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26화 (51/200)

<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은, 내가 정한다! 1 >

히말라야 전자 북미 지사가 위치한 LA의 모 빌딩에 애플, HP, 델컴퓨터, 엔비디아, ATI, 아마존, MS, IBM 관계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은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을 기존보다 2배 가까이 인상한 히말라야 전자를 한목소리로 맹비난했다.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소리 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을 200%나 인상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누군가 목청을 드높이자 기다렸다는 듯 히말라야 전자를 비난하는 언사가 줄을 이었다.

"사전에 가격 인상안을 고지도 안한 채, 자기들 멋대로 메모리 가격을 인상한다는 건 깡패들이나 할 법한 일입니다. 이건 절대 용납할수 없는 일이에요!"

"옳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서 히말라야 전자에 본때를 보여줍시다!"

그들이 격앙된 얼굴로 히말라야 전자를 맹비난할 무렵, 장내에 북미 지사장인 이한동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는 저간의 사정을 수하 직원에게 보고 받았음인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냉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히말라야 전자는 그 동안 수백억 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봤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상태로 1년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우리 히말라야 전자는 파산할 것이 불보듯 훤합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을 정상화 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우리 가격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이한동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장내에 덩그라니 남은 IT 업계 관계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허탈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때, 누군가 마이크런 반도체를 입가에 떠올렸다.

얼마 후, 그들은 마이크런 반도체의 본사가 있는 뉴저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마이크런 반도체 뉴저지 본사에 전세계 굴지의 IT 업계 관계자들이 내방했다.

그들은 랜스 버튼 영업담당 이사의 사무실로 몰려갔다.

랜스 버튼 이사는 눈 앞에 도열한 IT 업계 관계자들에게 냉정한 어조를 내뱉었다.

"우리 회사 역시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을 기가당 6달러와 3달러로 책정한 상탭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덤핑 판매는 없을 거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히말라야 전자와 서로 짜고 치는 겁니까?"

애플 관계자의 입에서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에 질세라 HP, 델컴퓨터, IBM, 아마존, 엔비디아, ATI 관계자들도 한목소리로 랜스 버튼을 비난하는 언사를 쏟아냈다.

"상도의상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가격을 200% 가까이 인상하는건 깡패들이나 하는 짓거리에요!"

"이런 식으로 가격을 담합한다면 미국 상무부에 마이크런 반도체를 제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랜스 버튼은 회사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IT 업계 관계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지난 6년 동안 12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봤습니다. 메모리 업계를 강타한 치킨 게임의 후폭풍 때문입니다."

"더 이상 원가 이하로 메모리를 여러분들에게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거 아닙니까!"

"그러니 상무부에 가격담합으로 제소를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십쇼. 회사가 파산할 지경인데, 그런 개소리를 미국 상무부가 받아들일거 같습니까!"

랜스 버튼의 논리정연한 반박에 장내를 가득 메운 IT 업계 관계자들의 입이 삽시간에 꿀먹은 벙어리로 전락했다.

랜스의 말대로 마이크런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가격을 인상했을 뿐이다.

가격담합으로 제소할 여지 자체가 전무했다.

결국 그들은 본전도 챙기지 못한 채 왔던 길로 쓸쓸히 되돌아갔다.

자업자득이었다.

***

칼라일 그룹의 체이스 회장이 비밀리에 한국을 내방했다.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체이스 회장을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로 초대했다.

우리는 거실의 홈바에서 칵테일을 음미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한국 이전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회장님."

체이스가 두눈을 빛내며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그래서 말인데, 저에게 아주 좋은 묘안이 있습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요?"

"마이크런 반도체 공장의 한국 이전을 지렛대 삼는다면, 외자은행 인수건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체이스가 내 앞으로 바짝 당겨앉으며 노회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한국 정부는 부진한 국내 경기를 촉진하기 위해 해외 자본의 대규모 투자를 애타게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판국에 마이크런 반도체가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한다면 한국 정부는 쌍수를 들어 환영을 표할 것이 불보듯 훤할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한국 정부는 외자은행 우선협상 대상자를 은밀히 선정하는 중입니다."

