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22화 (47/200)

< 히말라야 투자그룹 2 >

김동진과 하수용, 주한수 등을 대동한 채 삼송전자 서초동 본사 컨퍼런스 홀로 들어서자 국내외 언론사에서 몰려온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펼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한 나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쉼없이 눌러댔다.

그 덕분인지 카메라 플래쉬가 내 일신에 집중됐다.

플래쉬 세례를 묵묵히 감내한 뒤 연단으로 올라갔다.

연단에는 김민용과 삼송그룹 경영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한 후 반도체 부문 인수 본계약 체결 절차에 돌입했다.

우리는 서로 준비한 계약서를 상대방 측에 전달한 뒤 각자의 법무실장에게 계약서의 오류 유무를 검토시켰다.

대략 4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계약서 검토작업이 모두 끝났다.

인수계약서에 자필서명을 기입한 뒤 삼송전자 법무실장에게 건넸다.

삼송전자 측도 김민용의 자필서명이 기입된 계약서를 우리 측 하수용 법무실장에게 넘겼다.

잠시 후, 양측을 대표해 하수용 법무실장이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실시했다.

-히말라야 전자는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의 인수작업을 순조롭게 마무리 했습니다.

-계약금으로 오늘 오후 5시까지 삼송전자 공식 계좌로 2조원을 이체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중도금과 잔금 역시 계약서 상에 명시된 일자에 지급할 계획입니다.

-그럼 기자분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수용이 그리 말하자 장내에 운집한 기자들이 재빨리 팔을 들어올렸다.

수용은 그들 중에서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유력 일간지의 기자를 지목했다.

"질문하십시오."

당연히 기자의 질문은 나에게 집중됐다.

-이태수 회장님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뒤 기자의 질문에 차분히 답했다.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 현재 메모리 반도체 업체는 극심한 적자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메모리 반도체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반도체 업계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겁니다.

답변이 끝나자마자 중간 줄에 앉아 있던 기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과 히말라야 전자를 합할 경우 메모리 반도체 시장 쉐어가 거의 75프로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시장의 독과점을 염두에 두고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을 인수하신 겁니까?

기자에게 곧바로 즉답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종은 독과점이 불가능한 글로벌 사업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미국 정부와 EU 연합은 독과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히말라야 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의 독과점을 획책한다면 미국 정부와 EU 연합의 징벌적인 규제를 당할 겁니다.

장내에 배석한 기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명료한 명쾌한 답변이었던 탓이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기자가 다른 질문을 해왔다.

-회장님의 재산 형성 과정에 의혹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 속 시원히 답변해 주십시오.

곧바로 즉답했다.

-저도 그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정정당당한 노력으로 재산을 축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한국 주식시장에서 수천억을 벌어들였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손대는 주식마다 대박을 친거죠.

-그 이후 미국 증시에 전재산을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수백억 달러에 육박하는 재산을 일구는 데 성공했습니다.

답변을 끝마치자마자 또 다른 기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뉴욕 증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투자 종목을 밝힐 의향이 있으십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개인의 프라이버시 차원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 답한 후 하수용 실장에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기자 간담회를 끝내."

"네. 회장님."

하수용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이상으로 모든 절차를 끝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민용과 삼송그룹 임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교환했다.

그날 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히말라야 전자가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총액 17조원에 전격적으로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히말라야 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시장 쉐어를 75% 가까이 차지한 히말라야 전자에 우려와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략...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전세계에 유통 중인 메모리 반도체의 시세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미국 마이크런 반도체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이크런 반도체 역시 인수하고 싶었지만, 미국과 유럽 연합의 독과점 제재가 우려됐다.

최선은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서 마이크런 반도체의 주식을 과반수 이상 점유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시가총액은 대략 200억 달러 내외였다.

한화로 24조원에 상당하는 액수였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12조원 정도만 취득하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은 차등의결권이란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

차등의결권은 대주주가 20% 정도의 주식 만으로도 과반수 의결권을 행사할수 있는 제도였다.

그런걸 감안할 경우 마이크런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면 최소 18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용현금은 10조원 내외였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을 인수하느라 상당액수의 가용현금을 쏟아부은 탓이었다.

마이크런의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애플 주식을 처분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월가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플의 주식 전량을 장내 매도해 주십시오.

-애플 주가가 상승세에 접어든 마당에 너무 성급하신 판단 아닌지요?

-아는데, 돈 쓸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 3개월 안에 애플 주식을 전량 처분해 주십시오.

***

외자은행의 통합 전산실과 재무회계실은 조용현 사단이 접수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탓으로 외자은행은 지난 2년 동안 자기자본비율이 꾸준히 6%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재정건전성이 극악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실상은 전혀 딴판이었다.

외자은행의 진실한 자기자본비율은 거의 9%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 모처.

조용현과 경제부처의 고위 실무진들이 머리를 맞댄 채 외자은행 매각 문제에 대해서 심도깊은 협의를 나누고 있었다.

조용현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간사한 생김새의 남자에게 넌지시 운을 뗐다.

"청와대 분위기는 어때?"

"외자은행 매각을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깁니다."

"재정경제부 쪽은?"

"그들 역시 청와대와 대동소이한 반응입니다."

"좋아. 이제 칼라일 펀드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작업에 돌입하자고."

"외자은행 매각 공고를 공시하면 국내외 자본이 몰려들텐데, 그걸 막아낼 방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그리 말하자 조용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문제는 칼라일 펀드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당신들은 신경쓰지마라."

그때,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금테안경이 조용현에게 은근히 물었다.

