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11화 (36/200)

< 쾌도난마 3 >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여러가지 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버튼 강박증이 가장 심했다.

그런 이유로 항상 목 폴라티만 입고 다닐 정도였다.

버튼의 일종인 단추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그는 휴대폰의 번호 버튼 역시 미치도록 경원시했다.

당연히 잡스는 휴대폰을 단 한차례도 직접 만지지 않았다.

언제나 비서들이 그 대신 폰을 이용해 업무를 볼 정도였다.

잡스는 모토롤라와 노키아, 삼송전자의 휴대폰을 공사석을 막론하고 걸핏하면 비난했다.

'좋은 터치패널을 놔두고, 쓸데없이 번호버튼이 가득한 휴대폰을 양산하는 업체들은 IT발전의 암적인 존재'라고 날마다 성토할 정도였다.

그런 탓일까? 그는 자신이 직접 터치패널을 채용한 휴대폰을 만들기로 굳게 다짐했다.

2003년 5월 무렵이었다.

***

서울 모처에서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김태섭 차장의 검사장 승진건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십시오."

김 대표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변했다.

"생각처럼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 쪽도 그렇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 역시 부정적인 반응 일색입니다."

"김태섭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들이 보기에는 아직 경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인맥이나 학맥이 보잘것 없는 것도 한몫 하는거 같더군요."

김성우의 말처럼 태섭은 경력과 인맥, 학맥 그 무엇하나 갖고있지 못했다.

오로지 녀석이 기댈 인물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현정권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한 조용현 전 부총리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약간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조용현은 외자은행 인수건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탓인지 그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게 영 꺼림칙했다.

허나, 지금 현재 믿을 만한 사람은 그자 외에는 전무한 형편이었다.

더구나 그는 김앤박 로펌의 고문으로 초빙된 상태였다.

천상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최선이었다.

자리를 파하자마자 조용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성심빌딩의 개인 사무실로 조용현을 불러들였다.

그와 인사를 나눈 뒤 내 의중을 전달했다.

"내가 키우는 차장 검사가 있는데, 그 친구를 검사장으로 추천해 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조용현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이 흘러나왔다.

"쓸만한 충견을 키우시나 봅니다. 몸소 인사 청탁을 하시는걸 보면."

"뭐, 그렇다고 해두죠."

그리 답하며 테이블 위에 큼지막한 가죽 가방 2개를 올려놓았다.

"현찰로 3억입니다.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나머지 일은 조용현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장준기 전무와 주한수 실장을 대동한 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소재한 드림박스 본점을 방문했다.

시사회가 열리는 3층 상영관으로 들어서자 입추의 여지없는 만원 관객들이 우리 일행을 반겼다.

그들은 대다수 언론사의 기자들과 영화계 종사자, 평론가 등이었다.

맨 뒷자리에 착석하자 곧바로 살인의 회상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살인의 회상은 총 런닝타임 128분짜리 영화였지만, 한시도 쉴틈없이 관객들을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압도적인 연출력, 그리고 송강오를 비롯한 주조연들의 열연이 빛을 발한 탓이었다.

그런 때문인지 장내에 배석한 기자들과 평론가 등이 하나같이 감탄한 얼굴로 기립박수를 쏟아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나는 그날, 천만관객을 확신했다.

살인의 회상은 압도적인 재미와 몰입감으로 중무장한 영화였다.

***

일요일 오후, 용인 cc 골프장.

김태섭과 하수용은 휴일을 이용해 라운딩을 즐기며 이런저런 담소를 길게 나누고 있었다.

태섭이 은근한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이 회장의 사업규모가 어느 정도지?"

"선배님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라고 할수 있죠."

"그 정도란 말이냐?"

"제가 아는 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해외 여러군데에 벌여놓은 비지니스가 부지기수로 많아요."

"확실히 이 회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태섭의 얼굴에 감탄한 표정이 한가득 드리워졌다.

