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16화 (41/200)

< 메모리 반도체 통합 4 >

성심빌딩 사무실로 카이닉스 전자 김동진 기술이사를 불러들였다.

김동진의 손에는 두툼한 노란봉투가 들려있었다.

그가 건넨 노란 봉투에서 서류를 꺼낸 뒤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서류는 카이닉스 전자가 보유한 부동산과 현금 자산 등의 현황이 담겨있었다.

모두 합해 2조원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당장 필요없는 불요불급한 자산이었다.

하루빨리 처분해서 현금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음을 정한 후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김동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불요불급한 자산을 모조리 처분하세요. 최단 시일 내에."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다음주 금요일 무렵에 평택 공장을 시찰할 생각이니까 알아서 준비를 해주세요."

"넵. 회장님."

동진은 별다른 말 없이 내 명령을 순순히 수용했다.

아랫사람 된 도리를 잘 아는 남자였다.

"나에게 제안할 사항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 보세요."

그제서야 녀석이 은근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서울에 소재한 본사 인력을 평택 공장으로 하루 속히 재배치해야 합니다. 밥만 축내는 버러지들이 그 만큼 많다는 반증입니다."

"서울 본사 인력들이 하는 일이 뭡니까?"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평택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반도체 산업은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의 기강이 바로 서거든요."

"그 문제는 김 이사가 알아서 처결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이만 나가 보세요."

"네. 회장님."

동진은 그리 복명한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녀석을 내보낸 뒤 코플랜드 로펌의 마이어 대표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칼컴의 인수 협상 경과를 알고 싶어서였다.

폰에서 마이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컴의 코헨 회장이 고집을 꺽지 않고 있습니다.

-그자가 원하는 액수가 얼만가요?

-최소 75억 달러 이상의 매각 금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코헨과 직접 담판을 지으시는 편이 최선 같습니다.

아무래도 코헨과 직접 만나서 결판을 짓는게 나을성 싶었다.

-코헨 회장과 LA 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담판을 지을 생각입니까?

-그래야 할거 같습니다.

-그럼 이번주 내로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

주한수 실장과 서너명의 경호원들만 대동한 채 LA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칼컴을 인수할 생각이었다.

시간을 질질 끌어봤자 이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칼컴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PDA폰에 필수불가결한 모바일 시피유와 통신칩을 일원화한 원칩을 개발한 상태였다.

칼컴은 모바일 계통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절대 놓칠수 없는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21시간의 비행 끝에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전용기를 뒤로 한 채 공항 대합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플랜드 로펌의 변호사들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다운타운에 위치한 유니버설 힐튼 호텔로 안내했다.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코플랜드 로펌의 마이어 대표와 칼컴의 코헨 회장이 나를 반겼다.

그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 후 원탁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코헨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매각 액수를 67억 달러 수준으로 인하해 주신다면 현 경영진의 유임을 고려할 의향이 있습니다. 또한 67억 달러 전액을 일시불로 지급하겠습니다."

코헨의 얼굴 가득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 문제는 저 혼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닌거 같습니다. 일단 동업자들에게 회장님의 제안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칼컴은 코헨 외에도 총 6명의 동업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칼컴의 진정한 주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3일 안에 가부를 결정해 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다음날.

주한수와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실리콘벨리를 방문했다.

얀드로이드사의 앤디 루반 사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수십여 명의 엔지니어들이 모바일 운영체제를 개발하는데 사력을 다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때우며 얀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완성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앤디 루반도 포함되었다.

앤디는 구석에 놓여진 책상에서 코딩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제서야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쑥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그렇죠. 거의 1년 만에 보는 건가요?"

"아마 그정도 됐을 겁니다. 하하..."

그가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며 모니터를 손짓했다.

"얀로이드 운영체제는 리눅스 커널 위에서 구동되며, 자바와 코틀린으로 앱을 만들어 동작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알수없는 전문용어를 구사하며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허나,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또한 여러 종류의 C/C++ 라이브러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자바 가상 머신과는 다른, 얀드로이드 런타임을 통해 자바와 코틀린으로 작성된 응용 프로그램을 별도의 프로세스에서 실행하는 구조라고 할수 있죠."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일반인 수준의 IT 지식 밖에 없는 나에게 앤디는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눈치였다.

암튼 중요한건 개발 완료 시기였다.

"얀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언제쯤 개발이 완료될까요?"

"개발을 완료하더라도 오류검증 작업만 최소 1년 이상 시행해야 합니다. 그런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할 경우..."

앤디가 말끝을 흐리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다시 말을 이었다.

"오류 검증 작업을 포함할 경우 2007년 중순 경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3년 이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내심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허나, IT 기술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정도(正道)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더욱 열정적으로 얀드로이드 개발에 임해 주십시오."

"회장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앤디와 힘찬 악수를 교환한 뒤 LA 다운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유니버셜 힐튼호텔 스위트룸.

마이어 대표와 칼컴 고문 변호사가 배석한 가운데 코헨 회장과 최종 담판을 짓기로 굳게 다짐했다.

"저의 제안에 대해서 결정을 하셨습니까?"

코헨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동업자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단, 그 전에 우리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수용해 주십시오."

"저에게 추가로 제안할 사항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게 뭐죠?"

"칼컴이 나스닥에 상장할 경우, 현 경영진에게 그에 합당한 성공사례금을 지불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해 주십시오."

일종의 스톡옵션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현금을 원하시는 겁니까?"

