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17화 (42/200)

< 도널드 트램프 1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면전에 나타난 김동진 히말라야 전자 사장에게 지엄한 명을 하달했다.

"임원들에게 지급하던 회사 차량을 전원 회수함과 동시에 비정규직인 운전기사를 해고하세요."

김동진이 흠칫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뭘 그리 놀라세요. 히말라야 전자는 한푼이 아쉬운 형편이니,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세요."

그가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사외 이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거의 30명이 넘는 규모던데?"

김동진이 즉답했다.

"공적자금을 투입받는 과정에서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들을 대거 투입한 탓입니다."

"그들을 내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정부에서 뒷말이 나올 공산이 큽니다. 그러니 당분간 사외 이사들은 손을 안대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좋아요. 그건 김 사장 말대로 할테니까 하루 빨리 반도체 공장 증설 허가를 받아내세요."

그러자 김동진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허가를 내주려는 자세지만, 정부의 해당 관청에서 미온적인 반응 일색입니다."

"국정 공백 때문인가요?"

"네. 자기들 멋대로 허가를 내줬다가 나중에 덤터기를 쓸까봐 잔뜩 움추러든 기색입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라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려는 내 순수한 의도를 그들은 의심하고 있었다.

한국은 쓸데없이 공무원만 많은 나라였다.

국민혈세만 축내는 밥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그 만큼 많다는 반증이었다.

"헌재의 탄핵소추 판결이 떨어져야 허가가 나올거 같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그건 그렇고, 히말라야 전자가 보유한 부동산과 현금 자산의 매각 방법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동진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덩치가 큰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들이라 단 시일 내에 처분한다는 게 쉽지 않을거 같습니다."

동진은 그리 대답하며 내 손에 두툼한 서류철을 건넸다.

서류철을 살피자 굵직굵직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 목록이 시야에 들어왔다.

히말라야 전자는 서울 중구에 34층 높이의 본사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싯가로 5천억을 상회하는 알토란 같은 부동산 자산이었다.

그외에도 경기권과 충청권 부산 지역에 불필요한 부동산 자산들이 널려있는 형국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도체 관련 자회사들을 수십여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처분할 경우 수천억 대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불요불급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들을 처분하는 게 급선무였다.

김동진을 내보낸 후,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오후에 가평 사격장에서 만나뵐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내일 오후 2시까지 사격장으로 나오십시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날 오후.

가평 인근의 사격장에서 김성우 대표와 클레이 사격을 즐기며 넌지시 운을 뗐다.

"히말라야 전자가 보유한 부동산과 반도체 관련 자회사들을 일괄 처분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며 노란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김성우는 히말라야 전자의 자산목록 현황을 자세히 훑은 뒤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생각 외로 현금성 자산이 많군요. 나름 묵혀둬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1년 이내에 반도체 공장을 대대적으로 증설하기로 정부와 약속을 한 상태에요."

"국정공백 상황인데 너무 앞서 나가시는 거 아닌가요?"

"한푼이 아쉬운 처지라 빠른 시일 안에 현금성 자산을 모조리 처분하고 싶습니다."

김성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국내외 자본에 딜을 넣어보겠습니다."

"6개월 이내에 작업을 마무리해 주십시오. 그리 해주시면 수수료를 듬뿍 챙겨드리죠."

"감사합니다. 회장님."

김성우는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사격장을 나서자마자 한남동으로 직행했다.

김민용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한남동에 들어서자 집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회장님이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집사의 뒤를 따랐다.

접견실로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있던 민용이 나를 반겼다.

"웬 일로 내 집에 찾아온 거야?"

"다 알면서 뭘 물어?"

그리 반문하자 녀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소파를 손짓했다.

"일단 앉아라."

고개를 끄덕인 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장내에 도우미 아줌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진한 커피 두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접견실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쓴 커피를 한모금 들이킨 뒤 민용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17조원에 합의를 보자."

그러자 녀석이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내 제안이 마음에 안드냐?"

그제서야 민용의 입이 열렸다.

"솔직히 좀 그래. 어차피 매각 작업은 관계자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자."

녀석은 그리 말하며 심드렁한 눈빛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반드시 19조원을 받아 챙기려는 속셈 같았다.

"그래도 나는 좀 해야겠다. 지금 반도체 시장은 엄청난 불황이야."

"다 아는 얘기를 뭐 하러 하는 건데?"

민용이 불만스런 낯빛을 드러내며 나를 쳐다봤다.

물론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이 45%에 달하는 시장 쉐어를 갖고 있다고 해도, 대규모 적자를 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무리 많이 쳐줘도 17조원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뜻이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쓸데없이 욕심을 너무 많이 내면 거래가 파토나는 법이다. 명심해라."

"지금 나한테 최후통첩을 하는 거냐?"

"마음대로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한남동을 박차고 나왔다.

나머지는 민용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

이민정은 드라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썩 유쾌하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향기가 공전의 빅히트를 기록했지만 남주인 이창용이 모든 과실을 수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창용의 상대 여배우 정도로 인식할 뿐이었다.

물론 한국 내에서는 인기 여배우 반열에 올라서는 성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창용의 어마어마한 일본 인기에 자극받은 탓이었다.

그런 때문인지 영화에 유난히 집착했다.

특히 로맨스물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대박 엔터 사무실에 민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방기훈 실장이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연락도 없이 사무실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대표님은 어디에 계시죠?"

"이창용을 서포트 하느라 일본에 계십니다."

민정의 얼굴에 불만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대표님은 창용씨 밖에 모르는 건가요? 다른 소속 배우들도 케어를 해 주셔야죠."

