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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112화 (37/200)

< 쾌도난마 4 >

8월 중순 부터 방송을 시작한 여름향기가 공전의 빅히트를 기록했다.

케이블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28%를 돌파한 것이다.

공중파로 환산할 경우 거의 50%에 맞먹는 시청률이었다.

그 덕분에 드림 케이블 방송국의 위상은 공중파 3사에 비견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당연히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여름향기가 회자됐다.

특히 남주인 이창용의 인기는 가히 메가톤급 신드롬에 버금갈 정도였다.

***

가평 인근의 사격장에서 클레이 사격을 즐길 무렵, 장내에 김용대 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대는 나를 보자마자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일본 TBS 방송국 측에서 여름향기의 판권을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호남 위성 TV 역시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권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알려 왔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판권 판매를 마무리 지으세요."

"넵. 회장님."

"그리고 유한성 총괄과 이창용을 주연으로한 영화 제작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 하십시오."

나는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떠오른 창용에게 그럴듯한 선물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준비 중인 영화에 창용을 캐스팅하라는 말씀인가요?"

"흥행이 보장 된 영화에 녀석을 꽂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용대는 허리를 깊숙이 조아린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직후 주한수 실장이 눈 앞에 나타났다.

"김성우 대표께서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주 실장은 그리 말하며 내 손에 핸드폰을 건넸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김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명석 전 검사장 문제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십시오.

-전화로 말하기는 그러니까, 저녁이나 함께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겸사겸사 따로 드릴 말씀도 있고.

-그러시다면 서초동 인근의 청해 일식당에서 뵙는 것으로 하죠.

-좋습니다. 9시경에 일식당에서 봅시다.

-네. 대표님.

그날 밤.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 룸으로 들어서자 김성우 대표가 나를 반겼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일식을 즐기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당 보다는 여당의 공천을 노리는게 더 나아 보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노무연 대통령 집권 이후, 처음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인 탓에 여당이 승리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돈을 써서 한국당의 공천을 받는다 한들, 당선이 안된다면 돈만 날리는 꼴이 될수 있습니다."

김성우는 그리 답하며 정종 한모금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조용현 전 부총리를 이용한다면 여당의 공천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을수 있을 겁니다."

"필요한 액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전국구는 50억 정도의 정치 헌금이 필요하지만 지역구의 경우 20억 이내로 쇼부를 칠수 있습니다."

"그럼 김 대표님이 조용현 부총리에게 딜을 넣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김성우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남자였다.

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존재라고 할수 있었다.

그가 두눈을 빛내며 넌지시 운을 뗐다.

"정부에서 회장님의 히말라야 투자그룹을 카이닉스 전자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조만간 선정할 예정입니다."

김성우는 그리 말하며 은근한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얼굴마담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말대로 내 대신 전면에 나서줄 외국인이 절실했다.

"회장님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세인들에게 외국자본을 가장한 검은머리 자본이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킬수 있습니다."

"염두에 두신 인물이 있으십니까?"

성우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그가 누굽니까?

"월가에서 트레이더로 다년간 활동한 데이빗 워커라는 미국인입니다."

"믿을 만한 인물인가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미국인이라고 할수 있죠."

"그럼 지금도 월가에서 중개인으로 활동하는 겁니까?"

성우가 고개를 저었다.

"현업에서 물러난 후 마이애미에서 유유자적한 은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남자를 저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김재연 예능 국장을 사무실에 불러들였다.

면전에 나타난 재연에게 지엄한 명을 내렸다.

"슈퍼스타 드림, 시즌 2를 론칭하세요."

"아직 시즌 2를 론칭하기에는 시기가 다소 이른거 같습니다. 회장님."

"아는데, 이렇다할 예능 프로가 전무한 실정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만..."

녀석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번달 까지 준비를 끝마친 후 다음달 부터 전국과 미주대륙에서 대대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하세요."

재연이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넵. 회장님."

"그리고 이번에는 남녀 출연자 모두 비쥬얼을 우선시하는 내부 지침을 시행하세요."

"심사위원들이 반발할 확률이 큽니다. 회장님."

"반발하는 작자들은 짜르면 그만이에요. 그 친구들 출연료는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잘 압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오디션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려면 남녀 출연자 모두 비쥬얼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해요."

"명심하겠습니다."

"제작비를 아낌없이 지원해 드릴테니 오늘 부터 준비에 돌입하세요."

***

성심빌딩 사무실로 데이빗 워커를 불러들였다.

그는 60대 초반의 백인 남자였다.

월가에서 트레이더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바지사장 역할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쏠쏠한 노후자금을 챙길 기회로 여긴 탓이었다.

"대외적으로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회장으로 활동해 주십시오. 개인 사무실과 비서, 차량, 주택 등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연봉과 판공비도 말씀해 주십시오."

"연봉 120만 달러와 판공비 100만 달러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워커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한국에서 당분간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회장으로 활동해 주십시오."

그와 힘찬 악수를 교환한 뒤 한남동 인근의 라운지 바로 넘어갔다.

라운지 바에서 민용과 칵테일을 음미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임원들의 반응은 어때?"

"아직 말하지 못했다."

민용은 고심이 그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회장 직권으로 반도체 부문 매각을 처리하면 되잖아."

"원로 임원들한테 씨알도 먹히지 않을거다. 말하나 마나야."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반도체 부문의 금년도 적자가 얼마냐?"

"대략 2조원 남짓."

