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폭행보 4 >
김세아는 핫한 미녀 배우였다.
허나, 그녀는 항상 돈에 쪼들렸다.
품위 유지비에 들어가는 돈과 때마다 되풀이되는 해외여행, 고가 명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물 쓰듯이 써재낀 탓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돈푼깨나 있는 스폰을 급구하고 있었다.
그런 세아의 레이더망에 연예계 절대 권력자로 급부상 중인 이태수가 포착됐다.
더구나 그는 세아와 같은 타워필리스에 거주 중이었다.
그녀는 이웃사촌인 태수를 스폰으로 만들기로 작심했다.
논현동 인근의 배우 기획사에 김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소속사 대표인 이기상에게 자신의 의중을 솔직히 밝혔다.
“이태수 회장과 연결해 주세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사장님에게 부탁을 드리는 거잖아요.”
이기상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집구석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럼 사장님만 믿을 테니 반드시 이 회장과 연결시켜 주세요.”
세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조신하게 사라졌다.
이기상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유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이 사장이 웬일이야?
-피디님에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게 뭔데?
-전화로 말하기는 그러니까 오늘 밤에 시간을 좀 내주시죠.
-오늘은 힘들고 내일 저녁에 식사나 같이하자고.
-고맙습니다. 피디님.
-고맙기는, 어차피 이 바닥은 돕고 사는 거지. 하하······!
***
강남 인근의 일식당으로 장준평을 불러들였다.
우리는 회와 정종을 즐긴 뒤 본격적인 협의에 돌입했다.
준평이 넌지시 운을 뗐다.
“미화 2천만 달러를 투자해 주신다면 회장님께 올리바바의 지분을 39프로 가량 양도할 용의가 있습니다.”
성에 안 차는 지분이었다.
나는 최소 90프로 이상의 지분을 갖고 싶었다.
곧바로 그에게 역제안을 내놨다.
“5천만 달러를 투자할 테니, 나에게 90퍼센트 안팎의 지분을 양도해 주십시오.”
순간 준평이 경악한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회사가 망하거나 말거나 저는 최소 90프로 이상의 지분을 원합니다. 그러니 내 제안을 받아주십시오.”
그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해졌다.
일단 그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는 회사 경영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투자 계약서상에 장준평 씨의 경영권을 무조건 적으로 지지한다는 문구를 삽입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준평이 한풀 꺾인 기세로 정종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기를 얼마 후,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럼 마음을 결정하는 즉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회사 업무를 끝마친 후 타워필리스로 향할 무렵 준평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서초동에 있는 해사랑으로 차를 몰아.”
“네. 회장님.”
주 실장은 곧바로 운전석에 있는 경호원에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 의중을 전달했다.
30분 후, 나를 태운 롤스로이스 팬텀 차량이 해사랑이란 간판이 내걸린 일식당 앞에 정차했다.
주한수와 경호원을 대동한 채 일식당으로 들어가자 매니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중국분이 14번 룸에서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네. 회장님.”
룸 안으로 들어서자 장준평이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해왔다.
“갑자기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녀석은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원래 사업이란게 다 그런 거죠. 일단 식사부터 먼저 하시죠.”
그리 화답한 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식당 매니저에게 명을 내렸다.
“참치회랑 튀김, 초밥, 우동, 정종 등을 세팅하세요.”
“네. 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회와 튀김, 우동 등으로 배를 채운 뒤 정종으로 입가심을 하며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까?”
준평이 시원시원하게 즉답했다.
“일단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오픈할 생각입니다. 그 후에는 올리페이라는 가상화폐를 대대적으로 론칭할 계획입니다.”
“올리페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준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올리페이는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전자화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리페이에 대해서 단박에 이해했다.
그러나 문제는 가맹점 유치였다.
온라인은 무리 없이 올리페이를 론칭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은 얘기가 달라진다.
곧바로 그 점에 대해서 재차 질문을 던졌다.
“올리페이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려면 가맹점 모집이 필수적일 거 같은데,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돌파할 생각입니까?”
준평은 이번에도 시원하게 즉답했다.
“저는 중국 현지의 은행들과 사업 파트너쉽을 체결할 계획입니다. 그들과 포괄적인 업무제휴를 맺는다면 오프라인 가맹점을 구축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중국 은행과 파트너쉽을 체결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은데······?”
의문을 표하자 준평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지만 회장님이 거액을 투자해 주신다면 중국 현지의 은행들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알다시피 중국은 공산당 고위층들의 입김으로 돌아가는 정치 경제 시스템입니다. 저는 회장님이 투자해 주신 자금으로 공산당 고위층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 생각입니다.”
“중국 현지에 인맥이 있는 건가요?”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저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영어 가이드 출신입니다. 나름 현지에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준평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내 두 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근성이 느껴지는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했다.
곧바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일 오후 2시까지 회사로 나오십시오. 그 자리에서 미화 5천만 불을 준평 씨 계좌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녀석은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맞잡았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법무실장과 재무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법무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히말라야 투자그룹 명의로 장준평에게 미화 5천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약서를 만드세요.”
법무실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계약서를 만드세요. 세부 조항은 메모지를 참조하시고.”
법무실장에게 준비한 메모지를 건넸다.
그 안에는 지분 비율과 장준평의 경영권 보장 조항이 적혀 있었다.
법무실장을 내보낸 뒤 곧바로 재무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시티은행에 있는 드림 엔터 계좌에서 미화 5천만 불을 인출한 후에 이곳으로 이체할 준비를 하세요.”
장준평의 계좌 번호가 쓰여진 메모지를 재무실장에게 건넸다.
