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미특사(對美特使) 1 >
청와대 집무실.
노무연 대통령의 면전에 신임 국정원장 차도술이 나타났다.
그는 국정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대북 정책을 직접 주관한 실무자 출신이었다.
노무연은 그같은 점을 높이 산 탓으로 차도술을 후임 국정원장으로 낙점했다.
"무장 경호원들을 이태수 회장에게 보내세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이 회장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차 원장이 정중히 권유하면 받아들일 겁니다. 그러니 이 회장을 만나보세요."
차도술은 이태수를 귀히 여기는 노무연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그에게 솔직히 물었다.
"이 회장을 왜 그렇게 챙겨주시는 겁니까?"
노무연이 넌지시 대답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수조원 대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인물이에요."
"다른 재벌그룹들이 변명으로 일관한 채 국내투자에 매우 인색했던 반면, 이 회장은 과감하게 대규모 투자를 했어요. 바로 그 점을 높이 사는 겁니다."
"그래서 이 회장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거에요. 국내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높은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제서야 차도술은 저간의 사정을 납득했다.
"대통령님이 명하신 대로 이 회장에게 다시 한번 국정원의 요인 경호를 제안하겠습니다."
"수고를 해주세요. 차 원장님."
"네. 대통령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모닝커피를 음미할 무렵 주한수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국정원의 차도술 신임 원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들여보내. 커피도 내오고."
"네. 회장님."
잠시 뒤, 장내에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 정중히 인사를 해왔다.
"신임 국정원장으로 발탁된 차도술이라고 합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나직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커피나 한잔 하시죠."
"감사합니다. 회장님."
차도술은 나름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보다 직급이 낮은 차장 나부랭이와 전혀 딴판이었다.
우리는 달달한 커피를 음미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회장님의 안전이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차도술은 두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국정원은 요인 경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회장님도 그 대상이라고 할수 있죠."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지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회장님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들이 하는 일이죠."
국정원에서 이리 나오자 요인 경호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총기로 무장한 베테랑 요원들이 하루 24시간 회장님 주변을 철통같이 경호할 겁니다."
결국 차도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요원님들이 사용할 차량과 사무실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차도술은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예의를 아는 남자였다.
***
요인 경호를 전문으로 하는 국정원 요원들이 상암 드림 케이블 본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덕수 팀장 일행은 비서실장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한수는 사무실에 나타난 김덕수 일행에게 목례를 취한 뒤 곧바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회장님의 눈에 안띄게 경호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쓸데없는 마찰은 가급적 피해주십시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김덕수가 화답하자 주한수가 한시름 덜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회장님은 통이 크신 분이십니다. 경호에 성실하게 만전을 기해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실 겁니다."
김덕수 일행의 얼굴에 기대만발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들은 내심 재벌 회장을 경호하는 업무를 맡게된 걸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금쪽같은 떡값을 받아챙길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한수가 서랍에서 금일봉을 꺼내자마자 김덕수의 손에 쥐어줬다.
"이 돈으로 팀원들과 회식이라도 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실장님."
김덕수 일행의 입이 하나같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런 모습에 주한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모두 회장님의 배려죠."
"회장님에게 고맙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김덕수가 그리 청하자 한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팀장의 말을 고스란히 회장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날 부터, 김덕수 일행은 이태수의 지근거리에서 철통같은 무장경호를 펼치기 시작했다.
***
한남동.
김민용의 이목이 9시 뉴스에 모아졌다.
-히말라야전자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폭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히말라야전자는 가격 인상과 모바일 D램, 낸드플래쉬의 수요가 폭증한 덕분에 2분기 매출 19조원과 영업이익 3조원을 달성할 것이라는 증권사 리포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중략...
민용의 얼굴에 복잡미묘한 표정이 잔뜩 그려졌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을 인수한 히말라야전자가 하루아침에 큰폭의 흑자를 기록한 탓이었다.
그는 마이크런 반도체의 행보를 당최 이해할수 없었다.
