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25화 (50/200)

< 메모리 반도체 천하통일 1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창가를 서성이며 향후 계획을 면밀히 검토했다.

내 수중에는 8조원 내외의 가용현금이 전부였다.

마이크런 반도체 인수와 히말라야 전자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대략 17조원 안팎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까닭이었다.

이제 승부를 봐야 할 싯점이었다.

나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쉐어를 거의 98프로 이상 점유한 탓이었다.

일본의 도시바가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철수를 공언한 상태였다.

매년 지속되는 천문학적인 적자에 일본 정부마저 공적자금 투입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또한 반도체 공장의 설비도 노후화된지 이미 오래였다.

히말라야 전자와 마이크런 반도체가 40나노대 메모리를 양산할 체제에 돌입한 것과 달리, 그들은 여전히 70나노대 메모리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시바의 반도체 공장은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즈음, 거실 책상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해냈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체이스 회장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만한 적임자를 찾아냈습니다.

-그가 누굽니까?

-콘웨이 펠로시 기술 이삽니다.

-어떤 사람이죠?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그리고 여자를 특히 밝히는 남자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아주 무능력합니다. 자리만 보전해 주시면 말을 아주 잘들을 타입입니다.

내가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자와 면담을 진행하십시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마이크런 반도체의 콘웨이 펠로시 기술이사는 계속되는 영업부진과 부하 여직원 성희롱 문제로 시면초가의 형국에 내몰린 상황이었다.

그런 펠로시 이사에게 하늘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동아줄이 내려왔다.

뉴퍼 전 회장에게서 마이크런의 경영권을 인수한 칼라일 그룹의 체이스 회장이 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펠로시는 만사를 제쳐두고 약속 장소인 뉴저지 인근의 골프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체이스는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문 채 여유로이 라운딩을 즐기는 한편 지근거리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는 펠로시에게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당신을 마이크런 반도체의 대표이사로 임명하면 나에게 뭘 줄 수 있나?"

펠로시는 자신이 일생일대의 찬스를 맞이했음을 직감했다.

그는 간과 쓸개마저 모조리 내어주기로 작심했는지 간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수행하겠습니다."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자네 연봉과 판공비를 절반 가량 나에게 줄 수 있나?"

펠로시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즉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회장님!"

체이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내가 연락할 때까지 자택에서 기다리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면전에 김동진 히말라야 반도체 대표이사가 나타났다.

곧바로 그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의 기가당 단가를 15달러로 책정하세요. 그리고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6달러로 인상하십시오."

김동진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급격하게 가격을 인상하시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차를 두고 차근차근 단가를 인상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김 대표의 고견을 말해보세요."

"금년에는 대략 200% 정도를 인상하시는 게 적당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년도별 가격 인상 방안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금 현재, 메모리 시세를 말해보세요."

"D램 메모리는 기가당 3달러 수준이고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1.5달러 수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D램 메모리 6달러와 낸드플래쉬 메모리 3달러 수준으로 인상하자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나중에 상황을 봐서 가격을 인상하면 될 듯 합니다."

"년도별 가격 인상 전략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세요."

"예상 매출액과 영업이익 규모도 산출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김 대표의 방안대로 일을 추진하세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김 대표를 내보낸 뒤,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서울 모처에서 김성우와 저녁 식사를 함께한 뒤 넌지시 부탁을 넣었다.

"김명우를 양선구 재보궐 선거에 출마시킬 생각입니다."

"당은 정하셨습니까?"

"한국당 간판을 달아줄 생각입니다."

"돈이 많이 들겠군요. 비록 2년 짜리 국회의원이지만 양선구는 한국당의 전통적인 텃밭입니다."

"누구한테 돈질을 해야 할까요?"

"당권을 쥐고 있는 박선미 대표에게 돈을 전달하심이 좋아보입니다."

본능적으로 박선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tv에서 그녀를 볼때마다 말로 표현 못할 거부감이 들었다.

나와 맞지 않는 여자였다.

"이명복 서울시장의 당내 영향력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정도 지분은 있지만 박선미에 비할 정도는 아닙니다. 더구나 양선구는 부자 지역구라 박선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유달리 많은 지역입니다."

내 마음을 눈치챈 김성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큰 일을 하시려면 사적인 감정은 뒤로 미루시는 게 좋을 겁니다."

김성우의 말이 정답이었다.

테이블 위에 1억원 짜리 양도성 예금증서 30장을 올려놓았다.

"저 대신 박선미 대표에게 돈을 전달해 주십시오."

"원하신다면 제가 거간꾼 노릇을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김성우에게 돈 배달을 부탁한 뒤 타워필리스로 직행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명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뒤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릴 찰나 녀석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거를 하려면 운동원이 필요한데,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기존의 한국당 조직원들을 활용하면 되잖아."

"그 인간들이 낙하산을 위해서 선거운동을 해줄거 같지 않다니까!"

"돈질을 하면 돼. 그래도 안움직이면 강태호 애들을 동원하던가."

"자기 일 아니라고 말은 청산유수네. 에휴..."

"암튼 한국당 후보로 결정되면 강태호랑 상의해서 선거운동 전략을 짜봐."

명우는 평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지만 녀석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국회에 입성할 각오였다.

"돈, 조직 모든걸 지원해 줄테니까 무조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니가 말 안해도 그럴 생각이니까 걱정은 넣어둬라. 형이 다 알아서 하니까."

"방금 전까지 죽는 소리만 하던 놈이, 어느새 기가 팍 살아났구만. 후후..."

명우를 돌려보낸 뒤 이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으로 와라. 니가 보고 싶으니까.

-예. 지금 갈게요. 회장님.

-화장은 필요없으니까 그냥 와. 기다리기 지루해.