그녀의 입에서 볼멘 목소리가 쏟아지자 기훈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처 신경을 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민정씨."

"면피용 발언은 됐어요. 암튼 내가 원하는 건 로맨스 영화 출연이에요. 그러니 실장님이 책임지고 영화에 꽂아주세요."

민정은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장내에서 사라졌다.

기훈은 곧바로 일본에 있는 김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정씨가 사무실에서 와서 한바탕 하고 갔습니다.

-무슨 일인데?

-로맨스 영화에 꽂아달라고 난리를 치더라구요.

-창용이 케어하는 일도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민정이 까지 왜 그러는거야?

-대표님이 창용씨만 서포트 한다고 엄청 질투를 하더군요.

-창용이는 일본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하니까 그런거지. 암튼 유한성 총괄한테 연락해서 영화 출연을 조율해 봐.

-알겠습니다. 대표님.

기훈은 10층에 위치한 히말라야 프러뎍선 대표 사무실로 급하게 올라갔다.

유한성은 사무실에 나타난 기훈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이민정 씨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민정씨가 쓸만한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요?"

"아무래도 총괄님께서 힘을 좀 써주셔야 할거 같습니다."

"음..."

한성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기훈에게 솔직히 말했다.

"알다시피 영화판은 남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시장이에요. 여자 배우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흥행이 잘 안되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잘 알죠. 그렇지만 민정씨는 우리 대박 엔터에서 나름 제일 잘나가는 여배우 아닙니까?"

한성이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회장님의 의중이 실린 일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회장님은 민정씨를 좋게 보고 계십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기훈이 그리 반문하자 한성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방 실장의 말대로 회장님은 이민정을 마음에 두고 계신다. 쓸만한 로맨스 영화에 그녀를 꽂는 게 최선이야.'

한성은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린 뒤 기훈에게 입을 열었다.

"민정씨가 출연할 만한 영화를 알아볼 테니까 이만 물러가세요."

"그럼 총괄님만 믿겠습니다."

기훈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김민용은 한남동 접견실로 측근 가신그룹을 불러들였다.

민용은 면전에 마주앉은 가신들에게 태수의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이태수는 17조원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은 쳐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가신들이 저마다 격렬한 언성을 내뱉었다.

"무조건 19조원을 고수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한두푼도 아니고 갭차이가 무려 2조원 씩이나 차이가 나는 일입니다!"

"수천억도 아쉬운 판국에 2조원 씩이나 가격을 후려치려는 속셈입니다. 절대 응하시면 안됩니다! 회장님."

민용은 원로 가신들의 격렬한 언사에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 노인네들은 태수의 성깔을 몰라서 이런 헛소리를 하는구나. 아휴... 한심한 노친네들...'

그는 이미 태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탓이었다.

민용은 격한 논쟁을 펼치는 원로 가신들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래전략 본부에 17조원 내외로 매각 금액을 조정하라는 지침을 하달하세요."

순간 장내가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허나, 민용은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접견실에서 유유히 몸을 감췄다.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2층 트레이닝 룸에서 샌드백을 상대로 현란한 복싱 스킬을 발현할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이방카 트램프의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해?

-운동.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냐?

-피이... 그냥 자기 근황이 궁금해서 연락했지. 우리 사이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니?

이방카는 말은 그리 했지만 뭔가 용무가 있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금세 본론이 쏟아져 나왔다.

-실은 우리 아빠 일로 전화를 했어.

-무슨 일인데?

-아빠가 이번에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할 생각이거든.

트램프는 오래전 부터 대선 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이번주 금요일에 뉴욕 트램프 타워에서 후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거든. 시간 되면 자기도 올래?

후원금 달라는 소리였다.

그저 그런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하는 거라면 단칼에 내쳤겠지만. 트램프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의 바람대로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름의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남자였다.

-알았다. 이번주 금요일에 트램프 타워로 갈 거라고 회장님에게 전해줘.

-고마워. 자기야. 사랑해. 호호...

-나도 마찬가지다. 금요일에 뉴욕에서 보자.

다음날.

회사로 출근하자마자 주한수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이번주 금요일에 뉴욕에 가야 하니까 전용기를 대기시켜."

"알겠습니다. 회장님."

***

뉴욕 트램프 타워 펜트하우스.

주한수 실장을 대동한 채 넓다란 홀로 들어서자 도널드 트램프의 당내 경선을 알리는 플랜카드가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주변을 할일 없이 관찰할 무렵 턱시도 차림의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한국에서 오신 이태수 회장님 인가요?"

"맞습니다."

그리 답하자 지배인이 나를 2층에 위치한 서재로 안내했다.

서재로 들어가자 도널드 트램프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회장님. 하하..."

나름 기분좋은 웃음을 내뱉은 후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봉투 한장을 꺼내서 그의 손에 건넸다.

"선거 후원금입니다. 안을 살펴보시죠."

트램프가 감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 속에서 수표 한장을 끄집어냈다.

미화 7백만 달러 짜리 수표였다.

트램프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거금을 기탁해 주시니 진정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장님."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더 이상 공치사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름 겸양지덕을 한껏 과시하자 트램프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홀가분하게 파티를 즐겨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회장님."

그리 화답하며 트램프와 힘찬 악수를 교환했다.

서재를 나서자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이방카가 나를 반겼다.

"와줬구나! 고마워. 자기야."

이방카는 그리 말하며 내 품에 포근하게 안겨들었다.

그러자 장내에 우두커니 서 있던 주한수가 부러움 반 놀람 반의 얼굴로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눈치가 없는 친구였다.

이럴 때는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는 게 예의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방카와 함께 인근의 호텔로 넘어갔다.

< 도널드 트램프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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