“계약이 끝난 즉시 그곳으로 5천만 달러를 이체하세요.”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는 그날, 올리바바에 5천만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90프로에 달하는 지분을 양도받는 계약을 장준평과 체결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성낙일 작가의 ‘살인의 회상’ 시나리오 수정본이 내 책상 위에 올라왔다.
시나리오는 내가 지적한 대로 진범을 정치 권력자의 아들로 그려내고 있었다.
허나, 뭔가 나사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범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탓이었다.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로 통칭되는 살인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와 고양이 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시나리오에는 그런 점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이 헷가닥한 상태로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연쇄강간 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진범을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좀 더 강렬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원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는 그런 내 욕구에 한참이나 미달됐다.
곧바로 유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낙일 작가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넵. 회장님. 지금 당장 성 작가와 함께 상암동으로 들어가겠습니다.
30분 뒤, 성낙일 작가와 유한성이 내 면전에 나타났다.
유한성을 내보낸 뒤, 성낙일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인간말종으로 진범을 그려내세요.”
성낙일이 긴장한 얼굴로 화답했다.
“말씀대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겠습니다.”
“범인은 강렬한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주인공인 송강오가 범인을 때려죽이는 것으로 라스트 씬을 설계하세요.”
그러자 성낙일이 흠칫한 얼굴로 물었다.
“사건을 완결지으라는 말씀입니까?”
“영화관을 찾는 팬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게 우리들의 의뭅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십시오.”
낙일은 결국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뜻대로 시나리오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번 영화만 잘되면 드라마 대본 작업도 맡길 테니까 최선을 다하십시오.”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성낙일을 내보낸 뒤 유한성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감독은 정했나?”
“방준호 감독으로 확정했습니다.”
“좋아. 시나리오가 완료되는 즉시 촬영에 돌입해.”
“네. 회장님. 그리고 한가지 올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여배우 김세아가 회장님을 만나고 싶어 하더군요.”
“그 여자가 왜?”
유한성이 묘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회장님을 연모하는 거 같습니다.”
“고맙지만 그 여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몸이 너무 말랐어.”
순간 한성의 얼굴에 실망하는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살인의 회상 제작에만 집중해.”
“죄송합니다. 회장님.”
한성은 그리 답한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직후 주한수 실장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명우 사장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들여보내.”
“네. 회장님.”
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소파에 주저앉으며 사후보고를 올렸다.
“내 선에서 김상수 부장검사를 처리했다.”
“어떻게?”
“알아듣게 말을 했지. 그리고 돈도 1억가량을 안겨줬다.”
마음에 안드는 일 처리였다.
“그런 개자식에게 뭐하러 돈을 줘?”
“그래야 뒷탈이 없으니까.”
“너는 쓸데없이 앞서 나가서 탈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
명우가 심드렁한 얼굴로 반문했다.
“내가 원하는 건 김상수의 옷을 벗기는 거야. 나를 함부로 건들면 작살이 난다는 걸 보여줘야지.”
“너무 쎄게 나가는 거 아니냐? 명색이 대검 중수부 부장검산데?”
“이번 기회에 내 위상을 검사 나부랭이들한테 확실히 각인시켜! 나를 들쑤시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명우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영선한테 내 요구를 전달해.”
“알았다. 니 말대로 할 테니까 흥분 좀 하지 마라.”
녀석은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꾸물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이영선을 만나.”
명우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소파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직후 볼멘 목소리를 은근히 토해내며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
서울 모처에 이영선과 김명우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댄 채 긴밀한 협의를 나누고 있었다.
“이 회장이 원하는 건 김상수의 옷을 벗기는 겁니다. 그러니 이 차장이 감찰반을 동원해서 일을 마무리 지으세요.”
명우의 말에 이영선이 두 눈을 빛내며 화답했다.
“회장님께 염려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알아서 조치를 취할게요.”
“그럼 이 차장만 믿겠습니다.”
명우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이영선은 대검에 들어서자마자 감찰반으로 직행했다.
그녀는 팀원들을 향해 준엄한 언사를 내뱉었다.
“오늘부터 중수부의 김상수 부장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조사하세요.”
그녀의 매서운 명령이 떨어지자 감찰반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차장님.”
“본인 명의 계좌는 물론이고 친인척들 명의로 개설한 차명 계좌도 전부 파악하세요. 오늘 이 시간 부로 김상수 부장의 신분은 피의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반드시 숙지하세요.”
영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데스크탑을 켰다.
구글에 접속한 뒤 혹시나 하는 심경으로 유툽과 넷플렉서를 차례로 검색창에 입력했다.
유툽은 여전히 검색되지 않았으나, 놀랍게도 넷플렉서와 관련된 검색 내용이 화면에 한가득 떠 올랐다.
넷플렉서는 2002년 마크 란돌프가 캘리포니아 스코츠 밸리에 설립한 DVD 대여업체였다.
넷플렉서는 넷플렉서닷컴(netflexer.c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영화 DVD를 주문받고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북미 대륙 전역에 서비스하고 있었다.
그들은 파격적인 월정액 가입제를 도입한 후 대여 개수와 상관없이 월마다 일정한 금액을 받았고 대여기한과 연체료, 배송료마저 없앴다.
그 결과 매출액이 약 2억 7,200만 달러로 급증했고, 순수익도 650만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냈다.
넷플렉서는 800여 명의 개발자를 동원해 개인별 맞춤 영화 추천 알고리즘인 시네매치를 개발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 덕분에 2003년 현재 유료 회원 수가 200만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검색을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la에 소재한 코플랜드 로펌의 빌 마이어 대표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캘리포니아 스코츠 밸리에 소재한 넷플렉서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대표님께서 그들과 접촉을 해주십시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는 허언을 내뱉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넷플렉서의 란돌프 사장에게 내 의중을 전달해 주십시오.
< 광폭행보 4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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