"칼라일 펀드 쪽에서 교통정리를 자체적으로 할 계획인가요?"

"이미 월가 쪽은 교통정리가 끝난 상황이야. 외자은행 인수에 달려들 사모펀드는 칼라일 그룹 밖에 없어!"

조용현의 확언에, 좌중의 얼굴에 하나같이 끈적한 탐욕이 떠올랐다.

"이번 일만 제대로 처리하면 각자 40억 이상의 보너스를 챙길 수 있으니까 알아서 최선을 다하라고!"

***

삼송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인수한지 석달이 지났다.

그런 탓인지 히말라야 전자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의 3조 9천억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막대한 적자규모를 목도하자 눈 앞이 캄캄해지는 심경이었다.

그 무렵, 애플 주식을 처분한 대금이 TS 인벤스트먼트 계좌에 입금됐다.

미화 160억 달러 규모였다. 한화로 19조원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히말라야 전자의 적자를 보전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막대한 이자가 부담으로 느껴졌다.

가용현금이 29조원이나 있는 마당에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다는 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결국 가용현금 중에서 4조원 정도를 히말라야 전자의 공식 계좌로 이체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24층 회의실로 들어서자 히말라야 전자의 경영진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본체만체하며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날 선 언사를 토해냈다.

"적자가 4조원에 육박할 지경인데 목구녕으로 밥숟갈이 넘어갑니까!"

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임원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였기 때문이다.

"TS 인베스트먼트 계좌에서 인출한 4조원을 히말라야 전자의 공식 계좌로 이체할 생각이니까 그 돈으로 적자를 보전하세요."

그러자 장내에 안도의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지금 당장 마이크런 반도체와 접촉을 추진하세요. 1기가당 1천원 수준으로 떨어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기가당 최소 8천원대로 만드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목청을 드높이자 임원들이 겁먹은 얼굴로 일제히 복명했다.

"넵. 회장님!"

***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마이크런 반도체 본사 건물에 히말라야 전자의 신용진 기술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회사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12층 회장실로 들어섰다.

신용진은 스캇 뉴퍼 회장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저희 회장님께서는 더 이상의 무의미한 출혈경쟁을 지양하고 싶어 하십니다."

"당신네 한국 반도체 업체에서 덤핑 전쟁을 시작한 주제에, 지금에서야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뉴퍼 회장의 날 선 반응에, 신용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삼송전자가 벌인 일입니다. 우리 히말라야 전자는 삼송전자와 전혀 다른 정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나는 한국 업체들의 말을 절대 믿지 않아요. 말로는 휴전을 하자고 하면서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덤핑으로 물건을 밀어내는 짓거리를 하도 많이 봐서."

"회장님. 그건 삼송전자가 행한 일입니다. 우리 히말라야는 삼송전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 눈에는 삼송전자나 히말라야 전자나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믿음을 주시려면 메모리 반도체의 기가당 단가를 8달러 이상으로 인상한다는 공시를 업계에 발표하십시오!"

신용진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장내에서 물러났다.

직후 한국으로 한통의 국제전화를 걸었다.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김동진 히말라야 전자 대표가 내 집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뉴퍼 회장과 접촉한 결과 우리가 먼저 메모리 단가를 인상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합니다."

"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자의 의도가 뭘까요?"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 단가를 인상한 틈을 타서 시장 쉐어를 확보하려는 노림수 같습니다."

내 생각도 김동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자의 꼼수에 넘어가시면 안됩니다.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김동진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내일 뵙겠습니다. 회장님."

동진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곧바로 월가 중개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주가시황을 말씀해 보십시오.

중개인이 즉답했다.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탓에 끝을 모르는 하한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금년도 적자가 얼마죠?

-2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총을 말씀해 보십시오?

-대략 190억 달러 내욉니다. 얼마 안되는 규모지만 시장에 풀린 매물 자체로는 경영권을 확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형국입니다.

-뉴퍼 회장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도 말해 주십시오.

-24프로 정도의 지분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등의결권 제도 덕분에 과반수 의결권을 자유로이 행사하고 있습니다.

-개미들과 기관들의 주식을 매입해 봤자 경영권 확보는 거의 불가능한 형국입니다.

중개인의 말이 정답이었다.

-뉴퍼 회장의 지분을 매입하는 게 최선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성심빌딩 개인 사무실로 김동진 대표를 불러들였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뉴퍼 회장과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김동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회장님이 직접 만나실 생각입니까?"

"그래야 할거 같습니다. 그러니 미국에 있는 신용진 이사에게 내 의중을 전하세요."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

2005년 새해 벽두부터 북한 노동 방송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세간의 화제로 급부상했다.

피죽으로 연명하는 거지들이 자신들의 주제를 망각한 채 한국을 졸로 보고 있었다.

북한이 저리 당당하게 나오는건 순전히 핵무기 덕분이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바보처럼 비핵화를 운운하며 비핵 정상회담에 연연하고 있었다.

한국에게 가장 필요한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무기였다.

호시탐탐 한국의 적화통일을 염원하는 북한놈들을 막아내기 위해선 자위권 차원의 핵무장이 최선이었다.

허나, 정부 당국자들은 핵무장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북한을 향한 유화 정책만을 우직하게 밀고 나갈 뿐이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공산당과 친일파 놈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무조건 때려잡는 게 정답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 무렵, 마이크런 반도체의 뉴퍼 회장 측에서 뉴욕에서 만남을 갖자는 연락이 왔다.

< 히말라야 투자그룹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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