"그리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건장한 친구들을 맨손으로 4명씩이나 박살 낸걸 보면 돈과 배짱, 주먹을 두루 갖춘 양반이라고 할수 있죠."

수용은 그리 답하며 골프채를 힘차게 휘둘렀다.

직후 골프공을 타격하는 경쾌한 소리가 장내에 기분좋게 메아리쳤다.

따악...!

하얀 골프공이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페어웨이 지역에 안전하게 떨어져내렸다.

"나이샷...!"

태섭은 환한 얼굴로 박수를 친 뒤 수용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오늘 컨디션이 엄청 좋은데?"

"조금 그런거 같네요. 하하하...!"

수용의 입에서 흐뭇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그후로도 라운딩을 오롯이 즐기며 태수의 신변에 대해서 잡다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태섭과 수용은 골프장 인근의 밥집에서 주린 배를 채운 뒤 진지한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회장에게 검사장 승진 문제에 대해서 넌지시 물어봐라."

"너무 보채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기다리시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무 말이 없으니까 애가 타서 죽을 지경이라고."

수용의 입가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기회 봐서 슬쩍 운을 떼 보겠습니다."

"고맙다. 역시 믿을건 하 프로 밖에 없구나."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이거 너무 섭한데요."

"당연히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지. 헤헤헤..."

태섭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수용의 술잔에 소주를 넘치도록 따라부었다.

***

넷플렉서의 란돌프 사장이 3천만불에 달하는 긴급 지원금을 요청했다.

결국 란돌프 사장을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전화상으로 나누는 대화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내 호텔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정식을 음미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란돌프는 포도주를 입가에 한모금 들이킨 뒤 속내를 드러냈다.

"온라인 vod 서비스의 대대적인 확충이 필요합니다."

"온라인 서비스를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입니까?"

"대규모 컨텐츠를 기반으로 월정액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나는 넷플렉서의 지분을 100% 보유한 절대 지배주주였다.

회사를 반드시 발전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었다.

"원하는대로 3천만 달러를 지원해 드릴테니 최단 시일 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어 주십시오."

란돌프가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님."

***

장준기와 유한성을 대동한 채 드림박스 강남점을 불시에 방문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극장 안팎은 살인의 회상을 감상하려는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장준기가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추세로 시간이 지난다면, 2주일 안에 천만관객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회장님."

"예상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을 말해보세요."

"총매출액 1천억 돌파가 예상되며 영업이익은 4백억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이익도 수백억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다.

흥행만 제대로 된다면 수백억에 달하는 순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유한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차기작으로 뭘 준비하고 있습니까?"

"동갑내기 가정교사와 조폭 와이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르죠?"

"동갑내기 가정교사는 제목 그대로 동갑내기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꽃피우는 코믹 로맨스 장르고, 조폭 와이프는 일반인 남성과 결혼한 전직 여자 조폭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춘 액션 스릴러 물입니다."

유한성은 막힘이 없었다.

이래서 내가 이 녀석을 좋아한다.

똑 부러지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제작비를 산출해서 김 사장에게 제출하세요."

"넵. 회장님."

극장 시찰을 끝마친 뒤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인근의 밥집으로 넘어갔다.

늦은 점심으로 배를 채울 무렵, 코플랜드 로펌의 마이어 대표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ARM 측과 56억 달러까지 의견차이를 좁혔습니다.

내가 원하는 가격 보다 대략 6억 달러가 오버된 금액이었다.

-좀 더 가격을 낮출수는 없는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정도가 한계인거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칼컴 측과도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도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날 밤.

경호원의 삼엄한 경계 속에, 한강변을 여유로이 거닐며 ARM 인수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ARM은 반드시 수중에 넣어야 하는 회사였다.

내가 생각한 액수보다 6억 달러 이상 비싼 몸값이었지만, 더 이상 인수를 미룰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언제 어디서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전광석화처럼 일을 매듭짓는 게 최선이었다.