코헨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칼컴의 주식을 원할 뿐입니다."

"원하는 지분을 말씀해 주시죠?"

"우리 6명 전원에게 각각 3%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상해 주십시오."

"흠..."

내 입에서 절로 깊은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한명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6명에게 각각 3%에 달하는 지분을 넘겨줄 경우, 무려 18%에 달하는 주식 지분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한다.

결코 받아들일수 없는 수정제안이었다.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시는군요."

"저희 나름대로 산출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코헨의 완강한 태도였다.

"만약 당신들의 제안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을 없던 일로 치부하고, 모든 매각 작업을 즉각 중단할 생각입니다."

"배수의 진을 치신 겁니까?"

"그렇다고 해두죠."

칼컴의 경영진은 벼랑끝 전술을 들고 나왔다.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

"24시간의 말미를 주십시오. 그 안에 가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이곳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기로 하죠."

코헨은 그말을 끝으로 고문 변호사와 함께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마이어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시죠."

"저도 그러고 싶지만 18%에 육박하는 지분을 내어줄 경우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칼컴을 뉴욕 증시에 상장할 경우 내 지분을 시장에 매도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과반수 지분에 미달하는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자 마이어 대표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에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습니다. 오너의 지분이 적더라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한다면 적은 지분으로도 얼마든지 과반수 결정권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경영대학원에서 들었던 내용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이용해서 대지주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였다.

"그래도 내 지분이 줄어드는 상황이 탐탁지 않아요."

"회장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그럼 내일 뵙죠."

마이어는 그리 말하며 스위트룸을 빠져나갔다.

이제 스위트 룸에는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

썰렁한 스위트룸의 창가를 거닐며 코헨 회장의 역제안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그는 결연한 태도였다.

내가 역제안을 거부할 경우 모든 매각 작업을 중단할 의사를 표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

18%에 달하는 지분이 아까웠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다음날.

유니버셜 힐튼 호텔 스위트 룸에서 칼컴을 65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계약서에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또한 칼컴이 뉴욕 증시에 상장될 경우, 코헨 회장을 비롯한 6명의 경영진들에게 총 18%에 달하는 지분을 양도한다는 조항을 계약서 안에 삽입했다.

인수계약을 마무리 지은 후 칼컴의 공식 계좌로 총 10억불에 달하는 계약금을 이체했다.

그날밤, 유니버셜 힐튼호텔 스위트룸.

월가의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식 전량을 3개월 안에 매도해 주십시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입가에 담배 한개피를 베어 물었다.

그걸 시작으로 줄담배를 연이어 피워올렸다.

내가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가치는 대략 116억 달러 안팎이었다.

한화로 14조원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나는 MS 주식을 처분한 자금으로 칼컴의 잔금을 치룰 계획이었다.

또한 마이크런 반도체의 주식을 암중에서 대규모로 매입할 생각이었다.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기 위함이었다.

***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데이빗 워커 회장과 김동진 기술이사, 임원진 등을 대동한 채 카이닉스 전자의 평택 공장을 시찰했다.

방진복을 착용한 채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두루 살폈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FAB공정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모습에 내심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마음 속으로 그녀들을 열렬히 응원한 후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에 백여명에 육박하는 임원들과 고위 간부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에게 목례를 취한 후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직후 워커 회장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당신은 이만 퇴근하세요."

"제가 없어도 될까요?"

"실무적인 회의니까 당신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워커는 그리 답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곧바로 좌중을 향해 모두발언을 내뱉었다.

-오늘 부로 카이닉스 전자의 사명을 히말라야 전자로 변경합니다. 그러니 언론사와 협력업체, 홈페이지, 클라이언트 측에 그 같은 사실을 공문서로 전달하십시오.

-또한 천안 인근에 40나노대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증설할 예정이니 임직원 여러분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순간 장내에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내 모두발언은 길게 이어졌다.

-본인은 오래전 부터 메모리 반도체와 낸드 플래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전세계적인 업황 부진과 치킨 게임의 여파로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지만, 조만간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갈채에 환장한 좌중을 진정시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임직원 여러분들의 고용을 보장할 생각입니다. 대신 무사안일을 일삼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보직해임을 명할 것임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순간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물론 내가 알바 아니었다.

-저는 히말라야 전자의 불요불급한 부동산과 현물 자산을 모조리 처분할 계획입니다. 한푼이 아쉬운 형편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서울에 소재한 히말라야 전자의 본사 인력을 평택 공장으로 전원 배치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서울 본사 건물은 빠른 시일 안에 매각할 겁니다.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특히 서울살이에 길들여졌던 본사 임직원들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회사가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와중에도 서울에서 탱자탱자 쳐놀며 국민들의 혈세만 축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개짓거리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히말라야 전자는 내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회의를 끝마친 후 임직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했다.

그들은 내가 히말라야 전자의 실제 오너임을 대다수 알고 있었다.

김동진 기술이사가 암암리에 내 소식을 그들에게 전한 탓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리무진 차량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김동진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당신이 히말라야 전자를 책임지세요."

순간 김동진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대표이사 직함을 달아드릴테니 불요불급한 현금 자산과 부동산 등을 하루빨리 처분하세요."

"최단 시일 내에 유휴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을 모두 처분하겠습니다."

동진은 그리 화답하며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매각 계획서를 작성해서, 내일 오전 10시 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세요."

"넵. 회장님."

< 메모리 반도체 통합 4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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