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전속결 3 >
양 손목에 수갑을 찬 채 나 홀로 경찰서에 들어섰다.
양아치 네 마리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담당 형사가 구석에 있는 책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의자에 앉자 형사가 입을 열었다.
“조서를 작성해야 하니까 순순히 협조해 주십시오.”
“그전에 일단 수갑 먼저 풀어주시죠.”
“죄송하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된 신분이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당방위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조사를 하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앞뒤가 꽉 막힌 인간이었다.
“전화 한 통 씁시다.”
“먼저 조서를 작성해 주시죠. 그러면 핸드폰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전화 한 통 내 마음대로 사용 못하 는 겁니까?”
그리 말하며 손목에 매달린 파텍 필립의 럭셔리 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명품 시계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담당 형사가 은근슬쩍 내 손에 휴대폰을 건넸다.
“3분 드릴 테니 그 안에 통화를 끝마쳐 주십시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하수용 법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남 경찰서로 오십시오.
-네에······?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폭행 사건에 휘말렸어요. 그러니 강남서로 와주세요.
-팀을 꾸려서 지금 당장 강남서로 달려가겠습니다. 회장님.
30분 후.
장내에 하수용 법무실장과 휘하 직원들이 벌떼처럼 등장했다.
그런 탓인지 장내에 진을 친 경찰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입을 떠억 벌렸다.
하수용 일행이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수용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담당 형사를 향해 날 선 언사를 내뱉었다.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하시는 우리 회장님을 대체 무슨 근거로 체포하신 겁니까?”
담당 형사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폭행을 행사한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수용이 나에게 귓속말을 해왔다.
“경찰의 말이 사실인가요?”
“정당방위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는 중에 시비가 붙은 거죠. 양아치들이 나를 공격하는데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습니까?”
저간의 사정을 단박에 이해한 하수용이 경찰을 향해 냉랭한 어조를 토해냈다.
“우리 회장님에게 폭력을 행사한 용의자들을 지금 당장 경찰서로 데리고 오십시오!”
“만약 우리 요구를 거부하신다면 부당한 체포를 행사한 혐의로 당신은 물론이고 강남서 전체를 대상으로 검찰에 고소 고발을 진행하겠습니다!”
순간 장내에 찬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전직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하 실장은 경찰을 다루는 데 능수능란했다.
그때, 직급이 높아 보이는 남자가 은근슬쩍 장내에 등장했다.
그는 담당 형사를 내보낸 뒤 나와 하 실장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해왔다.
“뭔가 일에 착오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차분히 말씀이나 나누시죠.”
남자는 그리 말하며 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재빨리 풀어주었다.
하수용에게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나머지 일은 하 실장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현장은 제가 책임질 테니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고마워요. 역시 하 실장밖에 없어요. 하하······.”
“고맙습니다. 회장님.”
수용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돈 달라는 무언의 요구였다.
조만간 녀석에게 그럴듯한 선물을 해주기로 굳게 다짐했다.
경찰서를 나서자 주한수 실장과 경호원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 실장이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주한수가 놀란 얼굴로 질문을 해왔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도로에서 양아치들이 시비를 걸더라구. 당연히 남자답게 화끈하게 후드려 팼지.”
한수가 걱정이 그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경호원도 없이 밤 외출을 뭐 하러 하신 겁니까? 큰 사단이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괜찮으니까 잔소리는 그만하라고.”
그리 말하며 롤스로이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주 실장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등판에 피가 흥건합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시죠.”
그제서야 등줄기에서 서늘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다리가 휘청거렸다.
곧장 인근의 병원으로 직행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곧바로 특실로 올라갔다.
특실의 안락한 침상에서 큰대자로 드러누운 채 나름의 휴식을 즐기려는 순간 장내에 흰 가운을 걸친 주치의가 나타났다.