-그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30분 후, 민정이 내 집에 나타났다.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며 즐거운 한때를 만끽했다.

***

경호원과 주한수를 대동한 채 한강변을 거닐며 마이크런 반도체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나는 마이크런의 미국 현지 공장을 한국으로 모두 이전할 생각이었다.

미국 땅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놔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이크런은 내 회사였다.

더구나 미국은 인건비가 한국 보다 1.5배 이상 비싼 국가였다.

뿐만 아니라 전기세도 한국 보다 3배 이상 비쌌다.

한국은 산업용 전기 특혜를 받을수 있었지만 미국은 그런 혜택이 전무했다.

그곳에서 공장을 돌리는 건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진배 없었다.

마음을 정한 뒤 체이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콘웨이 펠로시와 면담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원하신다면 펠로시를 한국으로 보내겠습니다. 회장님의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자를 한국으로 보내 주십시오. 사람 됨됨이를 제가 한번 보고 싶거든요.

-펠로시에게 회장님에 대해서 넌지시 알릴까요?

-어차피 우리와 한 배를 탈 사람이라면 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펠로시에게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주십시오.

***

맨해튼 모처.

체이스는 면전에 앉아 있는 펠로시에게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로키마운틴 사모펀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 대주주께서 당신을 보고 싶어하더군."

"그 분이 누굽니까?"

"히말라야 전자의 이태수 회장일세."

순간 펠로시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메모지 한장을 펠로시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 분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게."

체이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콘웨이 펠로시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직접 면담을 하기 위함이었다.

펠로시와 함께 가평의 클레이 사격장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 사람답게 총기를 잘 다뤘다.

곰 사냥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는 클레이 사격을 즐기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미국 공장을 한국으로 최단 시일 안에 이전하십시오."

펠로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마이크런 반도체의 대표이사가 되고 싶다면 내 명령대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가 두눈을 굴리며 나를 은근히 쳐다봤다.

마이크런의 진정한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눈치였다.

그런 탓인지 별다른 고민 없이 내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저를 대표이사로 낙점해 주신다면 회장님이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든 완수하겠습니다."

"좋은 자세에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표 이사직을 역임해 주십시오."

"넵. 회장님."

"다음주에 임시 주총을 개최하는 자리에서 당신을 대표이사로 선임할 겁니다."

펠로시가 감격한 얼굴로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한국식 예절을 나름 연구한 모양이었다.

예스맨의 자세가 된 남자였다.

"연봉 7백만 달러와 판공비 조로 5백만 달러를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명한대로 지체없이 이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십시오. 회장님."

"마지막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을 1기가당 6달러 수준으로 전격적으로 인상하십시오. 그리고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3달러 수준으로 인상하시고."

"히말라야 전자도 보조를 맞추는 건가요?"

펠로시가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럴 생각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덤핑 판매는 없습니다. 제 값을 받을 생각이니까 대표 이사로 취임하자마자 IT 업체에 동시다발적인 가격 인상 공문을 보내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24층 회의실로 들어서자 히말라야 반도체의 고위 임원들이 나를 향해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그들의 인사를 모르쇠로 일관한 채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임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제 자리에 착석했다.

옆자리에 배석한 김동진 대표이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메모리와 낸드플래쉬 메모리의 5개년 가격 인상 계획안을 발표하십시오."

"넵. 회장님."

김동진은 그리 화답한 뒤 회의실 중앙에 위치한 대형 프로젝션 TV 앞으로 걸어갔다.

TV 화면에 5개년 가격인상 계획안이 한가득 떠올랐다.

김동진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D램 메모리와 낸드플래쉬 메모리의 단계적인 가격인상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금년도 2005년부터 메모리의 단가를 기가당 6달러,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3달러 수준으로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메모리 단가를 기가당 12달러,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6달러 내외로 가격을 인상할 예정입니다."

"2007년에는 메모리 단가를 기가당 24달러, 낸드플래쉬 메모리는 기가당 12달러로 책정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도는 메모리 단가를 기가당 30달러, 낸드플래쉬 메모리의 경우 기기당 14달러 수준으로 인상할 계획입니다."

동진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장내에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가라앉은 뒤 김동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상 매출액과 영업이익 액수도 발표하십시오."

"넵. 회장님."

김동진은 프로젝션 TV를 지시봉으로 가리켰다.

"화면에 표시된 대로 2005년에는 총매출 35조3천300억원, 영업이익 3조1천2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물론 가격 인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만성적인 적자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09년 경에는 총매출 92조 4천 600억원, 영업이익 15조 7천 2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격렬한 박수 갈채가 장내에 터져나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D램 메모리와 낸드 플래쉬의 가격 인상이 계획대로 실시될 경우 히말라야 전자는 전세계 최고의 글로벌 대기업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

***

마이크런 반도체 뉴저지 본사 회의실.

마이크런의 신임 총수로 등극한 콘웨이 펠로시 대표이사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현지의 D램 메모리와 낸드플래쉬 메모리 공장을 한국으로 전격적으로 이전할 생각입니다."

순간 장내가 벌집을 쑤신듯 소란스러워졌다.

미처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펠로시는 임원들의 우왕좌왕하는 면면을 조소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여유로이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미국 공장은 인건비가 너무 높아요. 그리고 전기세도 너무 비싸고. 반면 한국 근로자들은 미국 근로자의 7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그는 못이 탓는지 생수로 목을 축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더구나 한국은 산업용 전기를 기업들에게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적절한 공장 이전 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불만스런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주주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독단적인 결정을 하시는거 아닙니까?"

그러자 펠로시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영권을 인수한 칼라일 그룹 측과 사전에 교감을 나눴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실 필요가 전혀 없어요."

펠로시는 비웃듯 말한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이시간 이후로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를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십시오."

< 메모리 반도체 천하통일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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