"우리 경쟁자가 누구죠?"

"호주계 사모펀드와 중국계 자본, 독일계 사모펀드 등이 한국 정부와 접촉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려면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겠군요."

"그래서 회장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펠로시 대표에게 한국으로 반도체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를, 당분간 외부에 공표하지 말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닙니다. 의당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건 그렇고, 외자은행을 인수한 이후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체이스가 두눈을 번뜩이며 즉답했다.

"외자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자마자 대주주배당 비율을 기존 보다 5배 이상 전격적으로 인상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선물옵션 상품을 월가에 판매할 계획입니다."

"또한 외자은행의 부동산과 현물 자산을 최단 기간 내에 처분해서 투자금을 회수할 방안을 갖고 있습니다."

"최종 투자 수익률도 말씀해 주십시오."

"최소 400% 이상의 투자 수익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나는 외자은행 인수합병 사모펀드에 10억 달러 내외를 투자한 상태였다. 체이스는 그런 나에게 40억 달러 안팎의 투자수익을 확약했다.

한화로 4조8천억에 육박하는 거액이었다.

체이스 회장과 면담을 끝마친 뒤 타워필리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펠로시 대표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는지요?

-반도체 공장의 한국 이전을 당분간 언론에 공표하지 마십시오. 아직 외부에 그같은 사실이 드러나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언론에는 공표하지 않겠습니다.

-한달 정도 뜸을 들여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

청와대 경제수석실.

김태동 경제수석은 대기업과 해외 자본등에게 연일 국내 투자를 읍소하고 있었다.

허나,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해외 자본 역시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투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 김태동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칼라일 투자그룹의 체이스 회장이 투자 문제로 전화통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비서관은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김태동의 손에 공손히 건넸다.

김태동은 기대만발한 얼굴로 폰을 받아들었다.

직후 수화기에서 체이스 회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한국 이전 문제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수석님.

-실례지만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겸사겸사 한국을 방문한 상황이에요. 지금 신라호텔에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제가 오늘 밤이라도 회장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오후 1시 무렵에 신라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점심이나 같이 하면서 대화를 나눕시다.

-좋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신라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체이스 회장과 김태동 수석은 프랑스 정식을 음미하며 진지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체이스의 입에서 나직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칼라일 사모펀드를 외자은행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해 주시면 마이크런 반도체 공장의 한국 이전을 책임지고 성사시켜 드리겠습니다."

"흠..."

김태동의 입에서 깊은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체이스는 재차 김태동의 마음을 뒤흔드는 언사를 쏟아냈다.

"마이크런 반도체는 전세계 메모리 쉐어를 23% 가량 차지하고 있습니다.직접 고용인원만 해도 3만명에 육박하고 직간접 고용인원을 포함할 경우 최소 20만명에 달하는 고용유발 효과를 볼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반도체 설비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최소 1조 9천억에 상당하는 공사비가 투입될 예정입니다. 직간접 공사비를 총합할 경우 3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한국땅에 뿌려지는 겁니다."

김태동은 체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백번 생각해도 그의 말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런 반도체의 한국 이전을 약속하는 공문서를 정부에 제출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태동은 공문서 지상주의자였다.

구두로 합의된 내용을 결코 믿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공문서야 말로 그가 유일하게 믿는 안전장치였다.

"원하신다면 마이크런 반도체의 투자 의향서를 정부 측에 제출토록 하겠습니다. 더불어서 펠로시 대표와 김 수석의 만남을 주선해 드리죠."

태동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체이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간파한 탓이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그런 뻔한 말을 듣자고 이런 일을 벌인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건 외자은행의 우선인수 협상자 자격을 취득하는 겁니다."

"그 문제는 제가 책임지고 성사시켜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한국 정부의 공문서를 원해요."