언제나 어깃장만 놓던 그들이 히말라야전자와 한통속으로 가격인상에 보조를 맞춘 탓이다.
그 덕분에 D램 메모리와 낸드플래쉬의 가격은 2년전보다 무려 3배 이상 인상된 상태였다.
민용은 '땅을 치고 후회한다'라는 속담이 남의 말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이 산증인이었다.
"빌어먹을...!"
그의 입에서 격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허나, 이미 버스는 저 멀리 떠난 뒤였다.
***
대만 홍하이 정밀공업 본사 빌딩에 애플의 잡스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잡스는 홍하이 공업의 권태명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년 1월 출시를 목표로 1천만대의 스마트폰을 납품해 주십시오."
"단가를 말씀해 주시죠?"
"대당 5달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태명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통알류미늄으로 핸드폰을 제조하는 탓에 생산 단가가 대당 10달러 이상입니다. 회장님."
"그럼 할수 없군요. 다른 조립생산 업체를 알아 볼 밖에."
잡스는 매정한 언사를 내뱉은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권태명이 애절한 얼굴로 그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원하시는 가격대에 납품을 완료하겠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나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 성질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권 회장."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권태명은 잡스를 향해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굴욕적인 광경이었다.
다음날.
권태명은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
"애플은 대당 5달러에 핸드폰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태명이 그리 말하자 간부들이 하나같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통알류미늄 방식으로 주조하는 핸드폰이라 대당 생산가격이 최소 10달러가 넘어갑니다."
"맞습니다. 애플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적자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간부가 있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애플이 시도하는 스마트폰이 성공한다면 우리 홍하이는 안정적인 대규모 납품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권태명이 두눈을 빛내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생산단가를 낮출 묘안이 있나?"
"당연히 중국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그곳의 인건비를 쥐어짠다면 납품단가를 충분히 맞출수 있습니다."
권태명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오늘 부로 중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합시다."
그날 이후, 홍하이 정밀 공업은 중국 광동성 인근에 대규모 휴대폰 생산공장을 건립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통알류미늄을 베이스로한 애플의 스마트폰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별로 한 일도 없는거 같은데 2006년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시간이 물처럼 흐르는거 같았다.
달력을 보자 9월달이 보였다.
벌써 3분기에 접어들었다.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하자 슈퍼스타 드림 시즌 3가 절찬리에 방영 중이었다.
지상파 채널로 시선을 돌리자 외자은행 매각 뉴스가 절찬리에 방영됐다.
-정부는 수년 동안 자기자본비율을 총족시키지 못한 외자은행을 우선협상 대상자인 칼라일 사모펀드에 1조8700억 내외의 가격으로 매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한달 안에 매각 작업을 완료할 것임을 재차 천명했습니다. 중략...
일이 슬슬 풀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창가로 다가갔다.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자 상암동 O2 아레나에 운집한 소녀팬들이 시야에 포착됐다.
오늘은 드림 케이블 뮤직채널의 음악 순위프로그램인 드림 카운트다운의 생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슈퍼스타 드림의 재방이 끝나자마자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때, 인터폰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재연 국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들여보내.
-네. 회장님.
잠시 후, 김재연이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의 손에는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그게 뭐지?"
"LA KPOP 콘서트 기획안입니다."
"눈 아프니까 구두로 보고를 해봐."
"재미교포와 KPOP 팬이 많은 LA 지역에서 한류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장소는 어딘데?"
"LA 레이커스 프로농구팀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센터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몇명이 입장할수 있지?"
"2만 6천명 입니다."
"규모가 너무 큰데? 관중석이 텅텅 비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자 재연이 양팔을 격하게 저었다.
"현지에는 재미교포도 많을 뿐만 아니라 KPOP 팬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분명 80% 이상의 객석이 팬들로 들어찰 겁니다. 확신합니다. 회장님."
재연은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총 제작비가 얼마지?"
"콘서트장 대관료와 호텔 숙식비, 항공비, 가수 개런티 등을 총합할 경우 대략 15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름 대형 기획이었다.
