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리 반도체 통합 3 >
스티브 잡스는 여전히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는 LC 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부문 기술진들과 시내 호텔에서 열띤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터치패널은 정전식으로 작동하는 패널입니다."
그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LC 전자의 황진수 기술 이사가 난색을 표명했다.
"정전식 터치패널은 신기술에 속하는 관계로 생산단가가 높습니다. 그리고 불량률도 감압식 패널 보다 2배 이상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사에 터치패널을 주문한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계약서에 적힌 대로 2006년 6월 까지 2천만장에 달하는 정전식 터치패널을 반드시 납품해 주십시오."
황진수는 잡스의 까다로운 요구에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허나, 애플은 초우량 고객이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일 내에 납품을 완료하겠습니다."
***
삼송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에 스티브 잡스 일행이 나타났다.
잡스는 공장을 시찰한 후 고원진 반도체 부문 기술이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2006년 6월 까지 귀사에서 생산한 모바일 CPU 2천만개를 납품받고 싶은데, 가능하십니까?"
고원진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많은 물량을 어디에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납품 기일을 맞춰줄수 있는지, 그걸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공장을 풀로 돌리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고원진은 말끝을 흐리며 잡스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봤다.
잡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할수 없군요. TSMC로 발길을 돌릴 밖에."
TSMC는 반도체 위탁가공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대만업체였다.
삼송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쟁자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 탓일까? 고원진이 놀란 얼굴로 잡스의 소맷자락을 급하게 부여잡았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원하시는 기일 내에 모바일 시피유를 반드시 납품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시간을 금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행위를 자제해 주십시오."
잡스는 소문대로 매사에 칼 같았다.
그는 컴퓨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냉철한 남자였다.
"내일 오후 2시경에 공식적으로 납품 계약을 체결합시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원진은 잡스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인근의 애플 본사 연구실.
스티브 잡스는 자사의 연구진들과 기존의 PDA 폰을 완벽히 대체할수 있는 손 안의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잡스는 연구진들을 향해 자신의 의중을 밝혔다.
"잦은 터치 반응 오류를 내뿜는 감압식 방식 대신, 터치의 인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정전식 터치 패널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개발합시다."
연구진들이 놀란 얼굴로 저마다 입을 열었다.
"정전식 터치 패널을 채용하려면 단가가 많이 올라갈 겁니다."
"게다가 정전식 터치패널을 대규모로 양산할 만한 업체도 손에 꼽습니다."
"그 문제는 LC 전자와 협의 중에 있으니 당신들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잡스는 완고한 얼굴로 기술진들의 의문 제기를 단칼에 제압했다.
직후 결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손에 쥘수 있을 정도의 IT 기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멀티터치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은 뒤 좌중을 강렬한 시선으로 휘 둘러보았다.
직후 다시 열변을 토했다.
"통화 기능과 음악 재생, 동영상 감상, 인터넷 등이 가능한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반드시 개발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군말 없이 연구에 매진해 주십시오!"
잡스의 열정적인 언변에, 장내의 기술진들이 하나같이 압도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일본 도쿄돔에 입추의 여지없는 만원관중이 들어찼다.
그들은 대다수 나이 지긋한 중장년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스테이지에서 한국어로 열창을 토해내는 이창용을 향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창사마! 사랑해요!
-창사마! 당신 만이 나의 태양이에요!
-창사마! 저와 하룻밤을 같이해 주세요!
-창사마! 당신의 아기를 원해요!
-창사마! 제발 나를 가지세요!
그녀들의 낯뜨거운 환호성을 현장에서 목도한 김명우는 절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삼사십대 여성은 물론이고 50대 여성들 마저 창사마와 뜨거운 하룻밤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사마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남신이라는 의미였다.
그녀들은 이창용을 남신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명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창용의 인기에 길게 혀를 내둘렀다.
그는 6만여 명의 팬들이 운집한 도쿄돔의 장엄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창용은 이제 걸어다니는 달러박스야!'
명우는 창용을 연결해 준 유한성에게 내심 감사한 심경이었다.
그 덕분에 돈보따리나 마찬가지인 창용을 수중에 얻은 탓이었다.
'앞으로 돔을 위주로 콘서트와 사인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거다. 그래야 큰 돈을 벌수 있어.'
