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28화 (53/200)

< 히말라야전자 중국 서안(西安)공장 1 >

얄리바바의 마영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신라호텔 한정식 레스토랑에서 정갈한 한식을 음미하며 진지한 태도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얄리바바의 서버를 대대적으로 증설할 예정입니다. 그러자면 막대한 양의 D램과 낸드플래쉬 메모리가 필요합니다."

얄리바바는 중국 대륙에서 대규모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한국 IT 업체와 차원이 다른 사업규모를 실현하는 중이었다.

"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얄리바바의 빠듯한 자금 사정으로는 D램과 낸드플래쉬의 인상된 가격을 맞추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해 드릴테니 얄리페이가 궤도에 오르는데 전심전력해 주십시오."

마영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히말라야전자의 수원 공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임직원들이 오전 업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

김동진은 푹신한 의자에서 느긋한 자세로 모닝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방문한 나를 목격하자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그의 인사를 귓등으로 흘리며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중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얄리바바 측에 D램과 낸드플래쉬 가격을 각각 3달러와 1.5달러 수준으로 제공하세요."

그러자 김동진이 놀란 얼굴로 양팔을 맹렬히 저었다.

"특정 업체에 편의를 봐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거래 업체에서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동진은 내가 얄리바바의 지분을 90% 남짓 보유한 절대 지배주주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죠. 얄리바바는 내 회사나 마찬가집니다."

그가 경악한 얼굴로 확인하듯 물었다.

"그 말씀이 사실입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 내 말대로 얄리바바의 편의를 봐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전용기가 광활한 태평양 상공을 쾌속하게 가르고 있었다.

내 시선은 푸른 하늘에 짙게 펼쳐진 하얀 구름에 절로 모아졌다.

그때, 주한수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싱턴에 가시는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한수는 그 점이 사뭇 궁금한 모양이었다.

"정말 알고 싶어?"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장님."

"한달 전에 나를 찾아온 미국 여자 기억나?"

"네. 생각 납니다. 매우 아름다운 분이셨죠,"

"그 여자 남편이 민주당 대선 후보 레이스에 뛰어들었어. 그런데 선거자금이 부족하데. 그래서 겸사겸사 워싱턴으로 가는거야."

한수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정치인에게 뭐하러 정치헌금을 하시는 겁니까?"

"그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제 생각에는, 쓸모없는 돈질 같습니다. 미국 정치인이 한국 경제인에게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안젤리나는 착한 여자야.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거다. 그러니 입다물고 잠이나 자라."

그리 말하자 한수가 송구한 얼굴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주제넘게 입을 놀렸나 봅니다."

"알면, 얌전히 눈이나 붙이라고."

"네. 회장님."

27시간의 비행 끝에 워싱턴 DC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한 뒤 안젤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안젤리나가 보낸 리무진 차량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 밤.

워싱턴 모처의 빌딩으로 들어가자 바락 아바마를 응원하는 슬로건들이 장내에 산더미처럼 나부꼈다.

후원행사가 열리는 이벤트 룸으로 들어서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안젤리나와 그녀의 부군인 바락 아바마가 시야에 들어왔다.

안젤리나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넨 뒤 바락 아바마에게 봉투 한장을 내밀었다.

"미국 정치를 위해서 백악관에 입성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아바마가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안젤리나가 이 회장님을 많이 칭찬하더군요. 하하..."

아바마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보낸 뒤 봉투에서 수표 한장을 끄집어냈다.

그는 수표의 액수를 확인한 뒤 경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이 많은 금액을 저에게 후원해 주시는 겁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제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그리 말하자 아바마가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힘차게 부여잡았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잠시 뒤, 안젤리나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스스럼없이 내 팔짱을 꼈다.

"내가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을 소개해 줄게."

안젤리나는 그리 말하며 나를 민주당의 고위 인사들이 모여있는 연회장 한켠으로 이끌었다.

***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로 직행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결재서류들이 망막 가득 포착됐다.

곧바로 결재서류에 회장 직인을 재빨리 날인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김용대 본부장이 장내에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린 뒤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시아 최고 최대의 연말 가요 시상식을 만들 계획입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한류를 이끄는 KPOP 아이돌을 중심으로 고품격의 시상식을 국민들에게 선보일 생각입니다."

김용대는 두눈을 반짝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홍콩 등지를 무대로 KPOP 대축제의 한마당을 만드는 겁니다.

나름 쓸만한 아이디어였다.

김용대의 말대로 KPOP은 한류를 이끄는 선두주자였다.

일반인들은 드라마와 영화가 한류를 이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건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국은 몰라도 KPOP은 안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상상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드라마도 동남아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지만 KPOP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영화는 말할 가치도 없었다.

한국 영화는 외국에서 통하지 않았다.

영화판을 장악한 흥행배우들의 비쥬얼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판의 주류 흥행배우들은 대다수 40대 이상이었다.

외국인들에게 먹힐 요소가 전무했다.

반면 드라마 주연 배우와 아이돌의 경우 비쥬얼 적으로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통할 만했다.

나이가 그 만큼 젊은 탓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깊숙이 빠져들 찰나, 김용대의 걸걸한 목소리가 귓전을 강타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요제라는 의미로 아시아 뮤직 어워드(Asia Music Awards)라고 작명했습니다. 줄여서 AMA 시상식으로 언론에 공표할 계획입니다."

"1회는 무조건 상암동 O2 아레나에서 개최해. 그리고 구색 맞추기 용도로 일본 가수와 중화권 가수들도 섭외하고."

"대신 제작비용이 많이 소요될 겁니다."

김용대는 그리 말하며 은근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제작비용은 달라는 대로 아낌없이 지원할테니,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요제를 만들어 봐."

"감사합니다. 회장님."