"염려 마십시오. 제가 조만간 회장님에게 우선인수 협상자 자격을 증명하는 공문서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태동은 그리 확약한 뒤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그날 밤, 청와대 집무실.

김태동은 체이스 회장의 전언을 노무연 대통령에게 한자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보고했다.

노무연의 얼굴에 흡족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마이크런 반도체의 한국 이전이 성사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겠군요."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취할수 있습니다. 직간접 고용인원만 최소 20만명에 달하고, 공사비 역시 직간접으로 3조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좋아요. 하루 빨리 마이크런 반도체 측에서 투자의향서를 받아내세요. 필요하다면 펠로시 대표이사를 청와대로 초청하셔도 무방합니다."

"말씀대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 회장실.

잡스는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조나단 벅홀츠 기술이사에게 냉정한 어조를 내뱉었다.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를 대량으로 매입한다는 조건으로 단가를 후려치세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제깟놈들이 단가를 인상한다고 난리를 쳐도 대량 매입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 순순히 무릎을 꿇을 겁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회장님."

"히말라야 전자와 마이크런 반도체를 두루 접촉하세요."

"네. 회장님."

***

히말라야 전자의 반도체 공장은 수원과 천안, 평택 등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도권과 근거리에 위치한 탓이었다.

히말라야 전자의 고위 임원들을 대동한 채 반도체 공장을 두루 시찰할 무렵, 김동진 대표 이사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장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죠?"

"애플에서 방문한 고위 관계자가 회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자가 어디에 있죠?"

"평택 공장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 곳으로 안내하세요."

"네. 회장님."

평택 공장 사무실로 들어가자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앉은 채 나 홀로 커피를 음미하는 양놈이 보였다.

그 녀석은 나를 보았음에도 소파에 못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까딱하는게 고작이었다.

놈의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자 그제서야 자기 소개를 했다.

"애플의 부품 수급을 담당하는 조나단 벅홀츠 기술 이삽니다."

녀석은 그리 말하며 내 손에 명함 한장을 쥐여주었다.

놈이 건넨 명함을 김동진에게 전달한 뒤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이 뭡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애플사는 귀사에 대량의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를 발주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D램과 낸드플래쉬의 단가를 1기가당 4달러와 2달러 수준으로 맞춰 주십시오."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개소리였다.

히말라야 전자는 전세계 메모리 시장을 완벽히 장악한 상태였다.

시장 지배자의 지위를 완성한 것이다.

애플 할애비가 이 자리에 온다고 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죄송하지만 시장에 공시한 대로 D램과 낸드플래쉬의 단가는 기가당 6달러와 3달러 입니다. 그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마이크런 반도체로 부품 수급선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마이크런으로 가 보십시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

캘리포니아 애플 본사 회장실에 조나단 벅홀츠 기술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송구한 얼굴로 잡스 회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히말라야 전자와 마이크런 반도체에 D램과 낸드플래쉬의 단가를 낮춰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음..."

잡스의 입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협상이 통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겁니까?"

"양사 모두 메모리 덤핑 판매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자세 같습니다."

"그럼 마이크런 반도체에 모바일 D램을 전량 발주하세요. 그리고 낸드플래쉬는 히말라야 전자에 발주하고."

"죄송하지만 마이크런 반도체는 모바일 D램 양산 체제에 아직 돌입하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잡스의 입에서 격한 언성이 튀어나왔다.

그는 히말라야 전자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싶지 않았다.

본능적인 경계심의 발로였다.

허나, 현실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이크런의 낸드플래쉬 양산 체제가 언제 완료되는 겁니까?"

"1년 이상 준비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다른 메모리 업체는 없는 건가요?"

"도시바가 있지만 그들은 이미 메모리 분야에서 철수를 선언한 상황입니다."

결국 잡스는 울며 겨자 먹는 심경으로 히말라야 전자에 대량의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쉬를 발주했다.

< D램과 낸드플래쉬의 가격은, 내가 정한다!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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