그날 밤, 동경 제국 호텔 스위트룸.
명우와 창용은 룸서비스가 내온 스테이크와 포도주를 음미하며 향후 계획을 차분히 논의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잖아."
"그런 속담이 있죠.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죠?"
창용이 의문을 표하자 명우가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의 일본 인기는 돔 콘서트도 매진시킬 정도라고.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돔 위주로 콘서트와 사인회를 지속적으로 하는게 어떠냐?"
"영화 촬영 일정을 미루자는 말인가요?"
"지금 중요한건 영화 보다는 엔화를 긁어 모으는 거라고. 니 입장에서도 영화 촬영 보다는 돈을 버는 게 중요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꿈이잖아요."
"영화는 걱정하지마라. 스케일 큰 액션 대작 영화를 기획 중이거든. 거기에 너를 꽂아줄게. 천만 관객도 보장하마."
"진심인가요?"
"당연하지. 드림박스와 협의해서 상영관을 독점하면 게임 끝이라고."
창용은 명우의 제안을 받아 들이기로 결심했다.
"좋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이번 기회에 엔화나 제대로 벌자고요."
"잘 생각했다. 그럼 내일 부터 일본 주요 대도시를 타겟으로 하는, 투어 프로젝트를 준비하자고."
"알아서 준비해 주세요. 하하..."
***
성심빌딩 사무실로 이성훈 정보과장을 불러들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취급하는 남자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이성훈은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채 내 명령을 기다렸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성향이 어떻게 됩니까?"
내 물음에 그가 즉답했다.
"겉으로는 중도 혹은 보수적인 인사들로 평가받고 있지만, 대다수 법리에 충실한 현실적인 법관들 입니다."
"그럼 탄핵소추 부결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까?"
"법리적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반이라는 얘기였다.
"법조계 분위기를 말해 주십시오."
"대체적으로 정중동의 자세 같습니다. 서로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대다수 법조인들은 국회의원들이 오버 슈팅을 한거라는 입장입니다."
"오버 슈팅이라...?"
"탄핵소추의 부결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 같습니다."
노무연의 기사회생이 심중에 그려졌다.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탄핵소추 부결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답을 얻은 탓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곧바로 주한수 실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장내에 나타난 주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이성훈 과장이 타고온 차량에 사과박스를 실어."
"넵. 회장님."
주 실장이 물러가자 이성훈이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앞으로도 종종 만납시다."
"불러만 주시면 한달음에 달려오겠습니다."
***
강남 인근의 크레도스 클럽은 연예인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다.
오늘 그곳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인기 남자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탑스타로 등극한 이창용의 생일 파티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크레도스 클럽 VVIP룸.
이창용은 동료 배우들이 따라주는 술을 물처럼 들이키며 황제라도 된양 인기 여배우와 후끈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창용은 반반한 외모의 여배우와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동료배우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여배우를 품에 낀 채 룸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창용이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뜨거운 뒷담화가 이어졌다.
"드라마빨로 스타덤에 오른 주제에 더럽게 잘난체 한다니까!"
누군가 스타트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 뒷담화가 줄을 이었다.
"겉으로는 순정남인 척 갖은 폼을 다잡지만, 저 자식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속물이라고!"
"누가 아니래. 반반한 여자만 눈에 띄면 모텔로 직행하는거 봐라. 저런 놈을 지고지순한 순정파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을 보면 한심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라구!"
"그뿐인줄 아냐! 자기를 키워준 소속사를 배신하고 대박엔터로 하루아침에 이적했잖아!"
"사내 자식이 의리라곤 눈꼽만큼도 없다니까. 에휴... 말을 말자. 내 입만 아프다."
그들은 말로는 창용을 비난하고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부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탓인지 뒷담화는 얼마안가 처량한 신세한탄으로 변질됐다.
"시발. 나도 이번 기회에 대박엔터로 이적할까?"
누군가 운을 떼자 기다렸다는 말이 이어졌다.
"대박 엔터로 이적하면 드라마와 영화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연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그게 바로 그 유명한 1+1 정책이라는 거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쓸만한 영화에 꽂아주는 거지."
"상영관을 장악한 드림박스랑 대박엔터가 한지붕 두가족이라면서?"
