에 돈이 있잖아. 1억이다. 그거 먹고 떨어지라고!”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상수가 발악하듯 외치자 태섭의 성난 주먹이 그의 가슴 어림에 연속적으로 작렬했다.

퍼억······! 퍼억······!

-크헉······!

그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극통을 느꼈다.

그때, 상수의 귓전에 태섭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력자들의 뒤를 봐준 댓가로 수십억을 받아먹은 좆같은 새끼가 어디에서 약을 팔아!”

상수의 몸이 들썩거렸다.

“감찰반에서 니놈의 비위 자료를 이미 건네받았다고. 그러니 얌전히 처신해라. 이 엿 같은 호로새끼야!”

태섭은 그리 말하며 출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들을 손짓했다.

직후 건장한 경호원들이 상수를 짐짝처럼 사무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명우는 사무실 바닥에 덩그라니 놓여진 가죽 가방을 손짓하며 태섭에게 입을 열었다.

“그 새끼 차에 실어.”

“네. 선배님.”

***

장준기 전무는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중국 대륙을 휩쓸던 전란을 피해 당시 나름 안전한 조선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주했다.

장 전무는 그런 사실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남들에게 짱개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20세가 넘어서자마자 한국인으로 완전히 귀화했다.

물론 집안 어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쓴 결과였다.

그런 장준기의 집안에 장준평이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준기의 사촌 동생으로 중국 상해 지역에서 영어 강사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준평이 약속도 없이 준기를 만나기 위해 서울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남 인근의 고급 아파트.

준기는 자기 집에 갑자기 나타난 준평을 어색한 얼굴로 맞이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로 한국에 온 거야?”

“형님한테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부탁?”

“일단 시원한 맥주나 한 잔 주십시오.”

준평은 그리 말하며 푹신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모습에 준기가 혀를 끌끌 차며 냉장고에서 캔맥을 꺼내 준평의 손에 건넸다.

잠시 후, 준평은 심중의 속내를 준기에게 솔직히 토로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에 회장 직인을 기계적으로 날인할 무렵, 장준기 전무가 내 앞에 슬그머니 나타났다.

녀석은 뭔가 부탁할 일이 있는 모양인지 두 손을 연신 비비며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용무가 있으면 남자답게 말하세요. 나한테 할 말이 뭡니까?”

“제 사촌 중에 중국인이 있습니다.”

녀석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이해가 안 되실지 모르지만 실은 저는 화교 출신입니다. 물론 현재는 한국인으로 귀화했습니다.”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하세요.”

그제서야 준기가 속엣말을 꺼냈다.

“제 사촌 동생에게 아주 그럴듯한 사업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일종의 전자상거래 비지니스라고 할 수 있죠.”

순간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도플갱어의 신탁이 뇌리를 스친 까닭이다.

준기의 사촌 동생을 만나볼 필요성이 있었다.

뭔가 느낌이 그랬다.

“장 전무의 사촌 동생을 지금 당장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그러자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1시간 후.

내 사무실에 40대 초반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약간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눈빛에 총기가 한가득이었다.

더구나 그는 영어를 잘한 탓에 우리는 통역 없이 영어로 의사를 교환했다.

장준평은 달달한 커피를 음미하며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중국은 위조 화폐와 위조 신용카드의 천국입니다. 그런 이유로 상점마다 위폐 감별기를 가져도 놓을 정돕니다. 당연히 신용카드는 사용할 엄두조차 못 내는 실정이죠.”

그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저는 일종의 가상전자화폐를 만들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판매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전자화폐를 이용해 상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지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매우 그럴듯한 아이디어였다.

장준평의 설명대로 전자화폐를 상용화한다면 엄청난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중국처럼 신용카드가 무용지물인 나라에서 매우 유용한 서비스였다.

확인차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설립할 회사의 상호를 이미 정하셨습니까?”

그가 시원하게 즉답했다.

“네. 회장님.”

“설립할 회사의 상호를 알고 싶군요?”

준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올리바바라는 회사명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도플갱어의 신탁이 톱니바퀴처럼 척척 맞아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장준평은 도플갱어가 점지한 남자였다.

그런 귀한 존재가 내 앞에 저절로 나타났다는 게 진실로 꿈만 같았다.

허나, 이건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선현의 명언을 본받기로 내심 마음먹었다.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금요일에 다시 만나서 깊은 대화를 나눠봅시다.”

준평이 격동한 얼굴로 내 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마주 잡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를 내보낸 뒤 주한수 비서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장준평의 소재지를 비서실 차원에서 파악하도록.”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귀한 인물이니 알아서 잘해라.”

“네. 회장님.“

< 광폭행보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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