그가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살거죽만 살짝 스친 정도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2.3일 정도 안정가료를 취하시면 멀쩡히 쾌차하실 겁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주치의가 나가자마자 주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특실 입구에 경호원들을 주야로 배치하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해. 그리고 잠 좀 때릴 테니까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그럼 편히 취침하십시오.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광고 협찬을 담당하는 이우경 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그럴듯한 협찬 상품이 뭐가 있을까?”
“자동차와 해외여행 상품이 있습니다.”
“유럽 지역은?”
이우경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제작을 준비 중인 여행 프로 덕분에, 서유럽 관광 상품을 최근에 협찬받았습니다.”
“싯가로 얼마나 하는 상품이지?”
“대략 5천만 원 내외로 알고 있습니다.”
하 실장에게 선물하기에 적당한 상품이었다.
“하수용 법무실장에게 서유럽 여행 상품권을 돌려.”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가봐.”
“넵. 회장님.”
이우경을 내보낸 뒤 이미경 대리에게 콜을 넣었다.
“하수용 실장을 불러들여.”
“네. 회장님.”
잠시 후, 하수용이 내 면전에 나타났다.
그는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보고를 올렸다.
“경찰은 쌍방폭행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을 생각입니다.”
“정당방위를 인정 안 하려는 속셈인가요?”
“한국의 법률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수용의 말대로 한국의 법률은 정당방위를 거의 대다수 허용하지 않았다.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법률을 제정한 탓이었다.
“개자식들에게 법적으로 뜨거운 맛을 보여주세요.”
수용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목격자가 이미 경찰에 진술을 한 상태고, 용의자들 역시 경찰에 진단서를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똥 싸고 밑을 안 닦은 기분이었다.
도로의 무법자들을 수수방관 한다면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속출할 것이 불 보듯 훤한 까닭이었다.
“이런 일은 강 사장이 적격입니다. 그에게 일을 맡겨보시죠.”
수용의 말대로 이런 일은 강태호가 전문이었다.
하 실장을 내보낸 뒤 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강 사장에게 시킬 일이 있어요.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 실장에게 말을 해놓을 테니까 그에게 사건자료를 받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
이창용은 브라운관과 영화판을 종횡무진하는 30대 초반의 인기배우였다.
그는 빼어난 비쥬얼과 수준급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나름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축적하고 있었다.
그런 이창용이 심란한 얼굴로 시내 술집에서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출연료를 대체 언제 준다는 거야?”
창용의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매니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형이 출연하라고 하도 난리를 쳐서, 다른 좋은 제작사를 모두 뿌리친 거라고. 그러니까 형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데 난들 어쩌냐?”
“시발! 제작사 대표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왜 코빼기조차 내비치지 않는 거야!”
창용의 성난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지금 당장 제작사 대표를 찾아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연락을 넣어!”
“반드시 돈을 준다고 했으니까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자. 창용아.”
“개소리는 그만하고 지금 당장 전화를 때리라고!”
그제서야 매니저가 못 이기는 척 제작사 대표에게 전화를 돌렸다.
허나, 아무리 전화를 해봐도 ‘없는 국번‘이라는 디지털 안내 메시지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창용과 매니저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제작사 대표를 출연료 미지급 혐의로 경찰서에 고발했다.
그날 이후, 창용은 영세한 외주 제작사의 드라마와 영화에는 절대 출연을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
시내 모처에 하수용과 강태호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태호가 넌지시 운을 뗐다.
“네 명 모두 강남 지역의 부유층 자제로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빵에 들여보내기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강 사장을 부른 거 아닙니까? 그러니 묘안을 생각해 보세요.”
태호가 미간을 모으며 입을 열었다.
“함정을 파야 할 거 같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클럽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마약 유통 판매책으로 놈들을 엮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검찰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하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뒤는 내가 봐줄 테니 애들을 모아서 공사를 치세요.”
“그럼 내일부터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수용은 태호가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김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에게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회장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개자식들에게 콩밥을 먹일 생각입니다.
-길거리 양아치들을 말하는 거냐?