"그걸 이제 알았냐? 드림 박스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히말라야 프러덕션도 같은 집안 식구라고 하더라."
"와! 시발! 그러니까 대박 엔터랑 드림 케이블 방송, 드림 박스,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모두 한식구라는 말이네?"
"그래서 요즘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에 돈과 배우들이 몰리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희들도 히말라야 프러덕션에서 시나리오를 보내면 자세히 살펴보라고. 함부로 거절하지 말고."
"당연하지.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실컷 빨자."
누군가 그리 말하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독한 양주를 입안으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
지상파 3사의 수장들이 서울 모처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격앙된 얼굴로 성난 고성을 내질렀다.
"드림 케이블은 상도의를 망각한 채 1+1 정책으로 스타 배우들을 모조리 빼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공정경쟁 위반입니다. 공정위에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해야 합니다."
"영화 출연을 미끼로 지명도 높은 배우들을 곶감 빼먹듯 날로 채가는 드림 케이블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자리에 모인거 아니겠습니까? 지상파 3사 공동 명의로 공정위에 드림 케이블을 불공정 경쟁 혐의로 제소합시다!"
그들은 금세 의견일치를 보았다.
다음날, 공중파 3사 명의로 공정위에 한장의 공문서가 발송됐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사무실 한켠에 놓여진 헬스 기구를 이용해 근력운동에 매진할 무렵 김용대 국장이 놀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회장님. 큰,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말까지 더듬는 거야?"
"지상파 3사가 공정위에, 우리 드림 케이블이 시행하는 1+1 정책을 불공정 경쟁 혐의로 제소했습니다."
기도 안 찰 노릇이었다.
온갖 편법을 자행하는 지상파 3사가 별것도 아닌 일로 공정위에 제소를 남발한 탓이었다.
"신경 꺼."
"회장님. 공정위가 지상파의 제소를 받아들일 경우 우리 방송국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염려마. 어차피 정부 기능이 올스톱된 마당이라고. 제깟 놈들이 설쳐봤자 말짱 도루묵이지."
"그래도 공정위가 제소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용대가 근심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애사심이 나름 대단한 양반이었다.
"김 국장은 내가 공정위 제소도 막아내지 못하는 호구로 보이는거야?"
그러자 녀석이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었다.
"당연히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헤헤헤..."
용대는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당신은 드라마 라인업이나 신경 쓰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중 미니시리즈는 물론이고 주말 드라마, 일일 드라마, 아침 드라마 등을 모조리 장악하자고. 드림 케이블을 드라마 왕국으로 만들자는 말이야!"
"거듭 회장님의 존귀한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겠습니다."
용대는 나름 유려한 언변을 구사하며 내 마음을 흡족하게했다.
"드라마가 성공해야 광고 매출이 급증한다고. 그러니 지명도 높은 배우들로 드라마 라인업을 꽉 채워!"
"넵. 회장님."
다음날.
성심빌딩 사무실로 조용현 전 부총리를 불러들였다.
그와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나눌 말들이 있었다.
"지상파 3사가 우리 드림 케이블을 상대로 공정위에 제소를 감행했습니다."
"이유가 뭔지요?"
"인기 배우들을 독식한다는 명분으로 제소를 했더군요."
그러자 조용현이 얼척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상파 대표라는 작자들이 참으로 할 짓이 없나 봅니다. 미친 인간들 아닙니까?"
"그래서 부총리 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빌어먹을 그 인간들을 제대로 단도리 해주십시오."
"염려 마십시오. 공정위에 포진한 인맥을 동원해서 지상파 3사가 제출한 소장을 쓰레기통 속으로 쳐박아 버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래서 내가 부총리님을 좋아해요. 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회장님과 저는 어차피 원팀 아니겠습니까? 헤헤헤..."
조용현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내 잔에 양주를 넘치도록 따라부었다.
그가 따라준 양주를 입안에 한모금 들이킨 뒤 본론을 꺼냈다.
"외자은행 인수 문제를 차질없게 진행 시키세요."
"탄핵소추 와중인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염려 마시고 내 말대로 하세요."
조용현이 두눈을 빛내며 화답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예정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 메모리 반도체 통합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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