"4/4분기 까지 산출하면 2조원이 훌쩍 넘겠구만."

"맞아. 아마 그 정도 될거다."

그때, 쓸만한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곧바로 민용에게 내 속내를 밝혔다.

"내가 외국인 대주주들을 움직여볼까?"

"어떤식으로?"

"반도체 부문의 적자를 문제로 삼는거지. 외국인 주주들은 회사의 적자를 참아내지 못하잖아."

"그걸 빌미로 고위 임원들을 압박하라는 뜻이냐?"

"그래. 그러면 임원들도 반대명분이 많이 수그러들거다. 그렇게만 해주면 니가 원하는 가격대에 반도체 부문을 인수할게."

녀석이 두눈을 빛내며 넌지시 운을 뗐다.

"얼마까지 쳐줄건데?"

"최소 16조원 이상을 챙겨줄게,"

"16조원이라...?"

민용의 얼굴 가득 짙은 탐욕이 들끓었다.

달달한 칵테일을 한모금 들이킨 뒤 녀석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외국인 대주주들 명단을 나에게 넘겨줘. 내가 알아서 작업을 해볼 테니까."

"알았어. 니가 원하는 대로 자료를 준비해 볼게."

"고맙다. 그럼 자료가 준비되는 즉시 연락해라."

그 말을 끝으로 라운지 바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시내 모처에서 삼송전자 외국인 대주주들과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들에게 내 소개를 한 후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의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블랙홀처럼 빨아먹는 암적인 존재라고 할수 있죠."

"그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금발 머리의 외국인 대주주가 의문을 표하자 좌중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입을 빤히 쳐다봤다.

"우리 히말라야 투자그룹은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전격적으로 인수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송그룹의 고위 임원들은 반도체 부문 매각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자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대머리 외국인이 성난 얼굴로 분연히 외쳤다.

"그 인간의 이름이 뭐요?"

다른 외국인 대주주들도 저마다 불만스런 목소리를 토해냈다.

"우리가 보유한 삼송전자의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작정했구만!"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반도체 부문이 매각된다면 삼송전자의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할 겁니다!"

외국인 대주주들은 반도체 부문의 매각을 절실히 원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빅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이렇게 모신 겁니다. 임시주총을 열어서 반도체 부문 매각을 경영진에게 촉구해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겁니다."

금발머리 외국인이 환한 얼굴로 화답했다.

"좋습니다. 조만간 임시주총을 개최한 후 반도체 부문 매각 안을 주요 의제로 상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외국인 대주주들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장내를 유유히 벗어났다.

이제 나머지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서초동 삼송전자 본사 지하 대강당.

외국인 대주주들은 임시주총 현장에서 삼송전자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격렬한 언사를 내뱉고 있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에게 하루빨리 반도체 부문을 매각하십시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반도체 부문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솎아내야 합니다!"

"반도체 부문의 대규모 적자 때문에 주식이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거 아닙니까!"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으니 지금 당장 히말라야 투자그룹과 반도체 부문의 매각 작업에 돌입하십시오!"

김민용을 필두로 단상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던 경영진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민용은 겉으로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 역시 반도체 부문을 하루빨리 매각하고 싶었던 탓이었다.

그는 임시주총이 끝나자마자 그룹의 고위 임원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민용은 장내에 배석한 임원들에게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외국인 대주주들의 요구를 거부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해요.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반도체 부문의 매각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마자 임원들이 저마다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견을 차례로 밝혔다.

허나, 민용의 결심은 굳건했다.

외국인 대주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탓이었다.

"만년적자에 시달리는 반도체 부문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털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삼송 전자의 재정 건전성이 확보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반대의견을 말하지 마십시오!"

민용의 두눈에 서슬퍼런 눈빛이 치솟았다.

그는 서늘한 시선을 내비치며 좌중을 휘 둘러보았다.

"오늘 부터 반도체 부문 매각 작업에 돌입하세요. 명심하십시오!"

민용은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

가평 사격장에서 클레이 사격을 만끽하며 김성우 대표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 인수협상 작업을 준비해 주십시오."

김성우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김민용 회장과 사전에 교감을 나눈 상황입니다. 그러니 팀을 만들어서 인수협상에 돌입해 주십시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대한민국이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요."

"그러니 비밀을 철저히 엄수해 주십시오."

"염려 마십시오. 입이 무거운 친구들로 팀을 꾸리겠습니다."

"그럼 저 대신 김 대표님이 수고를 해주십시오."

"넵. 회장님."

***

서울 모처.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 매각팀과 김앤박 로펌의 인수협상 팀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교환한 뒤 매각 가격에 대해서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각자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내 사무실에 김앤박 로펌의 박성수 파트너 변호사가 나타났다.

그는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 인수협상 팀의 팀장이었다.

박변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첫 미팅 결과를 보고했다.

"삼송 측은 최소 19조원에 달하는 가격을 원하고 있습니다."

순간 민용에게 뒷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사전에 대략 16조원 정도로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허나, 막상 인수협상 작업에 돌입하자 녀석은 무려 3조원이나 가격을 부풀렸다.

비지니스에는 친구도 없고, 적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가격은 16조원입니다. 그러니 16조원에 근접한 가격으로 합의를 보십시오."

"장기간의 인수협상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고용한거 아닙니까?"

"말씀대로 최대한 근사치에 접근하는 가격으로 딜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박변을 내보낸 후 인터폰에 콜을 넣었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워커 회장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네. 회장님.

< 쾌도난마 4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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