마음을 먹자마자 타워필리스로 직행했다.

거실 책상 의자에 착석한 후 데스크탑을 켰다.

뉴욕 증시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애플 등의 주식시황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내 시선은 구글과 아마존 주가에 집중됐다.

매각대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최소 200억 달러 내외의 실탄이 필요했다.

한화로 24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ARM은 물론이고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도 쾌도난마처럼 인수합병할 계획이었다.

실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구글과 아마존 두개 업체의 주식을 모두 처분할 경우 210억 달러 정도를 손에 쥘수 있었다.

한화 25조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마음을 정리한 뒤 곧바로 뉴욕 월가의 주식 중개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TS 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아마존과 구글의 주식을 전량 장내매도해 주십시오.

수화기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많은 물량을 일순간에 시장에 매도한다면 엄청난 폭락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차를 두고 조금씩 매도해 주십시오.

-총 기간을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신지요?

-6개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회장님 말씀대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리소문 없이 주식을 매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 대신 수고를 해주십시오.

***

대검찰청 대강당에 정기 인사에서 승진한 검사들이 보무도 당당히 등장했다.

그들 중에는 김태섭의 모습도 보였다.

태섭은 검찰총장이 건넨 검사장 임명장을 감격한 얼굴로 받아든 채 총장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는 모든 행사가 끝나자마자 새로 발령받은 강남지검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강남지검에 태섭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후 지검의 검사들과 수사관, 실무관들이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

그는 검찰 식구들의 따스한 환영식을 뒤로 한 채 지검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검장실에 들어서는 태섭을 전직 지검장인 우명석이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다.

"후배님 소원대로 검사장 타이틀을 달았구나. 암튼 축하한다. 김태섭 지검장."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우하하...!"

그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후 명석에게 친근한 어조를 내뱉었다.

"조만간 회장님이 부르실 겁니다. 그러니 자택에서 차분히 기다리십시오."

"그럼 후배님만 믿을테니 나 대신 힘 좀 써달라고."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선배님의 국회의원 배지는 제가 책임지고 달아드리겠습니다. 하하..."

"역시 믿을 사람은 우리 김 검사장 밖에 없다니까. 헤헤헤..."

명석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태섭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

나는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경호원을 주변에 배치했다.

막돼먹은 불한당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밤도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고즈넉한 한강변을 여유로이 산책했다.

그러기를 문득 최근에 대박엔터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이민정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서너차례 가자 폰에서 민정의 정감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다. 이태수.

-안녕하세요. 회장님.

-너를 만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줄래?

-저를 왜, 만나시려는 거죠?

경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사적으로 회장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그녀는 당찬 여성이었다.

나처럼 잘나가는 남자를 매몰차게 외면하는 나름의 용기가 있었다.

-내 여자가 되면 출세길이 활짝 열릴거다.

-잘 알지만, 저는 제 능력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죄송해요. 회장님.

민정은 그 말을 끝으로 내 전화를 매정하게 끊었다.

간만에 여자에게 거부를 당한 탓인지, 언짢은 기분 보다는 신선한 느낌이 전신에 팽배해졌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그래서 더욱 갖고 싶었다.

허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산적한 현안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워필리스에 도착할 무렵, 주한수 실장이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김태섭 검사장의 연락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태섭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긴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님.

-전화상으로 하면 안될까요? 밤이 늦었는데.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무래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거 같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1시간 안으로 내 집으로 넘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회장님 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50분 후, 태섭이 내 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나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숙인 뒤 요점만 간단히 말했다.

"우명석 전 검사장을 국회에 보내주십시오."

"우명석이 그만한 이용가치가 있을까요?"

"그 자는 보기보다 인맥이 나름 좋은 축에 속합니다. 반드시 회장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태섭은 우명석을 수하에 두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그제서야 녀석이 만족한 얼굴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 쾌도난마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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