"돈은 아낌없이 지원해 줄테니까 제대로 한류 콘서트를 해보라고."
"감사합니다. 회장님."
재연이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
연말에 접어들자 일본 북해도에서 스키를 즐기며 온천욕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그런 탓으로 이민정을 대동한 채 북해도로 훌쩍 떠났다.
그곳에서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북해도의 유서깊은 온천장에 여장을 푼 뒤 주한수를 면전에 불러들였다.
그는 내 품에 안긴 이민정을 힐끔거리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미국 대선 결과가 내일 새벽 시간에 발표될 예정이니까 실시간으로 체크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온천장에 있는 손님들을 모두 내보내. 주인장에게 돈푼깨나 집어주라고."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1시간 뒤, 민정을 데리고 노천 온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천 사장이 주한수에게 돈을 받아먹은 탓인지 장내에는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나와 민정, 주한수, 경호원 등이 전부였다.
한수와 경호원들을 저 멀리 남겨둔 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온천탕으로 들어갔다.
온천탕에서 민정과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 뒤 쇠고기 전골과 정종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그런 탓인지 절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 주한수가 눈 앞에 있었다.
녀석은 다소 들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민주당의 바락 아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내 돈질이 헛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아바마에게 정치자금으로 1억 5천만 달러 내외를 쏟아부었다.
그가 내심 미국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확신한 탓이었다.
곧바로 안젤라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아바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국내외에서 축하전화를 받느라 연결 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안젤라에게 축하인사를 대신 전하면 그만이었다.
핸드폰에서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바마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안젤라.
-고마워. 자기 덕분에 수월하게 당선된거 같아.
-잘 아는구나. 하하...
-다음주에 있을 백악관 당선파티에 자기도 꼭 와줘, 초청장을 보내줄게.
미국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다음날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한국처럼 두세달의 텀을 두고 인수인계를 하는 절차가 없었다.
-고맙다. 초청장을 보내주면 한달음에 달려갈게. 그때 보자.
-사랑해. 자기야. 그날 꼭 와줘.
-나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끊었음에도 안젤라의 애틋한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일주일 후.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에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업무에 매진할 즈음 주한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미국 대사가 회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대충 감이 왔다.
"백악관 취임 파티에 회장님을 모시려는거 같습니다."
주한수가 기대만발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를 따라서 백악관에 간다는 사실에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대사님을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넵. 회장님."
잠시 뒤, 장년의 미국 대사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비서가 내온 커피를 음미하며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바마 대통령 각하께서 회장님에게 초청장을 발송하셨습니다."
미국 대사는 그리 말하며 금박이 덧씌어진 고급스런 초청장을 내 손에 건넸다.
초청장을 살피자 아바마 대통령이 자필로 쓴 글씨들이 보였다.
-친애하는 이태수 회장님에게 초청장을 보냅니다.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부덕한 본인을 도와주신 이 회장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 금요일에 개최되는 백악관 취임 축하파티에 이 회장님을 정중히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되신다면 백악관 파티에 꼭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친애하는 이태수 회장님에게.
정성이 깃든 초청장이었다.
내심 아바마란 남자의 신의에 감동할 지경이었다.
미국 대사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만사를 제쳐두고 백악관 취임 파티에 가겠다고 아바마 대통령 각하에게 전해주십시오."
"회장님의 말씀을 각하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겠습니다."
***
청와대 집무실.
차도술 국정원장은 노무연 대통령에게 긴급현안을 보고했다.
"바락 아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취임 기념 파티에 이태수 회장을 초청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순간 노무연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디에서 입수하신 정보죠?"
"이태수 회장을 밀착경호하는 김덕수 요원이 알려온 내용입니다."
그제서야 노무연은 차 원장의 급보가 사실임을 깨달았다.
"상상 외로 이 회장의 인맥이 엄청나군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대미 특사로 이 회장을 선임하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차도술의 제안에 노무연이 넌지시 물었다.
"이 회장을 통해서 아바마에게 대북 정책과 한미현안에 대해서 딜을 넣으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 대미특사(對美特使)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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