-예. 암튼 놈들을 마약 유통책으로 엮어 주십시오. 회장님의 오더니까 최단 시일 안에 일을 마무리 지어 주십시오.
-회장님에게 알겠다고 전해.
-고맙습니다. 선배님.
***
중부지검 차장 검사실에 유동수 강력부 부장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조직범죄와 마약 사건을 전담하는 인물이었다.
김태섭은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유동수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뽕쟁이 한 명 섭외해서, 이 자식들을 마약 판매책으로 엮어.”
태섭은 그리 말하며 유동수에게 서류철을 내밀었다.
서류철을 엉겁결에 받아든 동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놈들이 대체 누굽니까?”
“유 부장은 몰라도 되니까 시킨 대로 일이나 처리해.”
“차장님. 사건을 조작한 게 외부에 알려지는 날에는 제 모가지가 날아갑니다.”
태섭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남의 얘기하듯 말을 툭 내뱉었다.
“강력부 부장검사라는 인간이 왜 그렇게 겁이 많은 거야?”
“펜트하우스에서 고급 양주와 아가씨들을 공짜로 즐겼으면 돈값을 해야지. 누군 땅 파서 장사하는지 알아!”
태섭이 목소리를 높이자 동수의 허리가 저절로 굽혀졌다.
그는 오더를 내린 인물이 누구인지 단박에 눈치챘다.
“회장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양아치 새끼들을 이번 기회에 단단히 작살을 내버리라고.”
“말씀대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이제서야 말귀를 알아듣네. 그럼 이만 나가봐.”
“넵. 차장님.”
차장실을 빠져나온 유동수는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수석 검사 한대성을 호출했다.
그는 면전에 나타난 한대성에게 태섭의 의중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그날 밤.
중부지검 강력부 취조실에 마약 전과 14범인 오명록이 나타났다.
한대성 수석 검사는 책상 밑에 있는 동영상 녹화 버튼을 오프시킨 뒤 면전에 앉아 있는 오명록에게 적나라한 언사를 내뱉었다.
“테이블 위에 사진 보이지? 이 네놈을 마약 판매책으로 엮어주면 명록이 너를 무죄로 풀어준다. 형이 책임지고.”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니까 지금 당장 진술서를 작성하자고.”
명록은 횡재한 기분이었다.
이번에 잡혀들어가면 족히 7년 형 이상을 구형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검사가 솔깃한 제안을 해오자 그는 하늘에 오를 듯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오명록은 검사가 구술하는 대로 진술서를 차분히 작성했다.
***
인천항만의 이름 모를 컨테이너 박스에서 애처로운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쿠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크아아악······.!
강태호는 길거리 양아치들을 기계적으로 구타하는 수하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주시한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장내에 중부지검 강력반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태호는 검찰 수사관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마약 판매책으로 전락한 양아치들을 그들에게 순순히 넘겨주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아침 뉴스를 시청했다.
하수용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귀띔했기 때문이었다.
뉴스 앵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강남과 이태원의 클럽가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마약 판매책들이 무더기로 검거됐습니다.
-중부지검 강력부는 마약 총책 이재성과 그 일당들을 일망타진했으며 또한 그들이 은밀히 보관 중이던 싯가 7백억 원 상당의 히로뽕과 다량의 대마초를 압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십 년 묶은 체증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마약 총책 이재성은 나에게 칼부림을 한 개자식이었다.
그리고 놈의 일당들 역시 나에게 함부로 들이댄 길거리 양아치였다.
하수용과 강태호, 김태섭 등이 제대로 일을 처리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태섭과 하수용, 강태호 등에게 각각 1억 원 상당의 현금을 전달해.
-그놈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유가 뭔데?
-그럴 일이 있으니까 귀찮게 묻지 마라.
-알았다. 니가 말한대로 그놈들에게 돈을 전달할게.
-오케이. 수고.
< 속전속결 3 > 끝
ⓒ 방탄리무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