***

히말라야전자 수원공장 회의실로 들어서자 김동진 대표이사를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모르쇠로 일관한 채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 앉으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임원진들이 일사불란하게 착석했다.

곧바로 프로젝션 TV를 켰다.

연합뉴스로 채널을 돌리자 히말라야전자의 천안 공장 준공을 대대적으로 방영하고 있었다.

-12월 29일 천안시에서 진행된 히말라야 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 준공식에는 청와대 김태동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김재현 장관, 박평우 천안시장 그리고 김동진 대표이사 등 히말라야전자 경영진이 참석했습니다.

-이번에 건립된 히말라야전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은 2004년 6월 기공식을 갖고 약 18개월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단지는 총 34.5만 평의 부지에 연면적 7만 평 규모로 건설됐으며, 성능과 양산성을 확인한 40나노급 D램 메모리와 낸드플래쉬 메모리를 생산합니다.

-히말라야전자는 천안공장 가동으로 수원과 평택, 천안을 삼각 벨트로 하는 '반도체 생산 3거점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히말라야전자 관계자는 천안 공장 완공으로 반도체 제품을 생산, 조정하는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실현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협력사들 또한 천안공장 완공으로 부품 수급에 활기를 띠게 됐다며 대다수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중략...

뉴스가 끝나자 장내에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한참 동안 쏟아졌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무렵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동진에게 넌지시 명을 내렸다.

"히말라야전자의 2005년도 총매출과 영업이익을 보고하십시오."

"네. 회장님."

김동진은 그리 화답한 후 프로젝션 TV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화면에 떠오른 총매출과 영업이익을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당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는 3분기부터 시행된 가격 정상화 정책에 힘입어 고질적인 만성적자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히말라야전자는 예상 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38조7천900억원대의 총매출과 4조2천400억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순간 장내에 우뢰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아....!"

"히말라야전자 만세...!"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기쁨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회의실을 온통 장악했다.

임원진들은 벅찬 환희를 만끽했다.

지난 7년간 지속된 대규모 적자 행진에서 드디어 벗어난 탓이었다.

허나, 김동진은 좋은 말만 하지 않았다.

"중국 섬서성 서안시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 대규모 노사분규가 발생했습니다."

며칠 전에 보고를 받은 사안이었다.

"노사분규가 여전한 겁니까?"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의 공안들이 수수방관하는 모양새라고 하더군요."

임원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노심초사하는 표정이 짙게 드리워졌다.

이 자리에서 논하기에는 보는 눈과 귀가 많았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단 둘이 협의를 나눕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회의를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 대표는 나를 따라오세요."

"네. 회장님."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김동진에게 넌지시 물었다.

"중국 현지의 분위기를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김동진이 심각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노사분규를 주도하는 노동자들의 뒤에 중국 공안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증거가 있나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습니다."

"그 심증이라는게 뭐죠?"

"한달전에 중국 공산당에서 파견나온 고위 인사가 서안공장 관계자에게 반도체 기술을 이전하라고 협박조의 발언을 일삼았다는 보고를 전달받았습니다."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반도체 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경우 공장의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왜, 이제서야 하는 겁니까? 그 전에 나에게 보고를 올렸어야죠."

"죄송합니다. 사태가 이 정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면목없습니다. 회장님."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에요. 지금 가장 시급한 건 노사분규의 종식입니다."

"서안시 공안 책임자에게 백방으로 노사분규를 막아달라고 요청한 상태지만 이렇다할 답변을 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서안 반도체 공장은 삼송전자가 5년 전에 완공한 곳이었다.

내가 그 당사 삼송전자 책임자였다면 결코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안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말해 보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 근로자들보다 임금이 많이 낮아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유가 뭐죠?"

"중국은 합작기업 측에 노동자의 의료보험비용, 복리후생비 등을 전액 부담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실제 중국 현지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실급여 액수는 이미 한국 근로자 수준에 육박할 지경입니다."

"실익도 없는 곳에 뭐하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거죠?"

"그 당시 삼송전자 경영진들은 중국 현지에 메모리 반도체를 판매할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거 같습니다."

"어차피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 히말라야가 독점하는 사업분야에요.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아도 그놈들이 알아서 한국으로 메모리를 사러 온다 이말입니다."

"저 역시 회장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 무렵, 우리를 태운 리무진 차량이 서울에 도착했다.

우리는 인근의 밥집에서 늦은 점심으로 배를 채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안 공장의 반도체 공정을 말해보세요."

"주로 DDR1 램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주력 D램은 DDR2 메모리였다.

"한국 공장보다 한세대 정도 뒤처진 레벨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근로자 숫자는 몇명이죠?"

"대략 19000명 가량입니다."

"서안 공장을 폐쇄할 경우 우리 측의 손해가 어느 정도로 발생할까요?"

김동진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노사분규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래도 공장폐쇄는 너무 섣부른 생각이십니다. 회장님."

"하여튼 내가 묻는 질문이나 어서 대답하세요."

김동진이 염두를 굴리는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공장 설비를 한국으로 공수한다 해도 최소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1조원이라...?"

"그 정도 손실은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일단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게 급선무였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조건이 뭐죠?"

"월급여 200% 인상과 두달 마다 보너스 100% 지급을 원하고 있습니다."

중국 근로자들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의료보험과 복리후생비용도 만만찮은 현실에 한국 수준의 임금을 요구한 탓이다.

이건 제로섬 게임이었다.

노동자들의 뒤에 중국 공산당 정부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중국 현지에서 공산당 고위 인사를 만나보세요. 특히 공갈협박을 일삼았다는 그 남자를."

"내일 중으로 중국 산서 공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시급을 요하는 일이니 내일 오전 비행기로 떠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 히말라야전자 중국 서안(西安)공장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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